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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28화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8화: 잔향이 가리킨 곳

첫숨의 황혼 하프가 낸 첫 음은 보존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소리는 작았지만 바닥에 오래 남았다. 먼지가 밀려난 자리마다 검은 선이 드러났다. 하나는 보관소 하부로 내려갔고 하나는 외부 물류망 상태창으로 뻗었다. 마지막 하나는 관리국 내부 접속 단자 아래에서 살아 있는 실처럼 꿈틀거렸다.

백은서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잔향 영상화 들어갑니다. 선이 흐려집니다. 보존실 기록이 정상 먼지 상태로 다시 덮어쓰고 있어요."

윤채아는 병실 단말기의 생체 수치를 확인했다.

"강시우 군 감응은 종료했습니다."

시우는 베개에 기대 숨을 골랐다. 손끝이 저렸고 목 안쪽은 모래를 삼킨 듯 따가웠다. 그래도 영혼의 대장간 한쪽에서 하프의 황혼빛 현이 아직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울고 있어.

하프의 목소리는 전보다 선명했다. 하지만 처음 말을 배운 아이처럼 조심스러웠다.

"무리하지 마."

시우가 중얼거리자 윤채아의 시선이 바로 돌아왔다.

"누구에게 말했습니까?"

"하프요. 아직 소리가 남아 있대요."

"재감응은 안 됩니다."

"제가 잡는 게 아니라 하프가 할 수 있는 만큼만요.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만 물어볼게요."

아스칼론이 숫돌대 위에서 낮게 웃었다.

꼬맹이 네 몸도 끊기기 직전이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은 보존실 바닥을 비췄다.

하지만 지금 끊으면 저 선은 기록 뒤로 숨습니다.

아이기스가 시우 앞에 섰다.

뒤에 있어라. 말은 짧게 해라.

윤채아는 잠깐 침묵했다. 병실의 산소 수치 그래프가 작은 파도처럼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한 문장씩입니다. 생체 수치가 흔들리면 바로 중단합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프. 가장 약한 소리로 어디까지 보여 줄 수 있어?"

황혼빛 현 하나가 아주 낮게 울렸다.

아래.

보존실 바닥의 검은 선 하나가 희미하게 밝아졌다.

백은서가 즉시 화면을 확대했다.

"하부 반출로 쪽입니다. 도면에는 없는 빈 공간이 잡힙니다."

마도윤의 통신이 끼어들었다.

"보안대 내려갑니다. 반출 게이트 물리 봉쇄는 유지 중입니다."

하부 반출로는 좁았다.

현장 카메라가 낮은 천장과 녹슨 배관 사이를 비췄다. 관리국 보관소 내부라고 하기에는 낡은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오래된 물류 레일이 깔려 있었지만 도면에는 폐쇄 기록도 사용 기록도 없었다.

"도면에 없는 공간입니다."

마도윤이 낮게 말했다.

"그런데 레일 먼지가 최근에 쓸렸습니다. 누가 물건을 민 흔적입니다."

보안대원의 조명이 배관 뒤쪽을 훑었다. 그곳에 낡은 단자가 있었다. 표면은 녹슬었지만 단자 주변의 먼지만 둥글게 비어 있었다.

글레니르의 사슬이 대장간 바닥을 따라 움직였다. 사슬 끝은 하프의 낮은 음과 같은 박자로 떨렸다.

길은 지워져도 닳는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단자를 비췄다. 녹슨 금속 옆에 글자 대신 긁힌 곡선이 떠올랐다. 뒤집힌 왕관이었다.

백은서가 숨을 삼켰다.

"접속 단자 확인. 그런데 로그인 기록은 없습니다. 시스템에는 자동 감정 모듈 계산 결과만 남아 있어요."

윤채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람이 들어온 흔적이 아니라 계산 결과가 통로를 연 겁니까?"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계정은 없습니다. 위치도 없습니다."

아스칼론이 검날을 울렸다.

베어라. 계산이면 더 잘 잘릴 거다.

"안 돼요."

시우가 바로 말했다.

"그 선이 하프 소리에 묶여 있어요. 베면 다른 기록도 같이 날아갈 수 있어요."

하프가 작게 떨었다.

또 없어져.

그 목소리는 자기 몸에서 떨어진 먼지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받침처럼 눌려 있던 시간과 입을 막힌 채 반출될 뻔한 순간이 함께 들어 있었다.

시우는 입술을 눌렀다.

"없애지 말고 표시해요. 어디서 온 건지 알아야 해요."

그림자의 계약이 서명대 위에 문장을 세웠다.

지운 길은 죄를 숨기지만 남긴 길은 대가를 부른다.

백은서의 손이 키보드 위를 달렸다.

"자동 감정 모듈 연결 기록을 역추적합니다. 결과값이 이상합니다. 물품 상태값을 직접 읽은 게 아니라 세 가지 판정을 합산했습니다."

"어떤 판정입니까?"

"소리 없음. 주인 없음. 가치 없음."

병실이 조용해졌다.

하프의 황혼빛 현이 한 번 더 떨렸다. 이번에는 낮은 불안이었다.

나처럼.

"너만이 아니었어."

시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에제키엘이 차갑게 말했다.

소리를 빼앗고 주인을 지우고 가치를 부정한 뒤 반출 가능으로 계산합니다. 아주 천박한 산식입니다.

관리국 경매 관리팀 사무실 화면이 열렸다.

