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14화: 관리자를 사겠다는 자들
시우는 이번에는 정말 침대로 돌아가려 했다.
의료 대원이 이동 보조 의자의 방향을 돌렸고 윤채아는 타다 남은 감정표 조각을 차단 케이스에 넣었다. 공방 조명은 낮아졌고 방어팀의 발소리도 통로 바깥으로 멀어졌다.
그때 조각이 케이스 안에서 다시 검게 달아올랐다.
값을 매길 수 없으면 관리자부터 산다.
문장이 한 번 더 떠오르더니 공방 중앙 단말기가 하얗게 켜졌다. 이번에는 붉은 긴급 표시가 아니었다. 너무 깨끗해서 더 불길한 흰색이었다.
[감응자 임시 보호 이송 요청]
[협약 보호기관: 태양 길드]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가격표 다음에는 목줄인가."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차갑게 빛났다.
"단어를 바꾸어도 천박함은 가려지지 않습니다."
의료 대원이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강시우 씨. 지금은 정말로 복귀하셔야 합니다."
시우도 알고 있었다. 어깨는 욱신거렸고 손끝은 식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위에 자기 이름이 뜨는 순간 몸이 먼저 굳었다.
[대상: 강시우]
[상태: 고위험 감응 후유증]
[판단 능력 일시 제한 가능]
가능.
그 한 단어가 이상하게 차가웠다.
윤채아가 단말기에 손을 올렸다.
"발신자 확인."
화면에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검은 정장에 태양 길드 배지를 단 삼십 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말투는 한도겸보다 더 부드러웠지만 눈은 더 건조했다.
"태양 길드 법무지원실 오세린입니다. 관리국 협력 병원 지하 공방에 고위험 감응자가 계속 체류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윤채아가 대답했다.
"현장 책임자 윤채아입니다. 해당 감응자는 관리국 의료 관찰하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청드립니다. 태양 길드는 재난 대응 협약상 보호기관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시우 씨의 감응 후유증과 주변 아티팩트 위험도를 고려해 임시 보호 이송을 진행하겠습니다."
마도윤이 통로 쪽에서 돌아왔다.
"방금 퇴거시킨 인력과 같은 팀입니까."
오세린은 미소를 유지했다.
"감정팀과 법무팀은 별개입니다. 저희는 사람을 보호하러 왔습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케이스 안에서 사각거렸다.
묻지 않은 보호는 구속이다.
시우는 그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림자의 계약이 묻지 않은 보호는 구속이라고 합니다."
오세린의 미소가 아주 조금 멈췄다.
"유물 반응을 법무 판단에 넣는 것은 위험합니다."
"방금 전에는 유물 반응을 위험물 감정 근거로 쓰셨습니다."
윤채아의 목소리는 낮았다.
"보호 이송 요청서 원문을 비접촉으로 열람하겠습니다. 대상자 본인 의사 확인 절차도 동시에 진행합니다."
"대상자는 판단 능력 제한 가능 상태입니다."
시우가 팔걸이를 붙잡았다.
"가능이지 확정은 아니죠."
공방이 조용해졌다.
오세린의 시선이 화면 너머로 시우에게 향했다.
"강시우 씨. 지금 곁에 있는 유물들이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안전한 보호시설에서 치료받는 것이 좋습니다."
"제 이름이 적힌 문서면 저한테 먼저 물어보셔야 합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즐거운 듯 접혔다.
서명 전에 묻는다.
윤채아가 백은서를 보았다.
"빈 보존지. 차단 유리. 에제키엘 반사 각도 확보."
백은서가 급히 움직였다.
보호 이송 요청서가 보존지 위에 펼쳐졌다. 문서는 감정표보다 얌전했다. 치료, 안정, 후유증, 보호시설 같은 말들이 줄지어 있었다.
처음 보이는 문장만 보면 누구도 화낼 수 없는 문서였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에제키엘이 반사면을 세웠다.
"겉면이 너무 깨끗합니다. 깨끗한 척하는 문서는 대개 안쪽에 먼지를 숨깁니다."
반사면에 문서의 뒷면이 비쳤다. 희미한 회색 문장이 떠올랐다.
보호 이송 중 감응 대상과 위험 아티팩트의 비상 분리 가능.
대상자 안정화를 위해 기존 운용 권한 일시 정지 가능.
보호기관은 비상시 임시 후견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시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유물들을 빼앗는 문서가 아니었다.
