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0화: 현장 밖의 첫 지휘
대장간의 종이 두 번째로 울린 순간 시우의 손가락이 현실에서 떨렸다.
윤채아가 침대 옆 단말기를 붙잡았다.
"강시우 씨. 들리면 손가락만 움직이세요."
시우는 눈을 뜨려 했지만 눈꺼풀은 물에 젖은 천처럼 무거웠다. 대신 영혼의 대장간 안에서 문턱을 잡았다. 문 위의 글자가 붉게 흔들렸다.
영혼의 대장간.
그 아래에서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병실 바깥 복도를 비췄다. 마도윤이 통신기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서울 도심 상공에 게이트 개열 징후. 등급 추정 A급."
아스칼론이 숫돌대 위에서 번쩍였다.
꼬맹이. 쉬는 시간이 너무 짧군.
아이기스는 벽감에서 낮게 울었다.
앞에 서지 마라.
시우는 몸부터 일으키려던 마음을 눌렀다. 회복 전 현장 진입 금지. 그 조건은 누가 억지로 씌운 목줄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문서에 박아 넣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듣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윤채아 분석관님."
현실의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대신 병실 단말기 스피커가 잡음 섞인 숨처럼 울렸다.
"현장 화면을 대장간으로 연결해 주세요."
윤채아의 눈이 흔들렸다.
"대장간이라는 표현은 공식 기록상 아직 없습니다."
"그럼 임시 감응 공간이라고 적어 주세요. 저는 안 갑니다. 대신 듣겠습니다."
아스칼론이 헛웃음을 냈다.
말은 잘하는군.
아이기스가 짧게 말했다.
살아남는 말이다.
윤채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병실 벽면 스크린과 에제키엘 보존 케이스 사이에 임시 회선을 열었다. 백은서가 에제키엘의 각도를 조정했다.
"반사면에 직접 조명 닿지 않게 하겠습니다."
에제키엘이 만족스럽게 빛났다.
이 정도면 품격 있는 중계입니다.
화면이 들어왔다.
서울 도심 상공이 갈라져 있었다. 초고층 건물 사이에 붉은 균열이 떠 있었고 그 아래로 차량 경적과 대피 방송이 뒤엉켰다. 균열은 문처럼 서 있지 않았다. 하늘에 벌어진 입처럼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게이트 아래 도로에는 관리국 차단선이 펼쳐졌다. 마도윤의 기동방어팀은 시민 대피선을 잡고 있었고 A급 헌터 세 명이 상공을 향해 장비를 겨누고 있었다.
윤채아가 빠르게 말했다.
"강시우 씨는 정보 전달만 합니다. 몸을 움직이면 회선 끊겠습니다."
"네."
아스칼론이 중얼거렸다.
네가 네라고 하는 날도 오는군.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사면 속 게이트 가장자리에서 기묘한 소리가 났다. 쇠가 열에 휘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글레니르가 들보에서 낮게 울었다.
길이 접힌다.
시우가 바로 말했다.
"게이트 아래쪽 대피선이 접힙니다. 실제 거리보다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시민들을 차단선 바깥으로 한 번 더 빼야 합니다."
마도윤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되돌아왔다.
"확인. 2차 대피선 뒤로 이동. 길이 짧아진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현장 대원들이 당황했지만 바로 움직였다. 그 직후 게이트 아래 보행자 육교가 기울어 보였다. 실제로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공간이 접히며 육교 그림자가 차단선 안쪽까지 끌려온 것이다.
대피선 끝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 발만 늦었어도 시민들이 게이트 아래로 빨려 들어갈 거리였다.
백은서가 작게 숨을 삼켰다.
"감응 정보 확인. 대피선 재조정 효과 있습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서명대 위에서 문장을 펼쳤다.
초대받지 않은 통로 접힘은 보호 구역에 효력을 갖지 못한다.
문장은 대장간 바닥에 박혔다. 동시에 화면 속 차단선의 그림자가 조금 안정됐다.
글레니르가 사슬을 늘렸다.
느슨하게 묶는다.
병실의 보존 케이스에서 은빛 매듭이 미세하게 떨렸다. 현장 화면 속 대피 유도 표식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대원들은 서로의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윤채아가 단말기에 기록했다.
"영혼의 대장간을 통한 원격 감응 조율. 글레니르와 그림자의 계약 보조 확인."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기록은 나중에 하고 저 뜨거운 입부터 보라.
게이트 균열 안에서 불빛이 내려왔다.
A급 헌터 중 한 명이 먼저 공격했다. 푸른 창날 같은 마력탄이 하늘로 솟았다. 다른 두 명의 공격도 이어졌다. 얼음 사슬과 압축 바람이 붉은 균열을 때렸다.
