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2화: 첫 번째 날개 밑
회선이 끊긴 뒤 병실에는 검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우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공기가 목 안쪽에서 부서졌다. 영혼의 대장간에서는 아이기스가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방패 가장자리에는 방금 역류한 열기가 검은 얼룩처럼 남았다.
아이기스가 낮게 말했다.
뒤에 있어라.
"알고 있어요."
말은 겨우 나왔다. 윤채아가 침대 옆에서 산소 라인을 확인했다. 그녀의 손은 빠르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회선 재접속 금지합니다."
"현장은요."
"마지막 지시는 전달됐습니다."
그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요구하면 회선을 열어 달라는 뜻이 됐다. 시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대장간 천장에서 글레니르의 사슬이 짧게 내려왔다.
묶었다.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 위에 검은 문장을 세웠다.
허락된 통로는 생존 조건을 넘지 않는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은 까맣게 식어 있었다. 방금까지 서울 하늘을 비추던 면에는 머리카락 같은 금만 남았다. 아스칼론은 숫돌대 위에서 검날을 세우고 있었다.
꼬맹이.
"네."
믿어라.
그 말이 더 무거웠다. 시우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했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귀에 눌렀다.
"마도윤 팀장. 병실 회선은 차단됐습니다. 재개 불가. 현장 상황 보고 바랍니다."
처음에는 잡음만 돌아왔다.
그 사이 서울 하늘에서는 마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도윤은 붉은 그림자가 도심을 덮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비행 마수의 꼬리가 먼저 내려왔다. 검은 가시가 박힌 꼬리 끝은 대피가 끝나지 않은 듯 보이는 건물 외벽을 향했다.
활을 든 헌터가 본능적으로 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 활대가 손바닥을 밀어냈다. 살을 찌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당기면 손가락이 꺾일 만큼 단호했다.
"이 자식이."
헌터는 욕을 삼키며 시위를 늦췄다.
마도윤의 명령이 떨어졌다.
"꼬리 유인 반응 금지. 왼쪽 두 번째 날개 밑만 본다."
"저게 건물을 찍으면요?"
"꼬리는 미끼다."
현장 A급 헌터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병실의 소년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무기들이 막은 손을 보았다.
포격형 팔찌를 찬 헌터의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팔찌는 아직도 주인의 손을 안쪽으로 조이고 있었다. 창을 든 헌터는 왼손으로 창대를 고쳐 잡았다.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 병실에서 들려온 그 말 때문에 창의 떨림이 멎었다.
마수의 꼬리가 흔들렸다.
붉은 공기가 그 꼬리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만약 조금 전 사격했다면 마력은 그대로 먹혔을 것이다. 꼬리는 건물을 치지 않았다. 건물 외벽을 스치기 직전 다시 위로 튀어 올랐다.
백은서의 목소리가 현장 분석 회선에 붙었다.
"꼬리 끝 흡입성 마력 소용돌이 확인. 공격했으면 장비 코어가 빨렸을 겁니다."
마도윤은 짧게 답했다.
"전원 대기. 하강 직전만 노린다."
비행 마수는 더 낮아졌다. 날개가 도시 위의 그늘처럼 펼쳐졌다. 열풍이 유리창을 때리고 고층 건물 사이 공기가 꺾였다. 차단선 바깥의 시민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하늘에서 나는 괴성은 귀를 막아도 파고들었다.
마수의 눈이 아래를 훑었다.
이번에는 병실이 아니라 현장을 보았다.
그 눈은 흔들리는 꼬리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현장 헌터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머리로 끌려갔다. 목 아래 비늘은 찢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아스칼론의 말이 없었다면 모두 그곳을 노렸을 것이다.
창 헌터가 숨을 낮췄다.
"왼쪽 둘째."
활 헌터가 받았다.
"날개가 젖혀질 때."
팔찌 헌터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안쪽 뿌리."
마도윤은 세 사람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했다.
"타격 순서 변경. 활은 시선 고정. 팔찌는 폭발 금지. 창을 밀어 넣어라."
"폭발 금지면 포격형을 왜 씁니까."
"밀어 주는 탄으로 바꿔."
팔찌 헌터가 팔목을 내려다봤다. 팔찌의 붉은 자국이 아직 뜨거웠다. 그는 숨을 내쉬고 장전 방식을 바꿨다.
"한 번만 참아라."
팔찌가 낮게 떨었다. 시우에게 들렸다면 분명 불평했을 울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인을 물지 않았다.
마수가 날개를 접었다.
도시는 한순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날개가 위로 젖혀졌다.
왼쪽 두 번째 가시 안쪽에 푸른 균열 같은 선이 열렸다. 보이는 시간은 짧았다. 눈이 그곳을 알아채기도 전에 닫힐 만큼 짧았다.
