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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5화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5화: 예정된 비명

“하아…… 헉……! 으윽!”

강진혁은 가슴을 찢어발기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심장이 요동치다 못해 갈비뼈를 뚫고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고막을 찢어발기며 울리던 날카로운 이명이 잔인하게 번졌고, 머릿속 뉴런들이 일제히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온몸의 신경이 빳빳하게 굳어 들어갔다.

“강진혁 씨! 정신 차려봐요! 내 말 들려요?”

민세아의 흐릿한 목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득하게 귓전을 때렸다. 그녀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고 뺨을 거칠게 두드렸지만, 진혁의 망막에 박힌 붉은색 시야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어두운 밤길을 무심히 걷는 여대생의 뒷모습. 그녀가 입은 짙은 청색 야구점퍼 등판에는 흰색 글씨로 대문자 ‘S’가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가방에 매달려 덜렁거리던 초록색 곰 인형 키링. 그리고 가죽 장갑을 낀 범인의 손끝에서 퍼런 가로등 조명을 받아 섬뜩하게 빛나던 메스의 차가운 칼날.

칼날이 여자의 하얀 목덜미를 향해 치켜들려지던 그 마지막 찰나의 감각이 진혁의 세포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 살의와 흥분으로 가득 차 가쁘게 몰아쉬던 범인의 호흡이 제 가슴의 통증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허어억……!”

진혁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단말마 같은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흐릿하게 일렁이던 시야 속에서 걱정과 경악이 뒤섞인 민세아의 초조한 얼굴이 서서히 초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주위는 여전히 음산하고 고요한 철거 예정지의 공터였다.

“진혁 씨! 괜찮아요? 구급차라도 부를까요?”

“아니…… 아니요. 부르지 마요.”

진혁은 가슴뼈 부근을 움켜쥔 채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헐떡였다. 그의 손바닥은 이미 차가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세아의 소매자락을 낚아채듯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났다.

“지금…… 지금 당장 가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가다니요? 대체 어디를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부터 해요!”

세아는 바닥에 떨어진 녹음기를 집어 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진혁의 눈동자는 방금 전까지 발작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번뜩이는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건 순수한 공포와, 그에 못지않은 절박함이 만들어낸 광기 어린 눈빛이었다.

“두 번째…… 두 번째 동조가 시작됐습니다. 그놈이 지금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세아의 숨결이 찰나의 순간 멎었다. 그녀는 진혁의 떨리는 어깨를 마주 보며 침을 삼켰다.

“그게 무슨…….”

“S대 과 점퍼입니다. 짙은 청색 야구점퍼였어요. 등판에 흰색 글씨로 대문자 ‘S’가 크게 박혀 있었습니다. 머리는 길게 늘어뜨렸고, 어깨에 맨 백팩 지퍼 고리에 초록색 곰 인형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무선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보며 걷고 있었어요.”

진혁은 뇌리에 박힌 살인마의 시야를 억지로 끄집어내며 속사포처럼 말을 뱉었다.

“그리고…… 길가 전신주에 바랜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서강빌라’라고 적혀 있었어요. 범인은 골목길 모퉁이에 숨어서 그 여자를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메스를 들고 있었고요. 마지막 순간에 칼을 치켜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그 여자는 죽습니다!”

세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졌다. 진혁이 읊조린 단서들은 너무나도 구체적이었다. 대학 과 점퍼, 곰 인형 키링, 그리고 서강빌라. 단순한 망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내의 목소리에 실린 현실감과 묘사의 해상도가 너무나도 높았다.

세아는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전직 사회부 기자로서 다져진 정보 검색 능력이 손가락을 통해 기계적으로 발현되었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서울 시내의 ‘서강빌라’를 빠르게 검색했다.

“서강빌라…… 서울에만 몇 군데가 있어. 하지만 S대 과 점퍼라고 했지?”

그녀는 검색창에 키워드를 조합했다. [S대 서강빌라]. S대학교는 마포구 신수동 일대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신수동 골목길 안쪽에 존재하고 있는,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노후 빌라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서강빌라 - 서울 마포구 신수동 45-XX]

화면 속 지도를 바라보는 세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짜로 있어……. S대학교 바로 뒷골목, 철길 근처 언덕배기에 서강빌라가 존재해. 게다가 S대라면 서강대의 이니셜이기도 하니까 동선이 완벽하게 일치해.”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진혁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낡은 오토바이로 걸어갔다.

