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7화: 거울 속의 경고
눈을 찌르는 듯한 아침 햇살이 창살을 넘어 낡은 장판 바닥을 비추었다.
강진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의 근육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욱신거렸고, 빗장뼈 아래 심장이 있는 부근은 마치 멍이 깊게 든 것처럼 묵직한 통증이 맴돌았다. 어젯밤 경의선 철길가에서 겪었던 동조의 거친 충격과, 한소윤을 짊어지고 기차 너머의 어둠 속으로 도망치던 범인의 잔상이 뇌리에 지독한 흉터처럼 박혀 있었다.
“……윽.”
진혁이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허리께와 옆구리에서 찌르는 듯한 쥐경련이 올라와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일어나지 마세요. 아직 누워 있어야 해요.”
방 한구석, 작은 접이식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고 있던 민세아가 급히 다가와 진혁의 어깨를 지탱했다. 그녀의 눈밑은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한소윤의 정보와 행적을 조사한 것이 분명했다. 세아는 진혁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열은 좀 내렸네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그렇게 불덩이처럼 달아올라서 헛소리까지 해대는데…….”
“……죄송합니다. 민세아 씨도 밤새 고생하셨네요.”
진혁은 세아가 건네주는 미지근한 물컵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까슬하게 타들어 가던 목구멍이 물줄기가 닿자 겨우 진정되었다. 물컵을 내려놓으며 진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한소윤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알아낸 게 있나요?”
세아는 테이블로 돌아가 몇 장의 인쇄물과 태블릿 PC를 들고 진혁의 곁으로 와 앉았다.
“한소윤, 21세. S대학교 화학과 2학년이에요. 과 동기들과 교수들의 평판을 알아보니 아주 성실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더군요. 학점도 우수해서 화학관 연구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조교 일도 병행하고 있었고요. 매일 밤 늦게까지 실험실에 남아 있다가 막차 시간 즈음에 귀가하는 게 일상이었대요.”
세아가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캡처된 인터넷 게시글 하나를 보여주었다. S대학교 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의 게시글 캡처본이었다.
“이건 한소윤 씨가 실종되기 나흘 전에 올린 글이에요.”
진혁은 눈을 찌푸리며 캡처된 화면의 텍스트를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혹시 요즘 화학관에서 지하철역 가는 길에 검은 코트 입은 키 큰 남자 본 사람 있어? 며칠 전부터 내가 나올 때마다 건물 모퉁이나 전신주 뒤에 서성거리는 것 같아서. 기분 탓인가 싶어서 빠른 걸음으로 가면 그 사람도 속도를 맞춰 걷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워서 글 남겨봐.]
글 아래에는 별다른 댓글 없이 ‘예민한 거 아니냐’, ‘경찰에 신고해라’ 같은 무심한 반응들만 달려 있었다.
“범인은 우발적으로 한소윤 씨를 고른 게 아니에요.”
진혁이 굳은 표정으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녀의 고정된 동선을 완전히 파악하고, 신수동 그 어두운 골목길에서 매복해 있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계획된 사냥이었어요.”
“맞아요. 게다가 한소윤 씨의 원룸이 바로 어제 우리가 핏자국을 발견했던 서강빌라 뒷골목 근처예요. 귀가하던 중 집 바로 앞에서 습격당한 거죠. 하지만 역시 의문이 남아요. 첫 번째 피해자 김민지 씨는 현장에서 가차 없이 숨통을 끊어두고 거울을 보여줬는데, 한소윤 씨는 왜 기어코 납치해 간 걸까요?”
세아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혁은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답했다.
“그놈은 거울 살인마니까요. 피해자에게 죽음의 공포를 비추어 주고, 그 공포가 극대화되는 순간을 즐기는 변태적인 의식을 치르는 놈입니다. 김민지 씨 때는 비밀 보일러실이라는 완벽한 밀실을 사전에 준비해 두었기에 현장에서 바로 의식을 집행할 수 있었던 거고…… 이번 한소윤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미 자신만의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둔 거예요. 그곳으로 데려가 거울을 설치하고, 천천히 살인을 시작하려는 겁니다. 그렇기에 아직은 살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혁이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우리가 어젯밤에 그놈의 도주로를 막아섰으니, 의식을 치르는 주기가 앞당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움직이지 말라니까요!”
세아가 진혁의 가슴을 밀쳐 다시 눕혔다.
“그 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요? 골목길 계단 하나 내려가기도 전에 굴러떨어질 안색이에요. 우선 경찰에 조사를 의뢰하는 게…….”
“안 됩니다. 서 경감님은 아직 제 능력을 완전히 믿지 않아요. 그리고 경찰이 움직이려면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수색 영장이 발부되는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범인이 기다려줄 것 같습니까? 우리가 직접 찾아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혁의 심장이 돌연 쿵쾅거리며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아, 윽……!”
진혁은 갑작스럽게 심장을 찌르는 충격에 상체를 꺾으며 비틀거렸다. 심장이 갈비뼈 안쪽에서 터질 것처럼 가쁘게 수축했고, 온몸의 혈관이 일제히 팽창하는 듯한 압도적인 압박감이 밀려왔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피비린내가 치밀어 올랐으며,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고주파의 이명이 사정없이 귓전을 때렸다.
