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6화: 입찰 불가
낡은 하프의 목록 번호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방치 경매 물품 목록은 보통 깨끗하지 않았다. 임시 보관 번호, 이전 소유 불명 코드, 감정 실패 표시, 폐기 대기 딱지가 한 줄에 엉켜 붙었다. 그런데 백은서가 띄운 항목은 숫자 네 자리와 하이픈 하나로 끝났다.
"목록이 최근에 정리됐습니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병실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원래 항목은요?"
"복구 중입니다. 현재 목록에는 입찰 불가, 음향 가치 없음, 현 파손, 감정 등급 보류만 남아 있습니다."
시우는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목 안쪽은 아직 따끔거렸다. 공식 발언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몸은 물 먹은 천처럼 무거웠다.
그런데 영혼의 대장간 한쪽에서는 아주 가느다란 소리가 계속 났다.
팅.
끊어진 현을 손톱으로 잘못 건드린 듯한 소리.
아스칼론이 숫돌대 위에서 투덜거렸다.
하프라면서 소리 꼴이 왜 저러냐.
에제키엘의 반사면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소리가 아니라 긁힘입니다. 현이 아니라 먼지가 울고 있습니다.
글레니르의 사슬이 낮게 흔들렸다.
목록도 길이다.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 위에 얇은 문장을 세웠다.
버려진 이름은 빈칸이 아니다.
윤채아가 시우를 보았다.
"현장 이동은 안 됩니다."
"알아요."
"원격 확인만 합니다. 생체 수치가 흔들리면 바로 끊겠습니다."
"네."
대답은 빨랐다. 쉬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그는 무기를 도구로만 보는 곳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구로만 버려진 것이 있다면.
그쪽에는 가야 했다.
백은서의 통신이 이어졌다.
"경매 보관소 원격 검수 영상 연결합니다."
병실 스크린이 켜졌다.
화면 속 보관소는 차갑고 건조했다. 금속 선반이 줄지어 있었고 봉인 박스마다 회색 라벨이 붙어 있었다. 화면을 든 담당자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다.
"관리국 긴급 검수 요청 물품 확인합니다. 목록 번호 K-7721. 입찰 불가 판정 낡은 현악기."
담당자가 선반 아래쪽으로 카메라를 내렸다.
처음에는 하프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찌그러진 나무 받침 하나가 보였다. 선반 다리와 바닥 사이에 비스듬히 끼워져 있었다. 담당자가 장갑 낀 손으로 그것을 잡아당기려 하자 화면이 흔들렸다.
"이거 받침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넣었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시우는 숨을 멈췄다.
하프였다.
금빛이어야 했을 테두리는 검게 죽어 있었다. 조각 장식은 먼지에 묻혔고 현은 대부분 끊어져 목재 몸통 옆으로 늘어졌다. 남은 현 두 줄은 하나는 너무 팽팽했고 하나는 너무 느슨했다.
악기라기보다 부서진 문살 같았다.
팅.
이번에는 병실 밖이 아니라 대장간 안에서 소리가 났다.
춥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시우가 이불을 움켜쥐었다.
"살아 있어요."
윤채아의 눈이 바로 날카로워졌다.
"자의식 반응입니까?"
"말이 약해요. 춥다고 했어요."
담당자가 화면 너머에서 웃음을 삼켰다.
"보관소 온도는 규정 범위입니다. 그리고 이 물품은 악기로도 사용 불가라서요."
아스칼론이 날카롭게 말했다.
저 손목 당장 치워라.
시우가 바로 말했다.
"잡아당기지 마세요."
담당자의 손이 멈췄다.
"왜입니까?"
"그 다리 밑에 눌린 게 몸통이에요. 당기면 더 갈라져요."
윤채아가 즉시 명령했다.
"현장 담당자. 물품 접촉 중지. 영상만 유지하십시오."
담당자는 못마땅한 듯 손을 뗐다.
그때 보관소 뒤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물품은 이미 반출 절차 중입니다."
카메라가 돌아갔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관리국 직원증이 아니었다. 협력 중개인 출입증이었다. 출입증 아래 작은 태양 문양이 보였다.
윤채아가 말했다.
"신원 밝히십시오."
"태양 물류 협력 중개인 한도겸입니다. 해당 물품은 음향 가치 없음 판정이라 폐기 전 연구용 반출 신청이 들어갔습니다."
태양.
병실 공기가 다시 차가워졌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화면 아래쪽 서류를 비췄다. 중개인이 들고 있는 패드의 승인 창이 반사면 안에서 선명해졌다.
주인 없는 장비의 안전 반출.
소유자 보호와 장비 운용 분리.
시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또 그 문장이에요."
에제키엘이 대답했다.
예. 그리고 더럽습니다.
반사면 아래로 검은 곡선이 떠올랐다. 뒤집힌 왕관이었다. 그 밑에 세 갈래 흉터가 서류 가장자리를 긁었다.
글레니르가 사슬을 당겼다.
반출도 길이다.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 위에서 페이지를 넘겼다.
