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22화: 가장 깊은 곳의 덫
"도진 형님, 잠깐만요! 손잡이에 손대지 마십시오!"
철문 앞까지 다가가 손잡이로 손을 뻗던 서도진 경감의 움직임이 진혁의 날카로운 외침에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손걸쇠를 쥐려던 도진의 손가락끝이 허공에서 파르르 흔들렸다. 도진은 고개를 돌려 다리를 질질 끌며 세아에게 기댄 채 다가오는 진혁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철문에 뭐가 장치되어 있나?"
진혁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훔쳐낼 새도 없이, 흐릿해지는 시야를 바로잡으려 눈을 홉떴다.
지승현의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철문 뒤편의 금속 메커니즘이 그의 머릿속을 차갑게 스쳐 지나갔다.
"문 손잡이 내부 축에 미세한 인입식 와이어 센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키패드로 보안을 해제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손잡이를 억지로 돌리면, 그 장력이 센서를 당겨 즉각 실린더의 가압 밸브를 파손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돌렸다간 문을 열기도 전에 이 안에서 가스가 터집니다."
세아는 숨을 흡 하고 들이쉬며 진혁을 받친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도진은 들고 있던 플래시의 조도를 낮추고 철문 손잡이 밑의 키홀과 유격을 꼼꼼하게 비추었다.
과연 진혁의 말대로였다. 손잡이 뭉치 안쪽, 아주 좁은 유격 사이로 머리카락보다 조금 더 굵은 초미세 강선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 도사리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미친 놈…… 내부 침입자가 문을 억지로 따고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서 퇴로까지 같이 폭파할 작정이었군."
도진이 잇새로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다.
"그럼 어떻게 열어야 합니까? 키패드 번호도 이 문에는 없는데."
세아가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철문에는 전자 키패드가 없었다. 오직 아날로그식 구식 마스터 열쇠 구멍만이 덩그러니 뚫려 있을 뿐이었다.
"지승현이…… 이 문을 드나들 때 썼던 열쇠가 있을 겁니다. 놈은 그 열쇠를 매번 지니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지하 공동구의 습기 속에서 열쇠가 녹슬지 않도록, 그리고 언제든 자기가 급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근처에 숨겨두었습니다."
진혁이 눈을 감고 지승현의 시야를 다시 한 번 가볍게 소환했다.
머릿속에서 습하고 어두운 벽면이 스쳐 가고, 놈의 붉은 손끝이 닿았던 금속 배전함이 떠올랐다.
"맞은편 벽면을 보십시오. 녹슨 고압 배전함이 있을 겁니다. 그 배전함 오른쪽 모서리 틈새, 배관 뒤쪽에 자석으로 붙여둔 철제 케이스가 있습니다."
도진은 지체 없이 맞은편 벽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어둡고 축축한 고압 파이프들 뒤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고 휘젓자, 둔탁한 자석의 마찰음과 함께 손바닥 크기만 한 은색 틴케이스가 딸려 나왔다. 케이스를 열자 그 안에는 뭉툭한 황동제 열쇠가 들어 있었다.
"찾았다."
도진이 열쇠를 꺼내 철문 열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철커덕,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도진은 진혁이 경고한 장력 와이어를 건드리지 않도록 손잡이는 그대로 둔 채, 플라이어를 이용해 열쇠뭉치 내부의 실린더만을 미세하게 회전시켰다.
끼이이익-.
마치 단단히 물려 있던 톱니바퀴가 풀리듯 둔탁한 금속음이 울리며 철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방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을 맞이한 것은 기분 나쁜 기계의 웅웅거림과 지하 특유의 썩은 이끼 냄새였다.
지하 공동구의 심부, 제4환기통로의 송풍 장치실 바로 옆에 위치한 가스 보관 룸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성인 남성 몸통만 한 크기의 은색 금속 실린더 세 개가 굵은 고압 파이프라인으로 직렬 연결되어 있었다. 실린더 겉면에 붙은 압력계의 바늘은 위험 수치 직전인 적색 눈금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위에 장착된 디지털 디스플레이에는 붉은색 타이머가 숨 막히게 줄어들고 있었다.
10:30:1210:30:11
남은 시간은 약 30분.
"이게…… 지승현이 말한 그 독가스인가요?"
세아가 코를 감싸 쥐며 실린더 장치를 바라보았다.
실린더 밸브 위로 연결된 기포관과 솔레노이드 전기 배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은 흡사 거대한 폭탄을 연상시켰다.
