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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18화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18화: 거울의 방

빗방울이 차 앞유리를 가차 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소음처럼 고막을 파고들었다.

서울을 벗어난 도로는 칠흑 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전조등 불빛이 허연 안개 장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허망하게 산란했다.

"진혁 씨,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끝났으니까……."

뒷좌석에서 민세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구급상자를 열었다. 그녀의 손가락끝에 묻은 소독약의 알싸한 향이 비린 피 냄새와 섞여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세아는 서도진 경감의 낡은 가죽 외투를 진혁의 어깨에서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찢어진 셔츠 아래로 드러난 진혁의 등은 처참했다. 지승현의 칼날에 스쳐 지나간 자상이 붉은 선을 그리며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주변은 거무죽죽하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흐읍……!"

소독솜이 상처에 닿는 순간, 진혁의 척추가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졌다. 입술을 깨물어 신음을 삼켰지만, 머릿속에서 번쩍이는 충격파는 막을 수 없었다. 이가 맞부딪히며 딱딱 소리가 났다.

"미안해요, 많이 아프죠? 지혈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움직일 수 있어요."

세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으나 손놀림은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녀는 소독약을 쏟아붓다시피 한 뒤 거즈를 대고 압박 붕대를 감아 나갔다.

진혁은 으스러져라 가죽 시트를 거머쥐었다. 눈을 질끈 감았음에도 망막 밑바닥에서 붉은 혈류가 요동쳤다. 세 개, 네 개로 겹쳐 보이는 시야는 어둠 속에서도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운전대를 잡은 서도진 경감의 눈빛이 백미러를 통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거친 턱선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서 경감님, 본청에서 연락은요?"

세아가 붕대를 고정하며 물었다.

"전화기 다 꺼라. 본청 놈들, 이미 우병준 병실 터진 거 알고 내 위치 추적하고 있을 거다. 공식적인 수사 협조나 지원 같은 건 기대도 하지 마. 지금부터 우리는 그냥 무단 침입을 감행하는 가택침입범들이다."

도진이 씩 웃었지만, 그 미소에는 씁쓸한 자조가 묻어 있었다.

"놈이 흘린 자문보고서에 적힌 용인 주소…… 그곳에 지승현의 진짜 본거지가 있다. 우병준을 저대로 둔 채 도망친 지승현도 지금쯤 제 발로 그리로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우리가 놈보다 먼저 들어가서 놈이 숨겨둔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 증거라는 게…… 3년 전 참사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뒷좌석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진혁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쇳소리가 났다.

"그래. 본청 수뇌부와 청우그룹 놈들이 불법적으로 결탁한 연결고리. 그리고 지승현이 그들을 하나씩 지목해 사냥하려 했던 계획표까지. 전부 그곳에 있을 거다. 진혁아, 버틸 수 있겠냐?"

진혁은 피 묻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더듬었다.

요양병원 지하실에서 느꼈던 지승현의 절뚝이는 다리 감각—이 phantom limp의 잔상이 아직도 신경계를 갉아먹고 있었다. 머리를 흔들자 귓가에 차가운 유리를 기계로 깎아내는 날카로운 톱날 소리가 이명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가야 합니다. 내 손으로 놈을 끝내지 않으면…… 제가 놈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진혁의 붉게 충혈된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 어투 속에 실린 낮고 차가운 공기가 세아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세아는 아무 말 없이 진혁의 굳어버린 왼손을 두 손으로 꼭 쥐어 감쌌다. 차갑게 식어가는 진혁의 손끝에서 놈의 온기가 묻어나는 듯해, 그녀는 더 세게 힘을 주었다.


경기도 용인 처인구의 산자락 끝머리.

울창한 잡목림 사이로 삭막한 회색빛 콘크리트 수장고 건물이 안개 속에 유령처럼 솟아 있었다. 가로등조차 켜지지 않은 황량한 길목에는 오직 잡초만이 무성했다.

서 경감은 수장고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숲길 초입에 전조등을 끄고 차를 세웠다.

"세아는 차에 남아 있어라. 나랑 진혁이만 들어간다."

"싫어요."

세아가 단호하게 도진의 말을 잘랐다.

"진혁 씨 지금 앞도 제대로 안 보여요.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고요. 제가 같이 가야 진혁 씨의 눈이 되어줄 수 있어요. 경감님은 경비를 경계하셔야 하잖아요."

도진은 세아의 얼굴에 서린 양보 없는 결의를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해라. 소리 나면 바로 퇴각이야."

그들은 차 문을 아주 살짝만 열어 소음 없이 내렸다.

진혁은 세아의 어깨에 팔을 얹은 채 온몸의 무게를 기댔다. 등을 움직일 때마다 압박 붕대 새로 피가 배어 나오는 축축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왼쪽 다리는 기묘하게 굳어 있어 바닥을 직직 끄는 불협화음을 냈다.

