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7화: 진실의 반사 거울
의료 대원이 봉합 도구를 꺼낸 순간 윤채아의 단말기가 먼저 울렸다.
시우는 들것 위에서 눈만 돌렸다. 어깨는 이미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저렸고 손바닥 붕대는 새로 갈기도 전에 붉게 젖어 있었다.
"또 뭡니까."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네 치료 시간이 줄어드는 소리다."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요."
에제키엘의 반사면에는 병원 천장이 아니라 낡은 목록 화면이 비치고 있었다. 구 국립 신화 박물관 창고. 오래된 등록 번호들이 줄줄이 지나갔다. 그중 한 줄에서 금빛이 자꾸 흔들렸다.
"제 이름이 저기 있습니다. 아니 제 이름을 모욕한 흔적이 저기 있습니다."
윤채아가 화면을 확대했다.
"구 창고 목록 원본을 불러오겠습니다. 강시우 씨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측정 담당자가 바로 끼어들었다.
"중앙 서버 접속은 위험합니다. 방금도 잡음 간섭이 있었습니다."
"원본 사본만 내부 보관망에서 엽니다. 외부 전송은 하지 않습니다."
의료 대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치를 더 미루면 안 됩니다."
시우는 대답하려다가 윤채아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닫았다. 대신 에제키엘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
"움직이지는 않을게요. 손만 씁니다."
아스칼론이 코웃음을 쳤다.
"꼬맹이 기준 손만 쓴다는 말은 대개 사고가 난다는 뜻이다."
"어르신 기준 조언은 대개 불길하다는 뜻이고요."
에제키엘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두 분의 품격 낮은 대화는 제 진명 확인 뒤에 이어 가 주십시오."
구 창고 목록이 측정실 보조 화면에 열렸다. 먼지 낀 종이를 스캔한 듯 글자가 흐렸다. 윤채아가 대비를 올리자 문제의 줄이 드러났다.
[관리국 비품 37]
[반사율 불량 폐거울]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삽시간에 탁해졌다.
"폐거울이라니요."
그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끝이 떨렸다.
"제가 상자 받침으로 지낸 세월은 참을 수 있습니다. 먼지도 참았습니다. 접착제도 아주 어렵게 참았습니다. 그러나 저 문장은 참을 수 없습니다."
시우는 새 거즈를 집었다. 에제키엘의 보호 케이스 바깥에 임시로 붙은 번호표부터 떼었다. 테두리에는 오래된 접착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멸균 거즈 끝에 중성 세정액을 묻혀 그 자국을 조금씩 닦았다.
"에제키엘."
"듣고 있습니다."
"당신은 폐거울이 아닙니다. 얼굴 비추는 물건도 아니고요."
반사면의 흐림이 멈췄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시우는 화면 속 글자와 거울 속 금빛을 번갈아 보았다. 폐거울이라는 문장은 누군가 오래전에 대충 찍어 붙인 낙인 같았다. 에제키엘은 그 낙인을 십이 년 동안 품고 있었다.
"저 기록을 쓴 사람은 에제키엘의 말을 못 들었겠죠."
윤채아가 낮게 답했다.
"못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틀렸고요."
"그럼 지금은 들리는 사람이 고쳐야죠."
시우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테두리에 붙은 접착 자국이 조금 더 벗겨졌다. 아주 작은 먼지가 거즈에 묻어 나왔다.
에제키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시우에게는 더 크게 들렸다. 칭찬을 요구하던 거울이 처음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여 주는 눈입니다."
그는 숨을 골랐다.
"누가 가렸는지 누가 틀리게 적었는지 끝까지 돌려보내는 거울이고요."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말은 번지르르하군."
"검날에 비품 37이라고 붙이고 싶지는 않으시죠?"
아스칼론은 잠깐 침묵했다.
"계속해라."
윤채아가 목록의 하단을 복원했다. 흐린 글자 아래에 더 오래된 감정 문구가 숨어 있었다.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황금 반사면]
[봉인명 일부: 에제...]
측정실 안쪽 공기가 묘하게 울렸다. 단순한 마력 반응과 달랐다. 먼지를 털어 낸 오래된 종이 냄새와 금속을 닦을 때 나는 깨끗한 냄새가 섞였다.
에제키엘의 목소리가 아주 작아졌다.
"그 문구는 제가 잊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잊지 않으려고 버틴 것입니다."
"그럼 이제 기록에도 남깁니다."
시우는 윤채아를 보았다.
윤채아는 바로 단말기를 들었다.
"현장 기록. 기존 분류 [반사율 불량 폐거울]은 감응 대상 진술 및 아티팩트 반응과 불일치. 임시 정정 사유 발생."
에제키엘의 테두리에서 금빛 선이 올라왔다. 반사면이 깊어지더니 측정실 전체를 한 번에 품었다. 시우의 얼굴도 윤채아의 단말기도 아스칼론의 검날도 모두 비쳤다.
하지만 가장 선명한 것은 화면 속 거짓 기록이었다.
글자가 거꾸로 뒤집혔다. 폐거울이라는 문구가 검은 먼지처럼 벗겨졌다.
단말기가 울렸다.
[진명 조건 충족]
[대상: 에제키엘]
[등급 재판정 중]
측정 담당자의 얼굴이 굳었다.
"안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미확인 진명 개방체입니다."
윤채아가 시우를 보았다.
"강시우 씨.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으면 최고입니다."
아스칼론이 아주 만족스럽게 말했다.
