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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29화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9화: 먼저 묻는 심사

윤채아는 퇴원 확인서를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얇은 단말기만 시우 쪽으로 돌렸다. 화면 위에는 붉은 글씨가 두 줄 떠 있었다.

[감응 후 안정 관찰 필요]

[외부 이동 불가]

"오늘 퇴원은 없습니다."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은 전보다 덜 아팠지만 팔을 들어 이불을 고쳐 잡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웠다. 어젯밤부터 귀 안쪽에 남아 있던 낮은 울림도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대장간 안쪽에서 아이기스가 방패를 바닥에 세웠다.

뒤에 있어라.

"저도 나갈 생각은 없어요."

"그럼 이 공문은 왜 읽으려 합니까?"

윤채아가 새 창을 열었다. 협회 명의의 문서였다. 제목은 길고 딱딱했다.

[미성년 감응자의 다중 고대 아티팩트 개인 무기 운용 권한 심사 통지]

시우는 제목 아래를 천천히 읽었다. 퇴원 뒤 이틀 안에 심사에 응하지 않으면 임시 운용 정지와 보호 이관 검토가 가능하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스칼론과 에제키엘의 임시 보존 번호가 적혀 있었다. 첫숨의 황혼 하프는 이름 대신 ‘신규 고위험 음향계 유물’이라고만 표시돼 있었다.

하프의 현이 아주 작게 울렸다.

또 가져가?

시우의 손끝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읽어야 하니까요."

"몸이 먼저입니다."

"몸이 나아도 저 문서가 그대로면 똑같아요."

백은서가 병실 벽면 화면에 다른 창을 띄웠다. 잠기지 않은 줄처럼 흔들리는 상태값 목록이었다.

"개인 무기 운용 대장은 읽기 전용으로 바꿨습니다. 어젯밤에 묶인 계산 조각도 아직 움직이지 않아요. 그런데 협회 심사 서식은 대장과 별도 체계입니다. 심사 결과가 승인되면 대장 상태값에 합쳐집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건강 확인이 아니군요."

"운용 관계 등록까지 건드립니다."

백은서가 화면을 확대했다. 시우 이름 옆에는 운용자라는 글자가 있었고 무기들 이름 옆에는 관리 대상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같은 줄 안에 있었지만 무게가 전혀 달랐다.

윤채아가 말했다.

"심사관이 오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만큼 확인하겠습니다. 단 감응은 금지입니다. 몸 상태가 흔들리면 회의도 끝냅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코웃음 쳤다.

종이 쪼가리가 주인을 정한다니. 들고 와라. 내가 반으로 갈라 주마.

"그러면 종이 아래 있는 것까지 같이 잘려요."

시우가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먼저 봐야 해요."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 판단은 품격 있습니다. 다만 문서가 품격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시간 뒤 병원 회의실은 임시 심사실이 되어 있었다.

시우는 휠체어에 앉아 창문 없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윤채아는 그의 오른쪽에 섰고 백은서는 벽면 단말기 앞에서 기록 창을 열었다. 마도윤은 문가에 기대 팔짱을 꼈다.

탁자 중앙에는 차단 유리판이 놓여 있었다. 보존포에 감싼 아스칼론과 에제키엘은 유리판 이쪽에 놓였고 하프는 시우의 무릎 위에서 현을 죽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심사 대상은 시우 하나였지만 방 안의 긴장은 그렇지 않았다.

맞은편에는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명찰을 탁자 위에 놓았다.

서진혁. 협회 운용 안전 심사관.

"강시우 군. 회복 중인 건 압니다. 그래서 병원 심사로 조정했습니다. 간단히 끝내죠."

그가 서류 한 장을 밀어 왔다.

"현재 접촉 중인 아티팩트의 안전 운용 책임을 본인이 부담한다는 확인입니다. 여기와 여기. 두 곳에 서명하면 됩니다."

시우는 펜을 받지 않았다.

"무기들한테는 안 물어봐요?"

