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11화: 사투의 온기
귓가를 찢을 듯한 냉각 압축기의 고주파 굉음이 차가운 밀실을 가득 채웠다.
영하 25도.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 깊숙한 곳까지 얼음송곳이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덮쳤다. 강진혁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바닥을 짚었다. 오른팔에 감겨 있던 붕대는 어느새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고, 그 위로 배어 나왔던 핏방울들은 검붉은 얼음 결정이 되어 보석처럼 굳어 있었다. 상처 부위는 이미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감각이 소실되어 있었고, 손 끝부터 어깨까지 뻣뻣한 마비 증세가 빠르게 차올랐다.
“세아 씨…… 제발 정신 차려요. 세아 씨!”
진혁이 굳어가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민세아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하지만 세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입술은 이미 핏기가 완전히 가신 채 푸르스름한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고, 가지런한 이마와 속눈썹 위에는 뽀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오직 희미하고 불규칙하게 새어 나오는 하얀 김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호였다.
그 옆에 고꾸라진 채 의식을 잃은 한소윤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호흡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맥박조차 잡기 힘들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진혁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3년 전, 중앙로역의 그 붉은 화염 속에서 느꼈던 숨 막히는 죽음의 공포가, 지금 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완벽하게 대칭되어 되살아나고 있었다. 사방의 은색 벽면과 깨진 거울 조각들에 반사되는 자신들의 처참한 몰골은, 마치 도살장에 갇힌 짐승들의 행렬처럼 보여 진혁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안 돼. 여기서 놈이 바라는 대로 죽어줄 수는 없어.’
귓가에 살인마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대속의 희생양. 자신들을 그 잔혹한 거울 예술의 마지막 장식품으로 얼려 죽이려는 놈의 시나리오. 그것만큼은 온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거부해야만 했다.
진혁은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다잡기 위해 제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깨물었다. 피가 배어 나오는 날카로운 아픔이 뇌리를 때리며 차가운 안개를 한 꺼풀 걷어냈다.
그는 바닥을 훑었다. 세아가 쓰러지며 떨어뜨린 노란색 철제 공구 가방이 한구석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진혁은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뒤로 끈 채, 얼어붙은 콘크리트 바닥 위를 기어갔다. 손가락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아 팔꿈치와 가슴팍을 이용해 가방을 끌어안듯 몸 안쪽으로 가져왔다.
덜덜 떨리는 왼손으로 가방의 버클을 더듬었다. 철컥. 둔탁한 쇠붙이 소리와 함께 가방이 열렸다.
가방 안에는 세아가 챙겨온 절연 드라이버 세트와 펜치, 멀티탭용 굵은 구리 전선 뭉치, 그리고 묵직한 소형 장도리가 들어 있었다.
진혁은 그 도구들을 내려다본 뒤, 고개를 들어 천장 구석에서 매서운 칼바람을 뿜어내고 있는 대형 냉각기로 시선을 돌렸다.
냉각기의 송풍구는 지상에서 약 2.5미터 높이의 벽면에 매달려 있었다.
진혁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무릎 관절이 마치 기름기가 마른 낡은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극심한 마찰통을 유발했다. 그는 한소윤이 묶여 있던 무거운 철제 의자를 냉각기 아래쪽으로 끌고 왔다. 쇠다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만, 그런 소음을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의자 위로 올라선 진혁은 공구 가방에서 가장 두꺼운 절연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으, 으윽…….”
손가락 마디마디가 완전히 얼어붙어 드라이버의 미끄러운 플라스틱 손잡이를 쥐는 것 자체가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문이었다. 감각이 없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드라이버를 감싸 쥔 채, 냉각기 전면을 덮고 있는 금속 안전망의 나사 홈에 날을 맞추었다.
나사는 수년 동안 얼어붙어 수축한 탓에 쇠붙이끼리 단단히 늘러붙어 있었다. 진혁은 이빨을 악물고 온 체중을 드라이버 끝에 실어 돌렸다. 오른팔의 찢어진 자상이 비틀리며 뜨거운 열감이 신경을 타고 척추를 꿰뚫었지만, 그 고통에 매달려 의식을 고정했다.
끼이이익.
마침내 첫 번째 나사가 비명을 지르며 돌아갔다. 진혁은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서두르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손이 미끄러져 나사선이 뭉개지거나 드라이버를 떨어뜨린다면, 그 즉시 파멸이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세아의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질 때마다 진혁의 영혼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마침내 네 개의 나사가 모두 풀렸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거운 안전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틈새로 웅웅거리는 회전 날개와 함께 복잡하게 얽힌 전기 배선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혁은 과거 배달 라이더 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웠던 공조 설비의 기본 원리를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끄집어냈다. 이러한 대형 업소용 냉동고에는 성에를 제거하기 위한 고열의 제상(Defrost) 히터가 숨겨져 있다.
