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4화: 표본을 노리는 그림자
경보음이 박물관 앞마당을 찢었다.
구급차 문턱에 앉아 있던 시우는 감기던 눈을 억지로 떴다. 어깨 붕대는 다시 젖고 있었다. 의료 대원이 그의 팔을 눌렀지만 시우의 시선은 이미 봉쇄선 안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검은 가시 표본 쪽이라고 했죠?"
보존포에 싸인 에제키엘이 품 안에서 떨었다.
"네. 컨테이너 옆에 누가 비쳤습니다. 사람처럼 서 있기는 했는데 그림자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제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설명은 나중이다. 저쪽 냄새가 다시 올라온다. 날개 달린 놈의 독과 닮았지만 더 교활하다."
윤채아가 구급차 옆까지 달려왔다. 단발머리 끝이 먼지와 땀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손목 단말기에서는 붉은 경고창이 겹겹이 떠올랐다.
"강시우 씨. 방금 무엇을 봤습니까?"
"에제키엘이 표본 컨테이너 옆에 그림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스칼론도 독 냄새가 난대요."
현장 지휘관이 바로 끼어들었다.
"부상자는 철수시켜. 표본 보안은 대원들이 맡는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표본 컨테이너 쪽에서 푸른 차단막이 크게 휘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가락 자국 같은 검은 선이 생겼다. 관리국 대원들이 총구를 들었지만 조준점은 계속 빈 곳을 훑었다.
"탐지 반응 없습니다!"
"차단막이 열리고 있습니다!"
에제키엘이 다급히 속삭였다.
"왼쪽 잠금쇠입니다. 아니 인간 기준 왼쪽입니다. 얇은 손 같은 게 문양 사이를 벌리고 있어요."
시우는 들것 손잡이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무릎이 꺾일 뻔했다.
의료 대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안 됩니다. 출혈이 심합니다."
"저거 열리면 더 큰일 납니다."
윤채아는 시우의 얼굴을 보았다. 망설임은 짧았다.
"대상 감응 확인을 위해 강시우 씨를 표본 컨테이너 5미터 안쪽까지 이동시킵니다. 의료팀 대기. 대원들은 사격 보류."
"분석관!"
"안 보이는 대상을 향해 쏘면 표본이 오염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장비는 대상을 못 잡고 있습니다."
지휘관의 입이 굳게 닫혔다.
시우는 윤채아의 부축을 받으며 봉쇄선 안쪽으로 걸었다. 한 걸음마다 어깨 안쪽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오른손에는 아스칼론이 있었다. 왼손에는 보존포를 살짝 걷은 에제키엘이 있었다.
두 유물의 무게가 서로 달랐다.
아스칼론은 산처럼 묵직했고 에제키엘은 얇은 거울인데도 이상하게 손끝 신경을 붙잡았다. 어느 한쪽이라도 놓치면 지금 보는 것과 베어야 할 것이 동시에 사라질 것 같았다.
"꼬맹이. 호흡을 줄여라. 피 냄새가 너무 빨리 퍼진다."
"숨 쉬지 말라는 소리예요?"
"그 정도로 멍청한 명령은 아니다."
"제 상태에서는 구분이 어렵거든요."
에제키엘이 작게 말했다.
"저는 지금 대화를 평가할 여유가 없습니다. 컨테이너가 가까워집니다."
컨테이너 안에는 보스 마수의 날개 밑에서 뽑은 검은 가시 표본이 들어 있었다. 투명한 봉인관 속 가시는 죽은 벌레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나 에제키엘의 반사면에서는 달랐다.
검은 가시는 살아 있는 뿌리처럼 꿈틀거렸다. 그 위로 길고 마른 손이 얹혀 있었다. 손목에는 뒤집힌 왕관 같은 문양이 어둡게 번졌다.
"손목에 문양이 있어요."
시우가 숨을 삼켰다.
"뒤집힌 왕관 같습니다."
윤채아의 단말기가 즉시 기록음을 냈다.
"전원 영상 기록. 강시우 씨의 구두 진술과 단말 반응 동기화."
아스칼론이 짧게 말했다.
"컨테이너 모서리 아래. 검은 실이 잠금 문양을 씹고 있다. 베어라."
"보이지도 않는데요."
"반짝이가 비추고 있잖나."
"반짝이라뇨. 저는 에제키엘입니다."
"지금 이름표 붙일 시간이냐."
시우는 거울을 들어 각도를 맞췄다. 반사면 속 검은 실이 선명해졌다. 하지만 빛은 자꾸 흐려졌다. 시우의 손이 떨려서 거울 각도가 흔들리고 있었다.
에제키엘의 목소리도 떨렸다.
"칭찬 한 마디면 반사 선명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금요?"
"품격은 위기 상황에서도 관리되어야 합니다."
아스칼론이 으르렁거렸다.
"저 거울을 나중에 기름통에 담가 버려라."
시우는 헛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삼켰다. 웃으면 상처가 벌어질 것 같았다.
"에제키엘. 잘 보고 있어요. 지금은 당신이 눈입니다."
거울 표면이 환해졌다.
푸른 차단막 사이에 검은 실이 떠올랐다. 시우는 아스칼론을 낮게 내질렀다. 팔에 힘이 없어서 검끝이 흔들렸지만 아스칼론이 손목을 끌어당기듯 방향을 잡아 주었다.
금속이 아닌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가 났다.
