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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12화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12화: 그림자의 계약

보관고 문 안쪽에서 양피지가 사각거렸다.

시우의 이름은 아직 끝까지 쓰이지 않았다. 글레니르가 공방 바닥에 그린 봉인선이 검은 먹물을 문턱에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먹물은 멈춘 것이 아니었다. 틈만 생기면 다시 획을 이어 갈 것처럼 문틈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윤채아가 낮게 지시했다.

"보관고 개방 금지. 방어 결계 유지. 중앙 단말기는 물리 차단하세요."

백은서가 차단 레버를 내렸다. 단말기 화면이 꺼졌지만 검은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이 꺼진 유리 위에 아주 얇은 선이 남아 있었다.

강시우.

시우는 자기 이름이 남의 손에 잡힌 듯한 느낌에 손끝을 움츠렸다.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으르렁거렸다.

"문 열어라. 종이쪼가리면 베면 된다."

에제키엘이 즉시 반박했다.

"서류는 베기 전에 읽어야 합니다. 특히 계약서는 문장 사이에 함정을 숨기는 천박한 습관이 있습니다."

"거울 놈아. 지금도 이름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우는 둘의 말 사이에서 숨을 골랐다. 어깨는 여전히 아팠고 이동 보조 의자 팔걸이는 땀으로 미끄러웠다. 그래도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이름을 서명으로 묶는다.

문이 아니다.

계약이다.

"저건 문을 여는 물건이 아닙니다."

시우가 말했다.

"이름을 서명처럼 붙잡는 계약서예요. 부수기 전에 왜 제 이름을 쓰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윤채아의 시선이 보관고와 시우 사이를 오갔다.

"강시우 씨. 직접 접촉은 안 됩니다."

"접촉 안 하겠습니다. 문도 완전히 열 필요 없습니다. 에제키엘이 먼저 비추고 글레니르가 봉인선을 잡아 주면 문틈만 넓혀도 됩니다."

백은서가 도구대에서 접이식 독서대를 꺼냈다.

"비접촉 보존 독서대가 있습니다. 폐기 예정 서류 유물 판별용입니다. 방염 결계와 압착 유리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스칼론이 낮게 웃었다.

"종이를 압착한다니 말만 들으면 마음에 든다."

에제키엘은 불쾌하다는 듯 반사면을 흐렸다.

"품격 있게 펼치는 장비입니다. 야만적인 상상은 자제하십시오."

윤채아가 결정을 내렸다.

"부분 개방합니다. 문틈 7센티미터. 보관고 내부 유물은 독서대 위로만 유도. 강시우 씨는 관찰석 이탈 금지."

문틈이 천천히 벌어졌다.

안쪽에서 검은 종이 냄새가 밀려왔다. 오래된 서류와 젖은 그림자가 섞인 냄새였다. 백은서가 독서대를 문 앞에 세우자 양피지 한 장이 스스로 미끄러져 나왔다.

양피지는 낡고 얇았다. 가장자리는 불에 탄 것처럼 검었고 가운데에는 누군가 여러 번 지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위쪽에는 이미 시우의 성이 적혀 있었다.

강.

그 아래 먹물이 다시 움직였다.

듣는 아이.

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이름으로는 안 됩니다."

양피지가 바스락거렸다.

듣는 아이는 듣는다.

들으면 서명한다.

"듣는 것과 서명하는 건 다릅니다."

시우는 천천히 말했다.

"저는 강시우입니다. 그리고 아직 아무 계약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먹물이 흔들렸다. 글자가 잠깐 흐트러졌다가 다시 뭉쳤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금빛으로 열렸다.

"거짓 서명입니다. 글씨가 주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림자에서 밀려 나왔습니다."

윤채아가 바로 물었다.

"반사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품격 없는 먹물이 튈 수 있습니다."

"허용합니다."

금빛이 양피지 위를 스쳤다. 검은 먹물은 반사면에 닿자마자 옆으로 밀려났다. 양피지 가운데에서 다른 글자들이 드러났다.

폐기.

위조 보관.

주인 불명.

강제 서명 반응.

백은서가 숨을 삼켰다.

"폐기 표식이 너무 많습니다. 이 정도면 서류 유물 처리장에서 태웠어야 합니다."