도진이 장치 앞으로 다가서며 허리춤에서 다용도 툴과 펜치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전선들과 압력 감지기, 그리고 디지털 기동 장치의 배선을 들여다보던 도진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단순한 타이머 살포 장치가 아니야. 압력 제어 밸브랑 솔레노이드 전기 스위치가 이중으로 묶여 있다. 이 선들 중 하나만 잘못 끊어도 관로 내부의 압력 균형이 깨지면서 비상 방출 밸브가 강제로 개방되게 해 놨어. 사설 폭발물 처리반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기계식 설계 구조를 모르면 손을 댈 수가 없겠는데."
도진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경찰 생활 20년 동안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었지만, 이토록 정교하고 악의적인 화학 가압 장치는 처음이었다.
"시간이 없는데…… 어떡하죠?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세아가 사방을 둘러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지상에는 이미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있어. 지금 경보를 울려봤자 혼란만 가중될 뿐이고, 무엇보다 경찰 수뇌부가 우릴 수배한 상태라 우리 말을 믿어주지도 않을 거다. 여기서 해결해야 해."
도진이 밸브 하나를 만지려 손을 뻗자, 진혁이 급히 그를 가로막았다.
"잠깐만요. 제 몸을 쓰겠습니다."
진혁이 마비되어 무감각해진 왼팔을 오른손으로 붙잡으며 힘겹게 말했다.
"진혁 씨! 또 동조를 하겠다고요? 방금 전에도 죽을 뻔했잖아요! 더 이상 뇌를 자극하면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올 수도 있어요!"
세아가 진혁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만류했다.
진혁의 콧구멍 밑에는 아까 흘린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눈자위는 붉은 핏줄이 터져 온통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한계를 초과한 상태였다.
"세아 씨, 저도 죽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를 해제하지 못하면, 3년 전처럼 또 많은 사람들이 불꽃 속에 사라질 겁니다. 놈이 비웃는 소리가 제 머릿속에서 계속 들려요. 내 손으로 끝내야만 멈출 수 있습니다."
진혁은 세아를 바라보며 잔잔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세아의 두 손안에 얹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손이었지만, 세아는 그 손을 부서져라 꽉 쥐어 잡았다.
"제가 길을 잃지 않게…… 꽉 잡아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진혁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진혁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두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뇌하수체 부근이 불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진혁의 자아는 지승현의 악의로 가득 찬 뇌 신경망 깊숙한 곳으로 강제로 밀어 넣어졌다.
우우우웅-.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메아리쳤다. 진혁은 지승현이 이 가스 장치를 조립하던 며칠 전의 기억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지승현의 손이 비춰졌다.
그는 어두운 조명 아래서 실린더의 구리 튜브를 납땜하고, 전선을 연결하며 나직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놈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세상을 향한 파괴적인 증오와 뒤틀린 예술적 성취감만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우병준, 강대열…… 너희들이 쌓아 올린 가짜 평화는 이 안에서 가루가 될 거야. 가장 높은 곳에서 추모사를 읊조릴 때, 이 독가스가 너희들의 폐부를 갈가리 찢어발기겠지. 3년 전 중앙로역의 불길을 방관하고 은폐했던 죗값을 이제야 치르게 되는 거다.'
지승현의 마음속 독백이 진혁의 전두엽을 직접 강타했다.
자신의 자아가 놈의 살의와 뒤섞여 더럽혀지는 불쾌한 감각에 진혁은 신음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놈의 손끝을 주시했다.
지승현이 컨트롤러 보드를 만지며 머릿속으로 조작 순서를 되새기고 있었다.
'바이패스 스위치를 먼저 눌러 내부 피드백을 차단한다. 그 후에 실린더 A의 압력 밸브를 시계 방향으로 돌려 가압을 해제한다. 마지막으로 3번 포트의 노란색 솔레노이드 선을 자른다. 만약 노란색 선을 먼저 끊거나 밸브를 돌리지 않으면 내부 압력이 비상 핀을 부러뜨려 가스가 바로 유출된다. 아주 간단한 순서지.'
알아냈다. 해제 순서였다.
그 순간, 지승현의 차가운 기억의 바다 한가운데서 이질적인 균열이 발생했다.
지승현의 사념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 시점의 지승현이 누군가 자신의 뇌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눈치챈 것처럼.
지승현의 어두운 눈동자가 기억의 액자를 뚫고 진혁을 정면으로 쏘아보는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
'……누구냐?'
귀신 같은 목소리가 뇌를 후려쳤다.
동시에 진혁의 온몸에 극심한 정전기 같은 스파크가 튀는 고통이 밀려왔다. 호흡기가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뇌혈관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3년 전 화재 참사의 불길이 눈앞에 일렁이고, 뜨거운 연기가 목구멍을 채우는 환각 속에서 진혁은 자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아아악!"
진혁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지려 했다.
"진혁 씨! 정신 차려요! 내 말 들려요? 진혁 씨!"