이 제상 히터를 작동시키는 릴레이 배선을 강제로 쇼트 시키면, 시스템 회로가 과열 및 과전류로 판단하여 압축기를 강제 차단하고 순간적으로 히터 라인에 과부하가 걸려 냉동 사이클이 완전히 정지할 것이었다.
진혁은 공구 가방에서 구리 전선을 꺼내 이빨로 물어뜯고 펜치로 피복을 거칠게 벗겨냈다. 손끝이 찢어져 붉은 피가 흘러나왔지만, 피는 상처 틈새에서 뿜어 나오자마자 차가운 한기에 굳어 점성을 잃었다.
그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의 한쪽 끝을 메인 배선함의 220V 입력 전원에 꽂고, 반대편 끝을 제상 히터 제어 단자에 갖다 대었다.
“제발…… 움직여.”
마비되어 가는 전신의 신경을 팽팽하게 쥐어짜며, 진혁이 드라이버 끝으로 두 단자를 맞닿게 눌렀다.
파지지직-! 쾅!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백색 불꽃과 함께 귀를 찢는 폭음이 울렸다. 매캐한 플라스틱 타는 냄새와 회색 연기가 좁은 송풍구 틈새에서 뿜어져 나왔고, 미친 듯이 회전하던 팬 날개가 거친 금속 마찰음을 내며 뚝 멈춰 섰다. 동시에 건물 지하를 진동시키던 냉각 압축기의 육중한 진동 소리도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사방을 할퀴던 영하 25도의 살인적인 칼바람이 잦아들고, 고요하고 차가운 정적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바람은 멈추었지만, 냉동실 내부의 온도는 여전히 영하 20도 이하를 맴돌고 있었다. 두꺼운 우레탄 단열 벽으로 밀폐된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얼음 무덤이었다.
게다가 외부에서 단단히 맞물린 유압식 강철 빗장문은 안쪽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진혁은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내려와 정면의 하프 미러 유리를 향해 걸어갔다. 유리창 너머의 제어실은 여전히 불이 꺼진 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 두꺼운 유리를 깨부수고 건너편 제어실로 탈출하지 못한다면, 결국 천천히 얼어 죽는 결말은 바뀌지 않았다.
진혁은 공구 가방에서 소형 장도리를 꺼내 유리의 정중앙을 매섭게 내리쳤다.
깡-!
날카로운 쇳소리만 고막을 찌를 뿐, 방탄 수지로 코팅된 십여 밀리 두께의 이중 강화유리는 미세한 흠집조차 남지 않았다. 유리는 너무나 견고했고, 물리적인 타격을 그대로 면으로 분산시키며 진혁의 마비된 손목에 고스란히 충격만 되돌려 보냈다. 망치가 반사되어 튀어 나가는 바람에 진혁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시간이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지배하면서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졌고, 지독한 몽롱함이 그를 엄습했다. 이대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잠들고 싶다는 치명적인 유혹이 유령처럼 그를 속삭였다.
‘포기하지 마. 민세아가 나 때문에 여기 갇혔어. 한소윤도 살아 있어.’
진혁은 주먹으로 제 얼굴을 갈겼다. 고통으로 이성을 다잡은 그는 바닥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손끝에 닿은 것은 벽면과 바닥에 널려 있던 깨진 거울의 날카로운 조각들이었다.
그는 문득 소방 훈련 과정에서 들었던 강화유리의 치명적인 약점을 떠올렸다. 표면 전체에 가해지는 강한 충격에는 잘 버티지만, 예리한 다이아몬드나 강화 강철로 표면에 날카로운 미세 흠집(스크래치)을 낸 상태에서 타격하면 내부의 인장 응력 균형이 한순간에 깨지며 모래알처럼 무너져 내린다는 원리였다.
진혁은 바닥에 떨어진 거울 파편 중 가장 크고 단단한 조각 하나를 집어 올렸다. 날카로운 유리 단면이 장갑을 찢고 그의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뜨겁게 솟구쳤으나 이내 차가운 공기 속에서 검붉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고통은 신경을 깨우는 고마운 자극일 뿐이었다.
그는 깨진 하프 미러의 우측 하단, 유리의 응력이 가장 모서리로 집중되는 접합부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바닥을 파고든 거울 조각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대고 온 힘을 실어 유리를 긁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금속성 마찰음이 밀실의 벽면을 타고 괴기스럽게 울려 퍼졌다. 진혁은 떨리는 팔 근육을 쥐어짜며 십자 모양의 깊은 흠집을 유리에 새겼다. 하얀 유리 분말이 연기처럼 날리며 눈가를 찔렀지만, 그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흠집이 유리의 내벽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확신한 순간, 진혁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망치를 다시 움켜쥐었다.
