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2화: 환상과 실재
삐이이이-
고막을 멀게 할 기세로 귓가를 헤집는 이명이 지독했다.
강진혁은 늪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리다 수면 위로 간신히 솟구치듯 눈을 떴다.
초점이 어긋나 두 겹, 세 겹으로 흩어지던 세상이 느리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차갑게 흐려진 형광등 불빛과 무채색의 하얀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이어 감각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코끝을 마취시킬 듯이 밀려드는 특유의 알싸한 알코올 소독약 냄새와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
그것만으로도 진혁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누워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병원 응급실이었다.
“어…… 윽…….”
신음 소리와 함께 뻣뻣하게 굳어버린 척추를 비틀어 일으키려 하자, 왼쪽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칼날로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무섭게 덮쳐왔다.
진혁은 비명을 삼키며 가슴뼈 부근을 움켜쥐었다. 거대한 쇠사슬로 가슴 전체를 꽁꽁 동여맨 것 같은 물리적 압박감에 숨이 턱턱 막혔다.
그의 불안정한 맥박과 연동된 머리맡의 환자 감시 모니터가 삑, 삑, 삑, 소리를 내며 속도를 높여 신경질적인 경고음을 울렸다.
“환자분, 움직이지 마세요! 아직 링거액이 반도 안 들어갔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진혁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청진기를 목에 걸고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차트를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진혁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손을 뻗어 의사의 펄럭이는 소매자락을 힘껏 움켜쥐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손끝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렸지만, 의사를 붙잡은 손가락의 힘만큼은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의사 선생님…… 진짜예요. 제가 방금 본 거, 절대 꿈이나 헛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 진혁 씨, 일단 진정하시고 심호흡부터 하세요.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고…….”
“아닙니다! 제 말을 들으셔야 해요! 똑똑히 기억납니다. 어떤 지하실이었어요. 천장에는 백열등이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여자가 의자에 묶여 입이 막혀 있었습니다. 손가락이 하얗고 긴 남자가…… 그 여자의 뺨을 날카로운 메스로 긋더니, 피를 보며 웃었어요. 그러고는 얼굴 앞에 거울을 들이밀고…….”
진혁의 거친 목소리가 울컥 쏟아지며 잘게 갈라졌다.
방금 전 시야가 두 갈래로 나뉘어 강제로 주입되었던 그 끔찍한 살해 현장의 감각이 여전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전율처럼 새겨져 있었다.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을 파고들던 칼날의 미세한 저항감, 사방으로 번지던 비릿한 혈향, 그리고 방 안에 울려 퍼지던 범인의 그 기괴하게 변조된 낮은 웃음소리까지.
그 모든 감각이 마치 지금도 이 응급실 침대 위에서 똑같이 진행 중인 것처럼 생생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진혁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며 소매를 정리했다.
작은 펜라이트를 꺼내 진혁의 눈동자에 비추며 반응을 살피는 의사의 눈빛에는 깊은 동정과 안타까움, 그리고 진혁이 지난 3년간 너무나도 뼈저리게 겪어왔던 불신이 짙게 배어 있었다.
“동공 반응은 정상으로 돌아왔군요. 진혁 씨,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 이후로 우리 병원에서 처방해 드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약, 최근에 임의로 거르시거나 줄이신 적 있나요?”
“아니요! 매일 밤마다 꼬박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단 한 번도 거른 적 없어요!”
“갑작스러운 심박수 증가와 호흡 곤란, 그리고 동반되는 섬망은 전형적인 중증 공황 발작의 증상입니다. 게다가 오늘 환자분이 쓰러지신 장소가 중앙로역 바로 뒤편 골목이더군요. 그 사고 이후로 그 부근에 발을 들이신 건 이번이 처음이시죠?”
진혁은 말문이 막혔다. 의사는 그의 무거운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듯 조용히 차트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사람의 뇌는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의 현장이나 그와 유사한 환경에 갑작스럽게 노출되면,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공포와 고통을 아주 구체적인 시각 정보로 왜곡해서 재구성하곤 합니다. 잔혹한 범죄 장면이나 지하실 같은 환각 역시, 과거 화재 현장에서 본 타인의 고통과 자신이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투사되어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의사는 가볍게 진혁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오늘 밤은 일단 응급실에서 수액을 다 맞고 안정을 취한 뒤 아침에 퇴원하세요. 약 용량은 단계적으로 늘려 처방해 놓겠습니다. 당분간 배달 일은 완전히 쉬시고, 머리를 비우는 게 환자분에게 가장 좋습니다.”
