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3화: 진동하는 단서
오토바이의 가속 레버를 움켜쥔 손등 위로 굵은 핏대가 도드라졌다. 엔진의 굉음이 매서운 비명처럼 밤공기를 찢어발겼지만, 강진혁의 귀에는 그저 웅웅거리는 이명으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헬멧 실드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은 속도를 높일수록 기괴하게 이지러졌다.
중앙로역 사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아스팔트 위의 풍경은 흐릿하게 번져갔다. 거대한 지하철역 입구를 둘러싼 환한 가로등 빛과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차량의 전조등 불빛들이 진혁의 눈동자 속에서 잔인하게 일렁였다.
코끝을 스치는 탁하고 매캐한 공기. 실제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3년 전, 그 지옥 같았던 화재 참사의 현장에서 폐허 가득 들어찼던 그 유독가스의 기억이 뇌의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들이쉬는 숨마다 폐가 타들어 가고, 사방에서 살려달라 울부짖으며 옷자락을 붙잡던 차가운 손길들이 환영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하아…… 헉…… 흑…….”
목구멍이 모래를 가득 삼킨 것처럼 까끌거렸다. 진혁은 턱끈을 조여 매고 있던 헬멧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지며 길가에 오토바이를 급하게 세웠다. 바이크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가 맥없이 풀려 아스팔트 위로 나뒹굴 뻔했다. 가로수 몸통을 겨우 붙잡은 채, 그는 허리를 숙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가슴뼈를 뚫고 나올 기세로 요동쳤다. 손가락 끝은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트라우마는 뇌의 망각보다 신체의 기억이 훨씬 더 질겼다. 3년 동안 필사적으로 도망쳐왔던 이 중앙로역의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세포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그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다.
진혁은 오른손을 들어 제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찰싹-!
서늘한 밤공기 사이로 매서운 마찰음이 퍼져나갔다. 얼떨떨한 통증이 뺨을 타고 올라오며 겨우 초점이 어긋나던 시야가 맑아졌다.
“정신 차려, 강진혁…….”
진혁은 스스로의 뺨을 한 번 더 거칠게 갈겼다. 벌겋게 부어오르는 뺨의 매서운 열감 덕분에 머릿속을 헤집던 공황의 늪에서 간신히 발을 빼낼 수 있었다.
어제 죽은 그 여자, 김민지. 그녀는 차가운 보일러실 바닥에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공포를 직시하며 숨을 거두었다. 만약 자신이 어제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미친놈 취급을 받더라도 경찰서 문을 부수고 들어갔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끔찍한 자책감이 진혁의 등덜미를 사정없이 떠밀고 있었다. 도망치는 비겁한 자로 평생을 악몽 속에 사느니, 몸을 던져서라도 이 끔찍한 연쇄를 끊어야 했다. 3년 전의 방관은 한 번으로 족했다.
진혁은 거칠게 숨을 고른 뒤, 헬멧을 바이크 핸들에 대충 걸어두고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중앙로역 12길. 지하철역 뒤편에 자리 잡은 이곳은 화려하게 번쩍이는 도심의 대로변과 달리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노후 주택가였다. 붉은 벽돌이 허옇게 바스러져 가는 다세대 주택들과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뒤엉킨 전선들이 좁은 밤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골목 안쪽에 켜진 가로등 하나가 수명이 다했는지 찌르르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깜빡였다. 진혁은 스마트폰의 지도를 켜고 어두운 골목길을 밟아 들어갔다. 낮 동안 아스팔트가 머금었던 뜨거운 지열이 눅눅한 밤바람과 뒤섞여 숨이 턱턱 막히는 불쾌감을 자아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골목 안쪽 외딴 모퉁이에서 마침내 낡아빠진 간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진 세탁소]
글자 칠이 반쯤 벗겨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낡은 아크릴 간판이었다. 세탁소의 철제 셔터는 굳게 닫혀 있었고, 셔터 하단부는 붉은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진혁은 세탁소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기억해내야 했다. 어제 그놈의 시야를 통해 자신의 뇌세포에 강제로 주입되었던 미세한 감각들을.
첫 번째 동조가 일어났을 때, 지하실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흘러나오던 어떤 신호들이 분명히 있었다. 단순히 여자의 비명과 범인의 목소리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규정짓는 배경음처럼 나지막이 깔려 있던 소음이 있었다.
쿵-, 쿵-, 탈컥.