서진혁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티팩트의 반응은 심사 자료에 포함합니다. 다만 법적 책임 주체는 운용자입니다."

"반응 말고 의사요. 아스칼론도 에제키엘도 하프도 저랑 같이 있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떨어지고 싶지 않은지도 물어야죠."

"강 군의 특수성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의식 여부를 공적 절차에서 전부 독립 의사로 인정하면 심사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아스칼론이 검날을 울렸다.

어렵다고 목을 묶는 놈들이다.

윤채아가 차갑게 말했다.

"현장 분석 기록에 아티팩트의 거부가 폭주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확인 절차를 생략할 근거가 있습니까?"

서진혁은 잠깐 윤채아를 보았다.

"생략이 아닙니다. 표준화입니다. 운용자가 보호 의무를 지면 됩니다. 관리 기관도 위험 상황에 대비할 수 있고요."

"보호 의무를 진다는 말과 마음대로 옮긴다는 말은 다릅니다."

시우는 서류의 가운데 줄을 가리켰다.

[비자발적 관계 종료 시 보호 이관 절차를 우선 적용한다.]

"제가 다치거나 심사를 통과 못 하면 무기들은 어디로 가요?"

"관리 기관의 보호 보관소로 갑니다. 안전을 위해서요."

"누가 결정합니까?"

"위험도와 보존 등급에 따라 심사부가 결정합니다."

"아스칼론이나 하프가 싫다고 하면요?"

서진혁의 답은 잠깐 늦었다.

"그 반응도 참고합니다."

하프의 빛이 시우의 품 안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차가워.

시우는 펜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건 보호가 아니에요. 누구한테 갈지 묻지도 않고 분리하는 거잖아요."

서진혁의 얼굴이 굳었다.

"감정적인 표현은 삼가 주십시오. 심사는 위험 관리입니다."

"위험한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물어야 해요."

시우는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무기가 싫다고 하면 왜 싫은지 기록해야 해요. 같이 있겠다고 하면 그 의사도 남겨야 하고요. 그걸 빼면 안전 심사가 아니라 소유권 정리예요."

마도윤이 문가에서 낮게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이미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본인들이 말을 못 듣는다고 해서 의사가 없는 게 아닙니다."

서진혁은 문서를 내려다봤다. 그의 손가락이 서명란 근처에 잠시 멈췄다.

"전례가 없습니다."

"전례가 없어서 묻지 않는 거면 전례를 만들면 돼요."

시우는 하프의 현 위에 손을 얹었다. 세게 누르지 않고 열이 있는지 확인하듯 가볍게 얹은 손이었다.

"저 혼자 책임진다고 써 놓고 정작 같이 위험을 견딘 애들한테는 아무 것도 안 묻는 건 이상하잖아요."

에제키엘이 시우의 왼쪽 보존포 안에서 조용히 떨었다.

시우가 거울의 테두리를 잡았다. 윤채아가 말리려 했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만 얹었다.

"감응은 아니에요. 그냥 비춰 달라는 거예요."

에제키엘의 목소리가 낮았다.

각도를 맞추겠습니다. 오래는 못 합니다.

거울 표면에 심사 서식이 비쳤다. 반사된 글자는 처음에는 똑같았다. 그러다 서진혁의 손이 문서를 누른 순간 맨 아래 여백에서 옅은 회색 줄이 떠올랐다.

[무응답 대상: 보호 이관 가능]

[운용자 이의 제기: 심사 결과 확정 전까지 제한]

백은서가 숨을 들이켰다.

"그 문구 원본에 없습니다. 화면 확대합니다."

서진혁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잠깐. 그런 항목을 넣은 적 없습니다."

"당신이 넣었다고 한 적 없어요."

시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서가 무기들한테 묻지 않는 이유는 찾았네요. 대답이 없으면 그냥 데려갈 수 있게 돼 있으니까."

하프가 작게 숨을 삼켰다.

그 말. 먼지 아래에도 있었어.

