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9화: 보이지 않는 덫, 보이는 쥐새끼
사흘 동안 카페 '드림'의 유리문에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임시 휴업합니다'라는 팻말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카페 내부의 어둠 속에서, 한도진은 미쳐가고 있었다.
그는 사흘 내내 씻지도 않고, 잠도 자지 못한 채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뜯어낸 카페의 몰딩 장식들과 부서진 무선 스피커, 그리고 분해된 조명기구들이 난잡하게 널려 있었다.
"없어…… 도청기도, 카메라도 없어."
도진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자신의 정교한 함정과 계획을 매번 가로막고, 급기야 공사장에서 자신에게 핫핑크색 페인트와 시멘트 가루 범벅을 만들어 조롱한 존재. 그 존재가 카페 안에 감시 장치를 설치해 두었을 거라 확신하고 온 가게를 다 때려 부수며 찾아보았지만, 그 흔한 도청 칩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상대방은 감시 장치 따위 없이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엿보고 있는 존재다. 귀신이거나, 혹은 자신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늘 지켜보고 있는 지독한 관찰자.
도진은 핏발이 선 눈으로 창밖의 어두운 골목길을 쏘아보았다.
"누군지 몰라도…… 잡히면 뼈마디를 전부 으스러뜨려 주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었다. 최근 카페 주변을 얼성거리던 파출소의 오달수 경장, 그리고 묘하게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근처에 있던 나태한 고등학생, 강시우.
도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부서진 다이어리의 잔해가 그의 손안에서 바스러졌다.
월요일 하굣길.
시우는 가방끈을 잡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골목길을 걸었다.
카페 '드림'이 임시 휴업에 돌입한 덕분에, 주말 내내 심장 쫄깃한 소동 없이 아주 평화롭고 나태한 소시민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아, 역시 세상은 평화로운 게 최고야. 날로 먹는 인생 만세다."
시우가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걷던 유나가 핀잔을 주었다.
"너 주말 내내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다며? 한심하다, 진짜. 난 카페 사장님 알바 연락만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왜 문을 안 여시는지 모르겠어. 어디 편찮으신가?"
"야, 그 사장님 건강하게 아주 잘 살아 계실 테니까 걱정 마셔. 며칠 쉬고 싶으시겠지."
공사장에서 형광 핑크색 광대가 되어 뒹굴던 한도진의 모습을 떠올리자 시우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무리 연쇄살인범이라 해도 그 정도 굴욕을 당했으면 한동안은 꼼짝도 못 할 터였다.
그때, 저 멀리 파출소 문을 박차고 나오는 오달수 경장의 모습이 보였다.
오 경장은 옆구리에 두꺼운 서류 파일을 끼고 있었고, 빗지 않은 머리는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마치 먹이를 발견한 사냥개처럼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어이! 시우야!"
오 경장이 시우를 발견하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 아저씨. 여전히 바쁘시네요."
"바쁜 수준이 아니야, 임마! 네가 지난번에 준 힌트, 전파관리소 주파수 교란 데이터 분석 말이다! 그거 진짜로 기적이 일어났다니까!"
오 경장은 시우의 어깨를 붙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흘끗거리며 비밀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전파관리소 협조 공문을 보내서 지난 한 달간 실종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의 주파수 데이터를 싹 받아왔거든? 그런데 놀랍게도, 실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사거리 사각지대 반경 300미터 이내에서 정체불명의 국지적 주파수 마비 현상이 기록되어 있었어! 범인이 잼머를 켠 게 확실해!"
"우와, 진짜요? 오 아저씨 대단하시네요."
시우는 성의 있게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날려주었다.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네가 대단한 거지! 네가 전파 데이터를 보라고 안 했으면 우린 여전히 헛다리만 짚고 있었을 거야.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오 경장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범위는 좁혔는데, 이 사거리 반경 300미터 안에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가구 수가 너무 많아. 이 중에서 특정 주파수 방해 장비를 조립하거나 수입할 만한 능력이 있는 용의자를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 막막하단 말이지. 가가호호 방문해서 집안을 뒤질 수도 없고……."
오 경장은 간절한 눈빛으로 시우를 쳐다보았다. 이미 오 경장의 머릿속에서 시우는 단순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청의 은밀한 수사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시우는 턱을 괴고 붕어빵 트럭 옆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한도진의 목을 더 확실하게 조르기 위해, 시우는 마지막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다.
"음, 아저씨. 보통 그런 전파 방해 장치를 민간인이 구하려면 직접 조립해야 하잖아요? 해외 직구로 부품을 들여오거나 정밀 전자기기 전문 상가에서 부품을 샀을 텐데, 그 배송 주소지가 이 사거리 근처로 되어 있는 사람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시우는 일부러 시선을 사거리 모퉁이에 닫혀 있는 카페 '드림'으로 돌렸다.
