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5화: 도구가 아닌 쪽
태양 길드는 병실 문 앞에서 물러났지만 문서를 남겼다.
문서는 사람보다 끈질겼다. 병원 보안대가 대표단을 밖으로 내보낸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관리국 공식 회선으로 질의서가 들어왔다. 윤채아는 단말기를 내려다보다가 아주 작게 숨을 삼켰다.
"미성년 보호 대상자의 판단 능력 검토 요청."
시우는 베개에 기대 눈을 떴다.
"저요?"
"이름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상은 명확합니다."
윤채아는 화면을 병실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 배려가 오히려 내용을 더 잘 알려 줬다. 시우가 보지 않아도 아스칼론이 먼저 낮게 웃었다.
칼을 빼앗으려다 안 되니까 손목이 어린지 재겠다는 거냐.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병실 천장을 비췄다. 화면은 보이지 않는데도 문장의 그림자가 반사면 안에서 선명했다.
소유자 보호와 장비 운용 분리.
그 문장은 질의서 중간에 박혀 있었다. 문서 작성자가 강조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백은서의 통신이 곧바로 이어졌다.
"분석관님. 다른 길드 제안서 세 건에서도 같은 문구가 확인됐습니다. 명의는 다릅니다. 문장 순서만 조금 바뀌었습니다."
윤채아의 눈이 차가워졌다.
"원문 대조해 주세요. 작성 프로그램 흔적도."
"이미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자동 요약본이 전부 보호 대상자를 소유자로 정리합니다."
병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소유자.
그 단어가 대장간 문턱에 검은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아이기스가 시우 앞에 섰다.
뒤에 있어라.
글레니르의 사슬이 짧게 당겨졌다.
말도 길이다.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 위에서 천천히 펼쳐졌다.
잘못 부른 관계는 잘못 열린 문이 된다.
시우는 목 안쪽이 따가운 것을 느꼈다. 태양 길드의 말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직접 말한 "같이 살아남는 쪽"이라는 문장이 회의실에서 멈춘 사이 다른 문서들이 그 자리를 소유자라는 단어로 채우고 있었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닫았다.
"법무팀이 공식 답변을 준비할 겁니다. 강시우 씨는 쉬세요."
"제가 아무 말 안 해도 돼요?"
"안 해도 됩니다."
그 대답은 정확했다.
그래서 부족했다.
시우는 대장간 안을 보았다. 아스칼론은 숫돌대 위에서 검날을 세우고 있었다. 에제키엘은 금 간 반사면을 기울였다. 글레니르와 그림자의 계약은 문턱 쪽의 검은 먼지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 안 하면 또 다른 말이 들어오는 거죠?"
윤채아는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럼 짧게 할게요."
"방금 회복 수치가 안정된 상태입니다."
"알아요. 오래 말 안 할게요. 이번에는 거절 말고 기준만 말할게요."
윤채아는 안경을 고쳐 썼다.
"기준이라면요?"
시우는 이불 위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무기를 도구로만 보는 곳에는 안 간다는 기준이요."
아스칼론이 아주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말이 좀 벼려졌군.
관리국 법무 화상 회의실은 병실보다 조용했다.
시우의 화면은 여전히 검은 칸이었다. 음성은 낮게 변조됐다. 윤채아가 옆에 앉았고 마도윤은 회의실 쪽 통제선 뒤에 섰다. 법무팀 담당자는 문서 세 장을 띄워 놓고 있었다.
태양 길드 법무 대리인은 이번에도 웃고 있었다. 직접 병원까지 온 대표단과 달리 그는 화면 속에서 더 매끄러웠다.
"관리국 보호 대상자가 스스로 계약 이해와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은 확인했습니다. 다만 해당 대상자는 미성년이고 정식 헌터 등록 전입니다. 공공 안전과 국가적 위험 대응을 위해 전문 조직의 운용 지원을 배제하는 판단이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윤채아가 말했다.
"보호 대상자에게 직접 판단 능력 검사를 요구하는 절차는 없습니다."
"검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합리적 보호를 제안했습니다. 위험한 장비 운용과 보호 대상자의 신병 보호를 분리하자는 겁니다."
장비.
시우는 그 단어가 들어오는 순간 대장간 바닥이 아주 얇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 아래로 검은 점이 번졌다.
문장 안쪽에 같은 얼룩이 있습니다.
글레니르가 말했다.
짧게 묶어라.
윤채아가 시우를 보았다. 끊을 준비였다.
시우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제가 말할게요."
법무 대리인의 시선이 검은 화면으로 옮겨 갔다.
"보호 대상자분. 저희는 대상자분 개인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요."
시우는 숨을 골랐다.
"그런데 제 무기들을 장비라고만 부르는 순간부터 압박이 됩니다."
대리인의 미소가 얇아졌다.
"아티팩트는 법적으로 물적 관리 대상입니다."