멀어져 가는 의사의 단호한 등 뒤로 진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
미친놈.
결국 의사의 전산 차트에 기록될 자신의 이름 옆에는 그 무거운 낙인이 찍힐 터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망상증.
하지만 진혁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뇌가 급조해 낸 거짓 환각이라 하기에는 메스의 차가운 철분 냄새와 뺨이 찢어지던 순간의 기묘한 떨림이 제 손끝에 너무나도 뚜렷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새벽이 깊어 서리가 내릴 듯한 시각에야 퇴원 수속을 마치고 응급실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도심의 새벽 공기는 여름답게 눅눅하고 후텁지근했지만, 진혁의 척추뼈를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어두운 주차장 모퉁이에 세워두었던 낡은 오토바이에 걸터앉았다.
열쇠를 꽂아 시동을 걸자, 단기통 엔진의 투박하고 무거운 진동이 핸들을 타고 손바닥 전체로 거칠게 흘러들었다. 진혁은 멍하니 핸들을 쥔 자신의 손가락끝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짓눌리고 잔상처가 가득한, 보잘것없는 배달 라이더의 손이었다.
하지만 그 핸들의 촉감 위로 메스를 쥐고 여자의 부드러운 피부를 짓이기던 살인마의 깨끗하고 창백한 손가락뼈가 자꾸만 겹쳐 보여 속이 메슥거렸다.
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을 켰다.
[실종], [납치], [감금], [중구 강력 사건]
온갖 키워드를 번갈아 입력하며 수십 번이고 새로고침을 반복했지만, 최근 몇 시간 동안 올라온 속보나 뉴스 어디에도 지하실에서 벌어진 기괴한 살인 사건에 대한 보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내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그리고 어젯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머릿속에 간신히 박아 넣었던 유일한 텍스트를 입력했다.
[성진 세탁소.]
전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진 세탁소 중, 서울 중구 중앙로역을 기준으로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었다.
[성진 세탁소 - 서울 중구 중앙로12길……]
화면 위에 찍힌 붉은색 핀을 바라보는 진혁의 동공이 잘게 파르르 떨렸다.
중앙로역.
그 이름 석 자는 진혁에게 있어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이자, 매일 밤 자신을 검은 유독가스 속으로 끌고 들어가 목을 조르는 악몽의 근원이었다. 3년 전, 역내를 가득 채웠던 시꺼먼 유독가스와 살려달라며 옷자락을 붙잡던 사람들의 손길, 그리고 살기 위해 그 차가운 손들을 뿌리치고 도망쳤던 스스로의 비겁함.
진혁은 그날 이후로 중앙로역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배달 동선이 그 지역 근처로 잡히면 수수료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즉시 주문을 다른 라이더에게 넘기며 도망치듯 살아왔다.
“그래, 꿈이야.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니까 별 해괴한 소설을 다 쓰는 거지.”
진혁은 스스로를 세뇌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스마트폰 화면을 거칠게 꺼버렸다.
그는 기어를 넣고 클러치를 천천히 풀었다. 오토바이가 어두운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했지만, 가슴 한가운데에 무거운 쇳덩이처럼 가라앉은 불안과 찜찜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대낮의 섭씨 34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가차 없이 아스팔트를 불태우고 있었다.
진혁은 땀에 절은 헬멧 속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쉴 틈 없이 오토바이를 몰았다. 조금이라도 몸을 쉬게 하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불길한 기억들이 자신을 좀먹을 것만 같아, 일부러 체력을 극한까지 소모하려 애썼다.
그러나 신호 대기에 걸릴 때마다, 혹은 음식을 수령하기 위해 가게 앞에 서 있을 때마다 그의 오른손가락은 어느새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인터넷 세상은 여전히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메인 화면은 가십거리 뉴스들과 시끄러운 정치 기사들로 가득했다.
진혁은 허탈한 헛웃음을 지으며 액정을 껐다.
‘거봐, 헛소리였잖아. 진짜 사람이 죽었으면 벌써 속보로 도배가 됐겠지.’
그렇게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인 진혁은 늦은 점심을 대충 때우기 위해 단골 라이더들이 자주 찾는 허름한 기사식당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낡은 에어컨이 털털거리는 소음을 내며 미지근한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고, 실내에는 구수한 청국장 냄새와 음식 냄새가 꽉 들어차 있었다. 진혁은 식당 구석진 자리에 헬멧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았다. 물통에서 컵에 물을 가득 따르고 들이켜려던 찰나, 식당 벽면에 비스듬히 매달린 오래된 TV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차분한 음성에 진혁의 고개가 화살처럼 꺾였다.
