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9화: 감각의 낙인
오토바이의 가속 레버를 움켜쥔 강진혁의 왼손등 위로 굵은 빗방울이 차갑게 떨어져 내렸다.
하늘은 언제 먹구름이 끼었는지 모르게 낮고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이내 빌딩 숲 사이로 가느다란 가을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진혁의 오른팔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와 섞여 오토바이의 연료 탱크 표면을 붉고 얼룩덜룩하게 적시며 흘러내렸다.
“진혁 씨! 조금만 참아요! 다 와 가요!”
진혁의 허리를 꽉 안은 채 뒤에 탄 민세아의 목소리가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묻혀 가늘게 떨려왔다.
진혁은 억지로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오른팔 전체가 칼로 후벼 파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올라왔고, 가죽 장갑 밑으로 흘러내린 피가 이미 손가락 끝을 적셔 핸들을 잡은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머릿속은 온통 구 과학관 가스실의 매캐한 황색 연기와, 거울에 적혀 있던 그 붉은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쫓아오는 쥐새끼들아. 다음은 너희 차례다.’
놈은 자신들의 모든 행보를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 아니, 마치 어린아이의 모래성 놀이를 구경하듯 그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며 비웃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서도진 경감의 수사망은 이미 자신을 향해 좁혀져 오고 있었고, 이 이상 경찰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오토바이는 마포구 서교동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세아가 가리킨 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5층짜리 소형 빌라 건물이었다.
“지하 주차장 안쪽 구석에 세워요. 거긴 다른 입주민들이 잘 안 써요.”
진혁은 세아의 지시대로 엔진 시동을 끄고 어둠 속에 오토바이를 밀어 넣었다. 헬멧을 벗어던지는 순간, 극심한 현기증이 진혁의 시야를 덮쳤다. 오토바이 옆으로 쓰러지려는 진혁을 세아가 재빨리 어깨로 밭쳐내며 지탱했다.
“정신 차려요, 진혁 씨. 제 어깨에 기대요. 제 작업용 오피스텔이에요. 여기라면 안전해요.”
두 사람은 삐걱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복도 끝 방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세아가 불을 켜자, 깔끔하지만 종이 서류와 노트북, 취재 수첩들로 난잡하게 어질러진 원룸 오피스텔 내부가 드러났다. 세아는 진혁을 낡은 소파에 눕히다시피 앉히고는, 황급히 욕실로 달려가 구급상자와 깨끗한 수건을 챙겨왔다.
“가죽 재킷 좀 벗어봐요. 상처를 봐야 해요.”
세아가 진혁의 왼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진혁은 신음하며 끈적하게 피가 굳어가는 가죽 재킷의 오른쪽 소매를 조심스럽게 벗어냈다. 재킷 안쪽의 셔츠는 이미 검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살가죽에 눌어붙어 있었다. 세아는 가위로 셔츠 소매를 잘라내고 진혁의 상처를 드러냈다.
“아…….”
세아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진혁의 손목 상단부터 전완근 안쪽을 따라 약 10센티미터 가량 찢어진 자상은 생각보다 깊었다. 깨진 초자 유리의 날카로운 단면이 피부뿐만 아니라 미세혈관과 근막까지 찢어발겨 놓은 상태였다. 상처의 붉은 틈새로 새로 배어 나오는 피가 진혁의 팔뚝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거 병원 가야 해요. 봉합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요. 이대로 두면 파상풍이나 패혈증이 올 수도 있어요.”
“안 됩니다. 소독하고 묶으면 어떻게든 멎을 겁니다. 지금 병원에 가면…… 서 경감님이 제 신원을 병원 응급실 전산망에 바로 수배해 뒀을지도 모릅니다. 신수동 사건 현장에 제 오토바이 바퀴 자국이 남았다고 했잖아요. 이미 저는 용의자예요.”
진혁이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세아의 구급상자에서 소독약병을 집어 들었다. 세아는 그런 진혁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더니, 그의 손에서 소독약을 뺏어 쥐었다.
