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9화: 법정에서 만난 빌딩
“오늘 무슨 일 있어? 한도윤 씨가 연차를 다 쓰고.”
전날 퇴근길, 김 부장의 묘하게 꼽주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으나 도윤은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무시했다.
오늘 오전, 도윤의 목적지는 회사 사무실이 아니라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 법정이었다.
회사 연차 결재판에는 '가족 행사'라는 흔한 핑계를 적었지만, 도윤이 오늘 치를 행사는 그보다 훨씬 중대했다.
바로 인생 첫 '빌딩 쇼핑'이었다.
법원 입구는 아침부터 경매 물건을 분석하려는 투자자들과 경매 브로커들로 북적였다.
도윤은 법원 안 은행에 들러 미리 준비해 둔 입찰 보증금을 수표 한 장으로 찾았다.
[입찰 보증금 수표: 128,000,000원]
수중에 3억 4천만 원이 넘는 돈이 있었기에 1억 2천8백만 원의 보증금은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가 25억 원짜리 빌딩을 낙찰받기에는 여전히 자금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낙찰을 받는다고 해도 잔금은 어떻게 치르지?’
도윤은 법정 복도 의자에 앉아 상태창을 띄웠다.
[부동산 경락잔금대출 분석 완료]
[해당 서초동 빌딩(사건번호 2026 타경 10482)은 대동개발이 고의로 설정해 둔 유치권 및 권리관계 하자가 전혀 없는 '가장 유치권' 물건입니다.
따라서 낙찰을 받는 즉시 1금융권 신안은행 서초남지점 지점장(상태창 연계 특혜 적용)을 통해 낙찰가의 80%를 금리 3.8%로 대출 가능합니다.
당신의 실제 필요 잔금은 낙찰가의 20%인 약 2억 6천만 원 수준이며, 보유 자산 내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도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대출이 80%나 나온다고? 게다가 가장 유치권이라 남들은 무서워서 입찰도 못 했을 텐데.”
과연 그랬다.
해당 빌딩은 꼬마 빌딩 임에도 유치권 분쟁 및 소송 예고등기가 지저분하게 얽혀 있어 일반 투자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3회나 유찰된 상태였다.
덕분에 최저 입찰가는 감정가의 반값 수준인 12억 8,000만 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도윤은 웅성거리는 경매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맨 뒤쪽 벤치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자, 구석진 자리에 잘 다듬어진 수트를 차려입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는 중년 사내가 눈에 띄었다.
사내의 머리 위로 붉은색 상태창의 스캔 링이 돌아갔다.
[타깃 스캔: 최영식 (대동개발 자산관리팀 부장)]
[소속 및 역할: 대동개발 대주주 일가의 지시를 받아 차명 법인 명의로 해당 빌딩을 최저가에 단독 낙찰받으러 온 인물.]
[작성 완료한 입찰 금액: 1,310,000,000원 (13억 1천만 원)]
“13억 1천만 원이라……”
최영식 부장은 남들이 유치권이 무서워 아무도 응찰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최저가보다 고작 3,000만 원 높은 금액을 써서 날로 먹으려 하고 있었다.
도윤의 시야에 매력적인 상태창 제안이 팝업되었다.
[추천 입찰가: 1,312,500,000원 (13억 1천 2백 5십만 원)]
[이유: 상대방의 입찰가보다 정확히 250만 원 높은 금액입니다. 가장 짜릿하고 경제적인 차이로 빌딩을 강탈하고, 대동개발의 계획을 초기 단계에서 망가뜨리십시오.]
도윤은 피식 웃으며 가슴 안주머니에서 입찰표를 꺼냈다.
볼펜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입찰 가격: 壹拾參億壹仟貳佰伍拾萬圓 (1,312,500,000원)]
한글이나 한자로 기재해야 효력이 있는 법원 규칙에 따라 또박또박 글자를 기입하고, 준비한 보증금 수표와 함께 봉투에 넣어 밀봉했다.
그리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법정 중앙의 입찰함에 투표하듯 봉투를 툭 집어넣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최영식 부장이 도윤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
‘어린놈이 공부하러 왔나 보군.’ 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이 서초동 빌딩 뒤에 숨겨진 '강남 도심 재개발 특별 구역 지정'이라는 초대형 호재를 오직 자기들 대동개발 일가만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10분.
집행관이 마이크를 잡고 입찰 종료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개찰을 시작하겠습니다.”
법정 안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집행관들이 입찰함을 열고 봉투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대동개발의 최 부장은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마치 이미 낙찰받은 건물을 어떻게 리모델링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집행관이 서초동 빌딩 사건번호를 호명했다.
“사건번호 2026 타경 10482, 서초동 근린상가 빌딩 개찰하겠습니다. 응찰자는…… 총 두 명입니다.”
그 순간, 대동개발 최 부장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두 명? 누군가 들어왔다고?’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집행관은 봉투 안의 서류를 꼼꼼히 대조하더니 마이크에 대고 차분한 목소리로 발표했다.
“본 사건의 최고가 매수신고인은 입찰자 한도윤 씨입니다. 입찰 가격은 13억 1,250만 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덧붙였다.
“차순위 매수신고인은 주식회사 대동에셋, 입찰 가격은 13억 1,000만 원입니다.”
정막이 흐르던 법정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250만 원 차이로 갈렸네.”
“저 유치권 지저분한 걸 저 값에 받아 가네. 미쳤구만.”
하지만 가장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최 부장은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가다 못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단돈 250만 원 차이라고?!”
최 부장은 떨리는 눈빛으로 법대 앞으로 나가는 도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단돈 250만 원 차이로 빌딩을 빼앗긴 것도 황당했지만, 자신들만 알고 있던 가장 유치권 비밀을 뚫고 들어온 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의 정체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도윤은 법대 앞으로 나가 보증금 영수증을 받아 쥐었다.
이제 이 빌딩은 그의 소유가 될 준비를 마쳤다.
도윤은 영수증을 챙겨 돌아서며 최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도윤은 최 부장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건넨 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법정을 걸어 나왔다.
[히든 퀘스트 1단계 완료: 빌딩의 소유권을 쟁탈하라!]
[성공 보상: 경험치 250 exp]
[레벨 상승: Lv. 5 → Lv. 6]
[다음 2단계 퀘스트 활성화: 대동개발의 주식 폭락 작전을 역이용해 대동개발 지분을 5% 이상 매집하십시오. 적대적 주주 제안을 통해 그들의 급소를 찌를 시간입니다.]
법원을 나서는 도윤의 얼굴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강남의 꼬마 빌딩주이자, 코스닥 상장사를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포식자 한도윤.
그의 거침없는 질주에 여의도와 강남 전체가 요동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