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3화: 완벽이라는 이름의 가면
"와, 여기 딸기 쉐이크 진짜 대박이다! 사장님, 완전 맛있어요!"
유나가 굵은 빨대로 핑크빛 쉐이크를 한껏 들이마시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방과 후, 약속대로 유나에게 초코우유 대신 서비스 쉐이크를 얻어먹기 위해 찾은 카페 '드림'은 아늑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단정한 나무 인테리어와 은은한 재즈 음악, 그리고 유치하지 않게 배치된 초록색 화분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네요. 학생들 공부하느라 힘들 텐데 많이 먹어요. 부족하면 더 줄게요."
카운터 너머에서 커피 머신을 닦던 한도진이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 웃었다. 마침 카운터 옆 유리 진열장에는 가죽으로 정밀하게 제작된 듯한 고급스러운 카드 지갑과 펜 케이스 몇 개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유나가 진열장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우와, 사장님! 저기 진열장에 있는 가죽 소품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디자인이 엄청 세련됐어요."
한도진은 서비스라며 갓 구워낸 듯 따뜻한 초코칩 쿠키 한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웃었다.
"아, 네. 제 소소한 취미가 가죽 공예거든요. 손님이 없을 때 구석에서 하나씩 만드는 재미가 있어서요."
"우와, 진짜 금손이시다! 가죽 결이 되게 정밀하게 깎여 있는 것 같아요."
유나가 감탄하자, 한도진은 앞치마에 가볍게 손을 닦으며 테이블 옆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묘한 여유와 세련미가 깃들어 있었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깨끗한 피부와 호감형 외모는 누구라도 경계심을 풀게 만들 만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우는 빨대로 쉐이크를 휘휘 저으며 묵묵히 도진을 관찰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겪었던 그 한계의 질식감과 피로 탓인지, 아니면 노을녘 도진과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이질적인 차가움 때문인지 본능적인 시선이 도진에게 향할 뿐이었다.
"참, 아저씨. 요즘 이 근처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 뉴스 보셨어요?"
유나가 쿠키를 한 입 베어 물며 넌지시 물었다.
도진의 얼굴에 즉시 안타까움과 걱정이 뒤섞인 그늘이 내려앉았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기사 봤습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밤에 마감하고 퇴근하는데 경찰분들이 골목 입구에서 검문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무서운 세상이에요. 유나 학생도 그렇고, 시우 학생도 늦은 시간에는 꼭 같이 다녀요.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까."
"맞아요. 요즘 우리 동네 경계선까지 범죄 구역이 넓어졌다더라고요. 아, 사장님은 몇 시쯤 퇴근하셨어요? 그때 경찰들이 검문하고 있었으면 범인이 그 시간대에 움직였을 수도 있겠네요."
유나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한도진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어디 보자…… 그날이 화요일이었죠? 제가 카페 포스기 마감 정산 버튼을 누른 시간이 정확히 밤 11시 40분이었어요. 영수증을 챙겨서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골목으로 나선 게 11시 43분쯤이었을 겁니다. 마침 스마트폰으로 라디오를 켜고 이어폰을 꼈는데, 11시 45분 헤드라인 뉴스가 끝나고 성시경의 '거리에서'가 막 흘러나오기 시작했거든요. 딱 그 노래 전주가 흐를 때 파출소 오 경장님이랑 순경 한 분이 골목길 모퉁이에서 순찰차를 세워두고 검문하시는 걸 봤죠. 가볍게 인사 나누고 지나갔는데, 시간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한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유나는 "와, 사장님 기억력 진짜 좋으시다"라며 감탄했다.
하지만 시우는 쉐이크를 마시던 빨대를 멈췄다.
머릿속에서 기묘한 이질감이 삐걱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기억력이 좋다고?'
시우는 도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은 보통 며칠 전 퇴근길의 기억을 떠올릴 때, 구체적인 분 단위의 시간이나 마침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 제목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 아주 중요한 날이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는 한, 일상적인 퇴근길은 뇌에서 대략적인 덩어리로 처리되기 마련이다.
'밤 11시 40분 마감 정산서, 11시 43분 퇴근, 11시 45분 라디오 헤드라인 뉴스가 끝나고 성시경의 노래.'
이건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질문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완벽하게 다듬어 둔 '모범 답안'을 읊는 듯한 어색함이었다. 묻지도 않은 세부 사항까지 스스로 덧붙이며 자신의 완벽한 무죄와 정상성을 입증하려는 과잉 방어적 태도.
게다가 시우의 시선이 도진의 손으로 향했을 때, 또 다른 위질감이 시우의 등줄기를 스쳤다.
도진은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카운터 옆에 있던 작은 과도와 접시를 가져와 서비스로 줄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사과를 깎는 그의 손놀림은 무척이나 정교했다. 껍질이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나선형으로 부드럽게 깎여 나갔다.
하지만 시우의 눈에 띈 것은 사과 껍질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도진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독특한 손모양이었다.
그는 칼을 쥘 때 검지손가락을 칼등에 얹는 일반적인 파지법을 쓰지 않았다. 엄지와 검지로 칼날의 뿌리 부분을 단단히 움켜쥐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감싸 안으며 칼끝의 방향을 자신의 안쪽 손목으로 살짝 눕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방금 카운터 옆 진열장에서 보았던 가죽 공예를 할 때, 질기고 단단한 통가죽을 0.1밀리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재단하거나 섬세한 모양을 깎아내기 위해 날붙이를 제어하는 전문적인 그립법과 무척 닮아 있었다. 하지만 과일을 깎는 일상적인 행위에 쓰이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기이한 파지법이었다.
