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7화: 균열의 불씨
"너, 나 좋아하냐?"
교문을 나서는 하굣길, 최유나가 뜬금없이 걸음을 멈추고 강시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양손은 가방끈을 단단히 쥐고 있었고, 얼굴은 장난기와 묘한 수줍음이 뒤섞여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뭐라고?"
시우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헛기침을 내뿜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뇌 정지가 올 뻔했다.
"귀먹었어? 너 요즘 나 과보호하는 거 엄청 심하잖아. 카페 '드림' 사장님이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는데도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쫑알대고. 이거 백 퍼센트 질주…… 아니, 질투 맞지? 내가 훈남 사장님이랑 알바하면서 친해질까 봐 셈나서 그러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봐."
유나가 가슴을 펴며 엣헤, 하고 거드름을 피웠다.
시우는 이마에 손을 얹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소꿉친구의 상상력이 이 정도로 엉뚱한 방향으로 폭주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도진의 지하실에 끔찍한 연쇄 살인의 흔적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나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녀를 지탱하는 일상 평화가 산산조각 나거나, 겁에 질려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유나야. 제발 김칫국 좀 그만 마셔라. 난 네가 납치되든 말든 관심 없고, 그냥 내 초코우유 스폰서가 사라지는 게 싫을 뿐이야. 그리고 그 사장 눈빛, 겉으로만 웃지 눈 밑바닥은 얼음장 같단 말이야. 내 동물적인 육감이 경고하고 있어. 엮여서 좋은 꼴 못 본다."
"에이, 사장님이 얼마나 다정하신데 그래. 하여간 강시우 똥고집은 알아줘야 해."
유나는 콧방귀를 뀌며 앞장섰지만, 은근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시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겉으로는 가볍게 넘겼지만, 머릿속은 한도진의 카페 주변에 형성된 보이지 않는 감시망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계산하느라 복잡했다.
사거리 골목길 초입.
오달수 경장이 순찰차 보닛에 기대어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주름진 종이컵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와 흥분이 기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오 아저씨. 순찰차 위에서 주무시면 안 돼요."
시우가 슬그머니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오 경장은 화들짝 놀라며 시우를 바라보았다.
"어이쿠, 시우구나! 마침 잘 왔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해줄 말이 있었는데!"
오 경장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시우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그의 눈이 핏발이 선 채로 빛나고 있었다.
"너 저번에 나한테 준 팁 기억나지? '완벽한 알리바이를 대는 놈들을 의심하라'는 거."
"아, 그냥 소설 얘기요?"
"소설은 무슨! 그게 신의 한 수였다니까! 수사팀에서 그 시간대 알리바이가 너무 확실해서 제외했던 놈들을 역으로 탈탈 털어봤거든? 그랬더니 아주 흥미로운 게 나왔어."
오 경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실종 사건이 일어난 날 밤, 피해자들 동선 근처에 있던 차량 블랙박스나 근처 가게 CCTV 중 서너 군데가 일시적으로 화면이 먹통이 되거나 잡음이 심하게 꼈더라고. 한두 번이면 기계 결함이나 전파 오류려니 하겠는데, 실종 시간대와 정확히 일치해. 마치 누군가 그 구역의 눈을 인위적으로 가린 것처럼 말이지."
"정말요? 신기하네요."
시우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태연하게 놀란 척을 했다.
"근데 더 미스터리한 건 말이야. 전파 방해 장치를 썼다면 특수한 기계가 필요할 텐데, 우리 관내에서 그런 전자기기를 다룰 줄 알거나 보유한 인물은 평범한 민간인 중에는 거의 없어. 게다가 용의 선상에 올랐던 놈들은 죄다 알리바이가 너무 정교해서, 잼머를 켜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시간적 물리적 증거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오 경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수사망은 좁혀졌지만, 결정적인 물증을 잡을 연결고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시우는 붕어빵 트럭에서 구워지는 풀빵을 보며 넌지시 추가 팁을 흘렸다.
"아저씨. 근데 전파 방해 장비(잼머)라는 건 전원을 켜면 주변의 무선 신호나 주파수 대역을 통째로 교란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근처에 있는 기지국이나 주파수 모니터링 기관의 전파 기록에도 일시적인 전력 급증이나 이상 주파수 파형이 기록되지 않을까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전파관리소 같은 곳에서는 전파 방해가 일어나면 즉시 발원지 추적이 가능하대요."
"어……?"
오 경장이 멈칫했다.
