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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16화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16화: 두 개의 신원

대학병원 퇴원 수속실의 형광등 불빛은 여전히 강진혁의 망막을 송곳처럼 찔러댔다.

진혁은 검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약국에서 받아온 인공눈물과 안약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붉게 물든 그의 안구는 조금만 빛이 강해도 욱신거리는 격통을 내뿜었다. 안과 전문의의 경고는 차가웠다. 뇌압과 안압의 급격한 상승이 한 번만 더 반복된다면, 시신경이 완전히 파괴되어 영구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였다.

“진혁 씨, 정말 괜찮아요? 조금 더 입원해 있는 게…….”

옆에서 진혁의 가방을 든 민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취 가스에서 완전히 회복한 그녀의 얼굴은 한결 나아졌지만, 진혁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짙은 부채감이 맴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놈이 활개 치고 다니는데 병실 침대에 누워 있을 순 없어요.”

진혁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병원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오토바이가 주차된 구역으로 향했을 때, 기둥 뒤편의 어둠 속에서 눅눅한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도진 경감이었다. 그는 주변을 기민하게 살피더니, 진혁 일행에게 은밀하게 다가왔다.

“경감님.”

도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두 사람을 차벽 사이의 후미진 곳으로 이끌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더 굳어 있었다. 피로가 누적된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깔려 있었다.

“본청 강력부 윗선에서 공식 지시가 내려왔다. 이번 종로 대로변 충돌 사고와 인사동 지하실 건은 단순 납치 미수 및 가해자의 단독 방화 미수로 종결짓는다더군. 피의자 수배는 형식적으로만 올려두고, 현장 강력반 수사팀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도진의 목소리에는 억누른 분노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건 축소…… 예상했지만 너무 빠르네요.”

세아가 차갑게 읊조렸다.

“3년 전 중앙로역 참사가 다시 공론화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자들이 위에 포진해 있어. 청우건설이 당시 리모델링 공사 대가로 정관계 실세들에게 찔러준 뇌물 장부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 무너질 모래성이 한둘이 아니니까.”

도진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겉면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노란색 서류 봉투를 꺼내 진혁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수사 본부 서류철에서 빼돌려 복사한 1998년 청우건설 공사 일지와 초창기 설립 임원 명단이다. 내 공식 수사권은 박탈당했지만,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어. 난 독자적으로 ‘휠체어를 탄 목 뒤 화상 사내’를 추적할 거다. 서울과 경기 일대의 VIP 전용 요양원과 사설 병원들의 입원자 명단을 조사해 보마. 놈들이 내 뒤에 감시를 붙였을 가능성이 크니, 앞으로 연락은 철저히 세컨드 폰으로만 한다.”

도진은 말을 마치고 진혁의 어깨를 툭툭 친 뒤, 다른 방향으로 신속하게 사라졌다.


세아의 선배인 임세용 기자가 남겨둔 개인 작업실. 도심 외곽의 한적한 오피스 빌딩에 위치한 이곳은 놈에게 노출되지 않은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사방에 어지럽게 널린 종이들과 모니터 불빛 사이로, 세아가 서 경감에게 받은 서류를 책상 위에 넓게 펼쳐놓았다. 진혁은 흐릿하게 겹쳐 보이는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선글라스를 벗고 연신 안약을 들이부었다.

“1998년 청우건설 공사 일지…….”

세아가 누렇게 바랜 서류의 첫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3년 전 참사는 중앙로역 화재인데, 놈이 남겨둔 황동 거울에 왜 하필 1998년 일지가 적혀 있었을까요?”

세아는 서류를 빠르게 넘기며 언론사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기자 본능이 가동되고 있었다.

“찾았어요. 1998년은 청우건설이 서울의 대형 지하 시설 및 민관 합작 리모델링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첫해예요. 그리고 그해, 성북동의 한 VIP급 특별 요양원 신축 공사에서 심각한 균열과 붕괴 조짐이 발생했어요. 당시 청우건설은 설계 과실로 책임을 몰아 수석 설계 엔지니어를 숙청했고, 그 엔지니어는 억울함을 호소하다 자살했죠.”

세아가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당시의 낡은 신문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자살한 엔지니어의 이름은 지태환. 그리고 그의 유가족으로 남겨진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지승현이에요.”

“지승현…….”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순간, 머릿속에서 어스름한 통증이 꿈틀거렸다.