아틀리에의 뒤편 철문 앞에 다다랐다.

경보 장치의 빨간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도진은 주머니에서 만능 공구와 전선 절단기를 꺼냈다. 그는 경비 제어반의 뚜껑을 숙련된 솜씨로 열고 내부 배선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본청 경비과에 있을 때 이런 구형 사설 보안 기기는 닳도록 만져봤지."

도진이 얇은 구리선을 특정 단자에 접촉시키며 바이패스를 시도했다. 탁 하는 아주 작은 스파크 소리와 함께 경보 장치의 빨간 불빛이 초록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꺼졌다. 철컥하며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둔탁한 소리가 밤안개 속으로 퍼졌다.

도진이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차갑고 습한 공기 속에서 기묘한 화학 용제와 에폭시 냄새, 그리고 쇠 냄새가 섞여 풍겼다.

"하윽……!"

진혁이 코를 감싸 쥐며 바닥으로 주저앉으려 했다. 냄새가 머릿속을 파고들자마자 뇌 주름 속에서 잠자고 있던 동조의 회로가 일제히 요동쳤다.

"진혁 씨! 괜찮아요?"

세아가 그를 부축했다.

"괜찮…… 습니다. 놈의…… 냄새입니다. 이 냄새, 놈의 시야 속에서 매번 맡았던 화학 약품 냄새예요."

진혁은 눈을 부릅떴다. 실핏줄이 터진 안구 너머로 녹색조의 기괴한 오버레이 시야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일그러진 형체들과 지승현의 뇌 속에 저장된 수장고의 구조가 하나로 겹쳐지고 있었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 손전등 불빛이 허공을 갈랐다.

사방이 거울이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채운 거대한 전신거울부터, 조각조각 깨진 유리를 모자이크처럼 붙여놓은 기괴한 형태의 거울들, 그리고 볼록거울과 오목거울들이 사방의 벽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그 표면에 부딪혀 수천 개의 기하학적인 빛 조각으로 산란했다. 마치 왜곡된 다면체 방 안에 갇힌 듯한 시각적 압박감이 그들을 덮쳤다.

"미친놈…… 거울에 환장한 놈이 맞군."

도진이 나직하게 혀를 찼다.

진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기괴한 상들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찢어지고 뒤틀린 세아와 도진의 형상들이 거울 면마다 서로 다른 크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수장고의 안쪽, 간이 칸막이로 분리된 중앙 작업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거울 유리를 연마하는 거대한 기계 선반과 날카로운 톱날들, 그리고 그라인더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바닥에는 거울을 깎아내고 남은 미세한 은빛 유리 가루들이 먼지처럼 쌓여 손전등 빛에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여기 좀 봐라."

도진이 작업대 위에 놓인 커다란 철제 캐비닛을 가리켰다. 도진은 손쉽게 캐비닛의 걸쇠를 뜯어내고 안의 서류철들을 끄집어냈다.

세아가 손전등을 비추자, 캐비닛 내부에서 흘러나온 종이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서류가 정체를 드러냈다.

"이건…… 청우건설의 회계 장부 초안이잖아요."

세아가 서류를 빠르게 넘기며 흥분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보세요, 경감님. 3년 전 중앙로역 참사 직후에 청우건설에서 본청 강력부 소속 간부들 명의의 차명 계좌로 매달 수천만 원씩 흘러 들어간 내역이 있어요. 그리고 이건…… 참사 당시 특별수사본부의 최종 보고서 초안이에요. 원본 보고서에는 '시공 결함으로 인한 비상 살수 장치 미작동 및 가연성 내장재 무단 사용'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공식 발표에는 '지하철 전동차 내부의 방화로 인한 우발적 재해'로 세부 원인이 조작되었어요."

"이 개자식들……."

도진이 이빨을 갈았다.

"결국 위에서 수사를 다 덮은 거였어. 청우건설의 부실 공사를 감추기 위해서 본청 윗선이 통째로 뇌물을 처먹고 참사를 단순 방화범의 소행으로 종결시킨 거야. 지승현의 아버지는 그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이었고."

"그뿐만이 아니에요."

세아의 시선이 작업대 옆 보드판으로 향했다.

그 보드판에는 3년 전 참사를 덮었던 관련자들의 관계도가 붉은 실로 촘촘히 얽혀 있었다. 수사 책임자였던 본청의 모 경무관, 청우건설의 우병준 회장, 그리고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정재계 인사들의 얼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미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사진에는 검은색 X표가 처참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우병준 회장의 사진 위에는 빨간색 잉크로 '미완성(Incomplete)'이라는 단어가 거칠게 쓰여 있었다.