"최근에 갑자기 며칠 동안 문을 닫거나, 이웃들과 교류를 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수상한 가게나 주민이 있다면 더 의심스럽지 않을까요? 잼머라는 기계는 전력을 많이 먹어서 충전하거나 개조할 때 누전 위험도 높다던데, 최근 갑자기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거나 영업을 중단한 곳 위주로 수색 범위를 좁히면 금방 나올 것 같은데요."
오 경장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우의 시선이 머물던 카페 '드림'으로 향했다.
'수입 전자기기 배송지…… 최근 영업을 갑자기 중단하고 문을 닫은 곳…….'
사거리 한가운데 덩그러니 문을 닫고 있는 카페 '드림'.
그리고 며칠 전 밤샘 근무 중,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다정하지만 묘하게 차가운 사장 한도진의 얼굴이 오 경장의 뇌리를 스쳤다.
"……아!"
오 경장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완벽했다. 시우가 제시한 모든 프로파일링의 조건이 카페 '드림'과 한도진이라는 인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리키고 있었다.
오 경장은 시우를 거의 신적인 존재를 보듯 경외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강시우 이 자식…… 그냥 머리가 좋은 수준이 아니야. 이미 범인의 정체와 범행 수법까지 전부 꿰뚫고, 나한테 힌트를 주며 수사망을 컨트롤하고 있었던 거였어!'
오 경장은 온몸에 전율이 돋는 것을 느끼며 수사 서류를 꽉 쥐었다.
"시우야. 고맙다. 아저씨가 뭘 해야 할지 확실하게 알았어. 배송 대장 매칭하고, 저기 휴업 중인 카페 사장님 안부 확인부터 해야겠다."
"네. 수고하세요, 아저씨. 전 유나 데리고 갈게요."
시우는 유나의 손을 이끌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오 경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카페 '드림'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카페 드림 사장님! 계십니까! 파출소 오달수 경장입니다!"
적막하던 카페 안에 우렁찬 쇠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하 서재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한도진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카페 정문 앞에 서서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오달수 경장의 모습이 크게 비치고 있었다.
도진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경찰이 왜 벌써 나를……?'
도진은 억지로 표정을 다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위층으로 올라가 카페 문을 열었다.
스르륵──.
"아, 오 경장님. 무슨 일이신가요? 가게가 임시 휴업 중이라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도진은 며칠 동안 앓은 사람처럼 퀭한 얼굴로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오 경장은 도진의 초췌한 몰골과, 셔츠 깃 너머로 언뜻 보이는 분홍색 형광 물질의 흔적(공사장에서 튄 지워지지 않은 페인트의 미세한 자국)을 예리하게 캐치했다. 오 경장의 머릿속에서 시우의 가설이 백 퍼센트 사실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유, 사장님. 얼굴이 무척 안 좋으시네요. 다름이 아니라, 최근 사거리 주변 상가 대상으로 전자기기 배송 물품 대장 매칭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서요. 혹시 최근에 해외 직구나 전문 부품 상가에서 배송받으신 택배가 있으신가 해서 들렀습니다. 혹시 가게 안을 가볍게 확인해 봐도 될까요?"
오 경장의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그의 눈빛은 도진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도진은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오 경장이 갑자기 잼머 관련 전자기기 배송을 들먹이며 자신을 쑤셔대고 있었다. 경찰이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핵심을 짚고 들어올 리가 없었다.
도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오 경장의 질문에 대답하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오 경장의 등 뒤, 저 멀리 하굣길의 큰길을 유유히 지나가며 자신을 슬쩍 돌아보는 한 소년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강시우.
그 소년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묘한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 짧은 찰나, 한도진의 뇌리에 번개가 쳤다.
'저 자식이다.'
오달수 경장이라는 사냥개의 목줄을 쥐고, 뒤에서 자신을 사냥터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는 진짜 '천재 사냥꾼'의 정체.
자신의 완벽한 트릭을 비웃고, 함정을 부수고, 경찰을 조종해 숨통을 죄어오는 그 존재는 다름 아닌 고등학생 강시우였다.
"……사장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오 경장이 도진의 얼굴 앞으로 손을 흔들었다.
도진은 퀭한 눈동자를 굴리며, 서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 예. 듣고 있습니다. 택배라면…… 보여드릴 수 있죠. 들어오세요."
도진은 문을 열어주며 오 경장을 안으로 들였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오 경장이 아닌, 저 멀리 사라진 강시우를 어떻게 잔인하게 도살할 것인가에 대한 핏빛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냥꾼의 꼬리는 마침내 드러났고, 살인마의 굶주린 이빨이 시우를 향해 겨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