“으아아아아!”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진혁은 온 체중을 실어 망치로 십자 스크래치의 정중앙을 내리쳤다.
쩍-!
유리 내부에 갇혀 있던 응력이 해방되며 거미줄 같은 은빛 균열이 사방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연달아 두 번, 세 번, 망치를 휘둘러 균열을 때렸다. 부러진 오른팔의 자상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와 유리 벽을 붉게 적셨지만 상관없었다.
콰아아앙-!
마침내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수천 개의 유리 입자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무너져 내렸다. 은빛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하프 미러의 잔해들이 제어실과 냉동실 경계면에 흩뿌려졌다.
유리가 깨진 틈새로 제어실 내부의 더운 공기가 얼어붙은 냉동실로 서서히 밀려왔다. 불과 몇 도의 차이였지만, 그것은 진혁의 피부에 구원과도 같은 생명의 온기로 와닿았다.
진혁은 뾰족한 유리 파편들이 온몸을 긁는 고통을 참아내며, 깨진 창틀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제어실 바닥으로 기어내려 갔다.
제어실 구석의 전기 라디에이터는 여전히 붉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진혁은 따뜻한 온기에 흐려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다잡으며 메인 콘솔 데스크로 돌진했다. 먼지와 서리가 뒤엉킨 수많은 버튼들 사이에서, 그는 붉은색 플라스틱 캡으로 보호된 ‘수동 비상 개방’ 레버를 찾아냈다.
진혁은 캡을 뜯어내고 온 힘을 다해 레버를 당겼다.
치이이이익- 쾅!
냉동실의 거대한 강철 문이 외부 유압 장치가 해제되면서 거친 금속음과 함께 서서히 열려 젖혀졌다.
진혁은 주저 없이 다시 냉동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쓰러진 민세아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제어실의 따뜻한 바닥으로 이송했다. 이어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인 한소윤의 멱살과 허리를 움켜쥐고 질질 끌어내어 제어실 안으로 대피시켰다.
제어실 한편에 처박혀 있던 두꺼운 부직포 담요 두 장과 자신이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을 벗어 두 사람의 몸 위로 겹겹이 덮어주었다.
“세아 씨, 정신 차려요. 세아 씨! 숨 쉬어봐요!”
진혁이 차갑게 얼어붙은 세아의 뺨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라디에이터의 온기가 닿은 지 수분이 지나자, 마침내 세아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가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진혁을 응시했다.
“진혁…… 씨…… 살았…… 어요……?”
“네,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려냈어요.”
진혁은 그제야 긴장이 풀려 무릎을 꿇고 제어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고동치자 마비되었던 고통의 감각이 폭풍처럼 몰아쳐, 오른팔의 깊은 상처에서 타는 듯한 작열통이 그를 괴롭혔다.
그때, 진혁의 시선이 메인 콘솔 데스크 한편에 머물렀다.
살인마가 앉아 조롱하던 그 가죽 회전의자 바로 옆에, 기이한 물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진혁은 비틀거리며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 당시의 대대적인 보도가 실린 종이 신문의 앞면 스크랩이었다. 누렇게 바랜 신문지의 생존자 및 실종자 명단 부분에는 강진혁의 이름에 선명한 빨간색 사인펜으로 거친 원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스크랩 위에, 손바닥만 한 피 묻은 은색 손거울이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거울 뒷면의 금속판에는 날카로운 송곳 끝으로 긁어 새긴 듯한 비뚤비뚤하고 기괴한 필체의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다음 거울은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너를 비출 것이다.’
소름이 돋는 경고장 이었다. 살인마는 진혁이 이 사투에서 살아남을 것을 확신하기라도 한 듯, 혹은 이 처절한 생존 쇼를 즐기기라도 한 듯이 뚜렷한 단서와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둔 것이었다.
오오오오옹-!
그 순간, 폐쇄된 건물 바깥의 도로 저편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창고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려왔다. 여러 대의 순찰차가 뿜어내는 비상 사이렌 소리였다. 서도진 경감과 마포경찰서 수색대의 포위망이 망원 한강공원 인근의 폐창고 턱밑까지 조여들었음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였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옆에는 의식이 온전치 못한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경찰의 서치라이트 불빛이 창고 외벽을 휩쓸기 시작하는 가운데, 진혁은 피 묻은 은색 거울을 안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으며 눈앞의 어두운 비상구 계단을 매섭게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