“가만히 있어요. 기자의 기본 소양이 뭔 줄 알아요? 팩트 체크와 신속한 응급처치예요. 대학생 때 산악 동아리 하면서 웬만한 부상은 내가 직접 처치해 봤으니까 엄살 피우지 마요.”
세아는 알코올 소독약을 솜에 듬뿍 적셔 진혁의 찢어진 자상 위로 가차 없이 내리눌렀다.
“으으윽……!”
진혁의 전신이 활처럼 꼿꼿하게 굳어지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빨을 악물어 턱뼈가 부들부들 떨렸다. 상처 부위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이 중추신경을 타고 뇌로 직행했다. 이마에서 비 오듯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가를 적셨다.
세아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능숙하지만 떨리는 손길로 압박 붕대를 진혁의 팔뚝에 단단히 감아올렸다. 상처의 단면이 서로 맞물리도록 힘껏 조여 매는 동안, 그녀의 티셔츠 소매에도 진혁의 피가 검붉게 번져 나갔다.
“다 됐어요. 당장은 지혈되겠지만 절대로 팔에 힘주면 안 돼요. 상처가 다시 터지면 그땐 강제로라도 병원에 끌고 갈 테니까요.”
세아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수건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진혁은 욱신거리는 오른팔을 가슴팍에 모아 쥐며 나직하게 답했다.
“고맙습니다, 세아 씨.”
“고마우면 제발 몸 사려요. 진혁 씨가 잘못되면 납치된 한소윤 씨는 물론이고, 저도 이 살인마의 덫에서 영영 빠져나가지 못해요.”
세아가 약병들을 정리하며 한숨을 쉴 때였다.
쿵.
진혁의 가슴 가장 깊은 곳, 심장의 대동맥이 찢어지는 듯한 기이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진혁의 고막 내부에서 울려 퍼졌다.
“하윽……!”
진혁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듯 바닥으로 상체를 꺾었다.
오른팔의 유리 자상으로 인한 통증이 찰나의 순간 동안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 대신, 명치 끝에서부터 화산재가 폭발하는 듯한 뜨겁고 유독한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거꾸로 솟구쳐 올랐지. 심장이 분당 이백 회가 넘는 속도로 미친 듯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고, 눈앞의 시야가 붉고 투명한 유리막을 씌운 것처럼 선명한 핏빛으로 변해갔다.
“진혁 씨! 또 시작된 거예요? 붕대 감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세아가 급히 다가와 진혁을 붙잡으려 했지만, 진혁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밀어냈다. 동조가 시작되는 순간 가해지는 신체적 압박은 주변의 타인이 접촉할 때 그 강도가 더욱 불규칙하게 날뛰었기 때문이다.
“오…… 오지 마요…… 윽, 쿨럭! 컥……!”
진혁은 바닥을 짚으며 허리를 꺾고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입술 틈새로 흘러내린 붉은 피가 세아의 오피스텔 바닥 장판 위로 어지럽게 번졌다.
삐이이이이-.
귀청을 찢는 듯한 이명이 지나간 자리, 낯선 공간의 정보가 진혁의 뇌 속으로 강제로 유입되었다.
하지만 이번 동조는 무언가 달랐다.
시각과 청각만이 아니었다. 콧망울을 후벼 파듯 들이닥치는 강렬하고 불쾌한 ‘후각’의 자극.
그것은 지독하게 썩어 문드러진 생선의 내장 냄새, 갯벌의 짠내가 섞인 눅눅한 소금기, 그리고 코를 찌르는 차가운 염화칼슘과 소독약의 비린내였다. 지독한 악취가 콧구멍을 통해 기도로 직접 유입되는 듯한 생생한 감각에, 현실의 진혁은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뒤틀었다.
‘여기는…… 어디지?’
범인의 시야가 천천히 열렸다.