대장간 바닥을 따라 글레니르의 사슬이 움직였다. 사슬은 심사 서식 아래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가다 검은 매듭 앞에서 멈췄다.

말하지 못한 자의 침묵을 답으로 쓰는 매듭이다.

그림자의 계약이 서명대 위에서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대답을 빼앗은 자는 동의를 얻지 못한다.

문장이 떠오르자 서류 여백의 회색 줄이 흔들렸다. 글레니르의 사슬이 검은 선을 조이지 않고 둘레를 감쌌다. 문서 속 문장과 단말기 상태값 사이에 가는 매듭이 하나 생겼다.

서진혁이 손을 떼려 했지만 검은 선은 이미 벽면 단말기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백은서의 손이 바빠졌다.

"심사 서식이 대장 읽기 전용을 우회하려고 합니다. 결과 확정 전 상태값을 먼저 밀어 넣고 있어요. 무응답을 동의 미확인이 아니라 이관 가능으로 바꿉니다."

"대상이 어딥니까?"

마도윤이 물었다.

"이관 대기열 하나가 열렸습니다. 이름은 없습니다. 미등록 유물입니다."

윤채아가 서진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사 중지에 동의하십시오. 지금 이 서식은 안전 절차가 아니라 외부 침입 경로입니다."

서진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화면을 보자 ‘무응답’이라는 단어가 한 줄씩 늘어났다. 그 줄들은 이름도 없는 대상의 위에 포개져 있었다.

"이 서식은 협회 중앙에서 배포했습니다. 저는 수정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수정이 아니라 중지 권한을 쓰세요."

시우가 말했다.

"저한테 서명받으러 왔잖아요. 그럼 제 조건도 들어야 해요."

그는 서류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손이 약하게 떨렸지만 시선은 서명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기별 의사 확인. 거부 이유 기록. 제3자 관찰 기록. 이의 제기권. 이 네 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해요."

"개별 의사 확인은 누가 판정합니까?"

"제가 들은 걸 저 혼자 적는 게 아니에요. 윤 분석관님 기록도 있고 현장 반응도 있고 에제키엘이 비춘 것도 있어요. 모르면 확인할 때까지 보류하면 돼요. 모른다는 이유로 가져가지 말고요."

아스칼론이 기분 좋게 울렸다.

그래. 이제야 말이 된다.

에제키엘이 덧붙였다.

질문의 문장부터 새로 쓰십시오. 저는 함부로 요약되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기스는 시우의 등 뒤에 방패를 세웠다.

뒤에 있어라. 하지만 네 이름은 네가 써라.

서진혁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벽면 단말기에서 경고음이 길게 울리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조건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심사 결과는 보류하고 현 운용 관계를 유지합니다. 보호 이관 조항은 적용하지 않겠습니다. 협회에도 서식 오염 가능성을 보고하겠습니다."

윤채아가 즉시 말을 이었다.

"관리국은 무기별 의사 확인 기록이 없으면 어떤 이관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거부가 확인되면 독립 검증 전까지 현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 사실을 협회에도 통보하세요."

백은서가 새 문서를 열었다. 서류 아래의 검은 선이 흐려지는 대신 다른 창 하나가 붉게 깜박였다.

"잠깐만요. 이관 대기열이 닫히지 않았어요. 대상이 하나 남았습니다."

화면에는 이름 대신 짧은 판정만 떠 있었다.

[무응답]

[출고 예정: 태양 물류망 3구역]

[출고까지: 01:17:42]

하프의 현이 바늘처럼 가늘게 울렸다.

저기서 울어.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흐려졌다가 낯선 금속 상자 하나를 비췄다. 상자 안쪽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하프의 첫 음과 닮은 낮은 떨림이 아주 먼 곳에서 한 번 울렸다.

시우는 화면을 보았다. 몸은 아직 침대와 휠체어를 벗어날 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았다.

무응답은 대답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 대답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윤 분석관님."

시우가 말했다.

"저 유물 출고는 막아야 해요. 그리고 가기 전에 묻겠습니다. 정말 아무 말도 못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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