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23화: 종말의 신호탄
5초.
시간의 태엽이 완전히 정지함과 동시에, 시우의 뇌는 차가운 백지장처럼 투명해졌다.
"커흐으윽……! 컥!"
말소리조차 밖으로 나가지 않는 진공의 침묵 속에서, 시우의 가슴뼈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듯 비명을 질렀. 목구멍에서 왈칵 뿜어져 나온 검붉은 선혈이 멈춰 있는 주황색 백열등 광선 사이에 붉은 실선처럼 고정되었다. 눈앞에 검은 점들이 점멸하며 뇌가 산소 부족을 경고해 왔지만, 시우는 벽을 짚고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남은 시간: 4초]
시우는 좌측 벽면에 굳어 있는 구식 분전반 박스로 순간 이동하듯 다가갔다.
녹슬고 단단히 잠겨 있는 철제 커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멈춘 물리 법칙의 저항력 때문에 손톱이 뜯겨 나가는 통증이 전신을 관통했지만, 시우는 이를 악물고 커버를 힘껏 뜯어냈다.
쩌적!
커버가 뜯겨 나가며 내부의 구리 메인 전선들이 드러났다. 시우는 주머니 속에서 꺼낸 예리한 칼날을 사용해 분전반 메인 입력 전선 다발을 잘게 끊어 엮었다. 시간이 풀리는 순간, 끊어진 구리선 가닥가닥 사이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고압 스파크가 튀게 설계한 유도 장치였다.
[남은 시간: 2초]
시우는 지체 없이 바로 옆에 고정되어 있던 메탄가스 수송 배관으로 손을 옮겼다.
세월의 흔적으로 뻑뻑하게 굳어 있는 붉은색 수동 고압 밸브의 핸들을 잡았다. 밸브를 돌리는 매 순간마다 어깨관절이 빠지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지만, 시우는 온몸의 몸무게를 실어 핸들을 반시계 방향으로 거칠게 돌렸다.
끼이이익──.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핸들이 최대로 열렸다. 멈춘 시간 속이라 가스가 즉각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배관 틈새로 고압의 메탄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직전의 미세한 공기 압축 파형이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얼어붙었다.
시간이 해제되는 찰나, 누출된 대량의 메탄가스가 분전반의 고압 스파크와 충돌하며 지하실 전체를 단숨에 집어삼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게 될 터였다.
[남은 시간: 1초]
마지막 순간이었다. 시우는 깡패 두 명의 허리벨트로 다가가, 그들이 장착해 둔 고밀도 군용 연막탄의 안전핀을 손끝으로 가볍게 툭 쳐서 뽑아냈다. 핀이 뽑힌 연막탄들을 깡패들의 발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뜨려 던져두었다.
동시에 시우는 유나에게로 몸을 날렸다. 들고 있던 예리한 칼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밧줄을 단숨에 끊어냈다. 밧줄이 풀리며 쓰러지는 유나의 상체를 꽉 끌어안고, 분전반의 폭발 사선과 한도진의 위치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하실 구석의 가장 두껍고 단단한 콘크리트 기둥 뒤로 몸을 던져 밀어 넣었다.
자신의 등으로 유나의 몸을 완전히 감싸 안으며, 시우는 마지막 의지의 태엽을 풀었다.
'해제……!'
콰아아앙──!!
시간의 흐름이 다시 지하실을 덮침과 동시에, 세상이 지옥으로 변했다.
피이이이──! 지지직!!
밸브에서 고압의 메탄가스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끊어진 구리 전선에서 거대한 스파크 불꽃이 튀었다. 가스와 스파크가 충돌한 찰나의 순간, 하수처리장 지하실 전체가 고막을 찢어발기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주황색 폭염으로 번쩍이며 폭발했다.
펑──!!
폭발의 충격파로 천장의 주황색 백열등이 통째로 파열되며 지하실의 모든 전력이 차단되었다. 칠흑 같은 암전이 찾아온 것과 동시에, 깡패들의 발밑에서는 미리 안전핀이 뽑혀 있던 연막탄 두 개가 퍼퍼퍼펑! 소리를 내며 자욱하고 매캐한 황색 화학 연기를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으아악! 습격이다! 폭탄이다!"
"누가 폭탄 터뜨렸어! 사방이 안 보여!"
갑작스러운 폭발과 암전, 그리고 숨조차 쉴 수 없는 화학 연막의 아수라장 속에서 무장 깡패들은 완벽한 공포와 패닉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사방의 연막을 향해 서로를 적으로 오인하고 총의 방아쇠를 맹렬하게 당겨댔다.
타타타타탕──!!
지하실 벽면을 갈기갈기 찢는 오발의 총성들이 사방에서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기계실 중앙에 서 있던 한도진은 가스 폭발의 강한 압력 충격파에 휩쓸려 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그는 신음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이 빌어먹을 놈들아! 총 쏘지 마! 나를 맞출 셈이냐!"
도진이 비명을 질렀지만, 공포에 질린 부하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쿵, 쾅──!!
지하실 입구의 잠겨 있던 이중 철문이 강력한 유압 램프의 타격음과 함께 처참하게 부서져 나갔다.
폭발음과 총성을 듣고 산속에서 대기 중이던 오달수 경장과 경찰 특공대 수십 명이 방패와 손전등을 든 채 지하실 내부로 거세게 들이닥쳤다.
"경찰이다! 전원 사격 중지하고 무기 버려!"
"연막 속에 용의자들이 있다! 전원 체포해!"
플래시 라이트의 날카로운 백색 광선들이 지하실 연막 속을 찌르고 들어가며, 패닉에 빠진 깡패들을 덮쳐 무력화하기 시작했다. 지하실은 순식간에 강력반 형사들의 검거 현장으로 변했다.
콘크리트 기둥 뒤.
시우는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폭발의 열기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유나를 꽉 껴안았다. 그의 바람막이 점퍼 뒤편은 시꺼먼 그을음과 흙먼지로 뒤덮였고, 입술 틈새로 검붉은 피가 길게 흘러내렸지만, 그의 양팔은 결코 유나의 몸을 놓지 않았다.
유나는 어둠 속에서 폭발음을 들으며, 자신을 감싸 안은 시우의 뜨거운 가슴에 고개를 묻고 울었다.
"시우야…… 바보야…… 왜 또 나 때문에 몸을 던져……."
시우는 기둥에 등을 기댄 채, 흘러가는 의식의 끈을 간신히 쥐며 나직하게 웃었다.
"말했잖아…… 역시 날로 먹는 게 최고라고……. 다 끝났어, 유나야."
경찰들의 구두 굽 소리와 플래시 광선이 기둥 뒤로 들이치는 가운데, 시우의 시야가 마침내 완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