“이 사람을 더 조사해 봤어요. 지승현은 현재 미술계와 학계에서 꽤 알아주는 유명 인사예요. 전통 문화재 복원가이자 고미술품 감정사로 활동하고 있죠. 대외적으로는 명망 높은 신사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어요.”

세아가 지승현의 약력과 사진을 띄웠다. 안경을 쓰고 단정한 양복을 입은, 지적인 분위기의 사내였다.

“그는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의 현장에 있었고, 당시 심각한 화상과 다리 부상을 입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에요. 왼쪽 다리를 절뚝인다는 신체적 특징이 있죠. 그리고 인사동 ‘경화당’의 소유주인 유령 법인의 등기 이사 목록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어요.”

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다면…… 대포차를 몰고, 세아 씨를 납치하고, 내 눈을 멀게 하려 했던 그 ‘미러’의 진짜 신분이 바로 이 지승현이라는 겁니까?”

“거의 확실해요. 그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방조하고, 자신을 지옥 같은 화재 구덩이에 몰아넣은 원수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미친 살인극을 준비해 온 거예요. 그리고 그 배후에는…….”

세아가 서류의 맨 뒷장을 펼쳤다.

“1998년 당시 지태환 엔지니어를 협박해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자살로 몰고 간 장본인이자, 3년 전 중앙로역 부실 공사의 실권을 쥐고 뇌물 조작을 주도했던 청우건설의 당시 대표. 현 청우그룹 명예회장 우병준이 있어요.”

“우병준…….”

진혁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속 심장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이 서서히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호흡이 가빠지고, 귓가에 째깍거리는 둔탁한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이 울렸다.

‘또 온다.’

진혁은 본능적으로 책상 모서리를 꽉 쥐었으나, 그의 손가락은 힘없이 풀려나갔다.


쿵-!

뇌리를 사정없이 관통하는 거대한 고전압의 전기 충격이 진혁의 자아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진혁은 책상 위로 상체를 꺾으며 엎어졌다. 입 안쪽의 상처가 터져 비린내 나는 붉은 액체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고, 그의 눈앞은 순식간에 차갑고 붉은 시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섯 번째 동조였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온통 새하얗고 화려한 고급 병실의 내부였다. 방의 한쪽 전면 유리창 너머로 울창한 성북동의 숲과 멀리 산자락을 따라 길게 뻗은 한양도성의 돌성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띡, 띡, 띡-.

정밀한 생체 모니터 장비의 전자음만이 방 안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있었다.

시야가 서서히 아래로 꺾였다. 범인의 시선 끝에는 휠체어에 앉은 채 등을 돌리고 있는 척추가 굽은 노인의 뒷모습이 있었다. 노인의 목덜미는 가혹한 화상의 흔적으로 문드러진 붉은 흉터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산소마스크를 통해 쉭쉭거리는 숨결을 겨우 이어가는 우병준 회장이었다.

스으윽-.

범인의 검은 장갑을 낀 손이 코트 주머니 속에서 작은 청동 거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거울의 뒷면에는 정교한 당초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범인이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노인의 뒤편으로 다가섰다. 왼쪽 다리를 절뚝이는 미세한 박자가 바닥에 깔린 대리석을 긁었다.

기척을 느낀 우병준이 휠체어의 제어기를 조작해 몸을 천천히 돌렸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드러난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극도의 공포로 하얗게 질려갔다.

“너…… 너는…….”

노인의 쉰 목소리가 얇게 떨렸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병실의 공기가 참 차갑고 좋군요. 이 높은 곳에 숨어 계시면, 3년 전 지하도 아래에서 타오르던 그 뜨거운 불길이 닿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범인의 목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정중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도사린 살의는 뇌가 타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지승현…… 네놈이 기어이 나를…….”

“회장님께서 1998년에 제 아버지를 밀어 넣었던 그 지옥, 그리고 3년 전 저와 제 가족을 구덩이에 처넣었던 그 불길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거울을 보십시오. 거울 속에서 회장님의 마지막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똑똑히 응시하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준비한 마지막 전시회의 피날레이니까요.”

지승현이 손에 쥔 청동 거울을 우병준의 눈앞으로 바짝 들이밀었다. 거울 표면에 겁에 질린 우병준의 얼굴이 기괴하게 분할되어 비쳤다.

“결국…… 너희들이 나를 찾아내겠구나.”