“차로 가면 이 시간에 신호가 안 걸려도 20분은 걸려. 하지만 거기는 길이 좁고 꼬불꼬불한 달동네 주택가라 차로는 진입조차 못 해.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세아는 골목길의 인공위성 사진을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20분이면 늦습니다. 범인은 이미 미행을 끝내고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할 시간도 없어요. 가봤자 순찰차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헤맬 게 뻔합니다.”

진혁은 오토바이에 올라타 키를 꽂았다. 엔진이 걸리며 웅장한 진동이 다시 공터를 깨웠다. 그는 오토바이 뒷좌석을 툭툭 쳤다.

“내 오토바이 타요. 지름길로 가면서 골목길 안쪽까지 다이렉트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이것뿐입니다.”

세아는 잠시 망설였다. 오토바이 뒷좌석은 좁고 위험해 보였으며, 진혁이라는 인물을 아직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골목 안쪽의 좁은 공간까지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은 바이크가 유일했다. 무엇보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집념이 그녀의 가슴 밑바닥을 강하게 흔들었다.

“……넘어지기만 해봐요.”

세아는 바이크 핸들에 걸려 있던 낡은 헬멧을 집어 들어 머리에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타 진혁의 어깨를 꽉 쥐었다.

“꽉 잡아요. 험하게 갈 겁니다.”

우르릉-!

진혁은 가속 레버를 힘껏 쥐어 비틀었다. 오토바이는 철거 예정지 공터의 가림막 틈새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가로등 불빛이 쓸쓸하게 번지는 밤의 도로 위로 무섭게 돌진했다.


밤바람이 헬멧 실드를 거세게 때렸다.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자 사방의 풍경이 맹렬한 속도로 뒤로 밀려났다.

진혁은 네비게이션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뒤에 탄 세아가 소리를 지르며 방향을 지시했다.

“여기서 우회전! 지름길이야! 저 앞 사거리에서 신호 무시하고 직진해!”

“알았습니다!”

단기통 엔진의 폭발적인 굉음이 주택가의 침묵을 사정없이 깼다. 진혁은 이륜차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차량 사이를 칼치기로 파고들었고, 보도블록 경계석을 타넘으며 최단 경로를 개척해 나갔다.

하지만 속도가 올라갈수록 진혁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심장의 격통은 멎었지만, 방금 전 시야를 강탈당했던 충격으로 가슴 속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욱신거렸다. 헬멧 내부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을 찔렀고, 거칠게 바이크를 눕힐 때마다 심장이 가쁘게 요동치며 이명이 이따금씩 고막을 찔렀다. 핸들을 잡은 그의 두 손끝은 온도가 뚝 떨어진 것처럼 싸늘하게 식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등등하게 피어오르던 범인의 사냥감에 대한 집착과 살의가 잔상처럼 제 신경망을 어지럽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마치 자신이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포식자가 된 것 같은 기분 나쁜 동질감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진혁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 불쾌하고 불길한 감각을 털어내려 애썼다.

“진혁 씨! 정신 똑바로 차려! 앞에 공사 표지판 있어!”

세아의 다급한 외침에 진혁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움켜쥐었다. 바이크의 뒷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졌다. 쇠파이프로 가로막힌 도로 공사 현장 직전, 진혁은 바이크를 가차 없이 기울여 좁은 틈새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가로등 불빛 속으로 파고들었다. 세아의 가쁜 숨소리가 헬멧 너머 진혁의 등판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앞으로 300미터! 저 언덕길만 넘으면 신수동 주택가야!”

세아가 소리쳤다.

언덕을 오를수록 길은 급격하게 좁아졌다. 양옆으로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골목을 미로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가로등 조명은 드문드문 켜져 있어 골목 구석구석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철길 옆 언덕배기에 이르자 오토바이가 덜컹거리며 요동쳤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포장도로와 가파른 경사. 진혁은 기어를 낮추며 엔진의 토크를 최대한 끌어올려 언덕을 치고 올라갔다.

마침내, 저 멀리 어둠 속에 잠긴 낡은 건물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저기야! 저 앞 전신주!”

세아가 손가락으로 가리쳤다.

진혁은 오토바이를 길가 덤불 옆에 거칠게 멈춰 세웠다. 그리고 범인에게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재빨리 시동 키를 돌려 껐다.

탈칵.

