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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14화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동조(Synchronization) : 그놈의 눈으로 본 것

14화: 필사의 추격전

붉은 립스틱으로 안방 거울 한가운데에 쓰인 ‘WELCOME’이라는 낙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채 기름진 빛을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놈이 이곳에 있었다. 자신들의 숨결이 닿는 공간, 목덜미 바로 뒤까지 들어와 붉은 흔적을 새겨놓고 간 것이다.

강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창틀을 움켜쥐었다. 빗길 저편, 성산동 골목길의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에서 검은 우산을 쓴 채 자신들을 올려다보던 사내. 조소하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 놈의 실루엣이 망막에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들어온 거지?”

민세아의 목소리가 얇은 유리창처럼 파르르 떨렸다. 언제나 냉철함을 잃지 않던 그녀의 얼굴조차 짙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피스텔 도어락 비밀번호는 세아와 선배 세용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범인이 물리적으로 도어락을 무력화했거나, 혹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냈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이든 소름 끼치는 사실이었다.

“더는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세아 씨,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해요.”

“하지만 소윤 씨는요? 소윤 씨를 이 몸 상태로 데리고 빗속으로 나가는 건 위험해요.”

진혁은 간이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는 한소윤을 바라보았다. 간신히 의식을 차렸을 뿐, 가혹한 납치와 감금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공포에 질려 있는 상태였다. 그녀를 이 거친 사투의 현장으로 동행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놈이 침입했던 이 공간에 홀로 남겨두는 것 역시 죽으라고 떠미는 것과 다름없었다.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싱크대 밑 공구함에서 세용이 남겨둔 여분의 철제 자물쇠와 강력 경보기를 꺼냈다. 이 오피스텔 안쪽에는 보일러실 겸 간이 창고로 쓰이는 작은 밀폐방이 있었다. 두꺼운 방화문으로 제작되어 외부에서 강제로 돌파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구조였다.

“소윤 씨, 내 말 잘 들어요. 여기에 물이랑 간식을 넉넉히 넣어둘 테니, 안에서 문을 이중으로 걸어 잠그고 절대 나오지 마세요. 경찰이 오든, 그 누가 오든 상관없어요. 내가 돌아와서 철문에 약속된 신호로 세 번 두드리기 전에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소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는 좁은 밀폐방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둔중한 철문이 닫히고, 안쪽에서 덜컥하며 잠금장치가 굳게 걸리는 소리가 확인되었다. 경보기까지 문틈에 장착한 뒤에야 진혁은 굳은 얼굴로 세아를 돌아보았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어떻게 나갈 건가요? 오피스텔 아래에는 분명 서 경감님이 보낸 형사들이 잠복해 있을 텐데요.”

세아의 판단은 정확했다. 망원동 대성수산 폐창고에서 탈출한 진혁은 현재 유력한 용의자이자 도주자로 기소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서도진 경감은 수사 수칙에 따라 진혁이 접촉할 만한 연고지들을 포위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진혁은 현관 옆 걸이에 걸려 있던 자신의 배달용 레인슈트와 헬멧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세아에게 세용의 라이딩 재킷과 여분의 풀페이스 헬멧을 건넸다.

“이걸 입으세요. 얼굴을 완전히 가려야 합니다. 비가 내리고 있으니 오피스텔 단지 안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드나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형사들도 헬멧을 쓴 배달 라이더 둘을 일일이 검문하진 못할 겁니다.”

두 사람은 신속하게 변장을 마쳤다. 거울에 남겨진 붉은 낙서를 뒤로한 채, 진혁은 오토바이 열쇠를 꽉 쥐었다. 가슴속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기묘할 정도로 차갑고 고요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헬멧 쉴드를 사정없이 때렸다. 진혁은 일부러 엔진 소리가 큰 오토바이의 스로틀을 부드럽게 감으며 도로변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예상대로 주차장 입구 건너편 골목길에 시동을 켠 채 대기 중이던 검은색 소나타의 조수석 창문이 아주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그 안에서 매서운 눈초리의 사내들이 오토바이를 주시하는 느낌이 척추를 타고 자극해 왔다.

진혁은 당황하지 않고 배달 대행 스마트폰 거치대의 화면을 켜둔 채, 자연스럽게 신호를 받아 우회전했다. 속도를 급격히 올리지 않고 빗길 주행 규정을 지키는 평범한 라이더인 척 행동했다. 백미러로 집요하게 뒤를 살폈다. 다행히 거센 빗줄기와 꼬리를 무는 배달원들의 행렬 속에서, 형사들은 진혁의 오토바이를 흔한 음식 배달원 중 하나로 판단하고 시선을 거둔 듯했다.

