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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10화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10화: 가면 뒤의 이빨

"이 서류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수입된 음향 기기 필터 부품들입니다."

카페 '드림'의 테이블 위로 깔끔하게 정리된 스펙 문서와 세관 통관 증명서들이 나열되었다.
한도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오달수 경장에게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건넸다.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해 수척해진 겉모습과 달리, 그의 대처는 지극히 차분하고 빈틈이 없었다.

"초지향성 고성능 스피커 시스템을 카페에 구축하려다 보니, 주파수 간섭을 막기 위한 노이즈 필터 모듈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경찰 측에서 말씀하시는 무선 주파수 잼머(Jammer)와는 전혀 다른 민간용 기기들입니다. 주파수 대역폭 자체가 아예 달라요."
"어…… 아, 그렇습니까?"

오 경장은 도진이 내민 영문 서류들과 복잡한 주파수 기술 사양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전문적인 전자기기 지식이 없는 일선 파출소 경장에게는 이 정교하게 위조된 서류들의 맹점을 즉각 파악해 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류에 찍힌 특허청과 한국전파진흥협회의 위조 직인은 너무나도 완벽했고, 도진의 태도는 지나치게 당당하고 정중했다.

"오해가 풀리셨다니 다행이네요. 요즘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경찰분들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언제든 추가로 확인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아, 예……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오 경장은 찝찝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백히 모든 정황 증거가 한도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법적 효력을 가진 완벽한 위조 서류들 앞에서는 수사 협조 요청 이상의 강제 수사를 진행할 명분이 없었다.

딸랑──.

경찰이 문을 열고 나가자, 한도진의 얼굴에서 다정한 웃음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블라인드 틈새로 오 경장의 뒷모습이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창문에 비친 자신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응시했다.

"강시우……."

그 소년의 이름이 도진의 입술 틈새로 잘게 부서져 나왔다.
오 경장이 들고 온 잼머 관련 배송 대장 추적 팁. 그것은 오직 자신과 '그 존재'만이 공유하고 있던 비밀스러운 범행의 영역이었다. 경찰이 이렇게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핵심을 짚고 들어왔다는 것은, 배후에서 오 경장에게 족집게 과외를 해준 천재 참모가 있다는 확실한 방증이었다.

그리고 아까 오 경장의 뒤편 멀찍이 서서 자신을 조롱하듯 냉소 지으며 지나갔던 강시우의 차가운 눈빛.
도진은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의 껍질이 일어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고등학생 꼬맹이가 내 목줄을 쥐고 흔들려 해?"

도진은 지하실 서재로 내려갔다.
모니터 화면 가득 시우의 학생기록부 정보와 등하교 동선이 띄워져 있었다.
도진은 시우가 초월적인 '시간 정지 능력'을 가졌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시우가 기가 막힌 은신 기술과 해킹 능력, 그리고 자신을 능가하는 초천재적인 프로파일링 직관을 가진 괴물 같은 고등학생이라고만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대처법은 간단했다.
그 천재적인 뇌를 가진 꼬맹이의 심장을 정지시켜 버리면 그만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고사(事故死)라면, 그 잘난 머리도 쓸모가 없겠지."

도진은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대포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 묻어나는 살의는 이제껏 마주했던 그 어떤 타깃을 향한 것보다도 훨씬 깊고 진득했다.


같은 시각, 야간 자습이 한창인 교실.
창밖으로는 추적추적 밤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우는 턱을 괸 채 공책에 무의미한 낙서를 끄적였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둔탁한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깊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허파가 찢어지는 듯한 저림이 갈비뼈 주변을 맴돌았다.

'무리했어. 너무 짧은 주기로 능력을 남발했어.'

시간을 멈추는 대가는 정직하게 몸에 축적되고 있었다. 의사에게 말해봐야 "만성 폐쇄성 폐질환 초기 증상 같다"는 뚱딴지같은 진단이나 내릴 게 뻔했다. 이 통증을 가라앉히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능력을 쓰지 않고 안정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시우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한도진이 아까 낮에 자신을 쳐다보았던 그 눈빛. 그것은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이빨을 드러낸 포식자의 날카로운 각성이었다.

'그 새끼, 나인 걸 알았어.'

도진이 자신을 용의자로 특정한 이상, 소리 없는 방해 공작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생사를 건 진짜 대치가 시작될 터였다. 한도진은 결코 순순히 오 경장에게 잡혀갈 위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덫에 걸리기 전에 배후인 시우의 목숨줄을 먼저 끊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띠링──.

폰이 울렸다. 유나의 문자였다.
[야, 나 오늘 학원 보충 끝나고 떡볶이 먹고 갈 건데 너도 올래?]
[안 가. 늦었으니까 딴 데 들르지 말고 큰길로 해서 바로 집으로 가라. 진짜다.]
[참나, 잔소리 대마왕 납셨네. 알았어.]

시우는 답장을 확인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적어도 유나가 큰길로 다닌다면 한도진도 대낮이나 인도에서 함부로 손을 쓰진 못할 것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밤 10시. 자습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쏟아져 나오는 틈새에서, 시우는 가방을 메고 홀로 학교를 나섰다.
안개가 짙어져 십 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든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안개속에 번져 기묘한 오렌지빛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우는 평소보다 발걸음을 늦추며 골목길로 들어섰다.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평소에는 지극히 조용하던 오래된 주택가 골목길. 인적이 끊긴 지 오래인 어두운 안개 속에서, 시우의 육감이 맹렬하게 경보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흐르는 공기의 흐름이 묘하게 차가웠다.

두두두두──.

골목 저 멀리 안개 너머에서, 라이트를 완전히 끈 채 낮게 엔진음을 울리는 오토바이 한 대가 시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배달용 오토바이 형태였지만, 번호판은 진흙으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고 운전자는 헬멧의 쉴드를 검게 내린 채 시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스으윽.

오토바이가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엔진음이 날카로운 비명으로 변해가며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오토바이의 방향은 정확히 시우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할 곳이 없는 좁은 외길 골목. 좌우는 굳게 닫힌 빌라 담벼락뿐이었다. 이 속도로 들이받힌다면 뼈가 박살 나고 목숨을 잃는 것은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오토바이가 폭발적인 가속도로 시우를 향해 돌진해 왔다. 라이트가 번쩍 켜지며 시우의 시야를 눈부시게 마비시켰다.
시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쳐 봐야 쇳덩이의 속도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았기에.

그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가슴 가득 차가운 안개를 들이마셨다.
갈비뼈 안쪽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듯한 만성 폐통증이 찾아왔지만, 시우는 눈을 부릅뜬 채 마음속으로 외쳤다.

"어디 들이받아 봐, 미친놈아."

코앞까지 다가온 쇳덩이의 돌풍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시우는 신경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시공간의 톱니바퀴가 멈추기 바로 직전의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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