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2화: 검을 압수하겠다고요?
"혹시 참기름 있어요?"
전시관 안이 조용해졌다.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여자는 시우를 보았다. 그 뒤의 무장 대원들도 시우를 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보스 마수의 머리와 시우 손의 녹슨 검을 번갈아 보던 생존자들까지 전부 같은 표정이었다.
위험한 사람을 발견한 표정.
시우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뒤늦게 내려다봤다.
"제가 먹으려는 건 아니고요."
"꼬맹이. 설명이 더 이상해졌다."
아스칼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검은 여전히 시우 손에 있었다. 차가운 금속인데도 이상하게 놓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대한아티팩트 관리국 현장 분석관 윤채아입니다. 부상자는 뒤로. 회수팀은 보스 사체와 균열 잔류 마력부터 봉쇄하세요."
"분석관님, 저 검은 즉시 격리해야 합니다."
대원 하나가 은색 격리함을 들고 다가왔다. 격리함 표면에는 마력 차단 문양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아스칼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 상자 냄새가 마음에 안 든다. 네가 나를 저기 넣으면 손잡이로 네 이마를 찍겠다."
시우는 저도 모르게 검을 뒤로 뺐다.
대원이 멈칫했다.
"위험합니다. 검을 내려놓으십시오."
"잠깐만요. 얘가 싫대요."
말하고 나서 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대원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윤채아의 눈빛은 오히려 흔들리지 않았다.
"얘라고 했죠."
"그냥 말이 헛나왔습니다."
"검이 싫다고 했습니까?"
시우는 대답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손안의 검이 작게 떨렸다. 누군가 이를 가는 느낌이었다.
"제가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요."
시우는 숨을 삼켰다.
"저 검이 말합니다."
대원 몇 명이 서로를 보았다. 누군가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윤채아는 웃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합니까?"
"지금은 저 상자 냄새가 싫답니다. 제가 넣으면 제 이마를 찍겠다고요."
"순화했군."
"그럼 욕까지 그대로 말해요?"
시우가 중얼거리자 윤채아의 손목 단말기가 짧게 울렸다.
[동기화 반응 재상승]
그녀의 표정이 달라졌다.
"강시우 씨. 이름 맞습니까?"
"네.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박물관 임시 근무자 명단에 있습니다. 치료가 먼저인 건 압니다. 다만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습니다."
윤채아가 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아스칼론이 바로 투덜댔다.
"안경 여자는 눈이 괜찮군. 그래도 세 걸음 안쪽은 허락 안 했다."
시우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세 걸음 안쪽은 싫답니다."
윤채아의 발이 딱 멈췄다.
그녀는 자기 발끝과 시우 사이의 거리를 보았다. 정말 세 걸음이었다.
시우는 이마를 짚으려다 손바닥의 상처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검은 가시를 뽑을 때 생긴 자국이 선명했다.
윤채아의 시선이 그 상처에 닿았다.
"검을 깨운 건 본인입니까?"
"깨웠다기보다는... 밑동에 박힌 검은 가시를 뽑았습니다. 그게 힘을 막고 있다길래요."
"누가 그렇게 말했죠?"
"아스칼론이요."
전시관 안쪽의 마력등이 한 번 깜빡였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조작했다. 측정값은 모두 오류였다.
"아스칼론. 고대 제국 용살 설화에 나오는 검명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박물관 기록상 이 유물은 등급 미상의 의장검입니다."
"의장검이라고 또 부르면 저 여자의 안경을 반으로 가르겠다."
"의장검은 아니라는데요."
시우가 지친 목소리로 옮기자 윤채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현장에서 검증하겠습니다."
"지금요?"
"지금이 아니면 저 검은 격리함으로 들어갑니다."
"절대 싫다. 저 상자는 눅눅하다. 게다가 안쪽에 싸구려 은가루 냄새가 난다."
시우는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검증하는데요?"