낮고 묵직한 주파수의 진동. 처음에는 대형 세탁기나 건조기가 돌아가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세탁소는 완전히 꺼져 있고, 주변은 고요했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세탁소 기계 소리가 아니었다.
진혁은 귀를 쫑긋 세우고 미세한 소리에 집중했다. 골목길 특유의 적막과 멀리서 들려오는 대로변의 차 소리 사이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묘한 울림이 잡혔다.
우웅-.
아주 미세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울리는 지하 환풍기의 구동음이었다. 지하철역 배기구에서 나오는 거대한 바람과 진동이 이 좁은 골목 바닥을 타고 미세한 주파수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동조의 시야 속에서, 여자의 얼굴 앞 거울 너머 저 높은 곳에 뚫린 좁은 창문 틈새로 언뜻 비쳤던 불빛이 있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불규칙하게 교차하며 벽면을 물들이던 기분 나쁜 광원.
진혁은 눈을 뜨고 세탁소 주변의 낡은 건물들을 하나씩 올려다보았다.
세탁소에서 불과 대여섯 걸음 떨어진 상가 건물 2층에 낡은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거의 폐업 직전인 듯한 ‘대일 노래타운’의 간판. 파란색 글씨 중 일부가 깨져 나가 불이 꺼져 있었고, 남은 빨간색 조명과 함께 붉고 푸른 안개처럼 허공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네온사인 바로 아래, 건물 반지하로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창문이 보였다. 창살이 촘촘하게 박힌 낡은 철제 창문. 그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틀림없다. 그놈이 살인을 저지른, 혹은 그 현장으로 드나들었던 통로가 바로 이 골목 안에 실존하고 있다.
진혁이 반지하 창문 쪽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려던 찰나였다.
“거기서 뭐 하시는 거죠?”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진혁은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켰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 어귀,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물 빠진 데님 재킷에 면바지 차림, 어깨에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녹음기와 수첩을 든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진혁을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어…… 그게…….”
진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배달을 왔는데…… 번지수가 헷갈려서 지도를 좀 보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진혁의 위아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오토바이 헬멧도, 배달 가방도 없는 맨몸의 사내. 게다가 뺨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고 이마와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녀의 눈빛에 의구심이 더 짙어졌다.
“배달 음식도 없고, 오토바이도 안 보이는데 창문 밑을 기웃거리며 지도를 보신다뇨? 그것도 오늘 아침에 살인 사건이 난 이 끔찍한 골목에서요.”
여자의 말에 진혁의 전신이 굳어졌다.
“살인 사건이라니요?”
진혁은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하려 했으나 떨리는 목소리까지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여자는 수첩을 가슴에 안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꽤 앳되어 보였지만, 눈동자만큼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그쪽, 아까부터 엄청 불안해 보이고 온몸이 땀 범벅이잖아요. 마치……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가보겠습니다.”
진혁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여자는 민첩하게 움직여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전 기자였던 민세아라고 해요. 지금 이 연쇄 살인 사건을 독자적으로 취재 중이죠. 경찰들은 단순 강도나 치정으로 대충 덮으려고 하지만, 오늘 발견된 피해자 김민지 씨 사건 현장 근처에서 아주 기묘한 단서가 나왔어요.”
민세아. 그녀의 이름이 진혁의 귀에 박혔다.
“기자라면 경찰서에나 가보시지 왜 나한테 이러는 겁니까?”
“경찰들은 내 말을 안 믿어주니까요. 이번 사건 현장의 시신 앞에 깨진 거울 조각들이 있었던 건 뉴스에 나왔으니 알겠죠? 그런데 그 주택가 지하 보일러실 벽에 낡은 달력 하나가 걸려 있었대요. 그 달력에 아주 작게 ‘성진 세탁소 8214’라고 적혀 있었다는 건 모를 거예요. 전직 사회부 기자가 가진 인맥이 그렇게 허접하진 않거든요. 중부서에 아직 내 술을 얻어먹는 형사가 몇 명 남아있어서 알아낸 정보예요. 경찰들은 그냥 세탁소 번호려니 하고 넘겼지만, 난 직감이 왔어요. 이 세탁소 골목에 범인의 진짜 은신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
진혁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어떻게 달력의 내용까지 알고 있는 거지? 경찰 내부의 정보를 빼낼 만큼 집요한 여자였다.
“그쪽도 그걸 아니까 여기를 기웃거린 거 아닌가요? 얼굴색이 완전히 종잇장처럼 변했네요.”
