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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10화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10화: 얼어붙은 기억

민세아의 소형 승용차 유리창 위로 두껍게 내려앉은 가을 폭우가 와이퍼의 거친 마찰음과 함께 쉴 새 없이 밀려 나갔다.

차 안은 무거운 정적만이 가득했다. 운전대를 잡은 세아의 눈동자는 빗길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조수석의 강진혁은 상처 입은 오른팔을 움켜쥔 채 창밖의 어두운 망원동 골목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차체를 때리는 소리가 마치 수천 개의 모래알을 쏟아붓는 것처럼 고막을 두들겼다.

“진혁 씨, 저기 앞이에요. 한강 옹벽 밑으로 이어지는 이면도로 초입.”

세아가 기어를 낮추며 목소리를 낮췄다.

진혁은 창문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멀지 않은 곳, 붉고 파란 경광등 불빛이 빗줄기 사이로 흐릿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경찰의 순찰차였다. 구 과학관에서 진혁의 혈흔이 발견된 이후, 서도진 경감이 내린 긴급 수배령이 마포 전역으로 확장되었음을 증명하는 서치라이트의 하얀 불빛이 빗속을 거칠게 휩쓸고 있었다.

“우회해요. 저쪽 수풀이 우거진 공터 옆길로 들어가면 냉동창고 후면으로 연결될 겁니다.”

진혁의 지시에 세아는 서행하며 차를 좁은 골목길 어둠 속으로 완전히 밀어 넣었다.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미등까지 꺼지자, 차 안은 이내 질식할 것 같은 어둠에 잠겼다. 두 사람은 잠시 숨을 죽인 채 순찰차의 서치라이트가 저 멀리 한강공원 입구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가요.”

진혁이 먼저 문을 열고 내렸다. 차갑고 묵직한 빗줄기가 온몸을 순식간에 적셨다. 가죽 재킷 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는 오른팔의 깊은 자상을 얼음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예리함으로 변해 진혁의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붕대를 감은 팔뚝이 비틀릴 때마다 새로 배어 나오는 피가 빗물과 함께 바닥으로 흘러내렸지만, 진혁은 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세아가 조용히 차 문을 닫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손에는 오피스텔에서 챙겨온 손전등과 철제 공구 가방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망원동 한강공원 옹벽 아래, 무성한 잡풀과 불법 투기된 폐자재들 사이에 버려지듯 방치된 대성수산 폐냉동고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콘크리트 외벽은 군데군데 균열이 가 있어 빗물이 흘러내리는 궤적을 따라 검은 얼룩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정면의 거대한 철제 슬라이딩 도어는 두꺼운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붉게 핀 녹이 빗물에 씻겨 흘러내려 흉측한 자국을 남겼다.

“이쪽 비상문이에요. 걸쇠가 낡아서 틈이 벌어져 있어요.”

세아가 손전등의 좁은 백색광으로 슬라이딩 도어 옆의 작은 철제 문을 비추었다.

진혁은 주변 바닥에 굴러다니던 녹슨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레의 원리를 이용해 틈새에 박아 넣고 온 힘을 다해 체중을 실어 당겼다.

찌이이익- 쾅!

날카로운 쇠비름 소리와 함께 걸쇠가 부러지며 철문이 힘없이 안쪽으로 열렸다. 요란한 마찰음이 천둥소리에 묻힌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진혁과 세아는 지체 없이 어둠이 도사린 차가운 건물 내부로 몸을 밀어 넣었다.


냉동창고 내부의 공기는 외부와는 전혀 달랐다.

밖은 눅눅한 가을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차단막을 넘어선 창고 안은 뼈마디를 시리게 만드는 날카로운 혹한이 지배하고 있었다. 콧구멍을 들이닥치는 차가운 공기 속에는 썩은 수산물의 비린내와 짠내, 그리고 염화칼슘 계열의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어 폐부를 찌르듯 들어왔다. 동조 속에서 진혁을 헛구역질하게 만들었던 그 불쾌한 후각 정보가 현실이 되어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조심해요. 계단이 얼어붙어 있어요.”

세아가 손전등으로 발밑을 비췄다.

지하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계단은 흘러내린 물이 그대로 얼어붙어 얇은 빙판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신발 밑창이 얼음 표면에 닿아 미끄러운 마찰음을 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영하 이하로 떨어졌다. 진혁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하얀 입김이 손전등 불빛 속에서 뽀얗게 서리처럼 흩어졌다. 춥고 폐쇄된 지하 공간의 압박감. 그리고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가 3년 전 기억의 심연을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쿵쾅, 쿵쾅…….

