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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27화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27화: 침묵 속의 대화

병실 구석에 놓인 간이 테이블 조명 아래에서, 서걱거리는 샤프 소리만이 불규칙하게 울려 퍼졌다.
유나는 시우의 침대 옆자리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공부를 하다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힐끗 시우의 호흡 모니터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과정이 벌써 일주일째 매일 밤 반복되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사각, 사각.

유나는 샤프를 내려놓고, 침대 옆 과도와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시우야. 나 과일 깎는 거 진짜 못하는 거 알지? 너 맨날 내가 깎은 사과 보고 '무슨 울퉁불퉁한 조각상 같다'고 놀렸잖아."

유나는 투덜거리며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껍질은 이내 서너 번 뚝뚝 끊어졌고, 사과의 모양은 영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접시 위에 깎아둔 사과 조각들을 올려놓으며 유나는 슬그머니 웃었다.

"그래도 사장님이 깎아주던 그 예쁜 사과보다는, 내가 깎은 이 못생긴 사과가 몸에는 더 좋을 거야. 거긴 살벌한 약이 발려 있었을지 누가 알아?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서 이 못생긴 사과 맛없다고 나한테 꿀밤 한 대 때리란 말이야."

유나는 시우의 손을 꼭 쥐며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 시우의 의식은 완전히 잠들지 않은 상태였다.
의학적으로는 혼수상태였지만, 시우의 정신은 자신의 뇌 신경망 깊은 곳에서 정화 작용을 겪고 있었다. 시간을 정지시키지 않고 가만히 누워 지낸 며칠 동안, 능력을 남발해 상처 입었던 폐포와 뇌세포들이 자연적인 치유력을 발동하며 급격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그 깊은 의식의 수조 속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흘러 들어오는 유나의 잔소리와 따뜻한 물수건의 온기는 시우를 깨우는 가장 강력한 길잡이별이었다.

'아…… 다 들려, 최유나. 사과 진짜 대충 깎았네. 저걸 사과라고 깎아 놨냐, 감자 깎아 놓은 것 같구만.'
시우는 속으로 대답하며 킥킥거렸다. 몸이 서서히 가벼워지고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시우는 기지개를 켜듯 영혼의 태엽을 팽팽하게 감았다.

드르륵──.

그때,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오달수 경장이 피로에 찌든 얼굴로 들어섰다. 그의 양손에는 커다란 과일 바구니와 함께, 금박이 번쩍이는 의문의 두꺼운 액자 서류가 들려 있었다.

"어이, 반장 학생. 여전히 공부 중이구나. 시우 녀석은 어떠냐?"
"네, 오 경장님. 여전히 잘 자고 있어요. 근데 손에 들고 계신 그 번쩍거리는 건 뭐예요?"

유나가 눈을 빛내며 묻자, 오 경장은 자랑스럽게 액자를 가슴에 품어 보였다.

"하하! 이거 말이냐? 우리 서장님이 특별히 본청에 건의해서 발급받은 [대한민국 경찰청 명예 특별 프로파일러 위촉장] 되시겠다! 게다가 이번 실종 사건 진범 검거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 포상 장학금 500만 원 지급 증서도 같이 들어있어!"
오 경장은 감격에 겨워 액자의 금박을 소매로 닦아냈다.

"이 녀석이 깨어나기만 하면, 감사장 전달식도 대대적으로 열고 경찰대 프리패스 입학 특별 추천서도 서장님이 써주시기로 약속하셨단다. 우리 동네에서 역대급 천재 경찰 영웅이 탄생하는 거야!"

'……뭐? 경찰청 위촉장? 경찰대 프리패스?'

의식의 침대 밑에서 조용히 치료받던 시우는, 오 경장의 청천벽력 같은 대사를 듣고 영혼이 순간 얼어붙었다.

'미친, 경찰 위촉장을 받으라고? 매일 밤새워서 조서 쓰고 범인 쫓아다니는 그 중노동의 노예 계약서나 다름없는 걸 나더러 받으라고?! 게다가 경찰대 입학 추천?! 내 꿈은 하루 종일 누워서 과자나 먹으며 날로 먹는 평화로운 백수란 말이다!'

시우는 속으로 맹렬하게 절규했다.
만약 여기서 깨어났다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명예 프로파일러 고등학생 타이틀을 뒤집어쓰고 평생 오 경장에게 "시우야, 이 사건 좀 봐다오" 하고 시달리는 지옥의 직장인 라이프가 시작될 것이 불명확하게 뻔했다.

'안 돼. 절대 안 깨어난다. 의사가 기적적인 혼수상태라고 했으니, 적어도 포상금 통장에 입금되고 위촉장 소동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계속 환자 코스프레를 유지하겠어.'

시우는 맹렬하게 다짐하며, 뇌의 모든 주파수를 '깊은 잠' 모드로 다시 억지로 리셋하려 애썼다.
유나는 오 경장의 호들갑을 보며 피식 웃으며 사과 접시를 오 경장에게 건넸다.

"아저씨, 시우는 그런 명예직 엄청 귀찮아할걸요? 맨날 날로 먹는 게 인생 모토인 애라서요."
"에이, 그래도 세상을 구한 영웅인데 본청에서 부르면 가야지! 시우 녀석, 명예 경찰이 되어 우리나라 수사 역사를 바꿀 천재로 거듭나는 거야!"

'저 아저씨가 진짜…… 내 평화로운 날로 먹기 라이프를 완전히 망치려고 작정을 했네.'
시우는 기둥 뒤에서 오열하는 심정으로 어둠을 지켰다. 두 사람의 뭉클하고도 엉뚱한 병실 안의 만담을 들으며, 시우의 시공간은 깨어나기 직전의 평화로운 조율 과정을 아주 유쾌하게 마감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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