우병준은 산소마스크 안에서 피 끓는 신음을 뱉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휠체어는 병상 모서리에 가로막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범인의 손가락이 거울 테두리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곧 시작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그 조소와 함께, 머리를 송곳으로 후벼 파는 이명 소리가 커지며 진혁의 의식은 현실의 지옥으로 튕겨 나갔다.


“진혁 씨! 정신 차려요! 진혁 씨!”

세아가 사시나무 떨듯 떠는 진혁의 어깨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진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코끝에서 주르륵 흘러내린 붉은 선혈이 턱선을 타고 바닥의 카펫을 붉게 물들였다. 시야는 마치 붉은 잉크를 쏟아부은 것처럼 온통 흐릿하고 흔들리는 상태였다.

“성…… 성북동…….”

진혁은 세아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말을 뱉었다.

“성북동의 병원입니다. 전면 유리창 밖으로 성북동 숲이랑 성곽길이 보이는 고지대…… 5층 VIP 병동실이에요. 우병준이 그곳에 있습니다. 지승현이…… 놈이 이미 그 병원 내부를 감시하고 있거나, 잠입할 준비를 마쳤어요.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세아는 눈물을 훔쳐내며 머릿속의 지도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성북동 고지대에서 성곽이 내려다보이는 VIP 전용 사설 병원…… 아너스 요양병원이에요! 청우그룹의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은밀한 격리 요양병원이죠. 일반인은 출입조차 불법인 곳이에요.”

진혁은 비틀거리며 책상을 짚고 일어섰다.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지만, 주머니에서 세컨드 폰을 꺼내 서 경감의 번호를 눌렀다.

두 번의 신호음 끝에 서 경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병준 회장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성북동 아너스 요양병원 VIP 병동 5층입니다. 지승현이 이미 그를 표적으로 삼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저희도 가겠습니다.”

“놈이 단순히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겁니다. 거울을 이용해 비틀린 쇼를 벌일 생각이에요. 늦으면 우병준의 목 뒤가 아니라 가슴에 칼이 꽂히고,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됩니다. 저도 가야만 놈을 볼 수 있습니다.”

진혁은 서 경감의 반대를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선반에 놓인 오토바이 헬멧을 쥐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눈앞의 헬멧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고 허공을 헛짚었다. 급격한 시력 저하로 초점이 세 개로 갈라져 보이는 심각한 복시 현상 때문이었다.

“진혁 씨, 앞도 제대로 안 보이면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요? 죽으려고 환장한 거예요?”

세아가 앞을 막아서며 헬멧을 빼앗았다. 그녀의 눈에는 절박함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여기서 손 놓고 놈이 살인을 완성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란 말입니까!”

진혁이 고함을 쳤다.

세아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자신의 머리 위에 헬멧을 꾹 눌러썼다. 그리고 진혁에게 다른 헬멧을 씌워주며 턱끈을 강하게 조였다.

“내가 뒤에 탈게요. 내가 진혁 씨의 눈이 되어 줄 테니까, 당신은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운전해요. 놈을 잡든, 우리가 길바닥에 처박히든 끝까지 같이 가는 거예요.”

세아의 단호한 눈빛 속에서, 진혁은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 없음을 직감했다.


작업실을 나선 오토바이는 밤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도심 도로 위로 날카로운 배기음을 뿜으며 튀어 나갔다.

하늘에서는 이슬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 헬멧의 쉴드를 뿌옇게 덮어씌웠다. 도로 표면은 밤안개와 빗물이 뒤섞여 기름진 빛을 내며 매끄럽게 젖어 있었다.

진혁의 시야 속에서, 전방 차량의 붉은 미등은 수십 개의 선으로 찢어져 궤적을 그리며 번졌다. 사실상 물리적 시각 정보는 왜곡된 노이즈에 불과했다.

“진혁 씨! 50미터 앞 우회전 차선 비었어요! 그대로 속도 유지해요!”

허리를 꽉 쥔 세아가 진혁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소리쳤다.

진혁은 세아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오토바이의 꼬리를 빗길 위로 미끄러뜨렸다. 동시에, 뇌리 깊은 곳에서 여전히 지직거리며 흘러 들어오는 지승현의 살의 서린 파동을 이정표 삼아 성북동 산자락을 향해 질주했다.

어두운 밤안개와 안개등 불빛 속에서, 저 멀리 웅장하게 서 있는 아너스 요양병원의 음산한 실루엣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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