"그 법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에요."
윤채아의 손이 차단 버튼 위에서 멈췄다.
"근데 제 경우에는 그것만으로 부족해요. 제 무기들은 싫으면 막습니다. 잘못 잡으면 손목을 틀고 잘못 겨누면 길을 바꿔요. 그걸 무시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어요."
마도윤의 표정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서울 상공에서 창과 활과 팔찌가 주인에게 보냈던 신호를 알고 있었다.
시우는 말을 이었다.
"저는 그걸 듣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갈 곳은 보관고가 좋은 곳이 아니라 먼저 물어보는 곳이어야 합니다."
법무 대리인이 곧장 끼어들었다.
"현장에서는 개인 감상보다 지휘 체계가 우선입니다."
"네. 그래서 더 필요해요."
시우의 목이 아팠다. 그래도 말은 끊기지 않았다.
"무기가 싫어하는 그립인지. 그 보관고가 숨 막히는지. 그 전술이 코어를 먹히게 하는 길인지. 그걸 확인하고 지휘해야 해요."
아스칼론이 검날을 낮게 울렸다.
괜찮다. 더 깎지 마라.
시우는 마지막 문장을 준비했다.
"저는 무기를 도구로만 보는 길드에는 가지 않습니다."
회의실의 자동 기록 화면이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보호 대상자는 소유 장비의 운용권 분리에 반대하며 길드 소속 거부 의사를 표시함.
검은 얼룩이 문장 아래로 확 번졌다.
에제키엘이 날카롭게 말했다.
저 문장입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서명대 위에서 펄럭였다.
소유라 쓰인 자리에 동의는 없다.
시우가 화면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장간의 문턱이 다시 열리는 느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기침을 삼키고 말했다.
"방금 기록 수정해 주세요."
법무팀 담당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 부분입니까?"
"소유 장비 아니에요."
윤채아가 즉시 받아 적었다.
"정정 요청. 보호 대상자 발언 그대로 기록."
시우는 천천히 말했다.
"무기 동행자. 아니면 감응 대상 무기. 그 정도가 맞아요."
법무 대리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행정 문서에 그런 표현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어려운 문서에는 안 들어갈게요."
병실 쪽 통신이 잠깐 조용해졌다.
윤채아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관리국 답변에 반영하겠습니다. 아티팩트 의사 확인 절차 부재와 강제 보관 위험성은 별도 검토 항목으로 올립니다."
마도윤이 말했다.
"현장 운용 지침에도 넣죠. 전투 전 거부 신호 확인. 장비 이상이 아니라 생존 신호일 수 있다는 문구로."
백은서의 통신이 끼어들었다.
"초안 작성하겠습니다. 명칭은 임시로 무기 의사 확인 절차."
그림자의 계약 위로 새 문장이 떠올랐다.
허락을 묻는 절차는 문턱을 낮추지 않는다.
검은 얼룩이 뒤로 밀렸다.
시우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산소 수치가 조금 흔들렸지만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윤채아가 바로 회의를 종료했다.
"발언 종료. 보호 대상자 휴식 들어갑니다."
법무 대리인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화면은 꺼졌다.
병실로 돌아온 정적 속에서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동행자는 좀 간지럽다.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높였다.
소유 장비보다는 품격 있습니다.
글레니르는 사슬을 느슨하게 풀었다.
길 하나가 묶였다.
시우는 눈을 감았다.
"다들 싫지는 않았어요?"
아이기스가 짧게 말했다.
뒤에 있어라.
"그건 늘 똑같네요."
윤채아는 단말기에 새 파일을 열었다. 제목은 간단했다.
[무기 의사 확인 절차 초안]
그녀는 첫 줄을 쓰다가 멈췄다.
"강시우 씨. 감응자라는 표현은 괜찮습니까?"
"네. 소유자보다는요."
"알겠습니다."
백은서가 통신으로 조용히 말했다.
"분석관님. 제출 문서 전수 분석 중 이상 목록 하나 더 나왔습니다. 태양 길드 제안서와 같은 문구가 관리국 방치 경매 물품 목록에도 붙어 있습니다."
윤채아의 손이 멈췄다.
"무슨 물품입니까?"
"입찰 불가 판정된 낡은 하프입니다. 현이 대부분 끊어졌고 감정 등급은 보류. 비고란에 소유자 보호와 장비 운용 분리 문구가 있습니다."
시우는 눈을 떴다.
대장간 한쪽에서 아주 가느다란 소리가 났다.
끊어진 현을 손톱으로 튕기는 듯한 소리였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어두워졌다.
문밖에 또 하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이번엔 노래하는 놈이냐.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은 아팠고 몸은 무거웠다. 하지만 방금 세운 기준이 아직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도구로만 보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그리고 도구로만 버려진 것이 있다면.
그쪽에는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