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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33화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33화: 신문부의 함정 취재

시우는 아침 자습 종이 울리기 전부터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잠이 와서가 아니었다. 오늘은 윤하린이 신문부의 공개 취재를 시작하겠다고 한 날이었다. 시우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기사거리가 안 되는 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가장 평범한 자세를 골랐다.

얼굴을 책상에 묻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세였다.

앞자리의 유나가 뒤를 돌아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너 지금 일부러 더 한심하게 굴고 있지?"

"한심한 게 아니라 생활 밀착형 저전력 인간이야. 기사 제목도 좋잖아. 아무 일도 안 하는 학생의 하루."

"그걸 누가 읽어?"

"나. 잠들기 전에."

"읽다가 바로 자겠네."

"그게 독자 만족이지."

시우는 대답하면서도 교실 뒤문을 힐끔거렸다. 검은 수첩과 안경이 보이면 심장이 먼저 불편해질 것 같았다. 어제 하린이 보여 준 종이 위 숫자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47초.

그 숫자가 단순한 오류였으면 좋았다. 그런데 하린은 오류를 편하게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빈칸을 발견하면 그 가장자리부터 만져 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드르륵.

앞문이 열리자 담임과 하린이 함께 들어왔다. 하린의 팔에는 파란 신문부 완장이 둘러져 있었고 손에는 작은 녹음기와 클립보드가 들려 있었다. 사진기보다 녹음기를 앞세운 모습이 시우에게는 더 성가셨다.

"오늘은 학교 신문부 진로 탐색 기획으로 우리 반을 취재한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게만 해라."

담임이 말하자 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머리를 만지고 누군가는 교복 깃을 바로잡았다. 평소에는 졸던 애들까지 갑자기 자기소개를 잘할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하린은 교실 뒤 빈자리에 앉기 전 시우 쪽을 보았다.

"강시우 학생. 오늘 잘 부탁드려요."

"난 부탁한 적 없는데."

"그래서 공개 취재로 바꿨어요. 거절하기 편하시게."

"전혀 안 편해."

하린은 대꾸 대신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작은 붉은 불빛이 켜졌다.

유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도 녹음해?"

"인용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요. 말은 나중에 기억이 달라지니까요."

그 말은 조용했지만 시우의 귀에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기억이 달라진다. 그날 골목에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 것도 그래서일까.

아니면 기억이 아니라 시간이 달라졌던 걸까.

시우는 얼른 생각을 끊었다. 오늘의 목표는 단순했다. 누구도 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아채지 않고 수업이 끝나면 매점 쿠폰으로 빵이나 사 먹는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첫 교시부터 시우는 교과서를 거꾸로 펴고 쉬는 시간마다 잠든 척했다. 선생의 질문에는 일부러 틀린 답을 골랐고 유나가 종아리를 차도 꿈쩍하지 않았다.

하린은 그 모습을 웃지 않고 기록했다. 그 차분함이 시우를 더 불편하게 했다.

점심시간에 시우는 돈까스 줄 중에서도 가장 긴 줄을 골랐다.

"줄이 길면 밥을 늦게 먹고 수업은 짧아 보여."

"비효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네요."

"그 말 기사에 쓰지 마."

하린은 수첩을 덮었다.

"47초는 오늘 기사에 넣지 않을게요. 다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의 반응도 취재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유나의 표정이 굳었다. 시우는 돈까스 위에 소스가 스미는 것만 봤다. 정중한 말투로 만든 덫이라서 더 피하기 어려웠다.


방과 후가 되자 시우는 남은 매점 쿠폰 두 장으로 소시지빵과 바나나우유를 샀다. 오늘 하루를 버틴 대가치고는 초라했지만 빵이 따뜻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됐다.

"이제 집 가자. 취재도 끝났고."

시우가 말하자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 오늘 이상하게 조용했어. 그것도 기록해 달라고 해야겠네."

"기록 금지. 오늘은 그냥 사라져야 해."

하린은 두 사람보다 몇 걸음 뒤에서 걸었다. 녹음기는 꺼져 있었지만 수첩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수업 취재는 끝났어요. 복도 사진만 몇 장 찍고 갈게요."