어두컴컴하고 광활한 공간. 사방의 콘크리트 벽면에는 하얀 성에가 두껍게 끼어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녹슨 쇠갈고리들이 기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녹아내린 얼음물과 붉은 핏물이 뒤섞여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썩은 수산물 찌꺼기가 담긴 푸른색 플라스틱 상자들이 사방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대형 폐수산물 냉동창고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한소윤이 의자에 묶인 채 놓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추위와 공포로 인해 이미 푸르스름하게 질려 있었고, 얇은 S대 야구점퍼 위로 서리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콧김을 내뱉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얼어붙듯 흩어졌다.
범인은 그녀의 코앞에 다시금 깨진 대형 거울을 설치해 두었다. 한소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어붙어 가는 얼굴과, 그 뒤에서 서성거리는 사내의 검은 실루엣을 바라보며 사시나무 떨듯 흐느끼고 있었다.
스스슥. 슥.
범인의 가죽 장갑 낀 손이 철제 테이블 위에서 무언가를 고르고 있었다. 메스, 얇은 나일론 끈, 그리고 기괴한 모양의 얼음송곳들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부딪쳤다. 사내는 한쪽 다리를 미세하게 끄는 기이한 걸음걸이로 소윤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웅웅웅웅-.
벽면 저편에서 대형 냉동 압축 모터가 돌아가는 묵직한 진동음이 바닥을 타고 사내의 구두 밑창으로 전해졌다. 그 진동이 진혁의 발바닥 신경망을 그대로 자극했다.
그때였다.
뿌우우우우우-.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깊고 둔탁한 뱃고동 소리가 냉동창고의 두꺼운 철문을 뚫고 희미하게 흘러들었다.
사내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듯한 범인의 실루엣이 거울 속에서 차갑게 반사되었다. 사내는 메스를 치켜들며 한소윤의 목덜미로 천천히 다가갔다.
“안 돼……!”
현실의 진혁이 바닥을 긁으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허어억-! 헉…… 헉……!”
진혁은 물속에서 갓 건져 올려진 사람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번쩍 눈을 떴다.
전신이 땀과 피로 뒤범벅이 되어 오피스텔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오른팔의 붕대는 그의 발작적인 움직임 탓에 팽팽하게 당겨져 상처 부위에서 다시금 붉은 피가 스며 나와 붕대를 적시고 있었다.
“진혁 씨! 괜찮아요? 제 목소리 들려요?”
세아가 진혁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진혁은 겨우 초점을 맞추며 세아의 손을 붙잡았다.
“한강…… 한강변입니다.”
“네? 한강이라고요?”
진혁은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키며 자신이 겪은 감각들을 빠른 속도로 쏟아냈다.
“냄새가 났습니다. 지독한 생선 썩는 비린내와 소금기, 그리고 냉동용 화학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사방에 성에가 낀 콘크리트 벽이었고, 대형 냉동 압축기 모터가 돌아가는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뱃고동 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가깝게 들렸습니다.”
세아는 진혁의 단서들을 듣자마자 자신의 노트북 앞으로 달려가 기사를 검색하고 건축물 대장을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생선 비린내와 짠내, 냉동 압축기, 그리고 뱃고동 소리…… 한강변 근처의 폐냉동수산창고야. S대학교와 인접한 마포구 신수동, 그리고 망원동 일대에서 한강 나루터나 선착장 인근에 수산물 보관용으로 쓰이던 오래된 창고가 있는지 찾아봐야 해.”
세아의 손가락이 자판 위를 폭포수처럼 두드렸다. 그녀의 기자다운 정보 분석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망원 선착장 인근…… 1990년대까지 마포구 망원동 강변북로 하단부 옹벽 쪽에 지하 수산 냉동창고가 여러 개 운영되었어. 그중 대부분은 법정 분쟁이나 한강 정비 사업으로 폐업하고 콘크리트로 입구를 매립했거나 철거되었는데…… 단 한 곳, ‘대성수산’ 소유의 폐냉동고 부지만이 철거 소송에 휘말려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어. 지하 1층 규모인데, 바로 옆이 한강 유람선 선착장과 근접해 있어서 배들이 드나들 때 뱃고동 소리가 그대로 유입되는 구조야!”