윤채아는 대원에게 손짓했다. 대원 하나가 검은 천을 가져왔다. 그녀는 아스칼론의 검신 일부를 천으로 가렸다.
"고대 문자 반응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지금 이쪽에서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검이 뭔가 말하면 전하세요."
"가능한 한 정확하게."
아스칼론은 잠시 조용했다.
그러다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을 덮은 천이 거칠다. 저건 유물용이 아니라 바닥 닦는 천이다. 그리고 네 피가 아직 손잡이에 묻었다. 피비린내가 싫다고 세 번 말했다."
시우는 눈을 감았다.
"천이 거칠답니다. 유물용이 아니라 바닥 닦는 천 같고 제 피가 손잡이에 묻어서 싫답니다."
대원이 움찔했다.
"저 천은 임시 흡착포인데요. 원래 바닥 오염물 닦을 때..."
윤채아가 손을 들어 막았다.
"계속."
"그리고 세 번 말했다고 합니다. 피비린내 싫다고요."
아스칼론이 덧붙였다.
"네 번째다."
"이제 네 번째래요."
오류음이 멈췄다. 투사창에 선명한 선 하나가 나타났다.
[감응 대상: 강시우]
[아티팩트 반응: 측정 범위 초과]
그때 아스칼론의 검날이 탁하게 흔들렸다. 푸른빛이 올라오다 꺼졌다. 바닥에 남은 결계 조각이 거칠게 울렸다.
시우의 손목이 아래로 꺾였다.
"무거워졌어?"
"독 찌꺼기가 남았다. 저 못생긴 놈의 날개 밑에 있던 가시와 같은 냄새다. 빨리 닦아라. 속이 메스껍다."
"검도 속이 메스꺼워?"
"기분을 표현한 거다. 말꼬리 잡지 마라."
윤채아가 바로 지시했다.
"격리 중지. 임시 안정화부터 합니다. 보존팀, 중성 오일과 멸균 거즈."
"분석관님, 규정상 측정 불가 유물은..."
"규정상 폭주 가능성이 있는 유물은 현장 안정화가 우선입니다."
윤채아는 시우를 보았다.
"강시우 씨. 할 수 있습니까?"
"뭘요?"
"검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닦는 것."
시우는 어깨 통증 때문에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까지 마수와 싸운 몸이었다. 다리는 떨리고 손바닥은 찢어졌다.
그런데 아스칼론의 검날 밑동에는 아직 검은 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그걸 보자 이상하게 화가 났다.
누군가 이 검을 오래 묶어 두었다. 의장검이라는 이름표 아래에 눕혀 놓고 녹이 슬게 만들었다. 시우가 듣기 전까지 이 투덜거림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합니다."
"의료팀이 먼저..."
"손만 감아주세요. 놓지는 않을 겁니다."
아스칼론이 작게 웃었다.
"제법이다. 꼬맹이."
의료 대원이 시우의 손바닥을 대충 감아 주었다. 윤채아가 직접 중성 오일 병과 거즈를 건넸다.
시우는 전시장 한쪽 낮은 받침대에 앉았다. 무장 대원들은 거리를 둔 채 둘러섰다.
검을 무릎 위에 올리자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시우는 거즈에 오일을 묻혀 손잡이부터 닦았다. 말라붙은 피가 천천히 풀렸다. 검은 금속 사이로 푸른 선이 미세하게 살아났다.
"왼쪽. 아니 네 기준 왼쪽 말고 내 기준 왼쪽."
"검 기준 왼쪽이 어딘데요."
"손잡이를 잡은 놈이 그 정도도 모르면 곤란하다."
"그럼 직접 움직이시든가요."
윤채아는 그 대화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시우가 혼잣말을 하는 모양새였지만 단말기의 반응은 그때마다 규칙적으로 뛰었다.
거즈에 묻어난 검은 가루가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대원 하나가 총구를 들었다.
"쏘지 마세요."
시우가 먼저 말했다.