양피지가 떨었다.

태우지 마라.

나는 태우는 종이가 아니다.

시우는 그 목소리에서 분노보다 피로를 먼저 들었다. 오랫동안 남의 문장을 품고 있었던 유물의 피로였다.

"그럼 당신은 뭡니까."

먹물이 멈췄다.

"저를 묶으려는 계약서가 아니라면 원래 무슨 일을 하던 계약서입니까."

양피지의 가장자리에서 그림자가 올라왔다. 그 그림자는 시우의 이름을 향해 가다가 글레니르의 봉인선에 걸려 멈췄다.

글레니르가 단단히 울었다.

묶을 이름이 아니다.

물어라.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조건을 말해 주세요. 강제로 쓰지 말고요."

한참 동안 양피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중앙에 아주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위조를 가린다.

그림자를 본다.

이름을 빼앗은 계약을 무효로 한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환해졌다.

"이제야 문장다운 문장이 나오는군요."

아스칼론도 낮게 말했다.

"그럼 종이쪼가리가 적은 편이었나."

"어르신. 그렇게 말하면 다시 삐질 것 같습니다."

양피지가 실제로 바스락거렸다. 시우는 급히 말을 이었다.

"적이 아니라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제 이름을 마음대로 쓰면 안 됩니다."

먹물이 또 흔들렸다.

이름이 필요하다.

서명 없이는 계약이 없다.

"이름은 조건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시우의 목소리가 조금 단단해졌다.

"당신의 이름을 확인해야죠. 제 이름을 담보로 삼는 게 아니라."

백은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빈 보존지를 대면 어떻습니까? 유물 본체에 직접 쓰지 않고 임시 투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윤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하세요."

백은서가 하얀 보존지를 독서대 옆에 펼쳤다. 양피지의 그림자가 그 위로 조금씩 옮겨 갔다. 처음에는 시우의 이름을 쓰려 했지만 글레니르의 봉인선이 그 획을 막았다.

에제키엘이 반사했다.

검은 문장들이 보존지 위에서 뒤집혔다. 지워진 글자, 덧씌운 서명, 폐기 명령이 겹겹이 떠올랐다. 그 아래 아주 오래된 문장이 있었다.

그림자의...

계...

마지막 글자는 검은 매듭에 묶여 있었다.

아스칼론이 낮게 말했다.

"저 매듭만 베면 된다."

윤채아가 즉시 경고했다.

"직접 절단 금지."

"누가 손대겠다고 했나."

아스칼론의 검집 안쪽에서 짧은 울림이 일었다. 실제 칼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방 안 공기가 얇게 갈라졌다. 검은 매듭 하나가 툭 끊겼다.

양피지가 크게 떨었다.

계약.

글자가 완성되는 순간 공방의 조명이 한 번 꺼졌다 켜졌다.

중앙 단말기가 다시 살아났다.

[미등록 자의식 아티팩트 반응]

[임시 판정 갱신]

[A급: 그림자의 계약]

양피지 위의 먹물이 더 이상 시우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대신 가운데에 낡은 문장이 떠올랐다.

강압된 서명은 계약이 아니다.

위조된 그림자는 주인에게 돌아간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붙잡았다.

"기능 반응 확인. 강제 계약 반전. 위조 서명 무효화. 그림자 서명 봉인."

백은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A급이면 폐기 칸에 있을 물건이 아닙니다."

에제키엘이 차갑게 말했다.

"품격 없는 행정의 표본입니다."

아스칼론이 웃었다.

"행정도 벨 수 있나?"

"제발 그러지 마세요."

시우는 양피지를 보았다. 그림자의 계약은 얇게 떨고 있었다. 적의 움직임은 사라졌지만 완전히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계약이 있습니까?"

양피지 가장자리에 검은 문장이 천천히 떠올랐다.

계약자는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이름을 빼앗는다.

듣는 아이를 찾는다.

시우의 목 뒤가 서늘해졌다.

윤채아도 그 문장을 보았다.

"계약자. 배후 호칭으로 기록합니다."

그 순간 보존지 아래쪽에 작게 접힌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시우의 이름이 끝까지 적힌 가짜 서명이었다. 이미 예약된 서명처럼 검은 줄에 묶여 있었다.

