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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32화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32화: 수첩 속 47초

점심 종이 울리자 시우는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다.

평소라면 급식 메뉴판부터 확인했을 시간이었다. 오늘은 돈까스였다. 바삭한 튀김옷과 소스에 잠긴 양배추. 평화로운 학생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식판 하나에 들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시우의 머릿속에는 아침부터 이상한 문장 하나만 맴돌았다.

정지한 47초?

바나나우유 빨대를 입에 물고 있던 유나가 그를 흘겨봤다.

"왜 밥 안 먹어? 오늘 돈까스라며. 네가 제일 먼저 뛰어가야 하는 날 아니야?"

"먼저 할 일이 있어."

"강시우가 밥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고?"

"너무 크게 말하지 마. 나도 충격받았으니까."

시우는 가방에서 매점 쿠폰 봉투를 꺼냈다. 어제 창고에서 받은 열 장이었다. 빵 하나를 공짜로 얻는 기쁨을 열 번이나 누릴 수 있는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는 쿠폰 봉투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교실 뒤문을 바라봤다. 윤하린은 쉬는 종이 울리기 전부터 자리에 없었다.

"설마 그 전학생 찾으러 가는 거야?"

유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찾는 건 아니고. 우연히 발견하면 수첩을 잠깐 확인할 생각이야. 아주 교육적인 호기심으로."

"그걸 남의 수첩을 훔쳐보는 거라고 해."

"훔쳐보는 게 아니라 위험물 점검이지.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수도 있잖아."

유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시우의 손등을 보았다. 쿠폰 봉투를 쥔 손가락 끝이 희미하게 굳어 있었다.

"나도 갈게."

"밥은?"

"너 혼자 보내면 밥 먹다가도 체할 것 같아서."

"그건 좀 감동인데."

"감동하지 말고 앞장서. 이상한 짓 하면 쿠폰 다 뺏는다."

시우는 즉시 표정을 바로잡았다.

"그건 협박이야."

"보호야."

두 사람은 급식실과 반대 방향인 본관 계단으로 향했다. 시우는 어제 하린이 신문부 얘기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수첩을 들고 다니는 전학생이 갈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예상은 맞았다.

신문부실 앞 복도 끝 창가에 하린이 서 있었다. 그녀는 작은 우유팩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그 수첩이 있었다. 검은 표지의 수첩이 햇빛을 받아 얇게 반짝였다.

시우는 유나에게 손짓했다.

"여기서 작전이 중요해. 내가 쿠폰으로 매점 빵을 사 준다고 할게. 넌 뒤에서…"

"안 돼."

"아직 작전 설명도 안 했는데?"

"네 표정이 이미 나쁜 짓 하려는 표정이야."

하린은 두 사람을 발견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수첩을 자연스럽게 가방 안으로 넣었다.

시우의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점심 안 드세요?"

하린이 먼저 물었다.

"먹지. 먹으러 가는 길이었어. 엄청 멀리 돌아가는 길."

"신문부실은 급식실 반대쪽이에요."

"오늘은 동선에 철학이 있어."

유나가 팔꿈치로 시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시우는 억지로 웃으며 쿠폰 봉투를 내밀었다.

"그런데 전학생은 매점 빵 좋아해? 쿠폰이 좀 남아서."

"갑자기요?"

"친절한 선배 문화. 학교 적응 지원."

"그 수첩이 궁금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시우의 미소가 딱 멎었다.

하린은 안경을 살짝 고쳐 썼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놀리는 기색은 없었다.

"아침에 보셨죠. 마지막 장. 그래서 계속 신경 쓰였을 것 같았어요."

"그냥 글씨체가 별로여서."

"제 글씨체는 칭찬 많이 받는데요."

"그럼 내용이 별로였어."

유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거 시우한테 왜 적어 둔 거야?"

"시우 학생에게 적어 둔 건 아니에요. 한도진 사건 자료를 보다가 생긴 질문이에요."

하린은 가방 지퍼를 열지는 않은 채 손잡이를 잡았다.

"설명하면 들을래요?"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듣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부딪혔다.

그러나 모른 척 돌아서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정확했다.

"짧게."

"짧게는 어려워요. 그래도 보여 드릴게요."


신문부실 문은 잠겨 있었다.

하린은 문 옆 벽에 붙은 게시판 앞에 서서 투명 파일을 꺼냈다. 파일 안에는 신문 스크랩과 인쇄물 몇 장이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관찰하는 수첩과 달리 종이들은 지나치게 반듯했다.

"이건 사건 당일 신고 접수 기록이에요. 밤 9시 12분 18초. 인근 상가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고 신고했어요."

하린이 첫 번째 종이를 가리켰다.

"이건 골목 입구의 목격자 진술. 신고 직후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안쪽에서 밖으로 뛰어나왔다고 했어요. 시간은 9시 12분 41초쯤이라고 적혀 있고요."

두 번째 종이에는 짧은 진술이 인쇄되어 있었다. 하린의 손가락은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그런데 이건 경찰 발표에 포함된 CCTV 확인 시각이에요. 골목 입구 카메라가 다시 화면을 잡은 건 9시 13분 28초. 그때까지 화면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시우는 종이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숫자는 눈에 들어왔다. 12분 41초. 13분 28초.

딱 47초.

그날의 공기는 목구멍에서 멈췄다. 그는 한도진의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유나를 보았다. 숨을 들이키지 못한 채 발을 옮겼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멈춘 세계에서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 지나치게 컸다.

