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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19화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19화: 영혼의 대장간

시우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병실도 아니고 게이트도 아니었다. 발밑에는 오래 식은 쇳가루가 얇게 깔려 있었고 눈앞에는 키보다 큰 나무문이 있었다. 문틈에서는 붉은 불씨가 숨을 쉬듯 깜박였다.

땅.

땅.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문 안쪽에서 났다. 그런데 망치를 든 사람은 없었다. 검과 거울과 사슬과 계약서와 방패가 각자 낸 울림이 서로 부딪혀 하나의 박자를 만드는 소리였다.

아스칼론이 먼저 투덜거렸다.

꼬맹이. 네 머릿속 치고는 꽤 낡았군.

에제키엘이 곧장 정정했다.

낡은 것이 아니라 방치된 겁니다. 먼지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글레니르는 낮게 울었다.

매듭 걸 곳이 없다.

그림자의 계약은 어둠 속에 문장을 띄웠다.

초대받은 쉼터인지 확인한다.

아이기스의 목소리는 가장 낮았다.

뒤가 비어 있다.

시우는 잠깐 눈을 감았다. 몸은 분명 병실 침대에 있을 터였다. 감응 차단 수면에 들어갔고 산소 마스크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쇳가루 냄새와 문틈의 열기는 지나치게 선명했다.

"여기가 어딘지 저도 모릅니다."

그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래도 문이 열렸으면 물어보고 들어가야죠."

아스칼론이 코웃음을 쳤다.

예의 차리는 꿈이라니 피곤한 놈.

시우는 문을 밀었다.

낡은 대장간 안은 비어 있었다. 한쪽에는 꺼져 가는 화덕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금이 간 물통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빈 받침대가 여러 개 박혀 있었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다. 천장 들보에는 끊어진 사슬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바닥 한가운데에 작은 불씨가 있었다.

시우가 한 걸음 들어서자 불씨가 커졌다. 동시에 무기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기름대부터 마련해라.

반사면에 빛이 닿는 벽이 필요합니다.

매듭은 들보에 건다.

허락 없는 서명대는 무효다.

앞을 비우고 뒤를 세워라.

대장간이 흔들렸다. 빈 받침대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려다 벽에서 떨어졌다. 화덕의 불씨는 커졌다 작아졌고 금 간 물통에서는 검은 녹물이 흘러나왔다.

시우는 귀를 막지 않았다.

"한 번에 말하면 저 죽습니다."

아스칼론의 울림이 멈칫했다.

에제키엘도 반사면을 작게 줄였다.

아이기스가 짧게 말했다.

살아라.

"네. 그러려면 순서가 필요합니다."

그 말에 대장간이 아주 조금 조용해졌다.

시우는 가장 먼저 화덕 옆의 낮은 받침대를 보았다.

"아스칼론. 당신은 어디가 좋습니까."

검집이 불씨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실에서는 보존 받침대 위에 있을 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낡은 검집과 검날의 울림이 사람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아스칼론이 헛기침했다.

너무 습하면 안 된다. 싸구려 은가루 냄새도 싫다. 숫돌은 오른쪽. 기름은 왼쪽.

"참기름은요?"

그건 별도 선반이다.

시우가 웃자 화덕 오른쪽에 숫돌대가 생겼다. 왼쪽에는 작은 기름 선반이 올라왔다. 아스칼론의 검집이 그 위에 얹히자 화덕의 불씨가 한결 안정됐다.

에제키엘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제 자리는 어둡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직사광선처럼 천박한 빛도 곤란합니다. 반사면이 방 전체를 품격 있게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요구가 많네요."

정확하다고 해 주십시오.

시우는 벽을 둘러봤다. 화덕의 빛이 직접 닿지 않으면서도 대장간 전체가 비치는 자리. 문 오른쪽 벽에 좁은 홈이 열렸다. 그 안쪽으로 부드러운 은빛이 흘렀다.

에제키엘이 그 자리에 걸리자 어두웠던 천장과 바닥이 반사면에 비쳤다. 대장간은 조금 넓어 보였다.

글레니르는 말이 길지 않았다.

높이.