삐이이이이이-.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며 망막 너머의 세포들이 일제히 요동쳤다.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며 붉은 충혈이 순식간에 눈을 덮었다.
“진혁 씨! 왜 그래요? 또 동조예요? 진혁 씨!”
세아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이명 너머로 길게 늘어지며 흐릿하게 뭉개졌다. 진혁은 머리를 감싸 쥐고 방바닥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몸의 모든 마디마디가 바늘에 찔리는 듯한 발작적인 통증이 휘몰아쳤다. 어젯밤의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 세 번째 동조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강렬하게 그의 뇌 세포와 중추신경을 장악해 들어갔다.
진혁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허공을 향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위로 핏발이 성나게 번졌고, 머릿속 뉴런들이 일제히 폭발하듯 낯선 시야가 강제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어둡다.
그리고 지독하게 눅눅하다.
진혁의 콧방울로 찌르는 듯한 냄새가 들이닥쳤다. 아세톤과 포르말린, 그리고 오래 묵은 먼지와 곰팡이가 뒤섞인 불쾌하고 자극적인 화학 약품의 비린내였다.
범인의 시야가 천천히 회전했다.
그의 눈앞에는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는 온몸이 굵은 마닐라 삼밧줄로 칭칭 감긴 여학생이 묶여 있었다. S대 야구점퍼를 입은 한소윤이었다. 그녀의 입은 두꺼운 은색 테이프로 단단히 막혀 있었고, 가녀린 어깨는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눈물로 젖어버린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이 범인을 바라보며 살려달라는 애원을 담은 채 격렬하게 흔들렸다. 읍, 읍……! 끈끈한 테이프 너머로 새어 나오는 단말마 같은 신음 소리가 범인의 고막을 타고 진혁의 뇌리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범인은 그녀의 눈앞에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깨진 전신거울을 철제 거치대에 비스듬히 걸어두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공포로 하얗게 질려버린 한소윤 자신의 얼굴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범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깊고 차분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기묘한 안도감과, 뒤틀린 예술가로서 느끼는 섬뜩한 희열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내가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붉은색 염료 통을 집어 올렸다. 얇은 붓 끝에 끈적한 붉은 액체를 듬뿍 묻힌 사내는, 한소윤을 비추고 있는 거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사내의 시선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을 향했다. 여전히 검은 연기나 안개가 낀 것처럼 이목구비는 투명하게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그 흐릿한 얼굴 너머로, 진혁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놈이…… 웃고 있었다.
스스슥. 스스슥.
사내는 붉은 액체가 묻은 붓으로 거울 표면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거울의 매끄러운 유리 표면을 긁으며 붉은 글자가 마치 갓 흘린 피처럼 흘러내렸다.
[쫓아오는 쥐새끼들아.]
첫 문장을 적은 범인이 붓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까닥하더니, 거울 속 흐릿한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은 단순히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거울이라는 반사 렌즈를 투과하여, 지금 자신의 시야를 훔쳐보고 있는 ‘강진혁’의 영혼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듯했다. 지독하게 차갑고 살기어린 시선이 공간과 감각의 주파수를 넘어 진혁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꿰뚫는 기분이었다. 범인은 마치 진혁이 이 눈을 통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양, 조롱하듯 다음 글자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었다.
[다음은 너희 차례다.]
글씨 작성을 마친 범인이 한소윤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사내의 가죽 장갑 낀 손이 한소윤의 턱밑을 거칠게 움켜쥐고 위로 번쩍 젖혔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격렬하게 몸부림치자, 범인의 오른손에 쥐어진 은빛 메스가 차가운 불빛을 반사하며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 선을 따라 유연하게 슥 그어 내렸다. 칼끝이 닿은 얇은 피부에서 붉은 선이 피어오르며 핏방울이 고여 흘러내렸다.
“……안 돼!”
진혁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허어억……! 컥, 쿨럭!”
진혁은 옥탑방 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들이켰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거친 기침을 뱉어낼 때마다 입안 가득 끈적한 쇠 맛이 감돌았다. 손으로 입가를 쓸어내자 손등에 붉은 핏자국이 점점이 묻어났다. 동조의 압박이 지나치게 강해진 탓에 기관지 내부의 미세혈관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진혁 씨!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어떡해, 피가……!”
세아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진혁의 어깨를 붙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혁이 동조를 겪는 참혹한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녀 역시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진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세아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한소윤 씨…… 아직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이 알고 있습니다.”
“알다니요? 대체 무엇을요?”
“우리가 어젯밤에 쫓아갔던 걸 완벽하게 알고 있어요. 어젯밤 골목길과 철길에서 마주친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 겁니다. 동조를 통해…… 거울에 적힌 메시지를 봤습니다. 우리더러 쫓아오는 쥐새끼들이라며,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직접 경고를 남겼습니다.”
세아의 안색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우리가…… 노출된 거군요. 범인이 우리 존재를 완전히 타깃으로 삼았다는 뜻이에요.”