“따돌린 것 같아요!”

뒤에 탄 세아가 진혁의 허리를 꽉 쥔 채 헬멧 너머로 소리쳤다.

“아직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인사동까지 최대한 빠르게 가야 해요. 놈이 먼저 움직였을지도 모릅니다.”

진혁은 스로틀을 세차게 감았다. 배달 오토바이는 폭우를 뚫고 신촌과 광화문을 거쳐 인사동 뒷골목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비 내리는 인사동의 거리는 흐릿하고 한산했다. 양옆으로 늘어선 전통 찻집과 미술품 갤러리들의 간판이 번지는 빗물 속에서 흐릿하게 불빛을 뿜고 있었다. 진혁은 골목의 후미진 구석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었다.

한소윤이 말한 정보. 붉은 벽돌 건물의 골동품점, 그리고 간판에 큼직하게 적힌 ‘鏡(거울 경)’ 자.

그들은 미로처럼 뒤엉킨 한옥 골목길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빗물에 젖은 어깨가 차갑게 식어 들어갔지만, 몸속 혈관에는 차가운 긴장감이 들끓었다.

얼마나 헤맸을까. 골목 막다른 끄트머리, 녹슨 철제 펜스 너머로 아주 낡고 음산한 붉은 벽돌 단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전면에 걸린 썩어가는 목판 간판에는 빗물에 쓸려 금칠이 다 벗겨진 ‘鏡華堂(경화당)’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여기예요…….”

세아가 침을 삼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닫힌 유리문 너머의 내부 공간은 깊은 늪지대처럼 컴컴했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함이 흘러나왔다.

진혁은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흔들었으나 굳게 잠겨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라이더 시절부터 지니고 다니던 만능 툴을 꺼냈다. 쇠꼬챙이를 잠금장치 틈새로 정밀하게 찔러 넣고 뇌의 온 신경을 손끝의 감각에 집중했다.

철컥, 하는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문걸쇠가 허무하게 내려앉았다.

“들어가죠.”

안으로 발을 들이밀자마자 찌르는 듯한 냄새가 비강을 덮쳤다. 절간 깊은 곳에서 태우는 침향(沈香)의 매캐하면서도 썩은 나무가 타들어 가는 듯한 쓸쓸한 단향. 어젯밤 동조 속에서 진혁의 뇌수를 헤집어놓던 바로 그 기괴한 잔향이었다.

그리고 사방이 온통 거울이었다.

고려 시대의 낡은 청동경부터 조선의 황동 전신경, 일제강점기의 삐뚤어진 목조 테두리 거울, 그리고 현대의 차가운 평면 유리 거울까지. 무수한 거울들이 벽면과 천장, 심지어는 기둥바닥까지 채우고 있었다.

거울들은 마주 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어, 손전등 불빛을 비출 때마다 빛이 무한히 굴절되며 공간 전체를 기괴하게 분열시켰다. 거울 속에 자신들의 얼굴이 수십, 수백 개로 갈라져 서로를 주시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호흡을 조여왔다.

째깍, 째깍, 째깍-.

어두운 본당 구석에서 무겁고 둔탁한 태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괘종시계의 흔들리는 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진혁은 불빛을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커다란 목조 괘종시계 바로 옆, 벽면에 부착된 거대한 대형 거울의 테두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려 있는 것이 보였다.

세아가 다가가 거울 옆면의 이음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었다.

“진혁 씨, 이 거울 벽면 뒤에 빈 공간이 있어요. 슬라이딩 도어처럼 열리게 설계된 거예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무거운 거울 벽면을 옆으로 밀어냈다. 스르륵 하는 육중한 목재 마찰음이 나며 벽이 뒤로 밀려났고, 그 너머로 어둡고 가파른 지하 계단이 아가리를 벌렸다. 계단 아래쪽에서 흐릿한 스탠드 불빛이 뿜어져 나와 계단 주변의 흙먼지를 희뿌옇게 비추고 있었다.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세아 씨는 내 옷자락을 잡고 바짝 따라오세요.”

진혁은 주머니 속 은색 손거울을 다시 한번 움켜쥐며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공간은 지상보다 훨씬 넓고 음습했다. 사방에 널린 나무 톱밥과 유리 가루, 그리고 굳어버린 칠(漆) 냄새가 진동했다. 이곳이 바로 살인마 ‘미러’의 비밀 작업실이자 본거지였다.

중앙에 위치한 붉은색 나무 책상 위로 손전등 불빛을 비추었다. 그 위에는 3년 전 ‘중앙로역 화재 참사’의 신문 기사 스크랩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피해자들의 사진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사진 속 인물들의 눈동자 부위는 전부 날카로운 칼로 파내지거나 날카로운 거울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벽면 한쪽의 선반에는 범인이 작성한 듯한 일기장과 기록 문서들이 꽂혀 있었다. 세아가 떨리는 손으로 검은 가죽 표지의 일기장을 펼쳐 손전등을 비추었다.