민세아가 진혁의 얼굴에 손전등 빛을 살짝 비췄다.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는 진혁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비켜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진혁은 그녀를 거칠게 밀치듯 스쳐 지나갔다. 민세아가 뒤에서 “잠깐만요! 이름이라도 말해줘요!” 하고 소리쳤지만, 진혁은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 모퉁이를 돌았다.
멀리서 경찰 순찰차의 붉고 푸른 경광등 불빛이 골목 입구를 비추는 것이 보였다. 민세아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틈을 타, 진혁은 어둠이 짙게 깔린 좁은 틈새 골목으로 몸을 날려 숨겼다.
후우, 후우.
진혁은 낡은 슬레이트 벽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골랐다. 민세아라는 여자 기자. 예리하고 위험한 여자였다. 잘못 얽혔다가는 자신의 이 기괴한 ‘동조’ 능력까지 들통날 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흘린 정보는 명확했다. 범인은 현장에 성진 세탁소 달력을 남겼고, 그 뒷자리는 ‘8214’였다.
그 숫자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한 세탁소 전화번호 뒷자리인가? 아니면 범인이 의도적으로 남긴 어떤 표식인가.
진혁은 조심스럽게 골목 안쪽을 다시 살폈다. 민세아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의 무전기 소리가 멀리서 웅웅거렸지만 이 깊은 안쪽 골목까지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진혁은 세탁소 바로 옆 건물, 지하실로 이어지는 낡은 철제 문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까 창문을 보았던 그 건물의 모퉁이를 돌자, 어두운 계단 아래 철문이 숨겨져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위에는 낡은 철문에 어울리지 않게 비교적 깨끗한 디지털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도어락 화면이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감춘 채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혁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만약, 달력에 적힌 그 숫자가 이 문의 비밀번호라면? 세탁소 번호를 은밀히 공유하던 범인이 이 문의 비밀번호를 그 숫자로 설정해 둔 것이라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진혁은 도어락 화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기계음과 함께 파란 패드 조명이 어둠 속에서 켜졌다.
[ 8 ]
[ 2 ]
[ 1 ]
[ 4 ]
손끝이 번호판에 닿을 때마다 삑, 삑 하는 소리가 침묵을 날카롭게 깼다. 마지막 4를 누르고 별표를 누르려는 찰나,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극도의 긴장감이 밀려왔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띵동댕동-.
철컥.
잠금장치가 내부에서 풀리는 육중한 쇳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퍼졌다.
문이 열렸다.
진혁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경악과 소름이 동시에 뇌리를 세차게 강타했다. 진짜였다. 달력에 적힌 숫자는 이 지하실의 도어락 비밀번호가 맞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문을 조금 밀었다.
끼이익-.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틈이 벌어졌다. 그 틈새로 훅 끼쳐오는 지하의 공기는 지독하리만큼 익숙한 냄새를 담고 있었다.
눅눅한 콘크리트 먼지, 오래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미세하게 풍기는 락스 냄새와 비릿한 쇠 냄새.
첫 번째 동조의 순간, 살인마의 오감을 통해 뇌에 직접 주입되었던 바로 그 피비린내와 소독약이 섞인 악취였다.
이곳이다. 살인마가 피해자를 감금하고 메스를 휘두르며 자아도취에 빠졌던 그 지옥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진혁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으려 했다.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려던 그 순간이었다.
지하 계단 아래, 빛 한 점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달각-.
무언가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뒤이어, 아주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육중한 발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슥…… 슥…… 슥…….
구두 굽이 거친 시멘트 바닥을 끄는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감지되었다.
설마, 그놈인가? 살인마가 아직 이 지하실에 남아 있는 건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극심한 공포가 진혁을 덮쳤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철문을 거칠게 당겨 닫았다.
쾅-!
철문이 닫히자마자 디지털 도어락이 띠리릭, 하며 강제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라와 어두운 골목길로 달렸다. 허겁지겁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등 뒤로 차가운 시선이 내리꽂히는 착각에 소름이 온몸을 감쌌다.
이곳에 범인의 흔적이, 아니 범인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로변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도달한 진혁은 황급히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단기통 엔진의 폭발음과 함께 바이크가 어둠을 뚫고 도로 위로 튀어나갔다.
백미러 속으로 흐릿하게 멀어지는 중앙로역의 가로등 불빛들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살인마의 찌그러진 눈동자처럼 어둠 속에서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