컨테이너 잠금 문양이 다시 닫혔다. 동시에 허공의 그림자가 몸을 비틀었다. 실제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에제키엘 속에서는 분명했다. 긴 외투 자락과 마른 손. 얼굴을 덮은 검은 베일.
"멈췄습니다!"
대원 하나가 외쳤다.
다음 순간 봉인관 안쪽에서 작은 파열음이 났다. 검은 가시 끝부분이 아주 조금 부서져 사라졌다.
에제키엘이 비명을 삼켰다.
"조각 하나를 가져갔어요!"
아스칼론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저 정도면 씨앗으로 쓰기 충분하다."
"씨앗?"
"좋은 말은 아니다."
그림자가 컨테이너 뒤쪽으로 미끄러졌다. 대원들이 총을 겨누었다.
"사격 허가 바랍니다!"
윤채아가 외쳤다.
"사격 금지! 차단막 유지!"
그림자는 봉쇄포가 붙은 바닥을 밟지 않았다. 빛이 없는 틈으로 접히듯 움직였다. 에제키엘이 급히 방향을 바꾸었다.
"오른쪽 차량 밑입니다. 아니 지금은 왼쪽으로 이동합니다. 아 인간의 방향 개념은 너무 불안정합니다."
시우는 숨이 턱 막혔다. 다리가 더는 버티지 못했다. 무릎이 꺾이는 순간 윤채아가 그를 잡았다.
"강시우 씨. 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안 따라가면 놓칩니다."
"이미 일부를 빼앗겼습니다. 지금은 단서 확보가 우선입니다."
윤채아의 말이 시우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는 따라가고 싶었다. 아니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발끝에는 감각이 없었고 손바닥 붕대는 젖어 미끄러웠다. 여기서 쓰러지면 아스칼론도 에제키엘도 바닥에 떨어진다.
시우는 에제키엘을 높이 들었다.
"거울 선생님. 마지막으로 얼굴 말고 손목만 비춰 주세요."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러니까 부탁합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가늘게 빛났다. 그림자의 손목이 다시 비쳤다. 뒤집힌 왕관 문양 아래에 작고 낡은 숫자 같은 흉터가 있었다. 세 갈래로 찢어진 선이었다.
"문양 아래 흉터. 세 갈래로 찢어진 선."
윤채아가 그대로 복창했다.
"뒤집힌 왕관. 세 갈래 흉터. 미확인 침입자."
그림자가 멈췄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시우에게만 들린 것인지 모두에게 들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차가운 속삭임이 박물관 앞마당을 스쳤다.
"주인 없는 무기는 다시 잠들어야 한다."
아스칼론이 웃었다. 웃음은 무섭게 낮았다.
"주인 없는 무기라. 귀가 썩는군."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누가 보냈습니까?"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에제키엘의 반사면 안쪽에서 검은 베일이 아주 조금 들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입가가 웃는 모양만 희미했다.
"듣는 아이를 찾았다."
그 말을 끝으로 그림자가 접혔다.
봉쇄선 바깥 가로등이 한 번 깜빡였다. 대원들이 뛰쳐나갔지만 남은 것은 까맣게 탄 바닥 자국뿐이었다. 그 자국마저 몇 초 뒤 먼지처럼 흩어졌다.
경보음이 늦게 멎었다.
시우는 그제야 숨을 토했다. 손에서 힘이 빠져 아스칼론의 끝이 바닥에 닿았다.
"꼬맹이."
아스칼론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쓰러질 거면 나를 바닥에 던지지는 마라."
"그런 배려까지 할 정신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쓰러지기 전에 말하라는 거다."
에제키엘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도 떨어뜨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방금 선생님으로 승격했습니다."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정말로 몸이 기울었다.
윤채아와 의료 대원이 동시에 그를 받쳤다.
"이송합니다. 지금 당장."
지휘관은 굳은 얼굴로 표본 컨테이너를 확인했다.
"표본 손실은?"
"본체 보존. 말단 조각 극소량 손실입니다."
"극소량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군."
윤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시우의 손에서 아스칼론을 억지로 떼어내지 않았다. 대신 검날에 임시 보호포를 감고 에제키엘을 시우의 가슴 옆에 고정했다.
"두 아티팩트 모두 강시우 씨와 접촉 상태를 유지합니다."
"민간인에게 측정 불가 유물을 둘 수는 없습니다."
"방금 침입자는 시우 씨의 감응 없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표본 대부분을 지킨 것도 그 감응입니다. 병원 비공식 측정실까지 제 감독하에 이동시키겠습니다."
지휘관은 잠시 침묵했다.
구급차 안의 단말기가 또 울렸다.
[비공식 측정 대상: 강시우]
[긴급 등급 재분류]
[임시 등급: 측정 불가]
의료 대원이 숫자와 문장을 보고 얼어붙었다.
"F급 보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우는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목이 말랐고 팔은 남의 것 같았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요."
아스칼론이 낮게 말했다.
"이제부터 모르는 게 더 많아질 거다."
에제키엘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래도 오늘은 꽤 잘하셨습니다. 선생님으로서 칭찬합니다."
"칭찬받는 쪽이 바뀐 것 같은데요."
구급차 문이 닫혔다.
윤채아가 마지막으로 단말기를 확인했다. 화면 아래쪽에 깨진 글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특성 후보: 무기 소...]
그녀는 그 문장을 저장하려 했다. 하지만 화면은 곧바로 검은 잡음으로 덮였다.
바깥에서 봉쇄선이 다시 세워졌다.
구급차가 병원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