우렁차게 골목을 울리던 엔진음이 꺼지자, 기분 나쁜 정적이 두 사람을 덮쳐왔다.

진혁은 헬멧을 벗어 시트에 던져두고 골목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세아 역시 숨을 몰아쉬며 헬멧을 벗어 바이크에 걸어둔 채, 손가락만한 소형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히며 진혁의 뒤를 쫓았다.

골목 초입에 우뚝 솟아 있는 낡은 콘크리트 전신주.

세아가 손전등 빛을 전신주 위쪽으로 비추자, 먼지와 때가 꼬죄죄하게 묻은 바랜 플라스틱 팻말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서강빌라]

글씨가 반쯤 지워져 내린 팻말. 진혁이 동조의 시야 속에서 똑똑히 목격했던 바로 그 팻말이었다.

“여기 맞아요…… 그놈이 여기서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어.”

진혁의 가슴이 거세게 방망이질 쳤다. 그는 전신주 주변의 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세아의 손전등 불빛이 아스팔트 바닥을 이리저리 훑었다.

“골목이 사방으로 갈라져 있어. 어느 쪽으로 간 거지?”

세아가 낮게 속삭였다.

과연 어디로 갔을까. 진혁은 눈을 감고 마지막 동조의 잔상을 떠올렸다. 여자는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서강빌라 팻말을 지나쳐 완만한 경사가 진 내리막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범인은 그늘진 벽면에 바짝 몸을 붙인 채 여자의 등 뒤로 그림자처럼 붙어 따라갔다.

“오른쪽 내리막길입니다. 이쪽이에요.”

진혁은 가파른 계단식 내리막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골목길은 바람 한 점 없이 눅눅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버려진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온 시큼한 악취가 코를 찔렀고, 담벼락 위를 기어가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손전등 불빛에 놀라 하악질을 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깐만요, 진혁 씨.”

세아가 갑자기 진혁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왜 그럽니까?”

“저기…… 바닥 좀 봐요.”

세아가 손전등의 조리개를 좁혀 바닥의 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비추었다.

습기 머금은 거친 콘크리트 바닥 위에 무언가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진혁은 젖어 있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초록색 인조 털로 만들어진 조잡한 곰 인형 모양의 키링이었다. 동조의 시야 속에서 여학생의 가방 뒤에서 흔들리던 바로 그 열쇠고리였다.

곰 인형의 한쪽 귀 부분은 거친 시멘트 바닥에 긁혔인지 솜이 터져 나와 있었고, 지퍼 고리에서 강제로 뜯겨 나간 듯 쇠고리가 찌그러져 있었다.

진혁이 떨리는 손으로 곰 인형을 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의 손전등 불빛이 곰 인형이 놓여 있던 자리 바로 옆을 비추었다.

검붉고 끈적한 액체가 거친 시멘트 바닥에 불규칙한 모양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는 그저 검은 물 얼룩처럼 보였지만, 손전등의 차가운 백색광 아래에서는 명백하게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피였다.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굳지 않은, 신선한 혈흔이었다.

“……피야.”

세아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며 전등 빛이 허공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그놈이…… 벌써 습격한 겁니다.”

진혁의 목구멍에서 마른 신음이 튀어나왔다.

두 번째 동조에서 살인마가 메스를 치켜들었던 그 순간, 범행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자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 등 뒤에서 접근하는 살인마의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이 어두운 골목길 모퉁이 어딘가에서 습격을 당해 쓰러졌을 터였다.

그렇다면 범인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피해자를 데리고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진혁은 곰 인형을 꽉 움켜쥔 채 고개를 들어 골목 안쪽을 쏘아보았다.

서강빌라의 붉은 벽돌 옹벽 사이로 뻗어 있는 골목은, 저 앞쪽에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막다른 어둠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주택가의 불빛들은 모두 꺼져 있었고, 마치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이 남겨진 것 같은 기괴한 고요가 골목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 정적을 깨고, 깊은 골목 안쪽 어둠 속에서 아주 가느다란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무언가 단단하고 날카로운 금속이 낡은 붉은 벽돌 벽면을 긁으며 천천히 이동하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였다.

슥…… 슥…… 슥…….

뒤이어 지하실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을 쓸며 지나가는 기묘한 발소리가 다시금 진혁의 고막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혁과 세아는 숨을 흡들이쉬며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손전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깊은 어둠의 심연 속에서, 무언가 차갑고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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