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6화: 어둠이 남긴 것
골목 안쪽 칠흑 같은 막다른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쇠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슥…… 슥…… 슥…….
지하 보일러실에서 귀를 찢었던 그 구두 굽 끄는 소리와 메스가 거친 벽면을 긁어내리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 강진혁과 민세아는 비좁은 옹벽 사이에 굳어버린 채 숨결조차 들이쉬지 못했다. 사위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오직 가느다란 마찰음만이 귓전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진혁 씨.”
세아가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진혁의 옷소매를 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 쥔 손전등의 빛줄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요란하게 허공을 흔들었다.
진혁은 침을 삼켰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공포가 차가운 손끝으로 퍼져나갔가. 방금 전까지 몸을 지배했던 동조의 후유증 탓에 심장이 여전히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어둠 속에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간발의 차로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경찰 지망생 시절의 집념이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제 뒤에 붙으세요. 손전등은 계속 비추고 계시고요.”
진혁이 나직하게 속삭인 뒤,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낡은 다세대 주택들의 시멘트 담벼락이 양옆으로 좁혀져 오며 기괴한 압박감을 선사했다.
골목이 꺾이는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쇠 긁는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고요가 마치 무거운 물처럼 그들의 몸을 짓눌렀다. 진혁은 꺾어진 코너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세아가 떨리는 손으로 손전등의 백색광을 쏘아 보냈다.
쨍그랑-!
순간, 손전등의 빛을 받아 강렬하게 반짝이는 은빛 반사광이 두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
“으윽……!”
진혁은 눈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시야가 다시 확보되었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정경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붉은 벽돌 옹벽 한가운데, 뾰족하게 깨진 대형 거울 조각 하나가 옹벽에 박혀 있던 녹슨 못에 철사로 묶여 걸려 있었다. 그 거울 조각 위에는 사방으로 튄 붉은 피가 마치 기괴한 추상화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아래 바닥에는 찢어진 백팩과 흩어진 전공 서적들, 그리고 붉은 액체로 흥건하게 젖어 들어가는 아스팔트 바닥이 드러났다.
“세상에…….”
세아는 입을 막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손전등 빛에 드러난 핏자국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방대했다. 습격을 당한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었다.
진혁은 붉은 벽돌 벽에 걸린 거울 조각으로 다가갔다. 거울 조각 속에 어둠에 질린 자신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비쳤다.
‘범인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덜컹-! 바스락!
거울이 걸린 벽면 바로 옆, 주택가 경계를 짓는 낡고 허름한 철망 펜스 너머에서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자갈을 밟는 거친 발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이 골목 뒤편을 가로지르는 철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철길 쪽입니다! 아직 멀리 못 갔어요!”
진혁의 외침과 동시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널브러진 책들을 밟고 지나 철망 펜스가 뚫린 곳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진혁 씨! 같이 가요! 위험해요!”
뒤에서 세아가 소리치며 따라왔지만, 진혁은 멈출 수 없었다.
골목 막다른 곳의 담벼락 아래에는 낡은 철망 펜스가 가위로 오려진 것처럼 흉측하게 벌어져 있었다. 진혁은 벌어진 틈새를 억지로 벌리고 몸을 밀어 넣었다. 거친 쇠줄이 그의 가죽 재킷을 긁고 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펜스 너머는 경의선 선로 주변의 완만한 자갈 언덕이었다. 가로등 조명조차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이었고, 선로를 따라 뻗은 철길 위로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자갈밭을 밟으며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세아가 펜스 너머로 손전등의 강한 빛줄기를 길게 뻗었다.
번쩍이는 백색광이 어둠을 가르고 저 멀리 선로 건너편을 비추었다.
그 빛의 끝에, 한 검은 실루엣이 걸려들었다.
어두운 코트를 입은 사내였다. 그의 어깨에는 짙은 청색의 S대 야구점퍼를 입은 여학생이 짐짝처럼 늘어진 채 얹혀 있었다. 여학생의 긴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맥없이 흔들렸다. 사내는 손전등 빛이 자신을 비추자, 멈칫하며 상체를 반쯤 돌렸다.
역광과 그림자 탓에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는 안개 낀 필터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그 사내가 뿜어내는 공기, 입꼬리를 뒤틀며 자신들을 조롱하듯 바라보는 그 기괴한 시선만은 진혁의 신경망을 타고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동조를 통해 느꼈던 그 지독하고 섬뜩한 살의의 잔상이었다.
