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15화: 비공식 공조
의식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과정은 마치 진흙 늪 속에서 몸뚱이를 건져 올리는 것처럼 무겁고 더디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불로 지지는 듯한 안구의 격통이었다. 강진혁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뻑뻑하게 굳어버린 눈꺼풀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눈곱과 굳어버린 피딱지가 속눈썹을 옭아매고 있었다.
간신히 실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온통 붉고 흐릿한 세계였다. 하얀 병원 천장의 텍스처는 수십 개의 붉은 실선으로 조각나 번져 보였고, 형광등 불빛은 망막을 사정없이 찔러대며 뇌수를 뒤흔들었다. 안구 내부의 모세혈관이 동조의 과부하로 인해 대거 파열된 탓이었다.
“진혁 씨! 정신이 들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흔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세 개의 붉은 형상이 하나로 겹쳐지며 서서히 실루엣을 갖추어 갔다.
민세아였다. 그녀는 환자복을 입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진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뺨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호흡은 안정적이었고 기운도 어느 정도 차린 듯 보였다.
“세아…… 씨…….”
갈라진 논바닥 같은 목구멍에서 쉭쉭거리는 쇳소리가 새어 나왔. 진혁은 혀끝에 감도는 쇠 비린내에 얼굴을 찌푸렸다. 전에 동조의 마비 상태를 풀기 위해 제 혀를 짓씹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말하지 마요. 혀 상처 꿰맸대요. 움직이면 또 피나요.”
세아가 다급히 진혁의 어깨를 짚어 눕히며 소형 빨대가 꽂힌 종이컵을 입술에 대주었다.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그제야 타들어 가던 가슴속 열기가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진혁은 간신히 붉게 흐려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링거 거치대와 째깍거리는 모니터 장비, 그리고 굳게 닫힌 연회색 철문. 일반 응급실이 아닌 독립된 격리 병실이었다.
“세아 씨는…… 괜찮은 겁니까?”
“네. 범인이 주사한 마취제가 동물용 마취 유도제 계열이었대요. 해독제 투여받고 몇 시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좀 전에 깨어났어요. 몸이 좀 무거운 것 말고는 괜찮아요. 다 진혁 씨 덕분이에요.”
세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의 눈가에 다시금 미안함과 죄책감이 서렸다. 자신의 부주의로 납치되어 진혁이 영구 실명 수준의 뇌 손상을 감수하며 빗길을 폭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누르는 모양이었다.
진혁은 힘없이 손을 뻗어 세아의 소매 끝을 살짝 잡았다.
“살아 있으면…… 된 겁니다.”
그때, 병실 구석의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플라스틱 의자에서 낮고 둔탁한 마찰음이 울렸다.
의자 위에서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빳빳하게 젖어 있던 가죽 재킷은 그새 온기를 잃어 퀴퀴한 가죽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사내의 어깨 주변에서는 눅눅한 담배 연기 냄새가 빗물 냄새와 뒤섞여 배어 나왔다.
서도진 경감이었다.
그는 피로에 절어 충혈된 눈으로 진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과 움푹 들어간 눈동자가 그 역시 한숨도 자지 못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깨어났군.”
도진이 천천히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병실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경감님…….”
“누워 있어라. 억지로 일어날 생각 말고. 의사가 뇌압이 정상 수치로 돌아올 때까지 절대 안정하라고 신신당부했으니까.”
도진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낡은 수첩 대신 작은 태블릿 PC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화면을 켜자, 붉고 푸른 경광등 불빛이 그의 굳은 얼굴을 스산하게 비추었다.
“강진혁. 네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교통정보센터 CCTV와 순찰차 블랙박스를 전부 수거해서 분석했다.”
도진이 태블릿 화면을 진혁의 눈앞으로 가져다주었다. 붉은 시야 속에서도 화면에 재생되는 동영상의 궤적은 선명했다. 세차게 폭우가 쏟아지는 야간의 대로변, 빗길 속에서 꼬리를 미끄러뜨리며 차선을 칼치기로 헤집고 다니는 오토바이 한 대와 그 앞을 달리는 검은색 카니발의 추격전이었다.
“성산동 오피스텔에서 종로 대로변까지. 자그마치 9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야. 도로 곳곳에 물이 고여 수막현상이 일어나고 있었고, 시야는 10미터 앞도 보기 힘든 폭우였지.”
도진의 목소리가 점차 낮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런데 말이야. 오토바이 운전자인 너를 진단한 안과 전문의의 소견서는 기괴하기 짝이 없어. 추격 당시 네 양쪽 안구는 이미 모세혈관이 전부 터져서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실명 직전의 복시 상태였다는 거다. 쉽게 말해 앞이 거의 안 보였다는 뜻이지.”
도진이 화면을 멈추고 진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 눈을 하고서, 넌 단 한 번의 미끄러짐도 없이 카니발의 뒤를 쫓았어. 카니발이 형사들을 따돌리기 위해 세 번이나 신호를 무시하고 불법 유턴과 차선 변경을 감행했을 때, 네 오토바이는 마치 놈의 차량 하부에 자석이라도 붙여둔 것처럼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히 같은 궤적으로 움직였지.”