"이건 아직 검 안쪽에 붙어 있던 독 같은 겁니다."
아스칼론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자연히 생기는 찌꺼기는 아니다. 저 마수 날개 밑의 가시와 뿌리가 비슷하다."
시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누가 일부러 박았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윤채아가 바로 물었다.
"검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네. 자연히 생긴 건 아니래요."
윤채아는 보스 마수의 잘린 날개 쪽을 보았다. 그 아래에도 비슷한 검은 가시가 박혀 있었다. 관리국 대원이 표본통에 담는 중이었다.
"연결 가능성은 보고하겠습니다."
"그럼 이 검을 또 상자에 넣을 겁니까?"
시우의 말이 조금 날카롭게 나갔다.
윤채아가 그를 보았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싫다잖아요."
"강시우 씨."
"저도 압니다. 규정이 있고 위험한 것도요. 그런데 이 검이 방금 사람들 살렸습니다. 저도 살렸고요."
출구 쪽에서 담요를 두른 아이의 어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들렸다.
"그 학생이 아니었으면 저희 애는..."
말은 끝나지 못했다. 아이가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었다.
"말이 들리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면 적어도 물어는 보고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 회색 방호복 위에 관리국 표식을 단 지휘관이 다가왔다.
"분석관 윤채아. 현장 지휘권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측정 불가 아티팩트는 격리함에 넣습니다."
윤채아의 표정이 굳었다.
"안정화 중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민간인 손에 둘 수 없습니다."
지휘관이 손짓하자 대원 둘이 다가왔다.
시우는 검을 끌어안듯 잡았다.
"잠깐만요."
"강시우 씨. 협조하지 않으면 현장 방해로 처리됩니다."
아스칼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꼬맹이. 놓지 마라."
"놓을 생각 없어요."
"좋다."
격리함이 열렸다.
그 순간 아스칼론의 무게가 폭발했다.
받침대 아래 대리석이 쩍 갈라졌다. 대원 둘이 검 손잡이를 잡으려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격리함 안쪽 차단 문양이 파랗게 타오르다 꺼졌다.
지휘관이 굳었다.
시우는 이를 악물고 검을 붙들었다. 이상하게 그에게만 무게가 조금 덜했다. 팔은 아팠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아스칼론이 느긋하게 말했다.
"산을 상자에 넣는 법을 배운 적 있나?"
시우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산을 상자에 넣어 본 적 있냐는데요."
윤채아가 앞으로 나섰다.
"지휘관님. 현장 압수는 실패했습니다. 대상은 강시우 씨와 접촉할 때만 안정화됩니다. 강제 격리 시 유물 폭주와 현장 2차 피해 가능성이 큽니다."
"그 판단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제 이름으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윤채아는 시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강시우 씨.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관리국 임시 보호 대상입니다. 병원으로 이동한 뒤 비공식 측정을 받습니다. 검도 함께 이동합니다. 단, 제 감독하에서만."
시우는 아스칼론을 내려다봤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어르신은 마음에 드는군. 안경 여자는 의장검이라고 안 했으니 한 번은 봐주마."
"괜찮대요."
윤채아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이동 준비하세요."
시우는 그제야 몸에서 힘이 빠졌다. 어깨의 상처가 미친 듯이 아팠다.
그는 의료 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검날은 처음보다 조금 더 맑아져 있었다.
나가려는 순간 시우는 걸음을 멈췄다.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스칼론의 괄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닫힌 창고 철문 너머였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
"저기요."
시우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거기 들리는 사람. 혹시 칭찬 한 마디만 해 주고 가면 안 될까요?"
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윤채아가 바로 눈치챘다.
"또 들립니까?"
아스칼론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 박물관,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곳이었군."
시우는 닫힌 창고 문을 보았다.
피곤하고 아프고 배도 고팠지만 그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었다.
"분석관님."
"네."
"병원 가기 전에 창고 한 번만 보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