“네. 하지만 겁먹을 시간 없습니다. 그놈이 거울을 설치했다는 건, 한소윤 씨를 살해하기 위한 의식을 곧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이 정말로 없어요. 제가 본 장소의 단서들을 조합해야 합니다.”
진혁은 목을 죄어오는 가쁜 숨을 다스리며 자신이 동조의 순간에 보고 느꼈던 감각적 정보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냄새가 독특했습니다. 썩은 냄새도 섞여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세톤이나 포르말린 같은 자극적인 화학 약품 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어요.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 지하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웅웅거리며 철판이 돌아가는 아주 낡고 거대한 구형 환풍기 소리가 배경음처럼 계속 깔려 있었어요. 벽면에는 지워진 화학식들이 가득 적힌 낡은 초록색 칠판이 걸려 있었고, 노란색 해골 마크가 그려진 화학 물질 경고판도 보였습니다.”
세아는 진혁이 쏟아내는 단서들을 듣고 급히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S대학교의 캠퍼스 맵, 인근 건축물 대장, 캠퍼스 내 폐쇄 건물 뉴스 기사들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화학 약품 냄새, 거대한 구형 환풍기, 그리고 초록색 화학식 칠판…….”
세아가 갑자기 자판 입력을 멈추고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찾은 것 같아요.”
“어디입니까?”
“S대학교 신수동 캠퍼스 후문 구석에 위치한 ‘구 과학관’ 건물이에요. 30년 전에 지어진 노후 건물인데, 3년 전에 신축 과학관이 완공되면서 사용이 전면 중단됐어요. 원래 철거 예정이었는데, 학교 재단과 건설사 간의 오랜 소송전이 얽히면서 낡은 가림막 펜스만 쳐진 채 방치된 지 오래된 폐건물이에요. 바로 그 건물 지하에 화학과 전용 약품 창고와 실험실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화학 물질 처리가 아직 덜 끝난 폐시약병들도 가득 쌓여 있다고 하니, 진혁 씨가 맡은 화학 냄새와 노란 경고판이 정확히 정합해요.”
세아가 지도를 확대하며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 구 과학관 건물은 어젯밤 사건 현장이었던 서강빌라 뒷골목 철길가와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예요. 뚫린 펜스를 넘어가면 학생들조차 다니지 않는 우거진 잡풀 숲길을 통해 학교 후문 폐문으로 곧장 연결돼요. 범인이 어깨에 한소윤 씨를 짊어지고 철길 너머로 도망쳤다면,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숨을 수 있는 최적의 아지트가 되는 셈이죠.”
진혁은 마침내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범인의 두 번째 무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음을 직감했다. S대학교 구 과학관 지하 실험실. 그 음산한 폐건물 지하에서 지금 한소윤이 거울을 마주한 채 죽음의 결말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 경감님에게 당장 알려야 해요!”
세아가 전화를 걸기 위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지만, 진혁이 단호하게 그녀의 손목을 가로막았다.
“안 됩니다. 서 경감님은 아직 이 이능력 동조를 수사에 반영하지 못해요. 신고를 해봤자 비공식적인 순찰일 뿐이고,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대학 캠퍼스 구 과학관으로 진입하는 순간 범인은 한소윤 씨를 가차 없이 처단하고 다른 샛길로 빠져나갈 겁니다. 범인은 이미 우리 존재를 알고 바짝 경계하고 있어요. 조금의 기척이라도 주면 한소윤 씨의 목숨은 날아갑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기를 직접 들어가겠다고요? 거긴 연쇄 살인마의 본거지이자 지독한 함정일 수도 있어요! 게다가 진혁 씨 몸 상태는…….”
“제 몸은 아직 버틸 수 있습니다.”
진혁이 가죽 재킷 소매로 입가에 묻은 붉은 피를 거칠게 훔쳐냈다. 그의 붉게 충혈된 안광 속에는 3년 전의 트라우마를 깨부수고 이번에야말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겠다는 전직 경찰관 지망생의 묵직한 집념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범인이 저를 똑바로 노려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마치 들어오라고 길을 열어둔 것처럼요. 그놈이 끔찍한 덫을 짜놓았다면, 제가 직접 들어가서 그 판을 박살 내겠습니다. 세아 씨는 저와 함께 입구까지 동행해 주시고, 밖에서 백업을 맡아 주세요.”
진혁은 오토바이 열쇠와 거친 가죽 장갑을 챙겨 들었다. 그의 다리는 여전히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손잡이를 움켜쥔 아귀힘만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매서웠다.
세아는 그런 진혁의 눈빛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가진 무모하고 미련한 정의감이 결국 자신까지 움직이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혼자는 절대 못 보내요. 같이 가요. 제가 폐건물의 침입 경로와 안내를 맡을 테니까.”
두 사람은 옥탑방 문을 열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 속으로 나섰다. 한소윤을 구하기 위한 차가운 골든타임의 시침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웅-!
진혁의 오토바이가 묵직한 가속음과 함께 밤사이 굳어버린 침묵을 찢으며, S대학교의 음산한 폐건물로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