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8화: 7번 밀폐함
봉합 바늘이 살을 꿰맬 때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의료 대원은 말하지 말라고 했고 아스칼론은 숨 쉬라고 했다. 둘 다 맞는 말이라 더 얄미웠다.
"꼬맹이. 이를 너무 세게 물면 턱부터 망가진다."
"지금 검한테 자세 교정까지 듣는 겁니까."
"검이니까 자세를 본다. 기본이다."
에제키엘은 시우의 옆 작은 거치대에 놓여 있었다. 반사면은 깨끗한 천 위에 얹혔고 보호 케이스 바깥에는 윤채아가 새로 붙인 임시 표식이 있었다.
[S급: 진실의 반사 거울 에제키엘]
에제키엘은 그 표식을 몇 번이나 비춰 보고 있었다.
"글자 간격이 아주 완벽하지는 않습니다만 폐거울보다는 낫습니다."
"그 정도면 엄청난 칭찬 아닌가요?"
"과장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준이 높습니다."
윤채아는 침대 발치에서 구 국립 신화 박물관 창고 도면을 보고 있었다. 의료 대원은 봉합을 마친 뒤 붕대를 단단히 감았다.
"움직이면 다시 벌어집니다. 최소 몇 시간은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됩니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스칼론이 바로 말했다.
"몇 시간이 아니라 오늘은 안 된다. 네가 일어나면 내가 무거워져서 손목을 바닥에 붙일 것이다."
"그건 보호가 아니라 협박입니다."
"효과적인 보호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내려놓았다.
"현장 조사팀이 구 창고에 도착했습니다. 강시우 씨는 이동하지 않습니다. 대신 에제키엘 반사면과 현장 영상을 연결합니다."
측정 담당자는 불편한 얼굴로 콘솔 앞에 서 있었다.
"부상자가 현장 판단에 관여하는 건 위험합니다."
"현장 판단은 제가 합니다. 강시우 씨는 감응 정보를 제공합니다."
"C급 헌터 팀도 투입됐습니다. 굳이 민간 특성 후보자에게 의존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스칼론이 비웃었다.
"C급이니 뭐니 하는 인간들 중 검집에 습기 찬 줄도 모르는 놈이 태반이다."
시우는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제가 듣기만 할게요. 움직이지는 않을게요."
윤채아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 하나 더 있습니다. 현장팀이 함을 열기 전 유물 의사 확인 절차를 거칩니다."
측정 담당자가 한숨을 삼켰다.
"아직 중앙 심사도 통과하지 않은 임시 절차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록을 쌓아야 합니다."
보조 화면이 켜졌다.
어두운 창고가 비쳤다. 낡은 선반과 봉인 상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끝에 두꺼운 흑철 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함 뒤쪽 벽에는 푸른빛이 아주 가늘게 새고 있었다.
가운데 남자는 방탄 조끼 위에 C급 헌터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는 통신기를 만지며 대충 고개를 숙였다.
"C급 현장대 마도윤입니다. 병원 쪽 연결됐습니까?"
윤채아가 답했다.
"연결됐습니다. 마도윤 팀장. 7번 밀폐함은 개봉 전 지시 대기하십시오."
마도윤의 시선이 화면 너머 시우에게 닿았다. 얼굴에 노골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저 학생이 감응 대상입니까?"
"강시우 씨입니다."
"부상자라 들었습니다. 현장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은 공손했지만 뜻은 분명했다.
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박물관 알바생이던 자신에게 사람들이 보내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면 왼쪽에서 팀원 하나가 급하게 말했다.
"팀장님. 뒤쪽 균열 수치가 조금씩 오릅니다. 오래 못 기다립니다."
"알아."
마도윤은 함을 내려다보며 짧게 답했다.
현장에도 압박은 있었다. 그건 시우도 알았다. 그래도 함 안쪽에서 나는 아주 약한 떨림은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차갑게 빛났다.
"무례함과 초조함이 함께 묻습니다. 반사면에 좋지 않습니다."
아스칼론도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놈은 검 손질을 맡기면 날을 바닥에 세울 얼굴이다."
"얼굴로 어떻게 알아요?"
"검은 안다."
시우는 헛웃음을 삼키고 화면을 보았다.
"팀장님. 함 위의 먼지 바로 털지 말아 주세요."
마도윤의 눈썹이 올라갔다.