당직자 둘이 보안대 앞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 한 명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희 계정으로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야간 자동 감정은 원래 돌아갑니다. 폐기 대기 물품 정렬용입니다."

백은서가 다른 창을 띄웠다.

"계정 사용 흔적은 없습니다. 대신 모듈 내부에 임시 계산 조각이 끼어 있습니다. 외부 파일도 아니고 스크립트도 아닙니다. 감정 결과처럼 보여서 보안 필터를 통과했습니다."

윤채아가 말했다.

"모듈 정지."

"정지하면 현재 목록 일부가 날아갈 수 있습니다. 방치 물품 원본 상태값이 계산 조각 아래에 깔려 있어요."

그 순간 보존실 바닥 아래의 검은 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프가 낮게 울었다.

도망가.

관리팀 화면의 목록들이 한 줄씩 희게 깜박였다. 입찰 불가. 감정 보류. 소유 주체 없음. 같은 문구들이 스스로 자리를 바꾸며 깨끗한 목록 번호로 덮이기 시작했다.

시우는 눈을 감았다.

영혼의 대장간 안에서 하프의 잔향과 글레니르의 사슬이 같은 곳을 가리켰다. 경매 관리팀 자동 감정 모듈의 가장 아래. 이름들이 접혀 쌓인 곳. 누군가 그 사이에 아주 작은 검은 조각을 끼워 넣었다.

그림자의 계약이 페이지를 넘겼다.

평가 없는 폐기는 동의가 아니다.

문장이 떠오르자 관리팀 화면의 덮어쓰기 진행률이 멈췄다.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답답하군. 그냥 반으로 갈라 버리면 끝날 일을.

"끝나는 게 아니라 묻히는 거예요."

시우는 힘겹게 말했다.

"글레니르. 묶을 수 있어요? 끊지 말고 표시만."

글레니르의 사슬이 조용히 내려갔다.

묶음은 길을 죽이지 않는다.

하프가 아주 낮은 화음을 냈다. 보존실의 두 줄 현이 떨리고 대장간 안의 보이지 않는 현들이 빛났다. 그 소리가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닿자 화면 속 계산식이 잠깐 글자로 드러났다.

[음향 반응 없음]

[등록 주체 없음]

[감정 가치 없음]

[외부 연구 반출 가능]

그 아래에는 더 작은 줄이 붙어 있었다.

[다음 대상: 개인 무기 운용 대장]

백은서가 급히 복사했다.

"대상 코드 확보. 개인 무기 운용 대장입니다. 경매 물품 목록이 아닙니다."

윤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헌터 개인이 등록한 무기 운용 권한 대장입니다."

마도윤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쪽을 덮어쓰면 무기와 사용자의 관계를 장비 운용 허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기스가 방패를 세웠다.

뒤에 있어라.

이번에는 시우도 반박하지 못했다.

검은 조각은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글레니르의 사슬이 선의 목을 조이지 않고 둘레를 감았다. 끊지 않고 표시만 묶는 매듭이었다. 그림자의 계약이 그 위에 새 문장을 내려놓았다.

동의 없는 이름 변경은 기록이 아니라 위조다.

검은 선이 멈췄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맑아졌다.

일시 봉쇄입니다. 품격 있게 말해도 임시 처치입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그럼 다음엔 제대로 패면 되겠군.

하프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대신 황혼빛 현 하나가 아주 얇게 울렸다. 방금 드러난 계산식 아래에서 다른 이름들이 희미하게 떨렸다. 소리 없음. 주인 없음. 가치 없음. 그 판정에 눌린 것들이 하프의 첫 음을 따라 아주 잠깐 숨을 쉬었다.

시우는 그 떨림을 들었다.

"아직 더 있어요."

윤채아가 단말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알겠습니다. 전부 보존 대상으로 전환합니다. 개인 무기 운용 대장 전체는 읽기 전용으로 바꾸세요. 경매 관리팀 모듈은 원본 보존 후 격리. 태양 물류망과 연결된 상태값은 전부 복제합니다."

백은서가 대답했다.

"진행합니다. 그리고 분석관님. 협회 쪽에서 새 공문이 들어왔습니다."

"내용."

"강시우 군의 퇴원 후 개인 무기 운용 권한 심사를 요구합니다. 사유는 미성년 감응자의 다중 고대 아티팩트 운용 위험성."

병실 안의 공기가 다시 차가워졌다.

시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프가 아주 작게 물었다.

또 가져가?

"아니."

시우는 목이 아파도 대답했다.

"이번엔 먼저 물어보게 만들 거야."

윤채아가 그를 보았다.

"지금은 휴식입니다."

"네. 그런데 그 심사에 무기 의사 확인 절차를 넣어 주세요."

아스칼론이 검날을 세웠다.

좋다. 심사관 놈들이 내게도 물어보는지 보자.

에제키엘이 빛을 낮췄다.

질문이 품격 없으면 답하지 않겠습니다.

글레니르의 사슬은 아직 검은 선을 느슨하게 묶고 있었다.

길은 남았다.

그림자의 계약 위에는 마지막 문장이 천천히 떠올랐다.

묻지 않는 심사는 문이 아니라 사슬이다.

시우는 더 말하지 못했다. 윤채아가 감응 차단을 걸자 대장간의 소리들이 한 겹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하프의 첫 잔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보존실 바닥 아래 묶인 검은 선과 개인 무기 운용 대장이라는 새 이름이 병실의 꺼진 화면 위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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