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4화: 깨진 신뢰의 틈
가쁜 숨이 헬멧 실드를 하얗게 물들였다.
오토바이의 가속 손잡이를 쥔 강진혁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엔진은 터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밤의 도로를 질주했지만, 진혁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어둠 속에서 울리던 발소리뿐이었다.
슥…… 슥…… 슥…….
콘크리트 바닥을 쓸며 계단을 올라오던 그 육중하고 차분한 구두 발소리. 그건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찰나 철문 너머로 끼쳐오던 눅눅한 피비린내와 락스 악취 역시 날조된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3년 전의 지하철 참사 이후 자신을 괴롭히던 온갖 이상 증세들 중에서, 이것만큼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진혁은 중앙로역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에 오토바이를 급하게 세웠다.
시동을 끄자 골목을 가득 채우던 엔진음이 뚝 끊기며 적막이 찾아왔다. 진혁은 헬멧을 벗어 바이크 핸들에 걸어두고, 비틀거리며 골목 모퉁이에 있는 작은 24시간 편의점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리문이 열리며 기계적인 환영 음성이 울렸지만, 진혁은 직원의 시선을 피한 채 음료 냉장고로 향했다. 손이 덜덜 떨려 냉장고 문을 여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겨우 생수 한 병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고 카드를 내밀었다.
“500원입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건조한 목소리가 마치 먼 나라의 언어처럼 웅웅거리며 고막을 찔렀다. 카드를 돌려받자마자 진혁은 편의점 밖 가로등 아래로 걸어 나와 생수병의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급하게 들이켠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타들어 가던 가슴을 식혀주었다. 입가로 흘러내린 물줄기가 턱을 타고 떨어졌지만, 진혁은 그것을 닦아낼 여유조차 없었다.
‘도어락 번호가 맞았어.’
성진 세탁소 달력 구석에 적혀 있던 그 네 자리 숫자는, 바로 옆 건물 지하실 철문의 비밀번호가 확실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문을 열었을 때, 어둠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만약 조금만 늦게 문을 닫았더라면. 만약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그 존재와 눈이 마주쳤더라면.
진혁은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름에 몸을 크게 떨었다. 3년 동안 경찰 시험에서 떨어지고 배달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이토록 생생한 죽음의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살인마의 눈을 통해 보았던 그 죽음의 순간들이 이제는 진혁 자신의 숨통을 실제로 조여오고 있었다.
진혁은 젖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든 이 미친 현실에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생수병을 든 채 바이크로 돌아가려던 진혁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골목 입구에서 낡은 은색 택시 한 대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뿜으며 거칠게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내렸다. 물 빠진 데님 재킷에 카메라 가방을 멘 여자, 민세아였다.
그녀는 진혁을 발견하자마자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진혁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오토바이로 향했지만, 세아의 목소리가 골목을 날카롭게 갈랐다.
“거기 서요! 도망쳐봤자 번호판 다 찍혔으니까!”
진혁은 가속 키를 돌리려던 손을 멈췄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민세아를 바라보았다. 세아는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진혁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어두운 계단 아래 철문 앞에서 도어락을 누르고 있던 진혁의 모습, 그리고 겁에 질려 지하실 계단을 뛰어 올라오던 진혁의 얼굴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뒤이어 찍힌 사진에는 그의 오토바이 번호판 숫자가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세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단호했다.
“성진 세탁소 번호판을 달고 도망친 배달원. 그리고 경찰도 모르는 지하실 문을 비밀번호를 누르고 연 사람. 내가 경찰에 이 사진들과 번호판 정보를 넘기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당신은 그 즉시 연쇄 살인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나 공범으로 체포될 거예요.”
“난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렸지만, 세아는 콧방귀를 꼈다.
“아니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 사색이 돼서 도망치죠? 지하실 안에서 뭘 본 거예요? 혹시…… 그 안에 당신 동료라도 있었던 건가요?”
진혁은 입술을 짓씹었다. 세아의 집요함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그녀는 단순히 특종을 쫓는 기자가 아니라,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맹수 같았다. 자신이 여기서 더 도망치거나 침묵한다면, 정말로 살인마의 누명을 쓰고 감방에 처박힐 판이었다.
멀리 대로변에서 윙윙거리는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골목까지 순찰차가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세아 역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진혁을 쏘아보았다.
“경찰에 잡혀서 조서 쓰고 싶지 않다면, 내 말대로 해요. 조용히 얘기할 만한 곳으로 가죠.”
진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편의점 옆, 가림막으로 대충 가려진 어둡고 한적한 철거 예정지 공터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깨진 벽돌과 버려진 쓰레기들이 널브러진 공터는 바람마저 불지 않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해봐요. 그 지하실 비밀번호, 8214는 어떻게 알았죠? 그리고 지하실 안에서 뭘 본 거예요?”
세아는 카메라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다그치듯 물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이미 소형 녹음기가 켜진 채 쥐어져 있었다.
진혁은 공터 구석에 쌓인 시멘트 블록 위에 걸터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이 여자에게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살인마의 시야와 동조된다는 말을 하면 그녀가 믿어줄까?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쫓겨났던 기억이 떠올라 목구멍이 턱 막혔다.
하지만 지금은 세아의 불신보다 공범으로 몰리는 것이 더 급박한 위협이었다. 게다가 세아가 가진 경찰 내부 정보가 없다면, 자신 역시 살인마에게 언제 사냥당할지 모르는 처지였다.
진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직접 본 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장난이에요? 직접 안 봤는데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라…… 그놈의 눈으로 본 겁니다.”
세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녹음기를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놈? 살인마요? 지금 나랑 장난해요?”
“장난하는 걸로 보입니까?”
