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정지 능력으로 날로 먹는 법

15화: 멈춰진 밤의 습격
새벽 2시 15분.
대학병원 3층 6인용 병실 안은 얕은 숨소리와 기계의 미세한 비프음만이 어우러진 차가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
시우의 침대 주변에는 얇은 옥색 커튼이 처져 있었고, 침대 옆 간이 의자에는 유나가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쪽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고개는 어깨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시우의 야윈 손을 꼭 쥔 작은 손끝만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누워 있던 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의 뼈마디가 강제로 으스러지는 듯한 만성 폐통증 탓에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에 용암을 가득 머금은 것처럼 뜨거운 격통이 울컥거렸다.
스르륵──.
그때, 병실 문이 아주 조용히 열렸다.
가죽 구두가 바닥을 딛는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옅은 담배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인 공기가 안개처럼 커튼 틈새로 번져 들어왔다.
시우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간을 멈추며 다져진 그의 육감은, 다가오는 이질적인 발소리 밑바닥에 숨겨진 차가운 적의를 아주 기가 막히게 감지해 냈다.
스윽.
커튼이 젖혀지며 두 명의 실루엣이 소리 없이 들어왔다.
하얀 의사 가운을 어설프게 걸쳐 입었지만, 깃 사이로 얼핏 보이는 문신과 험상궂은 얼굴은 전형적인 뒷골목의 삼류 해결사 깡패들이었다. 한 놈의 손에는 굵은 마취 주사기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 놈은 휠체어를 끌고 들어와 시우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놈이 잠든 유나의 목덜미를 쳐 기절시키려 손을 뻗었고, 마취제를 든 놈은 시우의 링거 수액 튜브에 바늘을 꽂으려 다가섰다.
일촉즉발의 순간.
시우는 마지막 남은 신체 에너지를 쥐어짜 갈비뼈를 터뜨릴 듯 밤공기를 가득 들이마셨다.
'정지!'
스우우우──.
세상이 흑백의 무덤처럼 차갑게 박제되었다.
수액 통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이 낙하 궤적 그대로 허공에 둥둥 떠 멈췄고, 사내의 손끝은 유나의 하얀 목덜미 위 3센티미터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커흐으윽……! 컥!"
시간이 멈추자마자 시우는 입을 틀어막았다.
목구멍에서 울컥 솟구쳐 나온 검붉은 선혈이 손가락 틈새로 뿜어져 나와 병실 바닥에 툭, 툭 무겁게 떨어졌다. 폐포가 통째로 찢어지는 듯한 극단적인 격통이 온몸의 신경을 난도질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눈앞이 노랗게 멀어갔지만, 시우는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내 소시민 라이프를 방해하는 새끼들은…… 절대로 그냥 안 둬.'
시우는 이빨을 짓씹으며 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그는 먼저 유나를 덮치려던 사내의 손에서 마취 주사기를 빼앗았다. 멈춘 시공간의 저항력 때문에 손가락 피부가 찢어지는 통증을 참으며, 그 주사기를 다른 사내의 두꺼운 허벅지에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시간이 풀리는 순간, 놈은 자신의 몸속으로 주입되는 강력한 마취 약물 탓에 순식간에 기절할 터였다.
그리고 휠체어를 가져온 다른 놈에게는, 그가 들고 있던 휠체어 고정 벨트를 이용해 몸을 의자에 칭칭 묶어 결박해 버렸다.
두 깡패를 휠체어에 겹쳐서 앉힌 시우는, 뻑뻑하게 굳어 있는 공기의 벽을 온몸으로 밀쳐내며 그들을 이끌고 병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3층에 멈춰 서 있었다. 멈춘 엘리베이터의 틈새 문을 힘으로 억지로 벌려 깡패들을 밀어 넣은 뒤, 1층 로비 층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힘을 다해 1층으로 내려온 시우는, 안내 데스크 바로 앞에 깡패들을 배치해 두었다.
마침 로비 안내 데스크 앞 소파에는, 시우의 병실 경비를 자처하며 밤샘 근무를 서던 오달수 경장이 졸음을 쫓기 위해 컵라면을 입에 문 채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시우는 두 깡패가 겹쳐 앉은 휠체어를 오 경장의 코앞 1미터 거리에 대령해 놓았다.
그리고 안내 데스크에 있던 메모지와 굵은 매직을 가져와, 깡패들의 이마에 선명하게 써서 붙였다.
[한도진이 보낸 납치범들]
'후우…… 진짜 죽겠다…….'
시우는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병실로 기어 올라갔다.
바닥의 핏자국들을 링거 거치대에 걸려 있던 알코올 솜으로 꼼꼼히 문질러 지우는 소심함도 잊지 않았다. 침대에 올라가 링거 바늘을 다시 손목에 꽂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뒤 시우는 침대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남은 시간은 3초.
시우는 찢어지는 허파를 부여잡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해제!'
쿠우우웅──!
시간의 소음이 병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1층 로비.
오 경장이 후루룩 면발을 빨아들이려던 바로 그 찰나.
"어…… 컥?! 켁! 켁!"
눈앞에 휠체어에 결박된 깡패 두 명이 툭 하고 나타났다. 면발이 목구멍에 걸려 오 경장은 사레가 들려 눈물을 쏙 뺐다.
시간이 풀리자마자 허벅지에 마취 주사가 꽂힌 사내는 눈을 까뒤집으며 그대로 기절해 엎어졌고, 묶여 있던 다른 놈은 당황해 발버둥 치다 휠체어와 함께 바닥으로 자빠졌다.
오 경장은 사레가 풀리자마자 권총을 뽑아 들고 그들을 제압했다.
"뭐, 뭐야?! 너희들 정체가 뭐야!"
사내들의 이마에 붙은 메모지 문구를 확인한 오 경장의 눈이 뒤집혔다.
[한도진이 보낸 납치범들]
"이 미친 자식들! 감히 우리 시우를 노리고 병원까지 들어와?!"
오 경장은 즉시 무전기를 잡고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병원 전체에 비상 경보가 울리며 형사들이 로비로 집결했다.
다음 날 아침.
눈부신 햇살이 병실 창문을 타고 들어와 유나의 감긴 눈꺼풀을 두드렸다.
유나는 흠칫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 아침이네……?"
그녀는 허겁지겁 시우의 침대를 보았다.
시우는 밤새 격렬한 몸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땀 범벅이 된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링거 수액 줄은 미세하게 팽팽해져 있었고, 그의 안색은 어제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유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건을 물에 적셔와 시우의 이마를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어젯밤 병원 1층에서 한도진이 보낸 괴한들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뒤였다.
'시우야…….'
유나는 침대 옆에 앉아 시우의 이마를 가만히 짚었다.
바보같이 아픈 몸으로 병실을 지키며 또 한 번 한도진의 위협을 막아낸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바보같이…… 나 지키겠다고 아픈 몸으로 이렇게까지 한 거야? 하여간 미련하기는. 빨리 낫기나 해. 빵 셔틀 평생 시켜 먹을 테니까."
유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 츤츤거리는 잔소리를 어렴풋이 잠결에 들으며, 시우는 마스크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바나나우유도 맛있고, 간호도 극진하고…… 나중에 빵 셔틀 좀 해 주지 뭐. 역시 인생은 대충 날로 먹는 게 최고야.'
두 사람이 병실의 평화로운 아침 햇살 속에 머물러 있는 동안, 병원 밖은 한도진을 향한 경찰의 추적망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