자기를 먼저 빼앗고 그 다음에 유물들을 떼어 놓는 문서였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문을 닫는 손을 바꾼다.
아스칼론이 웃었다.
"관리자를 산다더니 진짜였군. 꼬맹이를 옮기면 칼집도 따라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세린이 말했다.
"비상 분리는 감응 폭주를 막기 위한 표준 조치입니다."
윤채아가 즉시 물었다.
"표준 조항 번호."
오세린은 잠깐 침묵했다.
그 순간 그림자의 계약이 보존지 끝을 검게 물들였다. 숨은 조항 아래에 작은 서명란이 나타났다.
[보호자 확인]
그 칸은 비어 있었다.
그런데 빈칸 안쪽에서 검은 선 하나가 자라났다. 선은 시우의 이름 쪽으로 기어갔다.
글레니르의 매듭이 바닥에서 솟아올라 그 선을 묶었다.
묻지 않았다.
시우는 숨을 삼켰다. 자기 이름으로 향하는 검은 획은 더 이상 처음 보는 공포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저한테도 물어야 합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치료도 보호도 제 이름으로 하는 거면 저한테 물어야 합니다."
윤채아가 단말기에 명령을 넣었다.
"대상자 본인 의사 확인 절차 개시. 현장 책임자 입회. 의료 관찰 입회. 자의식 아티팩트 반응 참고 기록."
오세린의 얼굴이 굳었다.
"그 절차는 보호 이송 요청을 지연시키기 위한 행위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윤채아가 말했다.
"위법 가능성이 있는 보호 이송을 지연시키는 행위입니다."
마도윤이 통로 쪽을 확인했다.
"법무팀 두 명과 한도겸이 다시 접근 중입니다."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기분 나쁜 웃음을 냈다.
"좋다. 얼굴 보고 물어보자."
문 앞 방어 결계가 한 번 울렸다.
한도겸과 오세린은 거의 동시에 공방 앞에 도착했다. 오세린은 원격 통신을 끊고 직접 들어왔다. 한도겸은 전보다 미소가 얇아져 있었다.
"강시우 씨."
오세린이 먼저 말했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협조하십시오. 고위험 유물과 계속 접촉하면 당신의 특성 등록과 향후 활동 기록에도 좋지 않습니다."
시우는 보존 케이스들을 보았다.
접촉.
그들은 말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시우가 실제로 하는 일은 손에 쥐는 것이 아니었다. 묻고 듣고 옮기는 일이었다.
"아스칼론."
시우가 물었다.
"저를 저분들한테 맡겨도 됩니까?"
아스칼론이 즉시 대답했다.
"보호를 핑계로 검집부터 빼앗으려는 놈에게 주인을 맡길 수는 없지."
시우는 그대로 옮겼다.
"아스칼론은 보호를 핑계로 유물과 저를 분리하려는 상대에게 저를 맡길 수 없다고 합니다."
오세린이 숨을 내쉬었다.
"유물 의견은 참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 제 의견은요?"
시우가 물었다.
"저도 참고 대상입니까?"
오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그녀의 손에 들린 위임장을 비췄다. 금빛이 문서 위를 쓸고 지나가자 직인 아래 빈칸이 드러났다.
윤채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관리국 내부 승인자 이름이 비어 있습니다."
오세린이 위임장을 접으려 했다.
에제키엘이 차갑게 말했다.
"접는다고 품격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반사면에는 빈칸을 채우려는 검은 인장이 떠올랐다. 뒤집힌 왕관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완전히 고정되지 않았다. 물 위에 비친 그림자처럼 흔들렸다.
시우는 말했다.
"빈 승인자 칸에 검은 인장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뒤집힌 왕관처럼 보이지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윤채아가 바로 기록했다.
"미확정 검은 인장. 승인자 미기재. 위임장 보류."
한도겸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현장 판단이 지나치군요."
마도윤이 한 걸음 앞으로 섰다.
"지나친 건 승인자 이름도 없이 환자를 이송하려는 쪽입니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문이 아니다.
끌고 가는 줄이다.
공방 바닥의 봉인선이 통로까지 뻗었다. 태양 길드 법무팀이 들고 온 출입 허가선과 이송 동선이 하나씩 매듭에 걸렸다. 빛으로 그려진 길이 끊기자 자동 이동 침상이 멈췄다.
오세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건 장비 방해입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보존지 위에서 문장을 뒤집었다.