시우는 천장 들보를 올려다봤다.

"묶일 곳 말고 묶어 줄 곳이요?"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그렇다.

끊어진 자국이 있던 들보가 새 금속 고리로 바뀌었다. 글레니르의 사슬은 자신을 감지 않게 느슨히 걸렸다. 그 사슬 끝은 대장간 바닥의 빈 선들을 부드럽게 이어 주었다.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를 원했다.

다만 누구도 몰래 서명할 수 없는 자리여야 했다.

시우는 문과 화덕 사이에 낮은 탁자를 만들었다. 탁자 위에는 아무 이름도 적히지 않은 보존지가 놓였다.

"여기는 누가 앉는 자리입니까?"

그림자의 계약이 문장을 남겼다.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

"주인과 물건이 아니라요?"

동의 없는 주인은 무효다.

탁자 모서리에 검은 문장이 새겨졌다. 그 순간 대장간의 문턱이 단단해졌다.

남은 것은 아이기스였다.

아이기스는 아무 자리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방패의 울림은 바닥과 벽 사이를 맴돌았다.

"아이기스. 어디가 좋습니까."

앞은 싫다.

"그럼 벽?"

뒤가 있는 벽.

시우는 그 말을 곱씹었다. 방패를 전시하듯 앞에 걸어 두는 벽은 아니었다. 누군가 기대어 숨을 고를 수 있는 뒤쪽. 대장간 가장 안쪽에 낮은 벽감이 생겼다. 그 앞에는 사람이 앉을 만큼의 공간이 비었다.

아이기스가 그 벽감에 기대자 청동빛이 낮게 퍼졌다.

뒤에 설 자리.

"좋습니까?"

가장자리는 아직 더럽다.

"그 말 할 줄 알았습니다."

시우가 대답하는 순간 아이기스 가장자리에서 검은 때가 흘러내렸다. 현실의 케이스 안에 남아 있던 점액과 녹이 이곳까지 따라온 듯했다. 검은 때는 바닥을 타고 빈 받침대 하나로 스며들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건 오염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자리입니다.

빈 받침대 위에 검은 그을음이 생겼다. 모양은 뒤집힌 왕관과 닮아 있었다. 병실 회의실의 문서에서 솟아나던 인장과 같은 냄새였다.

아스칼론의 울림이 거칠어졌다.

또 그 냄새다. 씨앗 놈.

그을음은 빈 받침대에 글자를 쓰려 했다. 누구의 이름도 아닌 빈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받침대는 그 이름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떨렸다.

시우는 한 걸음 앞으로 갔다.

"여긴 빈칸이 아닙니다."

검은 그을음이 꿈틀거렸다.

글레니르가 즉시 매듭을 뻗었다. 하지만 빈 이름은 묶이기 전에 모양을 바꿨다.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기울였다.

반사면 속에서 그을음의 밑바닥이 드러났다. 뒤집힌 왕관 아래 세 갈래 흉터 같은 선이 있었다.

그림자의 계약이 문장을 세웠다.

초대받지 않은 주인은 자리를 가질 수 없다.

문장은 그을음을 눌렀지만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을음은 아이기스 가장자리에서 흘러나온 검은 때와 이어져 있었다.

아이기스가 낮게 말했다.

덜 닦인 곳으로 들어온다.

시우는 손을 내려다봤다. 손에는 어느새 작은 솔이 들려 있었다. 병실에서 백은서가 준비했던 멸균 솔과 닮았지만 더 낡고 가벼웠다.

"그럼 여기서도 닦아야겠네요."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꿈속에서도 청소냐.

"꿈이면 더 잘 닦이겠죠."

시우는 아이기스 벽감 앞에 앉았다. 솔을 가장자리 쪽으로 가져가자 아이기스가 짧게 막았다.

중앙이 아니다.

"압니다. 가장자리죠. 힘은요?"

약하게.

물은 쓰지 마라.

"무향 오일 한 방울."

대장간 화덕 옆 선반에서 작은 오일병이 굴러왔다. 시우는 한 방울만 떨어뜨렸다. 현실의 몸이 움직일 리 없는데 손끝이 떨렸다.