"드디어 현명한 지시가 나왔다."
측정 담당자는 억제 마법을 최저 출력으로 설정했다. 푸른 실선이 에제키엘을 향해 뻗었다.
"단순 반응 확인입니다. 공격이 아닙니다."
에제키엘이 차갑게 말했다.
"남의 얼굴에 빛을 쏘기 전에는 양해를 구하는 법입니다."
시우가 그대로 전하자 측정 담당자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황금 거울 에제키엘. 최저 출력 억제 마법을 반응 확인 목적으로 조사하겠습니다."
"허가합니다. 다만 조사라는 단어에는 품격이 부족합니다."
푸른 실선이 반사면에 닿았다.
그 순간 검은 잡음이 끼어들었다. 푸른 빛 안에 검은 글자가 섞였다.
묶어라.
주인 없는 것을 잠재워라.
에제키엘이 비명을 삼키듯 반사면을 떨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아스칼론이 검날을 울렸다.
"꼬맹이. 거울에게 삼키지 말라고 해라. 저건 먹는 게 아니다."
측정 담당자가 급히 출력을 차단하려 했다. 콘솔의 푸른 막대가 내려갔지만 검은 글자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기계가 보낸 힘보다 그 안에 섞인 명령이 더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차단이 안 됩니다."
측정 담당자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절차가 아닌 공포가 비쳤다.
윤채아가 시우의 들것 옆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강시우 씨. 무리하지 말고 말만 하십시오."
시우는 에제키엘의 테두리를 잡았다. 손끝에 남은 세정액 냄새와 금빛 열기가 함께 닿았다.
"에제키엘. 받아들이지 말고 보여 주세요. 보낸 자리로 돌려보내요."
"정확히 얼마나 돌려보내면 되겠습니까."
"당한 만큼보다 더요."
에제키엘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밝아졌다.
"품격 있는 답입니다."
반사면이 금빛으로 열렸다.
푸른 억제 마법이 뒤집혔다. 거기에 섞인 검은 명령 파형도 함께 꺾였다. 빛은 측정 담당자의 장비로 돌아가지 않았다. 에제키엘은 각도를 비틀어 보조 화면의 구 창고 목록 쪽으로 반사했다.
콰앙.
보조 화면이 터질 듯 흔들렸다. 수치가 정신없이 뛰었다.
[반사율 200%]
[명령 파형 역반사 확인]
[S급: 진실의 반사 거울]
측정 담당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출력을 낮췄는데 왜 반응이 두 배로 나옵니까!"
에제키엘이 흐트러진 품위를 수습하며 말했다.
"거짓이 섞여 있으면 원래 무겁게 돌아가는 법입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허세인 줄 알았더니 제법이군."
"제법이라는 표현은 부족하지만 지금은 받아들이겠습니다."
"받아들이지 마라. 내가 후회한다."
시우는 그대로 옮기려다가 숨이 막혀 기침했다. 의료 대원이 바로 그의 어깨를 눌렀다.
"이제 정말 끝입니다."
윤채아는 폭주하는 화면을 잡고 있었다.
"아직 아닙니다. 반사된 파형이 지점을 찍고 있습니다."
구 창고 목록 가운데 한 칸이 검게 타오르듯 밝아졌다. 에제키엘이 되돌린 명령 파형은 원래 숨어 있던 길을 거꾸로 비췄다. 누군가 지워 둔 보관 칸이 금빛 반사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7번 밀폐함]
[보관명 훼손]
[개봉 금지]
아스칼론이 조용히 웃었다.
"개봉 금지라. 열어 달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군."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 말 같거든요."
"대개 가장 크게 금지한 곳에 가장 시끄러운 놈이 갇혀 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에는 더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에제키엘의 이름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흐린 선이 겹쳐 있었다.
시우는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곧 먼지 쌓인 상자를 손톱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주 약하고 오래된 목소리였다.
먼지보다 무서운 건 잊힌 이름이다.
시우는 눈을 떴다.
"거기에도 누가 있습니다."
윤채아의 표정이 굳었다.
"구 국립 신화 박물관 창고 7번 밀폐함. 조사팀 편성합니다. 단 강시우 씨는 치료가 끝난 뒤 이동 여부를 판단합니다."
"지금 가자는 말 안 했습니다."
"표정이 이미 말했습니다."
시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조심스럽게 낮췄다. 금빛은 아직 남아 있었다. 더는 찌그러진 비품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록은 수정되었습니까?"
윤채아가 단말기에 입력했다.
[S급: 진실의 반사 거울 에제키엘]
[접촉 안정 대상: 강시우]
[특기: 상대 마력 및 명령 파형 200% 반사]
[보관 조건: 반사면 오염 금지. 호칭 훼손 금지. 의사 확인 필수]
에제키엘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이 정도면 오늘의 모욕은 일부 보상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스칼론이 툭 던졌다.
"일부라니 욕심도 많다."
"검날에 비품 번호를 붙이는 상상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꼬맹이. 치료 끝나면 저 거울부터 멀리 치워라."
시우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통증이 먼저 왔다.
의료 대원이 이번에는 단호하게 봉합 도구를 들었다.
"이제 말하지 마십시오."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것이 있었다.
7번 밀폐함의 아주 약한 목소리.
그리고 방금 진짜 이름을 되찾은 거울의 조용한 숨결.
무기 소통자라는 이름은 시우에게 붙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향하는 곳은 시우 자신이 아니었다.
아직 잊힌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무기들이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