진혁의 눈동자는 깊고 무거운 피로감과 공포로 침잠해 있었다. 장난을 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아는 전직 사회부 기자였다. 합리성과 증거를 믿는 그녀에게 진혁의 말은 황당무계한 헛소리에 불과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도 겪고 있다는 건가요? 살인마와 텔레파시라도 통한다는 백일몽을 내가 믿을 것 같아요? 차라리 공범인데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게 더 설득력 있겠네요. 아니면…… 당신도 중부서 내부 형사 중 누군가한테 흘려들었거나.”
“피해자 김민지 씨.”
진혁이 나직하게 이름을 뱉었다. 세아의 조롱 섞인 다그침이 뚝 멈췄다.
“그 여자는 지하실 구석,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드럼통 옆에 묶여 있었습니다. 범인은 여자의 얼굴 바로 앞에 깨진 거울 조각들을 세워두었죠. 자신이 죽어가는 공포를 스스로 마주하게 만들려고.”
세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건…… 뉴스에도 대략 나온 사실이에요. 거울 조각이 있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
“그럼 이건요?”
진혁은 세아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현장 바닥에는 시큼하고 끈적한 락스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범인이 피를 지우려고 락스를 들이부었으니까. 그리고 지하실 저 높은 곳에 뚫린 작은 창문 틈새로 빨간색과 파란색 불빛이 번갈아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 골목에 걸린 낡은 노래방 간판의 네온사인 불빛이었죠. 1초에 한 번씩, 파란색이 깜빡이고 뒤이어 붉은 조명이 벽면을 타고 번지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바닥을 흔드는 미세한 진동이 있었습니다. 지하철 환풍기가 작동할 때마다 지하실 전체가 웅웅거리며 떨렸죠. 경찰 조사 보고서에 그런 사소한 진동 소리나 가로등 깜빡임 초 단위까지 적혀 있었습니까?”
세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졌다.
그녀가 아는 정보원에게 들은 미공개 수사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락스 냄새와 노래방 네온사인의 교차 불빛, 그리고 지하실 특유의 미세한 지하 진동까지. 이건 현장에 직접 가보지 않은 이상, 아니, 그 시간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결코 묘사할 수 없는 디테일이었다.
“당신…… 정말로 현장에 있었던 거 아냐? 범인을 도와주고 방조했거나…….”
“내가 정말 범인이거나 공범이었다면, 아까 지하실 문을 열었을 때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겠습니까?”
진혁의 목소리에 서러움과 분노가 묻어났다.
“나도 미치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프더니, 내 머릿속으로 그 미친놈의 시야가 강제로 밀고 들어왔단 말입니다! 그놈이 여자를 칼로 찌를 때, 메스를 쥐고 살점을 도려낼 때의 감각과 쾌감이 내 뇌에 실시간으로 박혔다고요! 내가 왜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 나도 알고 싶어!”
공터의 침묵 속에서 진혁의 거친 숨소리만이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민세아는 멍하니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고통과 절망은 연기로 지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세아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아……!”
갑자기 진혁이 가슴을 움켜쥐며 옆으로 쓰러졌다. 생수병이 바닥을 굴렀다.
“강진혁 씨? 왜 그래요?”
세아가 놀라 녹음기를 떨어뜨리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진혁은 흙바닥을 뒹굴며 가슴뼈 부분을 미친 듯이 긁어댔다. 심장이 거대한 기계 프레스에 눌려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이었다.
삐이이이이이-!
귓전을 때리는 이명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솟구쳤다. 뇌 속의 뉴런들이 일제히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운 열감이 머리 전체를 지배했다. 눈앞의 어두운 공터 풍경이 급격하게 흐려지더니, 붉은 피막이 씌워진 것처럼 사방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동조였다.
예고도 없이, 두 번째 동조가 강제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하아…… 헉…… 아악!”
진혁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아는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진혁에게는 그녀의 목소리가 수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진혁의 시야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어두운 철거지 공터는 사라지고, 낯선 공간의 풍경이 그의 망막에 선명하게 들어찼다.
노란색 가로등 불빛이 부옇게 번지는 밤의 주택가 골목길.
진혁(살인마)의 시선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오른손이 보였다. 그 장갑 낀 손끝에는 잘 닦여진, 차갑고 날카로운 은색 메스가 들려 있었다. 가로등 조명을 받아 은빛 칼날이 잔인하게 번뜩였다.
살인마는 골목 모퉁이에 몸을 숨긴 채, 저 멀리 앞서 걸어가고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여자의 어깨에 매달린 백팩에 달린 초록색 곰 인형 열쇠고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거렸다. 그녀가 입은 짙은 청색 야구점퍼 등판에는 흰색 글씨로 대문자 ‘S’가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인근 대학교의 과 점퍼가 분명했다.
여자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귀에 무선 이어폰을 낀 채, 작은 모퉁이 전신주 옆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다. 전신주에는 ‘서강빌라’라고 쓰인 바랜 팻말이 붙어 있었다.
살인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느낌이 진혁의 얼굴 근육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가쁜 호흡과 터질 듯한 살의(殺意)가 진혁의 영혼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범인의 발걸음이 나직하게 아스팔트를 밟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서가는 여자의 뒤를 쫓아 좁혀가는 거리.
진혁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성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살인마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공포에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 돼…… 멈춰…….’
“강진혁 씨! 정신 차려봐요! 내 말 들려요?”
현실의 공터에서 민세아가 필사적으로 진혁의 뺨을 치며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한 채 차갑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살인마의 메스가 밤공기를 가르며 이어폰을 낀 채 걷고 있는 대학생 여자의 목덜미를 향해 서서히 치켜들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