진혁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동조가 아님에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붉은 화염과 자욱한 검은 연기, 그리고 비명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발작이었다.

“진혁 씨? 괜찮아요? 페이스 조절해요.”

세아가 진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달되는 순간, 진혁은 턱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정신의 끈을 붙잡았다.

“……생각났습니다.”

진혁이 하얗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네? 뭐가요?”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 때요.”

진혁의 눈동자가 깊은 과거의 심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전등 빛이 흔들리는 지하 통로벽 위로 서리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의 머릿속은 그날의 참혹한 지옥도가 덧씌워졌다.

“불길이 전동차를 집어삼키고 검은 연기가 숨통을 죄어올 때…… 다들 문을 두들기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이 빗발쳤고, 녹아내린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폐부를 짓눌렀죠. 저 역시 산소가 부족해 바닥을 기어 다니며 피를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매캐한 유독가스 속에서, 저 멀리 전동차 구석에 홀로 차분하게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진혁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모래를 삼킨 듯 서늘하고 아팠다.

“그 남자는 기침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마치 혼로 정교한 전시관에 앉아 있는 예술가처럼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은색 휴대용 손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죽어가는 사람들의 처절한 공포를 거울이라는 반사경을 통해 감상하듯이 말입니다.”

세아가 걸음을 멈추고 진혁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안색에 깊은 경악이 어렸다.

“그 사람이…… 거울 살인마라는 건가요?”

“네. 도망치는 사람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그 사내가 전동차 밖으로 빠져나갈 때, 오른쪽 다리를 아주 미세하게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젯밤 경의선 철길가에서도, 그리고 오늘 낮 동조 속에서도 범인은 똑같은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놈은 3년 전 그 화재 현장에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화재 자체가 놈이 설계한 거대한 의식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진혁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분노와 확신이 담겨 있었다. 놈은 단순한 연쇄살인마가 아니었다. 3년 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참사의 불길 속에서 기괴한 광기를 깨닫고, 이제는 거울을 매개로 자신만의 공포 의식을 재현하고 있는 사이코패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저를…… 놈은 거울 속의 또 다른 주체로 인지하고 쫓고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은 무거운 침묵을 짊어진 채 지하 통로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 그곳에는 두꺼운 방화벽 형태의 강철 냉동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중앙에는 조그만 아크릴 창이 나 있었고,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흐릿한 푸른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혁이 조심스럽게 무거운 철제 도어 레버를 아래로 눌렀다.

철컥, 하고 무거운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차가운 정적을 깨뜨렸다. 문을 밀어젖히자 영하 15도는 족히 될 법한 살인적인 냉기가 폭풍처럼 쏟아져 나와 두 사람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냉동실 내부는 사방의 벽면이 은색 철판과 깨진 거울 파편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흐릿한 조명 속에서 기괴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바닥에는 얼어붙은 핏자국이 성에와 함께 엉겨 붙어 있었고, 그 차가운 감옥의 한가운데에 낡은 철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는 온몸이 밧줄로 단단히 묶인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S대 야구점퍼를 입은 한소윤이었다. 그녀의 콧방울과 앞머리에는 뽀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얇은 점퍼는 성에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소윤 씨! 정신 차려요!”

진혁이 다급하게 달려가 한소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피부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가쁘게 내쉬는 호흡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한 하얀 입김만을 간신히 뱉어내고 있었다. 진혁은 주머니에서 다용도 칼을 꺼내 한소윤의 몸을 묶고 있는 굵은 마닐라 삼밧줄을 거칠게 잘라 나갔다.

스스슥, 슥.

밧줄이 잘려 나가며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그리고 밧줄이 완전히 잘려 나가며 의자에 가해지던 무게와 장력의 균형이 깨진 순간, 의자 밑바닥에서 찌르르하는 미세한 금속성 전자음이 울렸다. 의자 시트 아래에 설치된 압력식 릴레이 스위치가 작동한 것이었다.

“아…… 안…… 돼…… 요…….”

한소윤이 아주 미세하게 눈꺼풀을 떨며 신음을 흘렸다.

“네? 뭐라고요?”

진혁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 귀를 대었다.

“……함…… 정…… 거울…… 뒤에…….”

한소윤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정면에 거대하게 세워진 직사각형 거울을 가리켰다.

그 순간이었다.

쾅-! 철커덕!