도진은 태블릿을 끄고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건 초감각적 직감이니, 배달 라이더의 숙련도니 하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주행이야. 넌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놈이 어디로 꺾을지 어떻게 알고 쫓아간 거지?”
병실 안에 팽팽한 정적이 감돌았다. 세아는 숨을 죽인 채 진혁의 얼굴과 도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혁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흔들리는 붉은 망막 너머로 서 경감의 의심에 가득 찬 얼굴을 직시했다. 이성적인 경찰관에게 '나는 놈의 뇌와 동조하여 그놈의 눈으로 내 오토바이를 보며 운전했다'는 진실을 말해봐야 미친놈 취급을 받거나 사이비 종교인으로 취급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설픈 핑계로 넘어갈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서 경감은 이미 물증과 정황을 쥐고 있었다.
진혁은 입술 안쪽의 상처에서 다시 맺히는 핏방울을 삼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놈의 눈이 보였습니다.”
도진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입니다. 심장에 격통이 오고 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제 뇌 속으로 놈이 보고 있는 광경이 강제로 주입됩니다. 그날 밤, 제 눈은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놈이 카니발 운전석에서 보고 있던 전방 도로와 사이드미러에 비친 제 오토바이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제 눈이 아니라, 놈의 눈으로 비치는 세상의 좌표를 머리로 읽으며 오토바이의 운전대를 꺾은 겁니다. 3인칭으로 저를 보면서 주행한 거라고요. 경감님이 믿든 안 믿든, 그것이 제가 놈을 끝까지 추적해 세아 씨를 구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도진은 즉각 반박하지 않았다. 상식에 어긋나는 비과학적인 주장이었지만, 눈앞의 사내가 보여준 물리적 증거들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더니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동조(Synchronization)…… 뇌의 기이한 전파 동기화 현상 같은 건가. 그렇다면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 때부터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건가?”
“시작된 건 최근입니다.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부터…… 갑자기 그 살인마 놈의 시야가 강제로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진혁의 말에 세아가 곁에서 거들었다.
“경감님, 저도 처음에는 진혁 씨의 말을 믿지 못했어요. 하지만 진혁 씨가 보는 시야 속의 단서들을 추적해서 우리가 인사동 경화당까지 찾아낼 수 있었던 거예요. 그곳에서 찾은 물증들도 경감님이 직접 확인하셨잖아요.”
도진의 시선이 세아에게로 향했다. 그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래. 경화당 지하 수색은 끝났다. 네 말이 맞더군.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던 한소윤 씨는 오피스텔 밀폐방에서 무사히 안전하게 신병을 확보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리고 경화당 내부에서 수거한 물증들…… 참혹하더군.”
도진이 수첩을 꺼내 한 페이지를 펼쳤다.
“지하 책상에서 발견된 신문 스크랩들과 생존자 명단, 그리고 피해자들의 눈에 거울 조각을 박아 넣은 사진들. 놈이 작성한 살인 일기장까지 전부 확보했다. 그 안에는 피해자가 죽기 직전 거울에 비친 자신의 공포스러운 얼굴을 응시할 때 가장 순수한 고통의 예술이 완성된다는 비틀린 기록들이 가득했지.”
도진의 목소리에 깊은 혐오감이 묻어났다.
“놈은 3년 전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다. 불길 속에서 느낀 죽음의 공포를 거울이라는 매개체에 가두고 보존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괴물이야.”
진혁은 상체를 아주 조금 일으켜 세웠다.
“그럼 이제 놈을 수배하고 잡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본거지도 알아냈고 물증도 확실한데요.”
그러나 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쉬운 일이 아니야. 본청 윗선에서는 이번 사건을 일반적인 원한 관계에 의한 납치 미수 및 방화 사건으로 축소하려고 움직이고 있어.”
“사건 축소라고요? 연쇄 살인마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말입니까?”
세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는 정재계의 비리 조작과 부실 시공이 얽혀 있는 거대한 뇌관이다. 윗선에서는 그 참사가 다시 언론에 조명받고 여론이 들끓는 걸 어떻게든 막고 싶어 해. 그래서 '거울 살인마'라는 연쇄 살인 프레임 대신, 정신질환자의 단독 범행으로 신속하게 종결지으려 압박을 넣고 있지. 게다가…….”
도진이 이빨을 짓씹었다.
“경화당 건물은 유령 법인 명의로 되어 있고, 놈이 타고 달아난 카니발은 수차례 번호판을 세탁한 대포차였다. 놈의 지문이나 DNA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가짜 신분들뿐이야. 놈이 도심 한복판에서 차를 버리고 지하철역이나 인파 속으로 숨어버린 이상, 현재 수사 기법으로는 놈의 덜미를 잡는 데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어. 그 사이에 놈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면 어떻게 할 거지?”
도진이 진혁의 침대 곁으로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 그의 그림자가 진혁의 얼굴 위로 짙게 드리워졌다.
“그래서 제안하는 거다.”
“……제안이라고 하셨습니까?”