활 헌터가 먼저 쐈다.
빛의 화살은 마수의 눈앞을 스치며 시선을 끌었다. 머리를 맞히지 않았다. 맞히려 하지 않았기에 휘어지지 않았다.
마수의 고개가 아주 조금 돌아갔다.
팔찌 헌터가 압축탄을 쏘았다. 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공중에서 창 헌터의 등을 밀듯 터졌다. 창 헌터는 그 힘을 타고 마수의 날개 밑으로 파고들었다.
창이 왼손 그립에 맞춰 흔들렸다.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창날이 푸른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마수가 비명을 질렀다.
열 장막이 접히는 소리가 났다. 서울 하늘을 덮던 붉은 막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찢어졌다. 날개 밑 가시들은 한꺼번에 검은 뿌리를 드러냈다.
그 뿌리는 검은 가시 표본과 닮아 있었다.
창 헌터는 뒤로 튕겨 나가며 외쳤다.
"열 장막 무너졌습니다!"
마도윤이 기다리지 않았다.
"목 아래 비늘 틈. 지금."
세 명의 A급 헌터가 동시에 움직였다. 그러나 마수도 마지막 힘으로 몸을 비틀었다. 무너진 열 장막의 잔재가 다시 공격 궤도를 잡아먹으려 했다.
그때 창 헌터의 손에서 창이 혼자 반 박자 앞서 흔들렸다.
활대가 빛을 낮췄다.
팔찌가 주인의 손목을 안쪽으로 틀었다.
무기들이 자신들의 길을 골랐다.
병실의 대장간 안에서 아스칼론이 검날을 울렸다.
날개 밑을 봤으면 다음은 목이다.
시우는 그 말을 듣지 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검은 정적 너머에서 아주 가느다란 울림이 지나갔다. 현장 무기들이 대답하는 소리 같았다.
마수의 목 아래 비늘 하나가 벌어졌다.
창이 먼저 틈을 고정했다. 빛의 화살이 그 틈 안쪽으로 들어갔다. 팔찌의 압축탄이 마지막으로 밀어 넣었다.
마수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아스칼론의 푸른 선 같은 울림이 하늘을 한 번 가르고 지나갔다.
목이 떨어졌다.
서울 도심 위의 붉은 균열이 크게 흔들렸다. 마수의 몸은 검은 재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재는 도로에 닿기 전에 관리국 차단막에 걸려 흩어졌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창 헌터였다.
"미안하다."
그는 자기 창대를 내려다봤다.
"오른손만 고집해서."
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창날의 떨림은 더 이상 날카롭지 않았다.
마도윤은 통신기를 들었다.
"병실 연결."
윤채아의 목소리가 바로 돌아왔다.
"말하세요."
"목표 제압. 민간 피해 추가 없음. 왼쪽 두 번째 날개 밑 가시 타격 성공. 이후 목 아래 비늘 틈 참수 완료."
윤채아는 아주 짧게 숨을 멈췄다.
"강시우 씨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시우는 이미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말보다 먼저 대장간의 화덕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 검은 금이 희미하게 빛을 되찾았고 글레니르의 사슬이 천천히 느슨해졌다.
아이기스가 앞에서 물러나지 않은 채 말했다.
살았다.
"현장이요?"
너도.
그제야 시우는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윤채아가 그의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확인했다.
"강시우 씨. 들리면 손가락만 움직이세요."
시우의 손가락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윤채아가 말했다.
"성공했습니다."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눈가가 조금 젖었다. 현장에 가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살아남았다. 자신이 칼을 휘두르지 않았는데도 무기들이 길을 만들었다.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울 시간 있으면 숨이나 쉬어라.
시우는 겨우 웃었다.
"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조심스럽게 맑아졌다.
다만 품격 있는 승리라고 하기에는 반사면에 금이 갔습니다.
"나중에 닦아 드릴게요."
반드시입니다.
그때 그림자의 계약이 서명대 위에서 스스로 펼쳐졌다. 문장 하나가 검게 번졌다.
초대받지 않은 시선은 돌아가는 길을 남긴다.
시우의 웃음이 멈췄다.
대장간 벽 아래 작은 검은 점이 조금 커져 있었다. 아주 얇고 어두운 선 하나가 문턱 쪽으로 뻗어 있었다. 방금 끊긴 회선이 남긴 흉터처럼 보였다.
아이기스가 다시 낮게 말했다.
뒤에 있어라.
이번에는 그 말이 휴식이 아니라 경고로 들렸다.
병실 밖에서는 기자 헬기와 구조 방송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현장 생중계 화면에서 병실 지시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서울 하늘의 붉은 균열은 닫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의 대장간에는 닫히지 않은 선이 하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