그들의 등 뒤에서 열려 있던 냉동실의 육중한 강철 문이 거짓말처럼 거친 폭음과 함께 쾅 닫혔다. 동시에 문 외부에서 수동식 유압 걸쇠와 철제 빗장이 기계적으로 맞물려 미끄러지는 날카로운 소음이 이어졌다.

“문이 잠겼어요!”

세아가 황급히 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잡고 흔들었지만, 강철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전자 제어식 솔레노이드 락이 작동하여 문이 벽과 완벽하게 일체화된 상태였다.

웅웅웅웅-!

바닥을 거칠게 흔들며 냉동실 벽면 저편에서 대형 냉각 압축기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환풍구를 통해 불어오는 영하의 강력한 냉풍이 냉동실 내부의 온도를 무서운 속도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영하 20도. 인간의 피부가 노출되면 불과 수십 분 내로 동상과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한계 온도였다.

“진혁 씨, 정면을 봐요!”

세아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에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한소윤의 의자 앞에 놓여 있던 대형 거울이 갑자기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거울의 유리 표면 뒤에 설치되어 있던 밝은 백열등이 켜지면서, 거울은 반대편을 투과해 보여주는 하프 미러(Two-way Mirror)로 기능이 전환된 것이었다.

유리창 너머, 2평 남짓한 따뜻한 제어실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 한 남자가 바퀴 달린 가죽 회전의자에 깊숙이 앉아 차분하게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고, 의자 옆 테이블에는 날카로운 강철 송곳들이 정갈하게 정리된 가죽 가방이 놓여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회전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특유의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기이한 걸음걸이로 유리를 향해 다가왔다.

유리창 너머의 따뜻한 조명 속에서도 사내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흐릿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유리창 표면에 맺힌 물방울과 기계적인 굴절 필터 탓인지, 혹은 진혁의 동조 필터가 현실 세계의 유리창에도 간섭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매만큼은 얼음송곳처럼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가 유리벽 아래 장착된 마이크로 손을 뻗었다. 이내 냉동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구형 스피커를 통해 지이익 하는 잡음 섞인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분하고 우아한 미성이 냉동실 내부의 얼어붙은 공기를 갈라놓았다.

진혁은 피가 흐르는 오른팔의 통증을 잊은 채 유리창 앞으로 돌진했다. 주먹으로 두꺼운 유리를 거칠게 두들겼지만, 방탄 수지로 보강된 하프 미러는 둔탁한 소리만 낼 뿐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너 누구야! 당장 문 열어! 왜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거냔 말이다!”

진혁이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가 냉동실 벽면에 부딪쳐 기괴하게 반사되었다.

유리 너머의 남자는 진혁의 분노 섞인 몸짓을 감상하듯 고개를 까닥였다.

사내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뻗어 유리 표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마치 거울 뒤에 있는 진혁의 이마를 직접 만지는 듯한 기괴한 제스처였다.

“헛소리하지 마! 네 놈은 그저 무고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도살하는 살인귀일 뿐이야!”

진혁의 외침에 사내는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스스스, 스스스 하는 기분 나쁜 동조 이음 같은 소음이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갔다.

사내가 유리창 너머 콘솔 데스크로 손을 뻗어 붉은색 스위치를 아래로 힘껏 젖혔다.

웅-!

냉동 압축기의 구동음이 한층 더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 음을 내며 회전 속도를 높였다. 천장의 송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한기가 폭풍처럼 몰아치며 냉동실 내부의 온도를 더욱 무서운 기세로 끌어내렸다. 영하 25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세아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고, 한소윤은 이미 호흡의 리듬마저 잃어버린 채 의식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었다.

진혁 역시 상처 입은 오른팔에서 스며 나오던 피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서서히 응고되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근육이 마비되어 손가락조차 제대로 쥐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마이크 스위치를 껐다. 제어실의 백열등 조명이 툭, 소리와 함께 꺼졌고 하프 미러 너머는 다시 칠흑 같은 암흑으로 가려졌다.

남자가 뒤돌아서서 회전의자에 앉아 저 멀리 제어실 밖으로 바퀴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나직한 움직임이 단절된 철문을 뚫고 희미하게 흘러들었다.

“진혁 씨…… 추워요…….”

세아가 팔뚝을 감싸 안은 채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입술은 이미 푸르게 변해 있었고, 이마에 맺힌 식은땀마저 차갑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진혁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사되는 거울 파편들을 응시했다. 차가운 강철 벽으로 완전히 밀봉된 영하 25도의 고립무원. 살인마가 남겨둔 극한의 함정 속에서,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의 초침이 급속도로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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