공격은 게이트 가장자리에서 녹았다.
열기가 아래로 쏟아지자 현장에 있던 헌터들의 장비가 비명을 질렀다.
뜨겁다.
손잡이가 탄다.
그만 밀어 넣어라.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 목소리들은 아스칼론이나 에제키엘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먼 통신 너머에서 긁히는 잡음 같았다. 그러나 분명 무기들의 목소리였다.
"공격 중지 요청하세요."
윤채아가 바로 물었다.
"근거는요."
"헌터들의 무기가 열 장막 안쪽에서 타고 있습니다. 마력탄이 닿기 전에 손잡이와 코어가 먼저 손상됩니다."
현장 통신에서 A급 헌터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야. 아직 장비 수치는 정상이다."
그 순간 그의 창대에서 검은 연기가 올랐다. 수치가 정상인 채로 손잡이 안쪽 문양이 타들어 갔다. 그는 급히 창을 내렸다.
마도윤이 명령했다.
"정면 공격 중지. 장비 손상 확인."
헌터가 이를 악물었다.
"관리국 병실에서 뭘 안다고 지시합니까."
시우는 그 말을 들었다. 부끄러움과 짜증이 동시에 올라왔다. 자신이 현장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몸은 침대에 있었고 산소 라인은 팔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무기들은 현장에 있었다.
그들은 뜨거움을 먼저 느끼고 있었다.
시우는 천천히 말했다.
"그 창이 오른손 그립을 싫어합니다."
통신이 잠깐 조용해졌다.
"뭐?"
"왼손으로 잡을 때 무게 중심이 맞는답니다. 오른손 그립 안쪽 보강 문양이 갈라져 있습니다. 방금 열 장막이 그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현장 화면 속 헌터가 창을 내려다봤다. 그는 욕을 삼키고 손을 바꿔 잡았다. 창날의 떨림이 조금 줄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창의 속문양을 한 번 더 비췄다. 갈라진 선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기는 그 틈을 오래 참아 온 모양이었다.
오른손만 고집하는 놈.
시우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게이트를 닫는 게 아니라 아래를 비워야 합니다. 저 안쪽에 더 큰 게 있습니다."
아스칼론의 검날이 숫돌대 위에서 낮게 울었다.
날개 냄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붉은 균열 안쪽을 확대했다. 처음에는 불길뿐이었다. 다음 순간 불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날개였다.
아직 형태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두 동을 덮을 만큼 넓은 그림자가 게이트 안쪽에서 천천히 접혔다. 그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줄지어 박혀 있었다.
아스칼론이 드물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은 아니다.
하지만 용 냄새를 흉내 내는 놈이다.
아이기스가 벽감에서 경고했다.
아래를 비워라.
시우가 바로 외쳤다.
"현장 전원 고도 낮추지 마세요. 게이트 아래 도로 완전 비우세요. 날개 달린 개체가 안쪽에 있습니다."
마도윤의 명령이 겹쳤다.
"전 대원 도로 이탈. 공중 대응팀은 사선 확보만. 정면 교전 금지."
현장 A급 헌터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박이 길지 않았다. 방금 자기 무기 손잡이가 탄 것을 본 뒤였다.
서울 하늘의 균열이 더 크게 벌어졌다.
뜨거운 바람이 화면 너머 병실까지 밀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우의 산소 수치가 흔들렸고 윤채아가 곧장 회선 출력을 낮췄다.
"여기까지입니다."
"아직 안쪽이..."
"강시우 씨. 조건을 기억하세요."
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 듣고 싶었다.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기스가 대장간 안에서 조용히 말했다.
뒤에 있어라.
시우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겠습니다. 대신 대장간 회선은 유지해 주세요. 제가 움직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듣겠습니다."
윤채아는 잠깐 그를 보았다.
"그 정도는 허가합니다. 단 수치가 떨어지면 즉시 차단합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얌전히 있으려니 속이 뒤집히겠지.
"네. 아주 많이요."
시우는 그렇게 대답하고 에제키엘의 반사면을 보았다.
게이트 안쪽의 날개 그림자가 다시 지나갔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붉은 비늘 사이에서 불꽃이 숨처럼 새어 나왔다.
그리고 하늘 전체에 괴성이 울렸다.
현장 헌터들의 무기들이 동시에 떨었다.
뜨겁다.
높다.
저건 내려온다.
아스칼론이 숫돌대에서 검날을 세웠다.
꼬맹이.
저놈 날개 밑을 봐라.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게이트 안의 불길 속에서 거대한 머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도심 위로 A급 비행 마수가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