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10화: 적대적 주주의 역습
서초동 빌딩의 낙찰 영수증을 손에 쥔 도윤은 법원을 나서자마자 곧장 신안은행 서초남지점으로 향했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평생 가도 지점장실 문턱을 넘어설 일이 없겠지만, 도윤에게는 상태창이 보증하는 ‘금융권 프리패스’가 장착되어 있었다.
“어이구, 한도윤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점장실에 들어서자, 지점장 최태성이 버선발로 마중 나오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도윤을 맞이했다.
상태창의 우대 혜택 덕분인지, 지점장의 태도는 3억 시드를 굴리는 평범한 청년이 아니라 수백억 대 자산가를 대하는 듯 정중했다.
“서초동 빌딩 낙찰받으셨다면서요? 감정가 25억짜리를 13억에 잡으시다니, 대단한 혜안이십니다. 유치권 하자가 없다는 걸 어찌 그리 정확히 아셨습니까?”
지점장이 감탄 섞인 차를 내오며 물었다.
“그냥…… 정보망에 걸려온 게 좀 있었습니다. 바로 대출 실행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심사부에서도 이미 사전 조사를 마쳤습니다. 낙찰가 13억 1,250만 원의 80%인 10억 5,000만 원은 경락잔금대출로 즉시 승인해 드리겠습니다. 추가로 대표님의 신용과 건물 담보 여력을 감안해 개인 신용 대출 3억 원도 연 3.5%로 우대 승인해 드렸습니다.”
도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수중에 있던 현금 약 2억 1,000만 원(보증금 지불 후 남은 시드)에 경락잔금 대출을 제외한 신용 대출 3억 원이 더해지자, 도윤이 주식 계좌로 쏠 수 있는 가용 현금은 순식간에 5억 1,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가총액 400억 원짜리 상장사인 대동개발의 지분 5%를 매집하기에 부족했다.
5%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최소 20억 원에 달하는 물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레벨 6 신용거래 우대 혜택이 있지.’
도윤은 지점장실을 나와 택시를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HTS를 켠 도윤의 눈앞에 대동개발의 주식 차트가 펼쳐졌다.
[대동개발 현재가: 3,100원 (-3.2%)]
빌딩을 빼앗긴 대동개발 대주주 일가는 현재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원래는 빌딩을 헐값에 되찾아와 재개발 호재를 터뜨린 뒤 주가를 띄울 생각이었으나, 계획이 어그러지자 다급해진 그들은 시장에 악재 찌라시를 더 살포하며 억지로 주가를 바닥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3,000원 선에서 자사주를 대량으로 매집해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너희들이 주가를 내릴 때, 내가 그 물량을 바닥에서 다 받아먹어 주지.”
도윤은 신용 계좌를 열었다.
보유 현금 5억 1,000만 원을 담보로 설정하자, 300% 신용 한도가 적용되어 총 20억 원의 매수 가능 금액이 화면에 찍혔다.
도윤의 눈앞에 푸른색 상태창이 나타나며 매집 경로를 명확하게 조준했다.
[대동개발 매집 작전 가이드]
[1. 대주주 일가는 현재 3,050원~3,150원 사이에서 개미들의 손절 물량을 받기 위해 대량의 매수 대기 물량을 매일 깔아두고 있습니다.
2. 그들이 깔아둔 매수 창구의 비밀 계좌 번호와 매집 시간대를 해킹하여, 그들이 주문을 넣는 순간 한 박자 빠르게 우리 측 신용 매수 물량으로 중간에서 채 가십시오.
3. 세력은 자신들이 매수하는 줄 알고 호가를 올리겠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계좌로 물량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물량 가로채기라. 이거 재미있겠군.”
도윤은 자판에 손을 올렸다.
오후 1시. 대동개발의 호가창 하단에 3,100원 선을 지키기 위한 대량의 10만 주 매수 주문이 뭉텅이로 올라왔다.
대동개발 회장 김대동의 차명 계좌가 쏘아 올린 물량이었다.
도윤은 상태창의 타이머가 깜빡이는 0.1초의 틈을 타 신용 매수 주문을 시장가로 밀어 넣었다.
[대동개발 3,100원 80,000주 체결 완료]
[대동개발 3,090원 120,000주 체결 완료]
……
세력들이 물량을 받기 위해 호가를 아래로 내릴 때마다, 도윤은 그들이 던져놓은 미끼를 고스란히 낚아챘다.
세력 측 트레이더들은 자신들의 차명 계좌로 물량이 들어오지 않고 낯선 단일 계좌로 대량의 물량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이미 주가는 바닥권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급한 개미가 투매하는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그렇게 사흘 동안, 도윤은 대동개발 주식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집했다.
그리고 넷째 날 오후 2시, 마침내 계좌에 목표치인 물량이 채워졌다.
[보유 종목: 대동개발]
[보유 수량: 645,000주 (전체 지분 대비 5.12%)]
[평균 단가: 3,085원]
[총 매입 금액: 1,989,825,000원 (신용 사용)]
5% 룰 돌파.
대한민국 금융법상, 상장 주식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5영업일 이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지분 보유 사실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 참가'로 기재하는 순간, 그것은 대주주에 대한 공식적인 전쟁 선포였다.
도윤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보고서를 작성해 공시 시스템에 등록했다.
같은 시각, 강남구 역삼동 대동개발 본사 회장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공시 떴습니다!”
비서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회장실 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왔다.
신문을 읽던 김대동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호들갑이야? 빌딩 경매 건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그, 그게 아니라…… 5% 지분 공시가 떴습니다! 어떤 개인이 저희 지분 5.12%를 확보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뭐라구?!”
김대동 회장은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이 산산조각 났다.
김 회장은 비서가 내민 태블릿 PC를 낚아채듯 빼앗아 화면을 노려보았다.
[대량보유상황보고서]
[발행회사: 주식회사 대동개발]
[보고자: 한도윤]
[보유 지분율: 5.12% (645,000주)]
[보유 목적: 경영 참가 (이사 및 감사 해임 청구권, 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 등 주주권리 행사 예고)]
“한도윤……? 한도윤이 대체 어떤 놈이야! 명동 사채업자야? 아니면 경쟁사 끄나풀이야?!”
김 회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지분 5%는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엄청난 물량이었고, 특히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하면 그동안 자신들이 저질러 온 온갖 횡령과 주가 조작 혐의가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그, 그게…… 조사해 보니 신도정밀 고점에서 물량을 털고 나간 그 인물과 동일인으로 추정되며, 이번 서초동 빌딩을 낙찰받은 낙찰자 이름도 한도윤입니다!”
최영식 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뭐라고?! 빌딩을 가져간 놈이 우리 지분까지 5%를 먹었다고?! 최 부장, 이 쓸모없는 자식!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김 회장의 포효가 회장실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자취방의 템퍼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있던 도윤은 자신의 이름이 대대적으로 공시된 DART 화면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대동개발 IR 담당자로부터 다급하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10통이 넘게 쌓여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김 회장.”
방구석 개미 한도윤이 강남의 중견 기업 대동개발의 목덜미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 대동개발의 숨겨진 재개발 호재가 터졌을 때 거머쥘 수백억 대 수익의 이정표가 붉은색 상한가 불빛으로 환하게 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