세아가 모니터를 진혁 쪽으로 돌려 흐릿한 위성 지도를 보여주었다. 망원동 한강공원 구석진 옹벽 아래, 무성한 잡풀과 불법 투기된 쓰레기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철제 슬라이딩 도어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여기예요. 범인이 구 과학관에서 한소윤 씨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최단 거리이자, 완벽한 소음 차단과 냉각 시설이 갖춰진 밀실. 그놈이 지금 이곳에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거예요.”
진혁은 침을 삼켰다. 전에 놓쳤던 한소윤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종착지가 특정된 것이다.
그때 세아의 스마트폰 진동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김 선배’였다. 세아의 신문사 시절 강력계 라인을 잡고 있는 사회부 선임 기자였다.
세아가 전화를 받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 세아야, 너 지금 어디냐? 혹시 강진혁이라는 배달 라이더랑 같이 있는 거 아니지?
수화기 너머 선배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세아와 진혁의 시선이 교차했다.
“김 선배,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강진혁 씨가 왜요?”
방금 경찰 내부 라인에서 급보가 돌았어. 어젯밤 신수동 골목 납치 사건이랑 오늘 아침 S대 구 과학관 유독 가스 살포 사건 말이야. 경찰 감식반이 구 과학관 지하실 깨진 유리창에서 다량의 혈흔을 수거해 긴급 DNA 대조를 돌렸는데, 그 혈흔이 강진혁의 것으로 확인됐대. 서도진 경감이 방금 전 강력반 전체에 강진혁을 ‘거울 살인마의 유력한 공범이자 상해 혐의 용의자’로 긴급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공개 수배 절차에 들어갔어. 너 절대 그 사람 근처에 가지 마라. 엮이면 큰일 난다!
뚝.
전화가 끊겼고, 좁은 오피스텔 내부에는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세아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스르륵 내려놓으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혼란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진혁 씨…… 경찰이 당신을 쫓기 시작했어요. 가스실 탈출할 때 문을 깨뜨리며 흘린 피가 결국 족쇄가 된 거예요.”
진혁은 붕대에 감긴 자신의 오른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게 물든 붕대는 그 자체로 자신이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지울 수 없는 유죄의 증거였다. 경찰에게 자신은 살인마를 돕는 미친 공범이거나, 혹은 정신 분열로 직접 사람을 해치고 제보 전화를 거는 주범일 뿐이었다.
“망원동 냉동창고로 가야 합니다.”
진혁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에게 붙잡히는 순간 모든 게 끝납니다. 저는 유치장에 갇힐 거고, 한소윤 씨는 그 차가운 지하실에서 거울을 보며 죽어갈 겁니다. 범인이 저를 용의자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구 과학관 가스실 문을 잠그고 저를 유인했던 거예요. 제가 범인을 잡지 않으면 이 혐의는 영영 벗을 수 없습니다.”
진혁이 오토바이 헬멧을 집어 들자, 세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그 몸으로 가면 개죽음이에요! 경찰 수배망이 마포구 전역에 깔릴 텐데 골목길 몇 개도 지나지 못해 체포될 거라고요!”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진혁이 처음으로 세아를 향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 속에는 억울함과 공포, 그리고 3년 전 구하지 못했던 생명들에 대한 오랜 한 서린 회한이 뒤섞여 있었다.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여학생이 죽습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뻔히 보면서도 가만히 숨어 있으라고요? 난…… 난 그렇게는 못 합니다.”
세아는 소리치는 진혁의 가슴팍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가방을 둘러멨다.
“누가 가지 말래요? 제 오토바이는 번호판이 경찰 수사선상에 없어요. 그리고 제 차를 이용하면 순찰차들의 눈을 피해 이면도로로 우회할 수 있어요. 내가 운전할 테니까 당신은 뒤에서 몸이나 추슬러요.”
세아가 진혁을 향해 차가운 차 키를 흔들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요. 거울 살인마 놈의 그 오만한 얼굴에 거울 조각을 처박아 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진혁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내리는 가을비는 굵어지고 있었고, 두 사냥꾼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마포의 어둠 속으로 다시금 시동을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