“거기 서! 멈춰!”
진혁은 목을 놓아 외치며 선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발밑의 거친 자갈들이 어지럽게 사방으로 튀었고, 경사지를 내려가던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100미터, 아니 80미터. 조금만 더 달리면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뎅- 뎅- 뎅- 뎅-!
갑자기 머리 위 허공에서 찢어지는 듯한 붉은 경보등과 함께 날카로운 차단기 종소리가 주택가를 깨우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바닥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자갈밭을 타고 진혁의 발목으로 전해졌다.
“안 돼……!”
진혁이 비명을 지르며 펜스를 잡았지만, 이미 늦었다.
우우우웅-! 쿠콰콰쾅!
거대한 전철 헤드라이트의 가공할 불빛이 어둠을 집어삼키며 진혁의 눈앞을 덮쳤다. 뒤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길게 이어진 심야 열차가 두 사람과 범인의 사이를 무서운 속도로 가로막으며 지나갔다.
화물 열차의 거대한 철제 몸체들이 쇠 깎는 소리를 내며 밤의 선로를 질주했다. 열차가 통과할 때마다 발생하는 강한 바람이 진혁의 얼굴을 때였고, 요란하게 깜빡이는 열차 창문들의 불빛이 진혁의 동공에 잔인하게 투영되었다.
그 거대한 쇳덩이의 장벽 너머로, 범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갔다. 기차 소음 속에서도 범인의 기만적인 웃음소리가 제 머릿속을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착각이 들었다.
“아아아악!”
진혁은 폭주하는 기차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며 주먹으로 철망을 내리쳤다. 쇠줄이 손등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가슴속의 끓어오르는 좌절감에 비하면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쿠콰콰쾅…… 쿵…… 쿵…….
열차가 마지막 칸을 남겨두고 서서히 멀어졌다. 굉음이 잦아들고 다시 차가운 정적이 선로 위로 가라앉았다.
세아가 손전등으로 선로 건너편을 다시 비추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잡풀들이 밤바람에 쓸쓸하게 흔들릴 뿐, 사내와 납치된 여학생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진혁은 무릎을 꿇었다. 자갈바닥에 닿은 무릎으로 차가운 냉기가 스며들었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자신의 다리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3년 전 중앙로역의 불길 속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다시금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진혁 씨, 일어나요.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돼요.”
세아가 진혁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다.
“범인은 놓쳤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우선 골목으로 돌아가서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찾아봐야 해요.”
두 사람은 다시 벌어진 철망 사이로 기어 나와 피가 흥건하던 골목 모퉁으로 돌아왔다.
세아는 카메라를 꺼내 현장의 핏자국과 벽에 걸린 거울 조각을 신속하게 촬영했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골목의 단면이 박제되듯 렌즈 속에 담겼다.
“이거 봐요.”
세아가 손전등 빛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붉은색 플라스틱 조각을 비추었다.
그것은 모퉁이에 부딪혀 깨진 학생증 카드 홀더였다. 진혁은 지문이 훼손되지 않도록 자신의 오토바이 가죽 장갑을 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카드 홀더를 집어 올렸다. 겉면의 플라스틱은 깨져 나갔지만, 내부의 신분증은 온전했다.
[S대학교 화학과 2학년 한소윤]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밝은 미소를 짓던 소녀가 방금 전 범인의 어깨에 짐짝처럼 들려 어둠 속으로 납치된 것이다.
진혁은 카드 홀더를 손아귀에 꽉 쥐었다. 가죽 장갑 틈새로 느껴지는 단단한 감각이 마치 그녀의 가녀린 구조 요청처럼 느껴졌다.
‘한소윤…….’
“벽에 걸린 거울 조각 말이에요.”
세아가 카메라를 내리며 옹벽에 붙은 거울 조각을 가리켰다.
“이건 범인이 일부러 남겨둔 게 분명해요. 첫 번째 사건 때처럼, 자신의 살인 의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장치예요. 범인은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이 표식을 남겨두는 걸 포기하지 않았어요. 옹벽에 미리 철사까지 감아서 걸어둔 걸 보면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에요.”