시우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쿠폰 봉투 모서리가 손바닥을 찔렀다.

"카메라 고장 났겠지."

"그럴 수 있어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고장 시간에 철문은 열려 있었어요. 목격자는 분명히 사람을 봤고 현장에 남아 있던 발자국도 하나가 사라졌어요. 경찰 기록에는 혼선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럼 혼선이겠네."

"저는 그 말이 편해서 싫어요."

하린이 세 번째 종이를 덮었다.

"설명 안 되는 걸 한 단어로 덮어 버리잖아요. 우연, 착오, 혼선. 그렇게 끝내면 남는 사람은 계속 자기가 뭘 본 건지 의심하게 돼요."

유나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말 하려고 우리를 부른 거야?"

"아니요. 두 분이 그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요. 기록에는 강시우 학생이 현장 근처에서 쓰러졌다고 나와 있어요. 최유나 학생이 구조를 요청했고요."

"우린 할 말 없어."

유나의 대답은 빨랐다.

시우는 그녀를 돌아봤다. 유나는 언제나 자기보다 먼저 화를 냈다. 지금도 그랬다. 그러나 손은 시우의 소매 끝을 조용히 잡고 있었다.

하린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종이를 파일에 넣었다.

"알아요. 그래서 지금 당장 대답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그럼 왜 보여 줬어?"

시우가 물었다.

"시우 학생이 수첩을 확인하려고 왔으니까요. 제가 확인한 걸 숨긴 채 기사 소재로만 보기는 싫었어요."

"기사?"

시우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하린은 가방에서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상단에는 학교 신문부 로고와 함께 ‘동행 취재 협조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동네 사건을 도운 학생의 학교생활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뭐가 달라졌는데?"

"강시우 학생은 사건을 해결하는 영웅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건에서 멀어지려고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빈칸이 생긴 자리마다 가까이 있어요."

"그건 그냥 운이 나쁜 거야."

"그럴 수도 있어요."

하린은 단정하게 말했다.

"그래서 하루만 보고 싶어요. 비밀을 말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을 기록하게 해 주세요. 정말 평범하면 평범한 기사로 끝낼게요."

시우는 신청서를 내려다봤다.

학교생활 동행 취재. 인터뷰 선택. 사진 촬영 사전 동의.

종이 한 장이 침대보다 무거웠다.

"싫어."

"시우야."

유나가 바로 그의 편에 섰다.

"시우는 네 취재 대상 아니야. 그리고 기사 쓰려면 당사자가 허락해야 하는 거잖아."

"맞아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부탁처럼 안 들려."

하린은 잠시 유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경쟁심도 비웃음도 없었다. 다만 상대가 어디까지 막아 설지 재는 사람의 조용한 집중이 있었다.

"최유나 학생이 시우 학생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건 알겠어요. 저도 억지로 비밀을 끌어내고 싶진 않아요."

"그럼 멈춰."

"그런데 빈칸은 멈추지 않아요. 누군가가 설명하지 않는 사이에도 계속 남아요."

시우는 하린의 말이 싫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싫었다. 그는 그저 아무 일도 없는 날을 원했다. 종이 위의 47초가 아니었다. 침대 위에서 늦잠을 자고 매점에서 빵을 사고 유나에게 잔소리를 듣는 날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내 일상은 기사거리 없어."

"그럼 저도 빨리 포기하겠죠."

"진짜?"

"네. 대신 하루만."

시우는 신청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루만 허락하면 끝난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때 복도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시우야! 여기 있었구나!"

오달수 경장이 종이컵 두 개를 든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따뜻한 코코아가 들려 있었다.

"마 선생님이 네가 점심도 못 먹고 학교 안전을 걱정한다고 하시길래. 이건 피곤한 천재 프로파일러용 코코아다."

"저 그런 걱정 한 적 없는데요."

"겸손은 됐다. 어제 창고 일도 그렇고 넌 정말 협조적이야."

오 경장은 하린이 들고 있는 신청서를 발견했다.

"어? 신문부 취재인가? 좋지! 우리 시우가 얼마나 훌륭한 학생인지 널리 알려야지."

"아저씨."

"다만 신변 보호는 철저히. 우리 은둔 고수는 조용한 걸 좋아하니까."

시우는 코코아를 받을 힘도 없이 눈을 감았다.

하린은 신청서를 천천히 접어 수첩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시우가 외면할 수 없도록 똑바로 말했다.

"허락은 안 받은 걸로 할게요. 대신 억지로 따라다니진 않겠어요."

시우가 한쪽 눈을 떴다.

"그럼 끝난 거지?"

"다만 학교 신문부는 누구나 취재할 수 있는 공개 행사를 기록할 수 있어요. 내일부터 시우 학생이 있는 반을 관찰할 거예요. 평범한 하루를 쓰기 위해서요."

"그게 따라다니는 거랑 뭐가 달라?"

"문서상으로는 달라요."

유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얄미운 애네."

하린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첩을 펴서 새 줄에 무언가를 적었다.

시우는 글자가 완성되기 전에 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보았다.

내일부터 관찰.

하린은 수첩을 덮었다.

"급식 늦겠네요. 돈까스 식어요."

그 말은 너무 평범해서 더 기분 나빴다.

시우는 유나가 건넨 코코아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따뜻한 김이 안경 낀 전학생이 남긴 차가운 문장과 섞여 눈앞을 흐렸다.

쿠폰 열 장으로 끝난 줄 알았던 자문료의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그날 시우는 돈까스를 먹으면서도 두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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