"먼지도 위험합니까?"
"먼지 아래에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구 창고 물건이 다 그렇죠."
윤채아가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지시대로 하십시오. 표면 먼지는 사진 기록 후 부분 제거합니다."
마도윤은 마지못해 대원에게 손짓했다. 대원이 조명을 낮추고 함 상단을 비췄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실제 영상과 다른 금빛 선이 떠올랐다. 7이라는 숫자 아래에 긁어 지운 흔적이 있었다. 번호판은 덧붙인 것이었다.
"7번이 원래 이름이 아닙니다."
시우가 말했다.
"숫자 아래쪽에 다른 글자가 눌려 있어요."
마도윤이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육안으로는 안 보입니다."
"에제키엘에게는 보입니다."
에제키엘이 아주 만족스럽게 빛났다.
"이번 호칭은 적절했습니다."
그 순간 시우의 귀에 아주 작은 소리가 닿았다.
먼지보다 무서운 건 잊힌 이름이다.
목소리는 상자 안쪽에서 났다. 쇠가 서로 닿는 소리처럼 낮고 오래됐다. 말끝마다 문고리가 흔들리는 듯한 잔향이 따라붙었다.
"안에 누가 있어요."
창고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마도윤이 짧게 웃었다.
"누가 있다는 표현은 조금 그렇군요. 유물이겠죠."
"그 유물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도 위험한 유물 많이 다뤄 봤습니다."
아스칼론이 바로 말했다.
"많이 다뤘다는 놈들이 대개 제일 험하게 다룬다."
윤채아는 시우의 표정을 보고 마도윤에게 지시했다.
"함 표면의 지워진 글자 먼저 복원합니다. 강제 개봉 금지."
마도윤은 뒤쪽 벽의 균열 수치를 확인했다. 푸른빛이 한 번 더 깜박였다.
"잔류 균열이 커집니다. 이 정도 밀폐함은 저희 장비로 열 수 있습니다."
그는 대원의 손에서 먼지 제거 솔을 빼앗아 함 상단을 세게 쓸었다.
시우가 몸을 일으키려다 통증에 멈췄다.
"잠깐!"
늦었다.
먼지가 흩어지는 순간 함의 잠금 문양이 검게 물들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검은 글자들이 솟구쳤다.
주인 없는 것을 묶어라.
이름 없는 것을 잠재워라.
창고 화면이 흔들렸다. 마도윤의 팔에 차고 있던 보호 팔찌가 검은 실에 감겼다. 팀원 하나가 곧장 칼을 뽑았지만 칼날이 허공에서 멈췄다.
"장비 반응이 끊겼습니다!"
"마력 회로가 잠겼습니다!"
마도윤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윤채아가 낮게 말했다.
"마도윤 팀장. 개봉 중지. 강시우 씨 지시를 따르십시오."
마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부상자 지시를요?"
검은 실이 그의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시우는 에제키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의료 대원이 제지하려 했지만 윤채아가 손짓으로 멈췄다.
"손만입니다."
"네."
시우는 거울 테두리에 손끝을 댔다.
"에제키엘. 함 안쪽을 보여 줄 수 있어요? 먼지가 아니라 지워진 이름 쪽으로요."
"가능합니다. 다만 저 현장대의 손놀림은 매우 거슬립니다."
"끝나면 정식으로 항의문 써 드릴게요."
"문장 품격은 제가 검수하겠습니다."
반사면이 깊어졌다.
함 안쪽이 보였다. 낡은 쇠사슬 한 타래가 웅크린 짐승처럼 놓여 있었다. 사슬의 마디마다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대부분 검은 때로 메워져 있었다. 그중 한 마디만 희미하게 빛났다.
글레.
그 뒤는 검은 매듭에 묶여 보이지 않았다.
사슬의 목소리가 다시 왔다.
문은 닫혔고 이름은 잠겼다. 열쇠를 찾지 마라. 이름을 불러라.
시우는 숨을 삼켰다.
아스칼론이 낮게 말했다.
"공격하지 마라. 저건 묶인 놈이다. 검은 매듭이 이름을 누르고 있다."
시우가 바로 말했다.
"팀장님. 사슬을 치지 마세요. 잠금 문양 오른쪽 아래 검은 매듭부터 분리해야 합니다."
마도윤이 팔을 비틀었다.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사람 말을 들으세요."