"우리 쪽은 찍지 마."

"안 찍을게요."

그 대답이 오히려 수상했다. 시우는 빵 봉지를 뜯으며 본관 중앙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 방송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울렸다.

‘방송반은 체육관 행사 조명 장비를 옮길 때 계단 통행에 유의 바랍니다.’

"또 장비야?"

시우가 중얼거렸다. 체육관 창고에서 시작된 귀찮음이 아직도 학교를 떠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계단 위 복도에는 방송반 학생 둘이 검은 조명 장비가 실린 카트를 밀고 있었다. 앞쪽 학생은 케이블 묶음을 들고 있었고 뒤쪽의 민재는 카트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은 채 낑낑거렸다.

바퀴가 낡은 바닥 이음새를 넘을 때마다 카트가 덜컹거렸다. 카트 옆에는 케이블을 고정할 때 쓰는 낮은 고무 쐐기 두 개가 떨어져 있었다.

시우는 무심코 그걸 한번 봤다. 그리고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덜컹.

이번 소리는 조금 달랐다.

카트 오른쪽 바퀴의 잠금쇠가 튕겨 나왔다. 금속 조각이 바닥을 튀며 계단 아래로 굴렀다. 순간 기울어진 카트가 손잡이를 밀어내듯 앞으로 쏠렸다.

"어, 어어!"

민재가 두 팔에 힘을 줬지만 손잡이는 손바닥에서 빠져나갔다. 카트는 경사진 복도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 아래에는 케이블을 주우려고 몸을 숙인 1학년 남학생이 있었다. 이어폰을 한쪽만 낀 채라 주변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켜!"

민재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카트는 이미 너무 가까웠다.

시우의 손에서 소시지빵이 떨어졌다.

하지 말자.

그는 오늘 아침부터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했다. 숨이 막히고 손목이 찢어질 듯 아픈 세계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순간, 생각은 너무 느렸다.

시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세상이 멈췄다.

소리도 바람도 사라졌다. 기울어진 카트는 금속 바퀴를 들고 허공에 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의 놀란 눈도 그대로 멈췄다.

시우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아니, 달리려 했다. 멈춘 공기는 몸을 단단히 붙잡는 투명한 진흙 같았다. 한 발을 뗄 때마다 폐 속 공기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아이의 어깨를 잡아당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시우는 교복 깃을 움켜쥐고 난간 쪽으로 몸을 끌었다. 아이의 운동화 밑창이 바닥을 끌며 아주 조금 움직였다.

카트 바퀴 앞에는 아까 본 고무 쐐기가 있었다.

시우는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쐐기에 닿자마자 손목이 찌릿하게 꺾였다. 그는 쐐기를 바퀴 앞 틈으로 밀어 넣었다. 무게 때문에 팔이 떨렸다. 숨이 가슴 안쪽에서 바싹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였다.

시우는 아이의 등 뒤를 밀어 난간에 붙이고 시간을 풀었다.

쾅!

카트가 고무 쐐기를 밟으며 크게 튀었다. 조명 장비 한 개가 옆으로 넘어졌고 금속 프레임이 바닥을 긁었다. 카트는 난간 바로 앞에서 비스듬히 멈췄다.

1학년 학생은 난간에 등을 부딪친 채 주저앉았다. 놀라서 눈만 동그랗게 뜬 얼굴이었다.

"괜찮아?"

시우가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서 자신도 낯설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우를 바라봤다.

"선배가 저 당겼어요? 저 방금 앞에 카트만 있었는데."

"네가 미끄러졌고 내가 좀 빨랐어. 끝."

"근데 선배 원래 저기 있었잖아요."

아이의 손가락이 복도 중간을 가리켰다.

시우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보면 거리가 더 선명해질 것 같았다.

"착각했겠지. 놀라면 눈도 바빠."

유나가 달려와 시우의 팔을 붙잡았다. 얼굴은 아이보다 더 창백했다.

"너 괜찮아?"

"나야 멀쩡하지. 빵만 죽었어."

바닥에 떨어진 소시지빵 봉지가 찌그러져 있었다. 소스가 봉지 안쪽에 묻어 있었다. 시우는 농담을 던졌지만 손끝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유나가 그 손목을 잡았다. 손가락이 닿자마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손이 왜 이래."