"그리고 잼머를 쓰려면 배터리가 꽤 많이 들어갈 텐데, 그걸 개조하거나 충전한 흔적이 용의자의 카드 결제 내역이나 집 안의 전력 사용량 같은 데서 은근히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형 방해 장치라도 전압이 특이할 테니까요."
오 경장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는 멍하니 시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고등학생의 입에서 전파관리소 협조 공문이나 전력 사용량 분석 같은 구체적인 수사 기법이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녀석…… 대체 정체가 뭐지? 은둔형 외톨이 영재인가? 아니면 전생에 명탐정이었나?'
오 경장의 머릿속에서 시우의 존재감이 에베레스트산만큼 거대해졌다. 시우가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경찰청 수사 매뉴얼보다 훨씬 날카롭고 실용적이었다.
"시우 너…… 너 진짜 경찰서 특별 자문으로 위촉해야겠다. 전파관리소 기록!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잼머 주파수 교란 구역의 전파 파형 데이터를 분석하면 잼머가 켜진 정확한 위치와 이동 동선까지 뽑아낼 수 있어!"
오 경장은 감격에 겨워 시우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고맙다, 시우야! 이 아저씨가 이번에 꼭 범인 잡아서 네 이름으로 포상금이라도 청구해 줄게!"
오 경장은 바로 순찰차에 타서 무전기를 잡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우는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좋아, 오 아저씨가 전파 기록을 털기 시작하면 한도진도 슬슬 압박감을 느끼겠지.'
하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카페 '드림' 앞을 지나가던 찰나, 카페 문이 스르륵 열리며 한도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며칠 전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눈 밑의 짙은 그늘과 흐트러진 머리칼은 그가 밤새도록 어떤 광기 어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대변해 주었다.
"어머, 사장님! 안녕하세요."
유나가 반갑게 인사했다. 한도진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집요하고 싸늘했다.
"안녕하세요, 유나 학생. 그리고 시우 학생도."
도진의 시선이 시우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유나 학생, 혹시 어제 밤 12시 조금 넘어서 이 근처 골목길을 지나가지 않았나요? 이상한 소동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어떤 남자의 신발끈이 꽁꽁 묶인 채 엎어져서 고함을 쳤다던데."
도진이 아주 부드럽고 나지막한 톤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의 이면에는 팽팽한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어머, 진짜요? 그런 웃긴 일이 있었어요? 저희는 어제 학원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서 전혀 몰라요."
유나가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시우에게로 옮겼다.
"시우 학생은요? 어제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그 골목을 지나진 않았나요?"
숨이 막히는 압박감이 시우의 가슴을 눌렀다. 도진은 시우의 미세한 동공 흔들림, 호흡의 템포, 땀방울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시우는 어깨를 나른하게 늘어뜨리며, 졸린 듯 눈을 비볐다.
"네? 아, 전 어제 너무 피곤해서 독서실 나오자마자 큰길로만 다녔어요. 요즘 골목길 무섭다고 오 경장님이 하도 신신당부를 하셔서요. 근데 신발끈 묶인 사람은 취객이었나 봐요? 참 별난 사람도 다 있네요."
시우의 표정에는 그 어떤 거짓말의 징후도 없었다. 오직 피로에 절어 만사가 귀찮은 평범한 고등학생의 멍청한 연기만이 완벽하게 발휘되고 있었다.
도진은 시우의 눈동자를 깊게 들여다보았지만, 어떠한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래요…… 그렇군요. 늦은 시간엔 위험하니 늘 큰길로만 다녀요. 특히 시우 학생은 몸이 약해 보이니 더 조심해야겠어요."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시우는 유나의 가방끈을 잡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도진의 시선이 두 사람의 등에 닿아 끈적하게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 안으로 돌아온 한도진은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어두워진 실내에서 도진은 모니터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카페 안팎에 새로 설치한 초고화질 초소형 카메라 8대의 영상이 분할되어 띄워져 있었다.
도진은 화면 속 시우의 걸음걸이와 프레임 단위의 움직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강시우…….'
도진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스마트 태그를 만지작거렸다.
심증은 없었지만, 그 소동이 일어난 시점마다 기묘하게 겹치는 인물.
도진의 입가에 흉포한 광기의 미소가 천천히 번져갔다.
"누구든 상관없어. 내 꼬리를 잡은 쥐새끼라면, 덫에 걸려 죽게 만들어주지."
두 천재의 소리 없는 싸움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