병실 쪽의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수면 파형이 올라갑니다."

백은서의 목소리였다.

"아이기스 케이스 쪽 반응도 있습니다. 오일 준비할까요?"

윤채아가 짧게 답했다.

"강시우 씨가 말한 선호 조건대로요. 한 방울 이상 금지."

대장간 안 아이기스의 가장자리에 오일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현실의 케이스 쪽에서도 같은 냄새가 아주 얇게 번졌다.

시우는 솔을 움직였다.

검은 때가 조금씩 떨어졌다. 그을음은 빈 받침대에서 움츠러들었다. 글레니르의 매듭이 그 틈을 묶었고 그림자의 계약이 새 조항을 박았다.

이곳의 자리는 허락받은 이름에게만 생긴다.

시우가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이곳의 자리는 무기가 허락해야 생깁니다."

대장간이 크게 울렸다.

땅.

이번에는 불안한 두드림이 아니었다. 첫 망치질처럼 단단했다.

검은 왕관 그을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벽 아래 아주 작은 검은 점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더는 받침대를 차지하지 못했다.

아이기스의 가장자리 한쪽이 청동빛을 되찾았다.

아직 남았다.

"나머지는 제 몸이 버틸 때 하죠."

살아라.

"네. 그 조건은 지킬 겁니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대장간이 처음과 달라져 있었다.

화덕은 안정적으로 타올랐다. 아스칼론은 숫돌대 위에서 불평을 줄였고 에제키엘은 벽에서 방 전체를 비췄다. 글레니르는 들보와 바닥선을 느슨하게 이어 주었고 그림자의 계약은 서명대 위에서 조용히 문장을 접었다.

아이기스는 가장 안쪽 벽감에 기대어 있었다. 그 앞에는 빈 의자가 하나 생겼다. 누군가 앞에 나서지 않고도 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였다.

아스칼론이 말했다.

이제 좀 쓸 만하군. 다만 기름 선반이 작다.

에제키엘이 받았다.

거울 벽의 광량도 추후 조정이 필요합니다.

글레니르가 짧게 울었다.

매듭은 안정됐다.

그림자의 계약이 적었다.

쉼터 조항 임시 승인.

아이기스는 한마디만 했다.

뒤가 생겼다.

시우는 그 말을 듣고 가슴 안쪽이 조금 놓였다. 이곳은 전투장이 아니었다. 보존고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소유 목록도 아니었다.

무기들이 쉬고 말하는 자리였다.

"그럼 이름을 붙여도 됩니까?"

아스칼론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미 정해진 것 같은데 뭘 묻느냐.

에제키엘이 품위 있게 말했다.

영혼의 대장간. 나쁘지 않습니다.

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대장간 문 위에 글자가 새겨졌다. 글자는 누구의 소유 표시도 아니었다. 안쪽에서 쉬는 무기들이 함께 낸 울림에 가까웠다.

영혼의 대장간.

시우는 그 글자를 보다가 문밖을 느꼈다. 아주 멀리 병실 장비음이 돌아오고 있었다. 감응 차단 수면이 끝나 가는 모양이었다.

윤채아의 목소리가 물속처럼 들렸다.

"강시우 씨. 들리면 손가락만 움직이세요."

시우는 대장간 안에서 손을 들었다. 현실의 손가락도 아주 조금 움직인 듯했다.

그때 대장간 천장에 걸린 작은 종이 울렸다.

땡.

맑은 소리였지만 불길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병실 바깥 복도가 비쳤다. 마도윤이 통신기를 잡고 뛰어오는 모습이 흐릿하게 지나갔다.

"서울 도심 상공에 게이트 개열 징후. 등급 추정 A급."

윤채아의 숨이 멎는 소리까지 들렸다.

아스칼론이 숫돌대 위에서 번쩍였다.

꼬맹이. 쉬는 시간이 짧군.

아이기스가 낮게 말했다.

앞에 서지 마라.

시우는 대장간 문턱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도 몸이 먼저 나갈 수는 없었다. 조건을 스스로 문서에 박아 넣었고 방패에게도 약속했다.

하지만 듣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장간의 종이 두 번째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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