진혁은 말없이 거울을 응시했다. 깨진 유리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흐릿한 눈망울 너머로, 묵직한 통증이 다시금 명치끝을 찔러왔다. 범인의 시야와 동조되었던 감각의 찌꺼기가 뇌리에 박혀 있었다.
범인은 급하게 달아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추격자들의 존재를 즐기고 있었다.
웅- 웅- 웅-!
멀리 큰길가에서 요란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가쁜 적색과 청색의 경광등 빛이 골목 초입의 가로등 기둥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골목길 비명이나 오토바이 소음을 듣고 신고한 것이 분명했다.
“경찰이에요. 진혁 씨, 가야 해요!”
세아가 진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우리가 여기 남아 있어 봤자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당신 오토바이 번호판도 그렇고, 민간인이 살인 현장에 먼저 들어와서 단서를 훼손했다고 의심만 받을 뿐이에요. 일단 피해요!”
진혁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 경찰에게 붙잡혀 조서를 쓰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면, 납치된 한소윤을 구할 기회는 영영 사라질 터였다.
두 사람은 골목을 뛰어 빠져나와 덤불 속에 숨겨두었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진혁이 시동을 걸자마자 골목 초입으로 순찰차 한 대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들이닥쳤다. 진혁은 라이트를 끈 채,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주택가 계단 샛길로 핸들을 꺾었다. 오토바이는 야생동물처럼 날렵하게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아슬아슬하게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람을 뚫고 오토바이가 도착한 곳은 진혁이 살고 있는 낡은 옥탑방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진혁은 참았던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긴장이 풀리자 억눌러왔던 동조의 부작용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진혁 씨! 괜찮아요?”
세아가 급히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진혁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진혁의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이마와 목덜미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호흡이 가쁘고 거칠었다. 그는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헐떡였다.
“으윽…… 하아…… 헉……!”
“잠시만요, 가만히 있어요.”
세아는 방구석에 있는 싱크대로 달려가 대야에 물을 받고 수건을 적셔왔다. 찬 수건을 진혁의 이마에 얹고, 그의 떨리는 손을 꽉 잡아주었다. 사내의 손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동조라는 게…… 이렇게 몸을 망가뜨리는 거였나요?”
세아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우려와 연민이 담겨 있었다. 특종을 캐내기 위해 접근했던 첫 만남의 경계심은 이미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고통과, 그것을 감내하며 범인을 쫓는 사내의 절박함은 그녀의 기자 정신을 넘어 인간적인 울림을 주고 있었다.
진혁은 숨을 헐떡이며 세아의 손을 굳게 쥐었다.
“한소윤 씨…… 아직…… 아직 살아있을 겁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예요? 현장의 핏자국은 꽤 많았는데…….”
“그놈의 살의가…… 느껴졌습니다.”
진혁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세아를 바라보았다.
“범인은 현장에서 여자를 죽이지 않았어요. 만약 죽일 생각이었다면 골목길에서 끝냈을 겁니다.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피해자를 짊어지고 선로를 건너 도망칠 이유가 없어요. 첫 번째 피해자 김민지 씨 때처럼…… 자신의 감금 공간으로 데려간 겁니다.”
세아는 진혁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분석이었다. 거울 살인마는 피해자를 가두어 두고, 거울를 통해 서서히 공포를 극대화하는 과정을 즐기는 기괴한 유희형 범죄자였다.
“그렇다면 한소윤 씨가 살아있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는 뜻이네요.”
“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놈이 거울을 설치하고……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장소를 찾아내야 합니다.”
진혁은 상체를 겨우 일으키며 책상 위에 올려진 한소윤의 학생증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학생증 속의 웃는 얼굴이 마치 자신을 향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아는 굳건한 표정으로 학생증을 집어 들었다.
“한소윤, S대 화학과 2학년.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내 인맥과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털어서 한소윤의 주변 관계를 조사할게요. 범인이 왜 그녀를 타깃으로 삼았는지, 혹시 미행의 흔적이나 원한 관계가 없었는지 알아내겠어요.”
그녀는 진혁의 차가운 손 위에 자신의 따뜻한 손을 포개며 덧붙였다.
“진혁 씨는 일단 쉬어요. 몸이 망가지면 범인을 잡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죽어요.”
진혁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세아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기차 철망 너머로 자신을 비웃듯 바라보던 범인의 안개 낀 실루엣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한소윤의 생사가 걸린 잔혹한 시간 수사의 시침이, 이제 막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