“이것 봐요, 진혁 씨…… 3년 전 참사 생존자들의 명단이에요. 그리고 이 기록들…….”

세아가 찾아낸 일기장 구석에는 피와 불에 탄 흔적이 역력했다.

[불길 속에서 고통에 겨워 울부짖는 인간의 얼굴. 자신의 소멸을 거울로 직시하는 그 찰나의 눈빛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예술이다. 그들의 마지막 시야를 거울에 가두어 영원히 보존하는 것만이 내가 부여받은 유일한 사명이다.]

“미친 새끼…….”

진혁은 주먹을 쥐었다. 범인은 3년 전 참사에서 불길 속에 살아남았으나,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어 타인의 마지막 절망을 거울에 박제하는 연쇄 살인극을 벌여온 것이었다.

“세아 씨, 놈의 사회적 진짜 신원이나 본명을 증명할 수 있는 장부가 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세무 기록이나 골동품 장부를…….”

“네, 저는 저쪽 지하실 안쪽 서류 보관함을 확인해 볼게요.”

세아가 다급히 손전등을 켜고 지하 장고의 구석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은 책상 위의 나머지 파일들을 급히 뒤졌다.

그때였다.

쿵-!

심장을 거대한 강철 바늘로 꿰뚫어 쥐어짜는 듯한 살인적인 격통이 덮쳐왔다.

강진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가슴을 부여잡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 이때에…… 하필이면……!’

시야가 단숨에 피처럼 붉은 암전으로 뒤덮였다. 안구 내부의 모세혈관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는 느낌과 함께, 뜨거운 핏물이 양쪽 눈꼬리를 타고 차갑게 젖은 뺨 위로 흘러내렸다.

전신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를 질러 세아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턱 근육이 마비되어 목구멍에서는 오직 바람 빠지는 쉭쉭 소리만 새어 나왔다. 다섯 번째 동조가 시작된 것이었다.

진혁의 뇌 속으로 차갑고 잔혹한 다른 시야가 송곳처럼 박혀 들어왔다.

범인의 시각이었다.

범인은…… 지금 지하실 계단을 소리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놈의 시야 아래쪽으로 얇은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보였다. 그 손에는 희뿌연 액체가 담긴 일회용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범인의 머리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지하 장고 구석에서 장부를 뒤적이고 있는 민세아의 무방비한 등을 포착했다.

‘안 돼…… 안 돼, 세아 씨! 뒤를 봐! 피해야 해!’

진혁은 뇌 속에서 피를 토하듯 소리쳤지만, 그의 현실 육체는 바닥에 박박 기어 다니는 쓰레기처럼 처박힌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조 속에서 범인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세아의 뒤로 접근했다.

기묘한 기척에 세아가 홱 고개를 돌리는 찰나, 범인의 거대한 왼손이 그녀의 입과 코를 무자비하게 틀어막았다. 세아가 온몸을 비틀며 범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고 거세게 발버둥 쳤으나, 범인의 오른손은 차갑게 그녀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내리꽂았다.

약물이 체내로 흘러들어 가자, 세아의 반항하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풀리며 사지가 꺾였다. 범인은 늘어진 그녀의 몸을 한 손으로 받아내며 나직하게 비웃었다.

“이것으로 모든 무대 장치는 완성되었다. 진혁아, 네 동료의 얼굴이 깨진 유리 조각 속에서 어떻게 조각날지 참으로 기대되는구나.”

범인은 세아를 무자비하게 어깨에 둘러메고 지하실 한구석의 숨겨진 철문을 밀어 젖혔다. 그 바깥으로 흐르는 빗줄기와 컴컴한 골목길이 범인의 눈을 통해 진혁의 머릿속에 투영되었다. 놈은 처음부터 진혁 일행이 이곳으로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기습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아아아윽……!”

진혁은 이빨이 깨져나갈 정도로 혀를 세게 깨물었다.

입안 가득 비린내 나는 붉은 피가 가득 찼고, 그 충격으로 억지로 육체의 제어권을 강탈해 왔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부작용 속에서 안구의 내압을 이겨내며 동조의 마비 결계를 찢어발겼다.

마침내 굳어 있던 손끝이 현실의 콘크리트 바닥을 긁었다.

진혁은 피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간신히 바닥을 기어 범인이 나간 비밀 철문 틈새로 몸을 던졌다.

바깥은 경화당 건물 뒤편의 외진 공터였다.

