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15화: 문 열린 병동 아래
경보음은 처음엔 작았다.
시우는 이동 보조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눈을 떴다. 공방 밖 먼 통로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귀 안쪽에서는 알람보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에 가까웠다.
윤채아가 중앙 단말기로 다가갔다.
"경보 등급 확인."
화면 위에 노란 문장이 떴다.
[지하 환승 통로 마력 이상]
[게이트 형성 중]
의료 대원이 시우의 의자 손잡이를 붙잡았다.
"강시우 씨는 복귀입니다. 경보는 방어팀이 처리합니다."
시우도 그러고 싶었다. 어깨는 뜨겁게 욱신거렸고 손끝 감각은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침대에 눕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노란 문장이 붉게 뒤집혔다.
[B급 게이트 확정]
[선발 순찰조 내부 고립]
마도윤이 통로에서 뛰어 들어왔다. 방어복 한쪽 팔에 지하 통로 지도가 떠 있었다.
"병원 지하 환승 통로와 연결됐습니다. 민간 대피는 끝났지만 순찰조 셋이 안쪽에 남았습니다. 통신이 접혔다가 끊깁니다."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낮게 웃었다.
"이제 종이 장난은 끝났군."
에제키엘의 반사면은 차갑게 빛났다.
"문서 뒤에 숨던 자가 이번에는 진짜 문을 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품격 없는 순서입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보존 케이스 안에서 사각거렸다.
문은 곧 열린다.
그 문장이 다시 떠오르자 시우는 목 뒤가 서늘해졌다.
"저도 가야 합니다."
의료 대원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감응 후유증과 어깨 손상이 겹쳤습니다. 지금은 현장 영상도 오래 보면 안 되는 상태입니다."
윤채아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강시우 씨가 게이트 입구에 접근하면 위험합니다."
"저 문장이 저를 부른 거라면 제가 안 가도 위험합니다."
시우는 팔걸이를 붙잡았다.
"제가 싸우겠다는 게 아닙니다.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듣겠습니다. 순찰조가 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그걸 알아야 합니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문을 보고 닫는다.
그림자의 계약이 덧붙였다.
묻고 간다.
윤채아는 몇 초 동안 시우를 보았다. 그 시선에는 계산과 걱정이 함께 있었다.
"조건을 붙입니다. 직접 전투 금지. 이동 보조 의자 이탈 금지. 의료 결계 유지. 현장 판단은 마도윤 팀장과 제가 내립니다. 강시우 씨는 감응 정보만 전달합니다."
"네."
아스칼론이 불만스럽게 울었다.
"꼬맹이에게 칼 한 번쯤은 쥐여도 된다."
시우가 작게 말했다.
"오늘은 듣는 역할만 하겠습니다."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정리하듯 빛을 낮췄다.
"드물게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지하 환승 통로는 병원 아래에서 폐쇄된 역사 구역으로 이어졌다. 게이트는 매표소가 있던 자리에서 열려 있었다. 푸른빛이 벽면 타일 위로 번졌고 천장 조명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흔들렸다.
입구 밖에는 B급 헌터 둘이 피를 흘리며 버티고 있었다. 한 명은 부러진 창대를 쥐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방패 손잡이만 붙잡고 있었다. 방패의 나머지는 안쪽에 떨어뜨린 듯했다.
"길이 접힙니다."
방패를 잃은 헌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직선 통로였는데 돌아서면 같은 광고판이 나옵니다. 마수가 날개를 긁으면 방향 감각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마도윤이 방어팀을 배치했다.
"구조선 유지. 내부 진입은 최소 인원. 시우 씨는 입구선 밖에서 멈춥니다."
시우의 이동 보조 의자가 보호 결계 안에서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냉기가 얼굴을 스쳤다. 안쪽에서는 금속을 접었다 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스칼론이 말했다.
"날개가 아니다. 칼날을 접는 소리를 흉내 낸다. 겁을 주려는 소리라기보다 길을 속이는 소리다."
시우가 바로 전했다.
"날개 소리가 아니라 칼날 접히는 소리랍니다. 그 소리로 방향을 속이는 것 같습니다."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세웠다. 정면에는 막힌 벽만 보였지만 거울 안에서는 통로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오른쪽 길은 지나치게 반듯했고 왼쪽 길은 흔들리는 물결처럼 비틀려 있었다.
"품격 없는 위장입니다. 왼쪽이 실제 통로입니다."
윤채아가 명령했다.
"왼쪽 통로에 표식탄."
표식탄이 날아가자 아무것도 없던 벽에 붉은 선이 생겼다. 벽은 젖은 천처럼 찢어졌다. 그 안에서 마수 세 마리가 기어 나왔다.
놈들의 등에는 접힌 막이 달려 있었다. 막 끝마다 낡은 칼날 같은 뼈가 붙어 있었다. 마수들은 달려들지 않고 바닥을 긁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찢어진 통로가 다시 접히기 시작했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접힌 길은 묶으면 펴진다.
"글레니르가 길이 접히는 부분을 묶을 수 있답니다."
백은서가 글레니르의 보존 케이스를 결계선에 연결했다. 바닥에 얇은 쇠사슬 모양 빛이 뻗었다. 빛은 통로를 따라 달리다가 허공 한가운데에서 뚝 멈췄다.
거기에 길이 접히는 틈이 있었다.
글레니르의 매듭이 조여졌다. 통로가 삐걱거리며 펴졌다.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 생존자 있습니다!"
마도윤이 방어팀 둘과 함께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우는 그 뒷모습을 보며 손을 꽉 쥐었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과 당장 쓰러지고 싶은 몸이 서로를 잡아당겼다.