멀리서 세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어둠을 찢고 번개처럼 내리쳤다.
세아가 쥐고 있는 손을 통해 뜨거운 온기가 진혁의 무감각한 팔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그 온기가 진혁의 의식을 현실의 해안가로 밀어 올렸다.
허억!
진혁이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왼쪽 눈 가장자리와 코끝에서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져 지하수로 축축해진 바닥을 적셨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지만, 진혁은 도진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짓했다.
"조, 조절기…… 디지털 조절기 우측 하단에 있는 적색 바이패스 스위치를 먼저 켜야 합니다. 그 다음…… 첫 번째 실린더의 압력 밸브를 시계 방향으로 완전히 돌려 압력을 빼고, 마지막으로 노란색 전선을 끊어야 합니다. 순서가 틀리면 즉시 살포됩니다!"
도진은 망설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다용도 툴의 뾰족한 끝으로 디지털 컨트롤러 우측 하단의 좁은 틈새에 숨겨진 적색 토글스위치를 밀어 올렸다.
딸칵.
컨트롤러 화면에 초록색 LED 불빛이 들어오며 쉭쉭거리던 배관 내부의 압력 흐름이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밸브다!"
도진이 가스 렌치를 첫 번째 실린더의 황동 밸브에 물리고 온 힘을 다해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끼기긱, 비명을 지르며 돌아간 밸브가 완전히 잠기자, 실린더 상단의 압력 게이지 바늘이 서서히 녹색 구역으로 떨어졌다.
"이제 마지막 노란색 선이군."
도진이 펜치를 들고 솔레노이드 밸브 뭉치에서 뻗어 나온 노란색 전선 하나를 팽팽하게 당겨 잡았다.
쇠 날이 전선 피복을 파고들고,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구리선이 끊어졌다. 미세한 불꽃이 튀며 선이 끊어지는 순간, 세 사람의 호흡이 멈췄다.
뚝.
그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디스플레이의 타이머가 10:45:03 상태에서 딱 멈춰 섰다.
실린더 장치를 감돌던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멈췄어……."
세아가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진 역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권총 손잡이를 굳게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안도는 3초를 가지 못했다.
삐이이이이-.
갑자기 멈췄던 디지털 컨트롤러 화면이 격렬하게 깜빡이며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붉은색 경고 문구가 빠르게 점멸했다.
[WARNING: REMOTE CONNECTION ESTABLISHED]
[SYS_OVERRIDE: EMERGENCY ACTUATION SEQ INITIATED]
"이게 무슨 소리야?"
도진이 컨트롤러를 쳐다보며 경악했다.
진혁은 피 묻은 안경을 고쳐 쓰며 흔들리는 눈으로 기계를 보았다.
머릿속에서 지승현의 뒤틀린 웃음소리가 이명과 함께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함정입니다…… 바이패스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놈의 개인 단말기로 무선 경보 보고가 전송된 겁니다. 놈이…… 원격으로 해제를 취소하고 강제 살포 시퀀스를 가동시켰습니다!"
컨트롤러의 타이머 숫자가 완전히 새로 바뀌었다.
03:0002:5902:58
"제기랄! 3분밖에 없다! 지상 통신 케이블을 끊어야 해!"
도진이 다급하게 장치 뒷면의 복잡한 통신 모듈을 뜯어내려 손을 뻗었다.
철컥.
그때, 그들이 들어왔던 방 외부 통로 멀리서 무거운 쇠문이 닫히는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이 에코처럼 들려왔다.
세 사람의 시선이 일시에 열려 있는 철문 너머 어두운 복도로 향했다.
진혁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동조의 끈이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뇌세포가 강력한 위협을 감지하고 마구 꿈틀거렸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승현의 차갑고도 거대한 살의의 파동이 이 통로를 타고 밀려오고 있었다.
자박, 자박.
축축하게 젖은 지하 바닥을 짓밟는 묵직한 구두 굽 소리가 배관 터널을 타고 울려 퍼졌다.
한 사람의 발소리였다. 전혀 서두르지 않는, 오히려 먹잇감을 완전히 가두었다는 확신에 찬 여유로운 걸음걸이였다.
"지승현……."
진혁이 갈라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놈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간 게 아니라…… 우리가 들어올 걸 알고 지하 깊숙한 통로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다."
도진이 리볼버의 공이치기를 당기며 철문 옆 벽면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세아는 마비되어 일어서지 못하는 진혁의 몸을 지키듯 앞을 가로막아 서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타이머는 사정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01:1501:14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 너머, 차가운 지하수 물웅덩이가 고인 어두운 복도 끝에서부터 길고 기괴하게 늘어진 한 남자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