시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마도윤은 잠깐 멈췄다. 팔에 감긴 검은 실이 더 조여 왔다.
"위치."
"함 뚜껑 안쪽 오른쪽 아래. 숫자 7 아래쪽에 덧칠된 부분입니다. 칼 말고 천으로 닦으세요."
"전투 중에 천으로 닦으라는 겁니까?"
"네. 이름을 베면 더 잠깁니다."
윤채아가 현장 대원에게 명령했다.
"멸균 천 전달. 절삭 장비 금지."
대원이 천을 마도윤에게 건넸다. 마도윤은 이를 악물고 검은 실을 버티며 함 안쪽을 문질렀다.
검은 때가 조금 벗겨졌다.
시우의 귀에 사슬의 목소리가 다시 닿았다.
잊힌 이름은 문을 열지 못한다.
"문을 지키던 사슬이군요."
시우가 작게 말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금빛으로 떨렸다.
"폐사슬이라는 기록도 있습니까?"
윤채아가 구 목록 하단을 넘겼다. 곧 새 줄이 드러났다.
[폐철 사슬]
[사용처 불명]
에제키엘이 차갑게 말했다.
"인간의 기록 실수는 참으로 반복적입니다."
"그러게요."
시우는 숨을 고르고 화면 속 사슬을 보았다.
"당신은 폐철이 아닙니다."
사슬이 아주 작게 울렸다.
"문을 지키던 봉인의 사슬입니다. 누가 잊어도 당신은 열쇠가 아니라 문을 지킨 이름입니다."
검은 매듭이 꿈틀거렸다. 사슬 한 마디의 글자가 더 드러났다.
글레...니.
완전한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슬의 떨림이 달라졌다. 겁먹은 쇠 울림이 아니라 대답하려는 소리였다.
마도윤을 묶고 있던 검은 실이 느슨해졌다.
아스칼론이 바로 외쳤다.
"지금이다. 오른쪽 아래 매듭 끝. 아주 얇은 놈만 끊어라. 사슬은 건드리지 마라."
시우가 그대로 전했다.
마도윤은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단검을 세워 검은 매듭의 끝만 잘랐다.
검은 실이 툭 끊겼다.
창고 전체가 낮게 울렸다. 밀폐함 뒤쪽 벽에 가느다란 균열이 열렸다. 균열 너머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측정 담당자가 콘솔을 확인했다.
"C급 게이트 잔류 균열입니다. 창고 뒤쪽에 연결돼 있습니다."
마도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팔찌는 금이 갔고 그의 표정은 더 이상 여유롭지 않았다.
"병원 쪽. 방금 지시한 학생."
"강시우 씨입니다."
윤채아가 대신 말했다.
마도윤은 잠깐 침묵했다.
"강시우 씨. 방금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스칼론이 코웃음을 쳤다.
"감사도 못 하는 놈이군."
에제키엘도 말했다.
"품격 있는 사과문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필요합니다."
시우는 지친 얼굴로 웃었다.
"나중에 천천히 받겠습니다. 지금은 함 안의 사슬부터 보호해 주세요. 이름 더 지우지 말고요."
사슬이 아주 약하게 울렸다.
아직 아니다.
문이 열린다.
시우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에는 밀폐함 뒤쪽 균열이 더 선명하게 비쳤다. 균열 안쪽에서 검은 가시와 비슷한 잔향이 바늘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윤채아가 바로 판단했다.
"현장팀은 후퇴하며 유물 보호. C급 게이트 대응팀 호출. 강시우 씨는 치료 상태 확인 후 제한 동행을 검토합니다."
"제한 동행이요?"
시우가 되묻자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축하한다. 꼬맹이. 침대에서 일어날 핑계가 생겼다."
"전혀 축하할 일이 아닌데요."
에제키엘이 조용히 반사면을 닦아 달라는 듯 빛을 낮췄다.
"그래도 이번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저 사슬은 아직 자기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못했습니다."
화면 속 마도윤이 밀폐함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방금까지 성가신 폐철처럼 보던 손길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사슬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시우에게 닿았다.
잊히지 않으면 묶을 수 있다.
시우는 붕대 감긴 손을 내려다보았다.
몸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을 무시하던 C급 헌터 팀과 함께 게이트 앞에 서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 안쪽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아직 검은 매듭에 묶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