서글서글한 훈남 사장님이 깎고 있는 사과와, 그의 손에 들린 칼을 쥐는 살벌한 그립법.
그 극단적인 부조화가 시우의 시야를 강하게 두드렸다.
사각, 사각.
일정한 박자로 사과가 깎여 나가는 소리가 묘하게 서늘하게 들렸다. 도진의 손끝은 핏기 하나 없이 매끄러웠고, 그의 손목 안쪽에는 옅은 흉터 같은 자국이 셔츠 소매 사이로 힐끗 보였다.
"자, 다 깎았습니다. 시우 학생도 생각 비우고 좀 먹어요."
도진이 사과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시우에게 건넸다.
그 순간, 도진의 눈동자가 시우를 향했다. 평소의 그 상냥한 눈빛이었지만, 시우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 듯 도진의 눈동자 밑바닥에서 찰나의 날카로운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사과를 받아 입에 넣었다. 아삭한 식감과 단맛이 퍼졌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모래알을 삼키는 것처럼 까끌거렸다.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히고 있었다.
유나는 여전히 싱글벙글하며 붕어빵 봉지를 흔들고 있었고, 시우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침묵을 지켰다.
"야, 강시우. 너 아까부터 왜 그렇게 조용해? 체했냐?"
유나가 시우의 팔꿈치를 툭 쳤다.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래. 아침에 너무 무리했나 봐."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맨날 누워만 있으니까 그렇지."
그때, 골목 한구석에 세워진 순찰차 옆에서 오달수 경장이 이마를 짚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한 손에 수사 일지를 들고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그의 얼굴은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아저씨,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시우가 다가가 묻자, 오 경장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어유, 시우구나. 그래, 퇴근은 무슨. 윗선에서 이 근처 CCTV랑 블랙박스 기록을 죄다 싹싹 긁어오라고 난리다. 아주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수사는 잘 안 풀려요?"
"말도 마라. 실종 사건 시간대 주변 차량 조사는 다 끝났는데, 용의선상에 올릴 만한 차가 없어. 그 시간에 지나간 차들은 블랙박스 영상도 다 깨끗하고, 차주들 알리바이도 아주 칼같이 맞아떨어져. 의심할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단 말이지. 영수증 시간 확인하고, 주변 목격자 진술 들어봐도 다들 너무 확실해. 이쯤 되면 진짜 유령이 곡할 노릇이다."
오 경장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려다, 앞에 서 있는 고등학생들을 의식하고는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까 카페에서 느꼈던 찜찜함을 흘려보내듯 툭 던졌다.
"오 아저씨."
"왜?"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며칠 전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 정확한 몇 분 단위의 시간이나 그때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 제목 같은 걸 전부 기억하나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오 경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그냥요. 형사물 소설 같은 데서 보면 그렇잖아요. 범인들은 자기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증명하려고 묻지도 않은 구체적인 시간이나 정산 시간, 심지어 그 당시 주변 상황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한다면서요. 오히려 아무 죄도 없는 일반인들은 '어…… 그날 대충 밤늦게 들어갔는데 무슨 요일이었더라? 시간은 기억 안 나요'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싶어서요."
시우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을 맺었다. 그저 고등학생다운, 어디선가 읽은 추리 소설의 클리셰를 읊조린 듯한 뉘앙스였다.
하지만 오달수 경장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의 펜을 쥔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만년 경장으로 지내며 수많은 잡범을 잡고 숱한 사건을 접해온 직관이, 시우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강하게 반응했다.
'지나치게 완벽한 알리바이.'
오 경장은 머리를 한 대 얻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포함한 수사팀은 지금까지 '알리바이가 완벽하고 증거가 없는 사람들'을 용의선상에서 차례차례 제외해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수사의 기본 공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 완벽한 알리바이 자체가 미리 정교하게 설계된 시나리오라면? 범인이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기 위해 일부러 조작한 알리바이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라면?
오 경장의 시선이 시우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은 단순한 동네 고등학생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이 자식…… 그냥 뒹굴거리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수사의 맹점을 찌르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잖아?'
오 경장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시우 너…… 방금 그 말, 꽤 일리 있는 소리다. 완벽한 알리바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
"네? 아뇨, 전 그냥 소설에서 본 얘기 한 건데요."
시우는 오 경장의 흉흉한 눈빛에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넌 생각 없이 던진 말일지 몰라도, 수사에는 이런 뇌의 맹점을 찌르는 시각이 필요해. 고맙다, 시우야. 아저씨가 놓치고 있던 판을 다시 짤 수 있겠어."
오 경장은 시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수사 일지를 가슴에 품었다. 그의 눈에 다시금 열정적인 형사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나 먼저 들어간다! 밤길 조심하고!"
오 경장은 급하게 순찰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붕 하고 멀어지는 순찰차를 보며 유나가 시우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와, 강시우. 너 방금 좀 멋있었다? 프로파일러 같았어."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 추워 죽겠다."
시우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오 경장이 저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기에 내심 당황스러웠다. 그저 한도진의 완벽한 묘사에서 느낀 위질감을 가볍게 털어내려 했을 뿐인데, 일이 커진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 교복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운 시우는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거리에 위치한 다정한 카페 사장, 한도진.
그가 사과를 깎던 정교하고 서늘한 손놀림과, 묻지도 않은 완벽한 알리바이의 진술들.
'만약…… 진짜 만약에 그 사람이 범인이라면?'
시우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디지털시계를 보았다.
세상의 시간을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기적의 능력. 하지만 숨이 막히고 뼈가 비명을 지르는 제약.
시우는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폈다.
그 완벽한 미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멈춰진 시간의 틈새 속에서 확인해 보고 싶다는 기묘한 충동이 시우의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