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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4화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4화: 어둠 속의 증명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방 안은 지독하리만치 조용했다.
시우는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은 형광등 커버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낮에 오달수 경장에게 흘리듯 던진 말과, 카페 '드림'에서 한도진이 사과를 깎던 기묘한 손놀림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몇 번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평범한 동네 카페 사장이다. 상냥하고, 잘생겼고, 학생들에게 서비스도 잘 주는 좋은 이웃. 그런 사람이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일 리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은 너무 잔인하고 모순적인 곳이 아닌가.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이질적인 한기가 시우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
이 말도 안 되는 초월적인 힘을 얻은 이후로, 시우의 육감은 기묘하게 예민해져 있었다. 멈춰진 세계 속에서 공기의 미세한 저항과 밀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얻은 일종의 동물적인 직관이었다. 그리고 그 직관은 오늘 낮 한도진의 눈동자 밑바닥에서 분명히 보았던 사나운 살의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우는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등교 날로 먹는 데나 쓰려고 얻은 능력이 아니었나 보네."

자조 섞인 혼잣말을 뱉으며 검은색 후드티를 껴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이대로 모른 척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굳이 위험을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유나가 그 부드러운 가면을 쓴 늑대의 다음 타깃이 된다면? 그 생각에 도달하자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확인해야 했다.


밤 12시 35분.
골목길은 낮의 온기가 무색하게 서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바닥을 비추는 가운데, 카페 '드림'의 유리창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CLOSED' 팻말이 유리문 너머로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시우는 카페 뒷골목으로 향했다. 인적이 완전히 끊긴 좁은 골목길이었다. 카페의 뒷문은 짙은 회색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위쪽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시우는 철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가슴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을 때, 시우는 눈을 감고 온 신경을 미간으로 모았다.

'정지.'

스우우우──.

바람 소리가 뚝 끊겼다. 저 멀리 대로변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자동차 엔진 소리도, 가로등 주변을 맴돌던 하루살이들의 날갯짓도 모두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세상의 색채가 옅어지고 지독한 정적이 찾아왔다.

동시에 시우의 가슴이 턱 막혔다.
더 이상 들이마실 공기는 없었다. 오직 지금 허파에 담아둔 이 한 모금의 산소만이 멈춘 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생명줄이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해.'

시우는 뒷문 철손잡이를 잡았다.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멈춰진 세계에서는 물리적인 법칙도 일시적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잠긴 자물쇠를 힘으로 부수려면 평소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쇠를 부수는 짓은 불가능했다.

시우는 시선을 위로 올렸다. 철문 바로 위에 성인 남성 한 명이 간신히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환기용 미닫이창이 있었다. 창문은 안쪽에서 걸쇠가 잠겨 있었지만, 미세하게 3센티미터 정도 틈이 벌어져 있었다.

시우는 담벼락에 설치된 가스 배관을 딛고 올라섰다. 멈춘 공기의 엄청난 저항감 때문에 몸이 평소보다 대여섯 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숨이 벌써 턱 끝까지 찼다.

창문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멈춘 시간 속의 플라스틱 걸쇠는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단단했다.
'제발 움직여라……!'
시우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끼이익, 하는 뻑뻑한 소리조차 나지 않는 묵음 속에서, 마침내 걸쇠가 서서히 돌아가며 창문이 열렸다.

시우는 재빨리 창문 틈으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는 동안 굳어 있는 실내 공기가 온몸을 가시처럼 찌르는 듯한 마찰을 일으켰다. 간신히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시우는 소리 없는 낙법을 치며 카페 내부로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가슴속의 허파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30초 내외.

카페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멈춰진 시간 속에서는 미세한 빛 알갱이들조차 굳어 있어 시우가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미세하게 형광 빛이 일어났다. 시우는 카운터 안쪽의 스태프 전용 룸으로 향했다. 'STAFF ONLY'라고 적힌 목재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문은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도진의 개인 사무실 겸 휴게실로 보이는 방이었다. 단정한 책상과 서류철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공간이었다.

'어디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놈이라면 분명 어딘가 숨겨두었을 텐데.'

시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액정 화면을 켰다. 하지만 시간을 멈춘 상태에서는 스마트폰의 빛조차 앞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액정 표면에 끈적한 젤리처럼 고여 있었다. 시우는 스마트폰을 얼굴 가까이 대고 그 미세한 고인 빛으로 책상 서랍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서랍, 통장과 카페 계약 서류.
두 번째 서랍, 영수증 뭉치와 여분의 필기구.
세 번째 서랍, 텅 비어 있는 공간.