그림자의 계약이 사각거렸다.
초대장은 통로 안쪽에 붙어 있다.
"초대장 같은 문장이 안쪽에 있답니다."
윤채아가 물었다.
"내용 확인 가능합니까?"
시우는 눈을 감았다. 게이트 안쪽에서 젖은 종이가 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수의 울음 아래에 얇게 깔려 있었다.
듣는 아이가 문을 열면 보호자는 필요 없다.
시우는 숨을 삼키고 그대로 전했다.
윤채아의 눈빛이 굳었다.
"같은 계열 문장입니다. 유인 목적 가능성 기록."
안쪽에서 폭음이 났다. 구조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통신 너머 마도윤의 목소리가 끊겨 들렸다.
"지휘 개체 확인. 선발조 한 명 중상. 후퇴로 다시 막힘."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거칠게 웃었다.
"대장 놈이 뒤에서 길만 접고 있군."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돌렸다. 거울 안쪽에 마수 하나가 비쳤다. 다른 개체보다 작았지만 머리 위 뼈막이 왕관처럼 접혀 있었다. 그것은 앞발로 싸우지 않았다. 대신 막을 긁어 통로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저 마수가 길을 접고 있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공격하는 게 아니라 도망칠 길을 지우고 있습니다."
통신 너머에서 마도윤이 답했다.
"위치만 잡아 주십시오."
시우는 마수의 소리에 집중했다. 칼날 접히는 소리 사이로 아주 작은 떨림이 섞여 있었다. 지휘 개체는 오른쪽에서 나는 같은 금속음을 싫어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오른쪽입니다. 오른쪽에서 같은 소리를 돌려주면 물러날 겁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말했다.
"칼은 뽑지 않는다. 소리만 빌려라."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아스칼론의 울림을 받았다. 실제 칼날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을 지난 울림은 오른쪽 통로에서 수십 자루의 검이 동시에 뽑히는 소리로 번졌다.
지휘 개체가 비명을 질렀다.
접힌 통로가 풀렸다. 마도윤과 선발 헌터들이 그 틈으로 빠져나왔다. 마지막 헌터는 피투성이였고 부서진 방패 손잡이만 쥐고 있었다.
그 뒤로 마수 무리가 몰려왔다.
그림자의 계약이 보존지 위에 검은 문장을 띄웠다.
초대받지 않은 추격은 무효다.
그림자 조항이 게이트 바닥으로 번졌다. 마수들이 입구 경계선을 넘으려는 순간 발목이 검은 획에 걸렸다.
글레니르의 매듭이 조여졌다.
마도윤이 외쳤다.
"지금 닫습니다!"
방어팀 결계가 내려왔고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가짜 통로를 뒤집었다. 마수들은 자기들이 접어 놓은 길 안으로 밀려났다. 마지막으로 아스칼론의 울림이 통로 끝을 긁었다.
게이트 입구가 잠시 안정됐다.
의료 대원이 시우에게 달려왔다.
"산소 수치 떨어집니다. 더는 안 됩니다."
시우도 알고 있었다. 눈앞의 붉은 경고가 흐릿하게 번졌고 팔걸이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안쪽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마수의 비명도 게이트의 울림도 아니었다. 쇠가 돌바닥에 끌리는 작고 낡은 소리였다.
긁어라.
시우는 고개를 들었다.
윤채아가 바로 알아차렸다.
"또 들립니까?"
"네."
긁어라.
먼지를 긁어라.
나는 아직 막을 수 있다.
시우는 게이트 안쪽을 보았다. 무너진 매표소 구석에 둥근 물체가 반쯤 묻혀 있었다. 녹슨 방패 같았다. 표면은 갈라졌고 가장자리에는 오래된 흙과 마수의 점액이 엉겨 붙어 있었다.
아스칼론이 낮게 말했다.
"방패다."
에제키엘은 반사면을 좁혔다.
"자의식 반응이 있습니다. 먼지도 상당합니다. 저 상태로 말을 한다면 인내심 하나는 인정해야겠군요."
글레니르가 울었다.
막는 물건.
그림자의 계약이 조심스럽게 접혔다.
이름은 아직 묻지 않았다.
시우는 손을 뻗지 않았다. 지금 들어가면 구조가 아니라 욕심이 된다. 방패가 아무리 불러도 먼저 확인해야 했다.
"안쪽 구석에 방패가 있습니다."
그는 힘겹게 말했다.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윤채아는 곧바로 기록했다.
"미확인 자의식 방패 반응. 위치 표식. 추가 구조 절차 준비."
녹슨 방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긁어라.
내 앞의 흙만 긁어라.
시우는 이동 보조 의자 팔걸이를 붙잡았다.
"기다려 주세요. 이번에는 묻고 구하겠습니다."
방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약한 울림이 돌아왔다. 오래 버틴 물건이 처음으로 대답을 들은 듯한 울림이었다.
게이트 안쪽에서 다시 마수의 발소리가 번졌다.
마도윤이 방어팀을 정비했다.
"2차 진입 준비. 구조 대상은 유물로 추정."
윤채아가 시우의 이동 보조 의자를 뒤로 물렸다.
"강시우 씨는 의료 처치 먼저입니다. 다음 진입은 절차를 세우고 갑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방패의 목소리는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긁어라.
먼지를 긁어라.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낮게 웃었다.
"방패 녀석이 까다로울 것 같군."
에제키엘이 답했다.
"먼지를 먼저 요구하는 점은 어느 정도 품격이 있습니다."
시우는 피곤한 웃음을 흘렸다.
문은 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끌려 들어가지 않았다.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게 먼저 이름을 물을 차례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