세찬 빗소리 사이로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검은색 카니발 차량의 시동이 걸리고, 거친 배기음과 함께 타이어가 빗길 위를 쓸며 출발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세아 씨……!”

진혁은 공터 구석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향해 비틀거리며 달렸다. 그의 물리적 시야는 이미 동조의 과부하로 인해 초점이 파괴되어, 모든 가로등 불빛과 건물이 서너 개로 기괴하게 흔들려 보이는 복시 상태였다. 정상적인 주행은 절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진혁은 끊어질 듯한 동조의 끈을 강제로 붙들어 맸다. 오히려 뇌의 전원을 억지로 켜듯 범인의 시야를 자신의 뇌수에 동기화시켰다.

‘네 눈으로…… 도로를 본다.’

진혁의 머릿속에 범인이 운전하는 카니발 내부의 룸미러와 차창 밖 빗길 도로의 전방 풍경이 실시간으로 비쳤다. 진혁은 자신의 실제 안구를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오직 뇌 속으로 입력되는 범인의 시야를 매핑 정보 삼아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했다.

부르릉-!

진혁은 스로틀을 한계까지 쥐어짰다. 오토바이가 빗길 위로 미친 듯이 튕겨 나갔다.

물리적 비바람이 진혁의 얼굴을 강타했으나 가짜 시야 속 도로 흐름을 머리로 읽으며 중심을 잡았다. 범인의 차가 백미러로 뒤를 볼 때 비치는 진혁 본인의 오토바이 위치, 카니발 룸미러에 찍힌 차간 거리, 그리고 범인의 전방 시야에 나타나는 교차로 우회전 신호와 가로수 표지판 등을 3인칭 역추적 매커니즘으로 계산하여 스티어링을 꺾었다.

범인의 카니발이 급차선 변경을 시도하면 진혁 역시 빗길 속에서 꼬리를 미끄러뜨리며 차선을 따라붙었다. 범인이 속도를 올리면 진혁은 신호 대기 중인 차량들 사이의 좁은 틈새를 오직 동조 시야의 매핑에만 의존한 채 칼치기로 통과했다.

머릿속에서 삐이이- 하는 이명이 뇌수를 긁고 콧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직 세아를 구하겠다는 광적인 집념만이 진혁의 사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종로 대로변 한복판, 퇴근 시간의 폭우로 인해 병목 현상에 가로막힌 범인의 카니발 꽁무니가 진혁의 뿌연 눈앞에도 잡혔다.

진혁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대로 오토바이를 카니발의 운전석 도어를 향해 수직으로 돌진시켰다.

쾅-!

거대한 금속 충돌음과 함께 오토바이 앞부분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빗물 고인 아스팔트 위를 서너 바퀴 구른 진혁은 갈비뼈가 부서지는 격통을 느끼며 비명을 삼켰다.

찌그러진 카니발의 엔진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운전석의 범인이 깨진 유리창 너머로 이마에 피를 흘리며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놈은 설마 이 지옥 같은 빗길 속에서 눈마저 먼 사내가 자신을 기어코 따라잡아 충돌할 것이라고는 계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혁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서진 오토바이의 쇳조각 파편을 쥐고 카니발의 뒷좌석 창문을 내리쳤다.

쨍그랑!

유리가 비산하며 뒷좌석에 포박된 채 정신을 잃고 있는 세아의 실루엣이 보였다. 진혁은 문을 강제로 열고 세아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세아 씨…… 정신 차려요……!”

그 순간, 운전석의 범인이 기어를 후진으로 꺾으며 엔진을 거칠게 회전시켰다. 찌그러진 카니발이 뒤로 밀려났다가, 바닥에 쓰러진 진혁 일행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빗길 도로 속으로 굉음을 내며 도망쳤다. 진혁이 보여준 목숨을 던진 비정상적인 광기에 질려, 범인이 강제로 세아를 포기하고 도주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아…… 하아…….”

진혁은 세아를 조심스럽게 아스팔트 바닥에 눕히고 곁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관절이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과 함께, 뇌를 뒤흔들던 범인의 동조 신호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급격한 블랙아웃이 시야를 덮쳤고 의식의 끝자락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때, 멀리서 날카로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빗소리를 가르며 덮쳐왔다.

붉고 푸른 경광등 불빛이 도로 위의 빗물 웅덩이에 사정없이 반사되며 일렁였다. 의식을 잃어가는 진혁의 눈꺼풀 너머로, 순찰차에서 권총을 빼 들고 달려오는 서도진 경감과 강력반 형사들의 어두운 실루엣이 서서히 다가왔다.

진혁은 세아의 손을 꼭 쥔 채, 차가운 빗속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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