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23화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3화: 병실 지시

병실 밖 소음은 승리보다 먼저 도착했다.

처음에는 구조 방송이었다. 그다음에는 헬기 소리였고 뒤이어 기자들의 목소리였다. 문 두 겹과 차단막을 지나온 소리라 문장은 흐렸지만 같은 말 하나만은 계속 남았다.

병실 지시.

시우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서울 하늘의 붉은 균열이 닫혔다는 보고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은 물에 젖은 천처럼 침대에 붙어 있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영혼의 대장간 안에서는 벽 아래 검은 선이 아주 조금씩 꿈틀거렸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들어 올렸다.

"외부 방송 병실 명칭 사용 중지 요청. 지하 보호 병실 위치와 대상자 신원은 비공개 유지합니다."

스피커 너머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윤채아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정정하세요. 현장 지휘는 마도윤 팀장이 했고 병실에서는 검증된 위험 정보를 전달했을 뿐입니다."

시우는 겨우 입을 열었다.

"밖에서 많이 알아요?"

"아직 이름은 안 나갔습니다."

아직.

그 말은 문장 끝에 작은 칼처럼 남았다.

아스칼론이 숫돌대 위에서 검날을 세웠다.

꼬맹이 이름이 팔리면 귀찮아진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은 깨진 금을 품은 채 병실 밖 복도를 비췄다.

이미 귀찮습니다. 기자 세 명이 보호 병동이 어느 층인지 묻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봐요?"

저는 거울입니다. 품격 있게 보입니다.

글레니르의 사슬이 천장에서 낮게 흔들렸다.

소리가 길을 만든다.

그림자의 계약도 서명대 위로 검은 문장을 세웠다.

반복된 호칭은 허락이 아니다.

벽 아래 검은 선이 그 문장을 싫어하듯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밖에서 다시 같은 말이 울렸다.

병실 지시를 받은 현장팀이 마수를 제압했습니다.

검은 선이 다시 길어졌다.

아이기스가 시우 앞에 섰다.

뒤에 있어라.

"저 안 움직여요."

그 말에는 힘이 없었다. 시우 자신도 알았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름 없는 소문은 밖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 도심 현장 통제선 앞에서는 마도윤이 기자들 앞에 서 있었다.

마수의 잔재는 차단막 위에서 검은 재로 흩어지고 있었다. 구조대는 마지막 대피자 명단을 확인했고 A급 헌터들은 장비 점검을 받았다.

카메라 불빛이 한꺼번에 마도윤을 향했다.

"병실 지시라는 게 사실입니까?"

"F급 헌터 지망생이 A급 현장을 지휘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장 헌터들이 원격 조종을 당한 겁니까?"

마도윤의 눈매가 굳었다.

"원격 조종은 없었습니다."

"그럼 병실에서는 뭘 한 겁니까?"

"위험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현장 판단과 명령은 제가 했습니다."

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질문은 방향을 바꿔 다시 들어왔다.

"그 위험 정보가 일반적인 분석으로 가능했습니까?"

마도윤은 잠시 뒤를 보았다.

창을 든 A급 헌터가 서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창대는 그의 왼손 옆에 세워져 있었고 끝부분의 떨림은 전투 때보다 훨씬 잔잔했다.

그가 카메라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일반 분석은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의 소리가 커졌다.

헌터는 자기 창을 내려다봤다.

"내 창이 먼저 손을 막았습니다. 병실에서 왼손으로 잡으라는 말이 오기 전에 이미 오른손을 싫어했습니다. 나는 그걸 무시했고 죽을 뻔했습니다."

마도윤도 말리지 않았다. 공개 가능한 기록은 이미 현장 장비에 남아 있었다. 숨기면 원격 조종이라는 말만 더 커질 터였다.

포격형 팔찌를 찬 헌터가 팔목을 들어 보였다. 붉은 자국은 아직 남아 있었다.

"제 팔찌도 폭발을 막았습니다. 그때 쐈으면 마수 꼬리에 코어가 빨렸을 겁니다."

활 헌터가 짧게 덧붙였다.

"내 활은 머리를 노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억지로 노리려고 하자 시선이 틀렸습니다."

한 기자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무기가 의사 표현을 했다는 뜻입니까?"

창 헌터가 대답했다.

"말은 못 들었습니다. 대신 막았습니다."

마도윤은 그 대답을 받아 말했다.

"병실의 협력자는 그 반응을 읽었습니다. 현장은 그 정보를 검증했고 지휘 명령으로 바꿨습니다."

방송 차량의 화면에 자막이 바뀌었다.

F급 알바생이 A급 헌터들의 무기를 읽었다.

그 문장이 전파를 타는 순간 시우의 대장간 벽이 낮게 울렸다.

검은 선이 자막을 핥는 것처럼 흔들렸다.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방금 커졌죠."

윤채아가 단말기의 생체 수치를 보았다.

"대장간 쪽 반응입니까?"

