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79화: 스페이스Y의 경고
화요일 오전 10시 정각, 강남 안티그라비티 타워 45층 특설 화상 대회의실.
대형 벽면 스크린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호손에 위치한 스페이스Y(SpaceY) 본사 이사회실의 풍경이 선명하게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화면 중앙에는 스페이스Y의 총괄 COO이자 일론 머스커의 가장 신뢰받는 동반자로 알려진 그웬 숏웰(Gwynne Shotwell)이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은발에 지적인 무테안경을 쓴 그녀의 눈빛은 상대를 꿰뚫어 보듯 날카로웠지만, 태도만큼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거물답게 품격 있고 여유로웠다.
"반갑습니다, 한 의장님. 한국의 젊은 금융 황제를 이렇게 화상으로나마 마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웬 숏웰이 매끄러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도윤 역시 다리를 꼰 채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저 역시 반갑습니다, 숏웰 씨. 세계 최고의 우주 항공 기업이 한국의 신생 펀드에 이토록 빠르게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군요."
"이유는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웬 숏웰은 펜을 테이블 위에 툭 올려놓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한 의장님이 선포하신 '안티링크' 저궤도 위성 인터넷 프로젝트는 꽤 흥미로운 청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주 산업은 단순히 돈과 열정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스페이스 스타가 보유한 75톤급 액체 로켓 엔진 기술은 훌륭하지만, 120기의 초소형 위성을 실시간 궤도에 배치하려면 앞으로 최소 10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게다가 우주 궤도 배치권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NC)가 통제하는 글로벌 위성 통신 주파수 사용권은 사실상 우리 스페이스Y가 독점하고 있지요."
그녀는 화면을 향해 몸을 바짝 기울이며 묵직한 경고성 제안을 던졌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안티링크 프로젝트를 스페이스Y의 '스타라인' 네트워크의 하부 서브 파트너십으로 편입하십시오. 우리의 펠콘9 로켓을 이용해 귀사의 위성을 즉시 궤도에 올려주겠습니다. 그 대가로, 영테크가 보유한 전고체 배터리 원천 기술을 스페이스Y의 차세대 인류 이주용 우주선인 '스타크루저(Starcruiser)'에 독점 공급하는 계약서에 서명해 주십시오. 이것이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상호 이익의 카드입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미국의 압도적인 기술 패권과 독점적 지위를 무기로 삼아 한도윤을 발아래 꿇리겠다는 오만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정채원 팀장은 숨이 막히는 듯 손가락을 꽉 쥐었다. 상대는 미국의 기술 심장부이자 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거인 스페이스Y였다. 저들의 주파수 독점 장벽에 막히면 안티링크 프로젝트는 시작도 하기 전에 영구 표류할 가능성이 컸다.
바로 그 찰나. 도윤의 눈앞에 태양처럼 눈부신 골드빛 시스템 스크롤이 펼쳐졌다.
[띵동! '신화급 금융 군주'의 독점적 권능 가동!]
- 스킬: '상대방의 심리 상태 및 히든 카드 실시간 간파(Absolute Insight)' 발동 완료.
- 대상: 스페이스Y 총괄 COO 그웬 숏웰 및 배후 이사회.
- 심리 상태 분석: 극도의 불안, 초조, 그리고 궁지에 몰린 심정.
- 극비 약점(히든 카드) 실사 결과:
- 최근 발생한 태양풍 및 강력한 우주 방사선 폭풍으로 인해 궤도상의 스타라인 2세대 위성 40여 기가 리튬 배터리 열폭주 및 회로 단선으로 폭발 연쇄 고장을 일으킴.
- 이로 인해 미국 항공우주국(ASA)의 100억 달러 규모 '셀레네 달 착륙 프로젝트'에 탑재할 스타크루저 전력 추진 시스템 구축이 최소 6개월 이상 납기 지연될 위기에 처함.
- ASA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지체상금 청구 및 계약 해지 압박을 받고 있으며, 열폭주가 전혀 없고 극저온/극고온 우주 방사선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영테크의 '우주 전용 방사선 차폐 전고체 배터리'가 스페이스Y에 당장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
도윤은 잔에 담긴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켠 뒤, 그웬 숏웰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픽 웃었다.
"숏웰 씨. 협상이란 상대방이 쥐고 있는 카드를 정확히 모를 때나 성립하는 법입니다."
그웬 숏웰의 미간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펠콘9 로켓을 대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스페이스 스타의 로켓으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도윤은 의자 등받이에 편안하게 몸을 기댄 채, 폭탄을 투하하듯 나직하게 읊조렸다.
"최근 태양풍 방사선 폭풍으로 인해 스타라인 2세대 위성 40여 기가 열폭주로 집단 폭사한 일로 골머리를 썩고 계신 스페이스Y에게, 우리 영테크가 완성한 우주 전용 방사선 차폐 전고체 배터리를 즉각 공급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화면 너머 그웬 숏웰의 얼굴에서 일순간 모든 핏기가 가셨다.
스페이스Y 본사 이사회실에 배석해 있던 기술 이사들과 최고 재무 책임자(CFO)들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경악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스타라인 위성 집단 고사 사태와 ASA 셀레네 프로젝트 납기 지연 건은 미국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미 국방부와 스페이스Y 최고 수뇌부 극소수만 공유하고 있던 최고 등급의 국가 극비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그웬 숏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게 떨렸다. 오만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극도의 공포와 초조함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도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갑고 매섭게 쐐기를 박았다.
"우리가 우주용 전고체 배터리를 즉시 스페이스Y에 공급하여 ASA의 지체상금 폭탄을 막아주는 대가로, 역조건을 제안합니다. 첫째, 스페이스Y가 독점하고 있는 FNC 우주 주파수 대역권 중 30%를 우리 안티링크에 무상 양도하십시오. 둘째, 스페이스Y 비상장 주식 5%를 안티그라비티 홀딩스가 현재 가치 대비 20% 할인된 가격에 매수할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이, 이건 강도질입니다! 스페이스Y의 지분 5%와 주파수 30%라니요!"
기술 이사가 소리를 질렀으나, 도윤은 콧방귀를 꼈다.
"싫다면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미국 정부가 셀레네 프로젝트 납기 지연을 이유로 스페이스Y와의 우주 개발 독점 계약을 취소하고 보잉이나 블루 오리진의 손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시간은 우리의 편입니다."
그웬 숏웰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굳어버린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도윤의 완벽한 정보력과 무자비한 협상력 앞에 스페이스Y의 모든 히든카드는 단 5분 만에 쓰레기통으로 던져져 있었다.
"……한 의장님. 이 안건은 제 단독 권한 밖의 일입니다. 즉시 본사 이사회 및 일론 머스커 의장과 긴급 비상 회의를 거친 뒤, 오늘 밤 안으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현명한 답변을 기다리죠."
뚝. 화상 연결이 종료되었다.
도윤은 창밖의 서울 도심을 내다보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푸른색 상태창은 이제 세계 최강의 우주 거인 스페이스Y마저 안티그라비티의 발아래 무릎 꿇릴 찬란한 승리의 오케스트라 선율을 장엄하게 울려 퍼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