본인 동의 없는 보호 이송은 보호가 아니다.
숨긴 후견 권한은 구속이다.
구속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문서의 회색 조항들이 검게 말려 올라갔다. 반듯하던 글자들이 하나씩 뒤집히며 보존지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임시 후견 권한 대행]
[운용 권한 일시 정지]
[감응 대상 비상 분리]
세 문장이 공방 앞 공개 기록 채널에 그대로 떠올랐다.
백은서가 숨을 들이켰다.
"내부 감사 채널에도 보입니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잡았다.
"기록 봉인. 현장 책임자 윤채아. 승인자 미기재 보호 이송 요청 및 비표준 후견 조항 삽입 확인."
한도겸이 낮게 말했다.
"그 기록은 길드 협약 분쟁으로 번질 겁니다."
"이미 번졌습니다."
윤채아가 답했다.
"귀 길드가 시작했고요."
아스칼론의 울림이 검집 안에서 퍼졌다. 칼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도겸이 들고 있던 출입 허가서의 태양 문양이 반으로 갈라진 듯 흔들렸다.
"주인에게 묻지 않는 보호자는 강도다."
시우가 그 말을 옮기자 통로에 있던 관리국 직원들이 서로를 보았다.
오세린은 급히 위임장을 회수하려 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먼저 빛났다. 위임장 아래에 숨은 작은 문장이 공중에 떠올랐다.
듣는 아이가 문을 열면 보호자는 필요 없다.
공방 안의 온도가 내려간 것 같았다.
시우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며 아주 멀리서 손짓하는 느낌이었다.
그림자의 계약이 딱딱하게 접혔다.
이 문장은 보호가 아니다.
초대장이다.
윤채아가 바로 물었다.
"강시우 씨. 저 문장이 무엇처럼 들립니까?"
시우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닙니다."
"기록합니다."
오세린은 표정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공방 앞 공개 기록 채널에는 위임장 빈칸, 숨은 후견 조항, 검은 인장 흔적이 차례로 봉인되고 있었다.
마도윤이 방어팀에 지시했다.
"태양 길드 인력 전원 퇴거. 현 시각부터 병원 지하 구역 출입 정지."
한도겸이 시우를 보았다.
"당신은 결국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시우는 피곤했다. 정말 피곤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대답해야 했다.
"보호받는 건 싫지 않습니다."
그는 보존 케이스들을 보았다.
"다만 저한테 묻지 않는 보호는 싫습니다."
아스칼론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야 말귀가 더 좋아졌군."
에제키엘이 덧붙였다.
"처음부터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 문서들의 품격이 지나치게 낮았을 뿐입니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문은 물으면 열린다.
그림자의 계약이 마지막 조항을 적었다.
본인 의사 확인 완료.
보호 이송 거부.
공방 권한 유지.
문서가 검게 타들었다. 타고 남은 조각은 이번에도 하나였다. 윤채아가 차단 케이스를 준비했지만 조각은 스스로 보존지 위에 붙었다.
거기에는 짧은 문장이 남았다.
문은 곧 열린다.
이번에는 누구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한도겸과 오세린은 퇴거 명령에 밀려 통로 바깥으로 나갔다. 한도겸의 얼굴은 망신으로 굳어 있었고 오세린은 위임장을 접은 손을 펴지 못했다.
문이 닫히자 의료 대원이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시우 씨. 제발 침상으로 가 주세요."
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진짜 갈게요."
아스칼론이 말했다.
"처방전부터 읽고."
"그건 에제키엘 담당입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반짝였다.
"기꺼이 검토하겠습니다."
윤채아는 보존지 위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조용히 굳어 있었다.
"문이 열린다는 말은 게이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양 길드가 실패했으니 다음은 현장 사건으로 몰아넣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마도윤이 말했다.
"방어팀 대기하겠습니다."
시우는 이동 보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긴장이 풀리자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번에는 누가 자신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팔아넘기려 해도 먼저 물어보게 만들었다.
시우는 눈을 감기 전 보존 케이스 쪽으로 말했다.
"다음에 문이 열리면 그때도 먼저 물어볼게요. 누가 열려고 하는 문인지."
그림자의 계약이 사각거렸다.
질문은 좋은 열쇠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문을 지킨다.
공방 밖 먼 곳에서 경보음이 아주 작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직 정식 출동 경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우의 귀에는 그것이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