그림자의 계약이 바스락거렸다.

이건 아직 살아 있다.

글레니르가 둥근 매듭을 만들었다.

묶는다.

에제키엘이 금빛을 보탰고 아스칼론의 울림이 마지막 검은 줄을 눌렀다. 그림자의 계약은 자신의 가장자리를 접어 가짜 서명을 감쌌다. 먹물이 양피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작은 검은 봉인점으로 굳었다.

[위조 서명 봉인]

[대상명 보호]

중앙 단말기의 검은 잡음이 깨졌다.

[특성 후보: 듣는 아이]

그 문장이 지워졌다.

[특성 후보: 무기 소통자]

[정식 등록 보류: 본인 동의 절차 필요]

윤채아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덮어쓰기는 막았습니다."

시우는 뒤늦게 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기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안도될 줄 몰랐다.

그림자의 계약이 조용히 울렸다.

이름은 서명 전에 묻는다.

시우는 작게 웃었다.

"그거 좋은 규칙이네요."

아스칼론이 못마땅하게 중얼거렸다.

"종이한테 규칙을 배울 줄은 몰랐다."

에제키엘은 반사면을 정리하듯 빛을 낮췄다.

"계약서가 자기 조항을 고쳤다면 드물게 품격 있는 결말입니다."

백은서가 조심스럽게 그림자의 계약을 새 보존 케이스에 옮겼다. 이번에는 클램프를 쓰지 않았다. 대신 양피지가 스스로 접히는 방향에 맞춰 얇은 유리 지지대를 세웠다.

양피지는 저항하지 않았다.

윤채아가 새 문서를 열었다.

"임시 무기 운용 공방 권한을 사건 대응 권한으로 격상합니다. 대상 강시우. 조건은 직접 접촉 금지, 의료 관찰 지속, 자의식 아티팩트 의사 확인 절차 동반."

의료 대원이 통신 너머에서 즉시 말했다.

"그 조건에 침상 복귀도 넣어 주십시오."

"넣겠습니다."

시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도 이제는 침대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아스칼론이 코웃음을 쳤다.

"드디어 현명한 말이 나오는군."

에제키엘이 덧붙였다.

"침상 복귀 전 제 보호 케이스의 먼지 제거도 조항에 넣으십시오."

"방금 계약서 보고도 조항 얘기를 하세요?"

"계약서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조항은 명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우는 피곤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그림자의 계약이 마지막으로 바스락거렸다. 보존 케이스 안쪽에 아주 작은 문장이 떠올랐다.

계약자가 움직인다.

무기를 값으로 부를 것이다.

시우의 웃음이 멈췄다.

윤채아의 눈빛도 차가워졌다.

"값으로 부른다?"

글레니르가 낮게 울었다.

팔려고 묶는 자들.

아스칼론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가 누구를 값으로 부른다는 거냐."

에제키엘의 반사면에도 금빛이 서늘하게 돌았다.

"대단히 무례한 예고입니다."

시우는 보존 케이스 안의 양피지를 보았다. 그림자의 계약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봉인점 하나가 검게 남아 있었다. 시우의 이름을 빼앗으려던 흔적이었다.

무서웠다.

그래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는 가격표부터 찢어야겠네요."

아스칼론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다. 그건 베어도 된다."

윤채아는 단말기에 마지막 줄을 입력했다.

"다음 접근 예상. 외부 세력의 유물 감정 또는 매입 명목 접촉. 강시우 씨와 소유 의사를 가진 유물 전원 보호 절차 준비."

시우는 팔걸이에 등을 기대었다. 공방의 조명은 아직 희고 차가웠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곳은 더 이상 보관고 앞 임시 대기 장소가 아니었다.

말을 듣고 이름을 지키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스칼론, 에제키엘, 글레니르, 그림자의 계약이 함께 있었다.

시우는 아주 작게 말했다.

"침대로 가기 전에 등록 문서만 확인하고 갈게요."

윤채아가 안경 너머로 그를 보았다.

"문서에 서명은 제가 먼저 검토합니다."

그림자의 계약이 보존 케이스 안에서 만족스럽게 사각거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 소리를 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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