"복도 춥잖아."

"난 안 추워."

"넌 원래 강하니까."

유나는 더 묻지 못했다. 민재와 다른 방송반 학생들이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민재는 카트를 붙잡은 뒤 고무 쐐기를 발견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왜 여기 끼어 있지?"

시우가 대답하기 전에 하린이 다가왔다.

그녀는 녹음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아까부터 켜 두었던 휴대용 녹음기가 치맛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하린은 그것을 꺼내 화면을 한번 확인했다.

시우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또 뭐가 이상한데?"

하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고 민재에게 카트의 잠금쇠가 언제 풀렸는지 물었다. 그 뒤에야 시우를 봤다.

"이상한 건 없어요. 아직은요."

"그 말이 제일 이상해."

"녹음에는 민재 학생이 소리친 뒤 카트가 멈추는 소리까지 삼 초예요. 그런데 저는 그 사이가 훨씬 길게 느껴졌어요."

"사람은 놀라면 시간 감각이 이상해져."

"맞아요. 그럴 수 있어요."

하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기사에는 쓰지 않을게요. 시간 감각은 증거가 아니니까요."

시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린이 모든 것을 물고 늘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조금 민망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수첩을 펼쳤다.

사각. 사각.

그 펜 끝이 적은 것은 기적도 영웅도 아니었다. 복도 중간에서 빵 봉지를 들고 있던 시우가, 카트가 멈췄을 때는 아이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마동철이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다친 사람 있나?"

"없습니다! 쐐기가 걸려서 멈췄어요!"

민재가 답했다. 마동철은 바닥과 카트를 번갈아 보다가 시우를 발견했다.

"강시우. 네가 저 학생을 옮긴 거냐?"

"옮긴 게 아니라 피하게 한 거예요. 좀 빨리."

"위험한 일에 또 끼어들었구나."

"끼어든 게 아니에요. 카트가 저한테 끼어들었어요."

마동철은 혀를 찼지만 크게 꾸짖지는 못했다. 아이가 시우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시우는 그 인사 하나가 무겁게 느껴졌다. 빵 하나를 지키려고 매점 쿠폰을 모으는 인간에게 그런 감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그냥 눈앞에서 누가 다치는 걸 보기 싫었을 뿐이었다.

그것조차 설명하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는 찌그러진 빵 봉지만 주워 들었다.

유나가 하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취재 끝났지?"

"네."

"그럼 오늘 일 기사로 쓰지 마. 시우는 영웅 놀이 좋아하는 애 아니야."

하린은 수첩을 덮었다.

"알아요. 그래서 영웅 이야기로 쓸 생각 없어요."

"그럼 뭘 쓸 건데?"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본 걸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유나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시우는 둘 사이에 끼어들 힘이 없었다. 숨은 이미 돌아왔지만 폐 안쪽에는 마른 통증이 붙어 있었다.

하린은 잠깐 망설이다가 시우에게 녹음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파형은 민재의 비명과 금속음 사이에서 짧게 낮아져 있었다. 고장이 났다는 흔적도 없고 명확한 공백도 아니었다. 그저 하린이 말한 것처럼 놀란 사람의 체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한 틈이었다.

"이건 제가 보관할게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겠어요."

"왜?"

시우가 낮게 물었다.

"확신 없는 걸로 사람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아서요."

하린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강시우 학생이 뭘 숨기는지보다, 왜 그렇게까지 평범해 보이려 하는지가 더 궁금해졌어요."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평범해지고 싶어서였다. 그냥 늦잠을 자고 빵을 먹고 유나에게 잔소리를 듣는 하루가 좋아서였다. 그런데 그 평범함을 지키려 할수록 자꾸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됐다.

하린은 더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복도 끝까지 간 뒤 그녀는 수첩을 다시 폈다.

시우는 보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펜 끝이 멈춘 자리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 3초가 아니라, 사라진 선택?

시우는 찌그러진 빵 봉지를 내려다봤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는 결국 빵 하나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하린은 그 떨어진 자리에 남은 흔적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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