"네. 병실 지시라는 말보다 이름 없는 설명이 더 붙어요. F급 알바생. 원격 조종. 위험한 통제자. 그런 말들이요."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검은 얼룩이 번졌다. 얼룩 끝에는 뒤집힌 왕관 같은 선이 아주 잠깐 비쳤다.

품격 없는 낙서입니다. 하지만 우연은 아닙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새 문장을 세웠다.

허락받지 않은 이름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검은 선은 멈칫했다. 그러나 방송 소리는 계속 들어왔다. 누군가는 시우를 영웅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위험한 통제자라고 불렀다. 호칭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 시우가 대답하지 않는 빈자리를 향했다.

글레니르가 사슬을 낮게 울렸다.

빈 이름에 매듭이 생긴다.

시우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누군가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 반복되면 대장간 벽에 남은 흔적이 그것을 손잡이처럼 잡았다. 시우의 진짜 이름은 아직 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빈자리는 오히려 더 쉽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기스가 방패를 낮췄다.

빈자리를 내주지 마라.

시우는 마른 목을 삼켰다.

"제가 말하면요?"

윤채아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안 됩니다. 신원 노출 위험이 큽니다."

"얼굴 안 보여도 돼요. 이름도 말하지 마세요. 그런데 제가 아닌 걸 남들이 계속 정하면 저 선이 그걸 잡아요."

"발언 자체가 추가 노출입니다."

"숨으면 더 큰 이름이 붙어요."

아스칼론이 짧게 웃었다.

그래도 말은 똑바로 배웠군.

윤채아는 단말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분석관의 눈빛과 보호자의 눈빛이 잠깐 부딪혔다.

"삼십 초. 얼굴 비공개. 음성 변조. 생체 수치가 떨어지면 즉시 중단합니다."

"네."

"그리고 강시우 씨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관리국 보호 대상자의 확인 발언입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윤채아는 송출 전에 아이기스 쪽을 보았다. 방패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병실 안 공기가 조금 두꺼워졌다. 에제키엘은 금 간 반사면을 최대한 어둡게 눌렀고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 위에 제한 문장을 덧댔다.

허락된 발언은 얼굴과 이름을 넘지 않는다.

현장 통제선 앞 방송 화면이 짧게 끊겼다.

기자들이 술렁였다. 마도윤의 이어폰에 윤채아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국 보호 대상자의 짧은 확인 발언이 있습니다. 얼굴과 신원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카메라 불빛이 다시 살아났다.

병실에서는 화면이 검게 처리됐다. 시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음성 변조가 걸린 낮은 목소리만 나갔다.

"저는 현장 헌터들을 조종하지 않았습니다."

병실 안이 조용해졌다.

"무기들이 싫어하는 길을 들었습니다. 부러질 길. 주인을 다치게 할 길. 마수에게 먹힐 길을 들었습니다."

시우는 손가락을 이불 위에 눌렀다.

"그리고 살 수 있는 길을 전했습니다. 현장에서 싸운 건 헌터분들과 그분들의 무기입니다."

말을 멈추자 산소 라인이 작게 울렸다. 윤채아의 손이 차단 버튼 근처에 갔다.

시우는 마지막 문장을 붙잡았다.

"앞으로도 무기가 막으면 한 번만 들어 주세요. 물건이 아니라 같이 살아남는 쪽일 수 있습니다."

윤채아가 바로 송출을 끊었다.

시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영혼의 대장간에서 벽 아래 검은 선이 뒤로 밀렸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더는 병실 지시라는 말에 맞춰 자라지 않았다.

현장 통제선 앞에서는 창 헌터가 자기 창대를 고쳐 잡았다.

"들었다?"

창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창날 끝이 아주 작게 아래로 숙였다.

팔찌 헌터는 손목을 문질렀다.

"다음에는 폭발하기 전에 물어보마."

팔찌의 붉은 빛이 한 번 깜박였다.

활 헌터는 아무 말 없이 활시위를 느슨하게 풀었다. 마도윤은 그 모습을 보고 기자들을 향해 돌아섰다.

"확인 발언은 여기까지입니다. 구조와 잔재 처리 상황 외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카메라 뒤쪽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올라왔다. 어느 길드가 보호 대상자 접촉을 요청했는지 묻는 기자도 있었고 특성 등록 절차를 묻는 기자도 있었다.

윤채아의 단말기에 새 알림이 연달아 떴다.

[협력 문의]

[면담 요청]

[긴급 스카우트 제안]

윤채아는 화면을 꺼 버렸다.

"전부 보류."

시우가 작게 웃었다.

"저 아직 F급도 아닌데요."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다시 맑아지려다 한순간 흔들렸다. 방송 화면 한쪽 귀퉁이에 노이즈가 스쳤다. 아주 짧았다. 대부분은 신호 불량으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시우는 보았다.

뒤집힌 왕관.

세 갈래로 찢어진 검은 흉터.

그림자의 계약이 서명대 위에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돌아간 시선은 문밖에서 기다린다.

아이기스가 다시 시우 앞에 섰다.

뒤에 있어라.

이번에는 시우도 바로 대답했다.

"네. 그런데 문이 어딘지는 봐야겠어요."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