허락 없는 반출은 매매가 아니라 탈취다.
한도겸이 화면 너머에서 얇게 웃었다.
"절차상 문제는 없습니다. 입찰 불가 물품이고 소유자도 없습니다. 관리국 보관료만 늘어나는 물품을 민간 연구소에서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윤채아가 차갑게 말했다.
"해당 문서 제출 경로를 확인할 때까지 반출 보류합니다."
"이미 자동 승인 단계입니다. 보류 권한은 경매 관리팀에 있습니다."
백은서가 곧바로 끼어들었다.
"분석관님. 승인 창이 방금 열렸습니다. 보관소 시스템에서는 물품 상태가 폐기 대기에서 외부 연구 반출로 바뀌고 있습니다."
담당자의 패드가 울렸다.
한도겸은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보이시죠. 저희는 그냥 절차를 따릅니다."
그 순간 하프의 남은 현 두 줄이 떨렸다.
팅.
소리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시우에게는 대장간 바닥을 긁는 소리처럼 들렸다.
숨.
시우가 물었다.
"숨이 막혀요?"
윤채아의 시선이 시우에게 꽂혔다.
화면 속 담당자도 멈칫했다.
한도겸은 웃음을 유지했다.
"누구에게 묻는 겁니까?"
"하프요."
"물품에는 답변 능력이 없습니다."
아스칼론이 크게 웃었다.
물품한테 뺨 맞아 봐야 정신 차릴 놈이군.
시우는 그 말을 옮기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 하프는 선반 받침이 아니에요. 폐기물도 아니고요."
"보호 대상자분. 감정 결과는 전문가가 냅니다."
"전문가가 현을 끊었나요?"
한도겸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시우는 화면 속 하프를 보았다. 하프의 몸통 아래쪽에는 검은 먼지가 뭉쳐 있었다. 먼지는 그냥 쌓인 게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숨구멍을 막아 놓은 것처럼 음향공 주변에 눌어붙어 있었다.
에제키엘이 말했다.
먼지 아래 봉인 때가 있습니다. 아주 조잡합니다. 품격을 모르는 손입니다.
글레니르가 낮게 덧붙였다.
현이 끊긴 곳마다 매듭이 있다.
그림자의 계약은 새 문장을 세웠다.
연주하지 못하게 묶은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시우는 목이 아팠다. 그래도 말했다.
"윤 분석관님. 무기 의사 확인 절차 초안이 아직 초안이어도 쓸 수 있어요?"
"임시 검토 근거로는 쓸 수 있습니다."
"그럼 첫 번째로 써 주세요."
윤채아가 곧바로 단말기를 조작했다.
"관리국 임시 보호 명령 발동. 대상 물품 K-7721. 자의식 반응 가능성 및 강제 반출 시 2차 피해 가능성 확인. 외부 반출 중지. 보관소 봉쇄."
한도겸이 표정을 잃었다.
"분석관님. 권한 초과입니다."
"현장 2차 피해 가능성은 제 권한입니다."
마도윤의 통신이 뒤늦게 들어왔다.
"보관소 보안대 출동시켰습니다. 반출 게이트 잠급니다."
백은서도 빠르게 말했다.
"자동 승인 취소 로그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승인 요청 원본이 이상합니다. 작성자 계정은 경매 관리팀인데 접속 위치가 없습니다."
접속 위치 없음.
그 말에 대장간 문턱의 검은 선이 잠깐 꿈틀거렸다.
아이기스가 시우 앞에 섰다.
뒤에 있어라.
"이번엔 못 가요."
시우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래도 말은 보낼 수 있죠."
윤채아가 그를 보았다.
"짧게만 하십시오."
시우는 화면 속 낡은 하프를 향해 말했다.
"기다려 주세요."
하프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반 밑에 끼인 몸통도 그대로였다. 먼지 아래 봉인 때도 화면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장간 안에서는 남은 현 두 줄이 아주 희미하게 빛났다.
팅.
처음.
시우는 숨을 멈췄다.
하프의 목소리는 바람보다 약했다.
첫 음.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어두워졌다가 천천히 맑아졌다.
먼지를 원합니다. 아니, 먼지 아래를 보아 달라는 뜻입니다.
아스칼론이 코웃음을 쳤다.
노래하는 놈도 까다롭군.
글레니르가 사슬을 느슨하게 풀었다.
길은 끊기지 않았다.
윤채아는 보관소 화면을 보며 말했다.
"현장팀 도착 전까지 누구도 접촉하지 않습니다. 하프는 임시 보존실로 이동합니다. 이동 전에 받침 제거 절차를 새로 짜세요."
화면 속 한도겸이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의 패드 아래 검은 왕관의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 갈래 흉터가 화면 밖으로 미끄러졌다.
그림자의 계약이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닫힌 경매장에도 문은 있다.
시우는 눈을 감았다.
몸은 병실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문밖의 소리는 이미 길을 찾았다.
도구로만 보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도구로만 버려진 곳에는 찾아간다.
그 기준이 이제 말이 아니라 다음 걸음이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