[다음은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잔혹한 강력 사건 소식입니다.]
식당 이모가 쟁반에 들고 오던 공깃밥 그릇을 내리려던 순간, 진혁의 전신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화면에 비친 전경은 진혁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낡은,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 연립주택의 입구였다.
[오늘 오전 10시경, 서울 중구 중앙로역 인근의 한 연립주택 지하 보일러실에서 20대 여성 김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이틀 전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던 상태로, 발견 당시 양손이 의자에 단단히 묶여 있었으며……]
쨍그랑-!
진혁의 손에 쥐여 있던 물컵이 매끄러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바닥에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날카로운 깨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며 엎질러진 차가운 물이 진혁의 운동화를 축축하게 적셨다. 식당 안의 다른 기사들과 이모가 흠칫 놀라 진혁을 쳐다보았지만, 진혁은 그 시선들을 단 한 털 끝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온 신경은 터질 듯한 크기로 눈동자에 맺힌 뉴스 화면에 완전히 못 박혀 있었다.
리포터의 등 뒤로 노란색 경찰 폴리스 라인이 어지럽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차례로 뜨는 피해자의 신원과 특이 사항. 26세,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민지.
[특히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직후, 시신의 바로 앞에 피해자의 죽어가는 공포를 투영하듯 깨진 거울 조각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경찰은 범인이 독특한 정신 상태를 가진 인물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거울…….”
진혁의 입술 새로 하얗게 바랜 바람 같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현장에 남겨진 거울 조각.
의자에 결박된 채 눈물로 얼룩진 눈을 깜빡이던 여자.
그리고 눅눅하고 어두운 지하실의 분위기까지.
모든 정황이 이가 맞물리듯 정확하게 일치했다. 어제 응급실에서 자신이 의사에게 핏대를 세우며 호소했던 그 끔찍한 살육의 현장은, 그의 뇌가 만들어낸 미친 망상이 아닌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실제 살인이었다.
강진혁은 진짜 살인마의 눈을 빌려, 아무 죄도 없는 한 여자가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결국 숨을 거두는 끔찍한 찰나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유일무이한 생목격자였던 것이다.
“어머, 총각! 괜찮아? 발 조심해, 유리 다 튀었어! 왜 멍하니 서 있어?”
식당 이모가 빗자루를 들고 걱정스러운 투로 다가왔지만, 진혁의 귀에는 웅웅거리는 이명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고전압의 전류에 노출된 것처럼 하얗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만약 어제 자신이 의사의 말을 불신하고, 어떻게든 경찰서로 뛰어들어 그들을 설득했다면?
아니, 그보다 자신이 느꼈던 그 생생한 감각을 믿고, 공포를 무릅쓴 채 곧바로 중앙로역 근처의 성진 세탁소를 찾아갔더라면?
그 가련한 여자는 지금 차가운 부검대 위가 아니라 제 따뜻한 일상 속에 살아 있었을까.
해일처럼 덮쳐오는 억만근의 죄책감이 진혁의 목줄을 강하게 움켜쥐고 죄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진혁은 테이블 위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떨리는 손으로 올려두고는, 비틀거리며 식당 문을 밀치고 뛰쳐나갔다.
정수리를 직사광선으로 때리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흔드는 차가운 오한은 멈추지 않았다.
헬멧을 집어 올린 그의 손바닥은 이미 축축한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살인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범행을 설계하며 도심 속 어디에선가 태연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이 저주받을 이능력이 멈추지 않는 한, 또 다른 타깃이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다시 관전하게 될지도 몰랐다.
비겁하게 눈을 감고 도망치다가 죄책감에 평생을 갉아먹히며 미쳐 죽는 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진혁은 바이크 위에 올라타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 화면을 띄웠다.
어두운 액정 화면 속, 붉게 깜빡이는 [성진 세탁소]의 좌표.
중앙로역.
자신의 꿈과 동료들의 목숨이 잿더미로 변해 묻혀버린 그 잔혹한 기억의 무덤이 마침내 그를 다시 부르고 있었다.
“……간다.”
스스로를 다그치듯 억지로 짜낸 나직한 한 마디를 뱉고, 진혁은 오토바이의 가속 레버를 힘껏 움켜쥐었다.
우르릉거리는 굉음과 함께 튀어나간 오토바이는 뜨거운 지열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를 가르며 중앙로역 사거리를 향해 맹렬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3년 동안 필사적으로 닫아걸었던 자신의 과거로, 그리고 살인마가 남겨놓은 유일한 단서의 어둠 속으로 강진혁은 스스로의 발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