그 관계도의 가장 하단, 붉은 실이 마지막으로 뻗어 나간 종착지에 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강진혁, 그리고 민세아.

"……우리 사진이야."

세아의 목소리가 얼어붙었다.

"지승현은 이미 우리를 자기 복수극의 방해물로 보고 있었어요. 아니, 마지막 작품의 재료로 쓰려고 설계해 둔 거예요."

진혁은 그 보드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전등 빛 아래 흐릿하게 겹쳐 보이는 자신의 얼굴 사진을 바라보던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역류했다.

'내 설계를 망친 놈들. 내 눈을 훔쳐보는 더러운 도둑놈들. 기어이 내 신성한 영역까지 기어들어 왔구나.'

"윽, 아악!"

진혁이 머리를 움켜쥐며 옆에 있던 유리 시약병들을 쓸어내렸다. 요란한 파편음과 함께 투명한 화학 약품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진혁 씨!"

"비키십시오…… 세아 씨, 내 몸에서…… 내 머릿속에서 비키라고!"

진혁의 눈동자가 완전히 풀려 있었다. 그의 뇌신경 세포들은 지금 자신을 강진혁이 아닌, 아틀리에를 침입당한 지승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예술적인 복수극을 망쳐놓은 강진혁과 민세아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온몸의 근육을 지배했다.

진혁은 엎어놓은 공구함 틈새에서 녹슨 쇠장돌이를 쥐어 들었다. 힘없이 떨리던 손귀에 괴력이 실렸다.

"지승현…… 죽여버리겠어…… 다 부셔버릴 거야!"

그는 쇠장돌이를 치켜들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전신거울을 향해 휘둘렀다.

깡-! 콰창-!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진혁의 뺨과 세아의 옷자락을 스쳤. 진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지승현으로 보여, 그 유리를 깨부수기 위해 미친 듯이 쇠를 내리쳤다. 깨진 거울 조각마다 충혈된 진혁의 눈과 냉소적인 지승현의 얼굴이 번갈아 반사되었다.

"진혁 씨, 제발 멈춰요! 당신 지승현이 아니야!"

세아가 날아드는 유리 파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혁의 허리를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놔! 놔란 말이야! 놈들이 아버지를 죽였어! 나를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지승현의 목소리로 절규하는 진혁의 몸부림은 거칠었다. 그러나 세아는 팔에 힘을 더 주어 그를 안았다. 따뜻한 그녀의 체온이 진혁의 상처 입은 등에 전해졌다.

"아니야, 진혁 씨. 당신 아버지는 지태환 씨가 아니에요. 당신은 라이더 강진혁이에요. 3년 전 참사 때, 연기 속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바보 같고 착한 경찰 지망생이라고요! 날 봐요, 제발 내 눈을 봐요!"

세아의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진혁의 목덜미에 닿아 흘러내렸다.

순간, 쿵쾅거리던 진혁의 심장이 덜컥 멈추는 듯하더니 뇌리를 지배하던 녹색 시야가 걷히기 시작했다. 쇠장돌이를 쥔 손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쇳덩이가 바닥의 유리 파편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아, 하아…… 세아 씨…… 내가…… 내가 또……."

진혁은 무릎을 꿇으며 세아의 품 안에서 몸을 떨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등의 자상에서 밀려오는 타는 듯한 통증이 다시 전신을 지배했다.

"괜찮아요. 돌아왔으면 됐어요. 당신은 진혁 씨예요."

세아가 떨리는 손으로 진혁의 이마에 묻은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그때였다.

위이잉-.

고요하던 작업실 구석에서 차가운 기계음이 울렸다.

바닥에 놓인 노트북의 슬립 모드가 풀리며 화면이 파랗게 불을 밝혔다. 동시에 천장 모퉁이에 매달려 있던 웹캠의 렌즈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확히 세 사람의 방향으로 회전했다. 렌즈 밑의 빨간색 녹화 표시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노트북의 내장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계음이 섞여 있었지만, 분명 지승현의 나직하고 지적인 어조였다.

도진이 즉각 권총을 뽑아 노트북을 겨누었다.

"지승현…… 어디 있냐!"

도진이 고함을 쳤다.

스피커 너머로 얇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진혁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 렌즈의 검은 구멍 너머로, 자신을 꿰뚫어 보는 지승현의 차가운 시선이 뇌세포에 그대로 각인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장고 외곽 전체에서 둔탁한 소음이 울렸다.

쿵-! 쿵-! 철컥!

두꺼운 방화 셔터와 이중 철문들이 일제히 내려앉으며 아틀리에의 모든 출구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다. 기계식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사방의 거울벽을 타고 반사되어 기괴한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완전한 밀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웹캠의 빨간 불빛만이 먹잇감을 응시하듯 고요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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