남은 시간은 15초. 눈앞이 서서히 번지며 흰 점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산소 부족으로 뇌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설마 내 착각이었던 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 건가?'

초조함이 극에 달한 순간, 시우의 시선이 책상 아래 발판 쪽으로 향했다. 바닥에 깔린 카펫의 한쪽 모퉁이가 아주 미세하게 들떠 있었다.
시우는 바닥으로 엎드려 카펫을 걷어냈다. 낡은 나무 바닥재 판자 하나가 묘하게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판자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자, 안쪽에 어두운 비밀 홈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검은색 가죽 가방이 들어 있었다.
시우는 지체 없이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가방 속을 확인한 순간, 시우의 심장이 쿵 얼어붙었다.

가방 가장 윗부분에는 투명한 지퍼백 몇 개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지퍼백 안에는 붉은색 가죽 지갑과 함께, 얼마 전 실종된 여대생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힌 대학교 학생증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여대생은 시우가 뉴스에서 보았던 그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번째 지퍼백에는 피처럼 붉은 루비가 박힌 은제 팔찌가 들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잘 갈린 예리한 메스와 조각칼 수십 자루가 가죽 파우치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갈색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채 정갈하게 접힌 앞치마가 보였다. 그 갈색 얼룩은 한눈에 봐도 말라붙은 혈흔이 분명했다.

그것은 살인범이 자신의 범행을 기념하기 위해 보관하는 전리품이자, 지옥의 증거들이었다.

"……!!"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진짜였다.
다정하고 온화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쿠키를 구워주던 한도진이, 밤에는 이 무시무시한 메스로 사람을 도살하는 연쇄살인마였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요동쳤다. 폐에 남아 있던 산소가 완전히 고갈되어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검은 어둠이 침식해 들어왔다. 능력을 더 유지하다가는 이 자리에서 질식해 쓰러질 판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도진의 비밀 창고 위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될 터였다.

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의 지퍼를 다시 채우고 나무 판자를 덮었다. 카펫을 원래대로 정돈한 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카운터 밖으로 기어 나갔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다리가 풀려 바닥을 기어가는 동안, 열어두었던 미닫이창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간신히 창틀을 잡고 상체를 밖으로 밀어냈다. 골목길의 차가운 정지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해제……!'

시우가 마음속으로 외침과 동시에 세상에 거대한 소음과 색채가 쏟아져 들어왔다.

콰아아앙──!

"허어어어억! 컥! 커헉! 헉!"

바닥에 떨어져 뒹군 시우는 미친 듯이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기침을 해댔다. 가슴통증이 너무 심해 갈비뼈를 움켜쥐고 한참을 헐떡였다. 입안에서 비릿한 철분 냄새가 맴돌았다.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허파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시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스르륵──.

그때, 저 멀리 사거리 대로변 쪽에서 낯익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시우는 다급하게 어두운 담벼락 그늘 뒤로 몸을 숨겼다.

구두 굽 소리였다. 아주 일정한 템포로 바닥을 딛는 차갑고 정교한 발걸음 소리.
어둠을 뚫고 걸어 나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한도진이었다.

그는 검은색 롱 코트를 입고, 손에는 하얀색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편의점에서 산 듯한 캔맥주 몇 개가 들어 있는 듯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도진은 카페 뒷문 앞에 멈춰 서서, 아주 조용히 위쪽 미닫이창을 바라보았다.

시우는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골목 전체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도진은 미닫이창이 미세하게 열려 있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낮의 상냥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얼음처럼 차갑고 메마른 무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창틀을 확인하더니, 손을 뻗어 창문을 꾹 닫고 걸쇠를 잠갔다.
그리고 주변 어둠 속을 느리게 훑어보았다. 마치 쥐 한 마리라도 숨어 있는지 찾아내려는 뱀의 눈빛이었다.

도진의 시선이 시우가 숨어 있는 벽 그늘 쪽을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시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를 느꼈다. 만약 저 자가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온다면 다시 한 번 목숨을 걸고 시간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지금 시우의 폐는 더 이상의 정지를 버텨낼 여력이 없었다.

다행히도 도진은 캔맥주 봉지를 고쳐 쥐며 카페 뒷문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이 쿵 닫히는 소리와 함께 골목길에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하아."

시우는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골목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리가 덜덜 떨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차가운 밤하늘 아래, 시우는 한도진의 카페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가면은 벗겨졌다. 진실은 상상 이상으로 흉포했다.
날로 먹고 싶었던 시우의 평화로운 일상은, 이제 밤의 괴물과 마주하며 걷잡을 수 없는 균열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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