“공식적으로 넌 종로 대로변의 위험 주행과 교통사고 유발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하지만 내가 이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기소 유예 및 불기소 처분으로 빼돌려 주지. 민 기자의 신변 보호 역시 내 권한으로 철저히 보장하겠다. 그 대가로…….”
도진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네가 가진 그 말도 안 되는 감각을 나에게 빌려다오.”
진혁은 도진의 제안을 곱씹었다. 경찰 경감과의 비공식 공조. 그것은 법과 규정의 한계를 넘어 오직 살인마를 잡기 위해 손을 잡겠다는 뜻이었다.
“경찰의 정보망과 장비, 그리고 내가 수집하는 수사 기초 자료를 전부 네게 공유해 주겠다. 대신 놈이 다시 살의를 뿜어내며 동조의 시야가 열릴 때, 그 단서들을 즉시 나에게 넘겨. 네가 보고 내가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 놈의 숨통을 끊는 거다.”
진혁은 말없이 자신의 붉게 물든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동조의 부작용은 갈수록 그의 뇌와 육체를 갉아먹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진짜로 실명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절할 선택지는 없었다. 놈은 세아의 신변을 위협했고, 언제든 자신들의 숨통을 끊기 위해 거울을 들고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놈을 잡기 전까지는 이 지옥 같은 연결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동의하죠.”
진혁의 굳건한 대답에 도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재킷 주머니에서 지퍼백에 밀봉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 진혁의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지퍼백 안에는 범인의 반파된 카니발 조수석 바닥에서 수거한 기이한 유류물이 들어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작고 둥근 황동 손거울이었다.
경화당에 널려 있던 기괴한 거울들과 달리, 매우 낡고 때가 묻은 평범한 휴대용 거울이었다. 진혁이 흐릿한 눈으로 거울을 살펴보자, 황동으로 된 거울 뒷면에 날카로운 무언가로 거칠게 긁어 새겨놓은 글자가 보였다.
[1998년 청우건설 공사 일지]
“청우건설……?”
세아가 거울의 글씨를 보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진혁은 홀린 듯 손을 뻗어 지퍼백에 담긴 황동 거울을 가볍게 쥐었다.
그 순간.
찌릿-!
머리 중앙을 관통하는 강력한 고전압의 전기 충격이 진혁의 뇌수를 하얗게 태워버렸다.
“윽……!”
진혁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로 몸을 꺾었다. 안구에서 다시금 뜨거운 액체가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강제로 시야가 피비린내 나는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동조의 잔상이 덮쳐온 것이었다.
뇌 속으로 밀려 들어온 화면은 온통 새하얗고 차가운 공간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실 혹은 요양원의 한구석. 휠체어에 앉은 채 등을 돌리고 있는 척추가 굽은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내의 목덜미에는 불에 덴 듯한 흉측한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사내가 휠체어 바퀴를 천천히 돌리며 진혁(범인의 시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면 대신 붕대를 감은 사내의 입술이 비틀리며 나직한 소리를 내뱉었다.
“결국…… 너희들이 나를 찾아내겠구나.”
사내의 등 뒤로, 탁자 위에 놓인 푸른색 바인더 서류철이 흐릿하게 잡혔다. 그 서류철의 표지에는 ‘청우건설(靑宇建設)’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파앗-!
진혁은 뇌를 찢는 듯한 이명과 함께 황동 거울을 떨어뜨렸다. 지퍼백이 침대 시트 위로 툭 떨어졌고, 진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속에 붉은 피가 섞여 흘러내렸다.
“진혁 씨! 괜찮아요?”
세아가 사시나무 떨듯 떠는 진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도진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방금…… 무엇을 본 거지?”
진혁은 턱을 벌벌 떨며 도진을 올려다보았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실이었습니다. 휠체어에 탄, 목 뒤에 화상 흉터가 있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놈의 뒷바라지를 하거나…… 놈과 내통하는 배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곳에…… 파란색 서류철이 있었습니다. 청우건설의 로고가 찍힌…….”
도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청우건설이라고 했나?”
“네. 틀림없습니다. 청우건설…… 그게 대체 어떤 곳입니까?”
도진은 입을 다물고 창밖의 어두운 병원 정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복잡한 분노와 회한이 교차했다.
“3년 전, 중앙로역 지하상가의 리모델링과 개보수 공사를 독점했던 시공사다. 화재 참사 당시, 비상유도등 배선 불량과 가연성 자재 무단 사용, 그리고 소방 밸브 강제 폐쇄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기업이지. 하지만 당시 수사 본부에서는 시공사의 부실 공사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 판결을 내리고 꼬리를 잘랐어.”
도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참사의 진짜 원인을 제공하고도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자들. 살인마 놈이 노리는 다음 타깃은…… 단순한 참사 생존자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진혁은 젖어 드는 붉은 안구 속에서 참사의 시커먼 연기가 다시 피어오르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살인마 '미러'의 거울은 이제 참사의 책임을 방조한 가해자들을 향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궤적을 쫓아야 하는 강진혁은, 지옥 같은 연쇄 범죄의 중심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