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7화: 세력의 지갑을 털다
“최 실장님, 장학회 놈들이 계속해서 물량을 집어던지고 있습니다! 현재 30만 주 넘게 쏟아졌고, 주가는 3,700원선까지 밀렸습니다!”
골드파트너스 본부에서 트레이더가 비명을 질렀다.
최 실장은 시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최 실장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의도의 베테랑 설계자였다. 2대 주주가 눈치 없이 물량을 턴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차피 저놈들 장학재단이라 규정상 당장 돈이 필요한 거다. 주가 더 올리기 전에 저 아가리에서 나오는 물량 우리가 싹 받아먹는다.”
“예? 하지만 자금이……”
“3,600원에 15억짜리 매수 벽 세워. 저놈들이 던지는 족족 체결되게 유도해. 그리고 장 마감 30분 전에 남은 물량 싹 쓸어 담아서 상한가로 말아 올린다. 유통 주식을 우리가 완전히 잠가버리는 거야.”
최 실장의 눈에 독기가 올랐다.
같은 시각,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도윤의 눈앞에 상태창이 실시간으로 세력의 무전기를 도청하듯 메시지를 출력했다.
[세력의 결정 감지!]
[골드파트너스 최 실장은 후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결정했습니다.
3,600원선에 약 15억 원 규모의 대형 매수 벽을 쌓아 장학회의 남은 20만 주 물량을 흡수할 예정입니다.
흡수가 끝나는 오후 2시 30분 이후, 자금을 집중 투입해 상한가로 급반등을 시도할 확률이 98%입니다.]
[추천 행동: 신용 물량을 손절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평단가를 낮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3,610원 부근에서 추가 매수 주문을 대기하십시오.]
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수익금이 반토막 나며 뇌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상태창의 냉철한 텍스트가 도윤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세력이 3,600원을 지켜주겠다고 자금을 쏟아붓는다는데, 무서울 게 뭐 있어.”
도윤은 통장에 남아 있던 비상금 120만 원마저 털어 3,610원에 한길정밀 매수 주문을 넣었다.
오후 1시 45분.
주가는 세력이 세워둔 3,600원 매수 벽을 때리며 거칠게 요동쳤다. 장학회의 마지막 매도 물량이 폭탄처럼 쏟아졌지만, 세력의 매수 벽은 철옹성처럼 물량을 꿀꺽꿀꺽 삼켜냈다.
그 과정에서 도윤이 3,610원에 걸어둔 추가 주문도 말끔하게 체결되었다.
그리고 오후 2시 30분.
장학회의 매도 주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호가창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매도 대기 물량이 싹 말라버린 것이다.
“장학회 물량 흡수 완료했습니다!”
골드파트너스 본부에서 보고가 떨어졌다.
“좋아. 당겨라.”
최 실장의 짤막한 명령과 동시에, 3,600원에 머물던 한길정밀의 주가가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현재가: 3,750원 (+20.2%)]
[현재가: 3,900원 (+25.0%)]
매도 호가가 텅 비어 있었기에, 세력이 백만 주 단위로 매수 주문을 집어넣자 주가는 브레이크 잃은 기관차처럼 상승했다.
오후 2시 50분, 한길정밀은 마침내 상한가인 4,055원에 안착했다.
상한가 잔량에 사자 주문만 200만 주가 쌓이며 완벽한 철문이 걸어 잠겼다.
“와아아아!”
도윤은 사무실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가 옆자리 대리의 눈총을 받고 황급히 앉았다.
그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합산 평가 손익: +70,380,000원 (+31.2%)]
단 하루 만에 7,000만 원에 달하는 평가 수익이 찍혀 있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9시.
한길정밀은 전날의 광풍을 이어받아 시초가부터 갭상승으로 강하게 출발했다.
[시초가: 4,800원 (+18.3%)]
도윤은 장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이성으로 상태창을 켰다.
세력 평단가 분석 레이더에 골드파트너스의 움직임이 잡혔다.
[세력 동향 분석:
골드파트너스는 오늘 오전부터 보유 지분의 일부를 분할 매도하여 현금화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주가는 하루 이틀 더 상승할 수 있으나, 신용 레버리지를 쓴 포지션은 지금 정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용 대출은 양날의 검이다. 주가가 4,800원까지 올라온 지금, 신용 1억 5천만 원을 쥐고 있는 것은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욕심은 현물로만 부린다. 신용은 여기서 전량 엑시트한다.”
도윤은 신용 매수분 48,000주를 4,800원에 전량 매도했다.
[체결 알림: 한길정밀 신용 48,000주 매도 체결 완료. 평균 체결가 4,810원.]
[신용 대출 상환 완료. 실현 손익: +81,600,000원]
신용 대출금 1억 5천만 원이 깨끗하게 상환되었고, 도윤의 예수금 계좌에는 순수하게 벌어들인 수익금 8,160만 원이 입금되었다.
이로써 도윤의 현금 자산은 1억 5,800만 원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여전히 원금으로 사두었던 한길정밀 현물 25,200주(평단가 3,055원)는 고스란히 계좌에 남아 있었다. 이 현물 주식은 세력의 최종 목표가인 7,500원까지 느긋하게 들고 갈 생각이었다.
리스크는 완벽하게 해지하고, 수익은 극대화한 신의 한 수였다.
퇴근길, 기분 좋게 지하철에 몸을 실은 도윤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대학교 동창이자 단톡방에서 자신을 가장 앞장서서 조롱하던 ‘민우’였다.
“어, 민우야. 왜?”
도윤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민우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 도윤아…… 너 진짜 한길정밀 샀던 거 맞지?
“어, 조금 들고 있지. 왜 그래?”
― 나 미치겠다 진짜…… 오늘 아침에 한길정밀이 네옴시티 수주로 대박 난다길래, 4,900원에 내 전 재산 3천만 원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뚫어서 올인했거든? 근데 지금 주가가 4,300원까지 처박히고 있어…… 나 어떡해야 하냐? 너 정보 좀 아는 거 없어? 제발 나 좀 살려줘라……
도윤은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을 조롱하며 한강 물 온도를 체크하라던 친구가, 이제는 고점에 물려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주식 시장의 냉혹함과 인간사의 덧없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윤은 상태창을 켜지 않아도 민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훤히 보였다.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물량을 넘기기 시작하면, 저 고점에 물린 개미들은 처참하게 짓밟힐 터였다.
“글쎄…… 나도 그냥 운 좋게 탄 거라 잘 모르겠는데.”
도윤은 차갑고도 덤덤하게 대답했다.
주식 시장에서 동정심은 곧 파멸의 지름길이다.
세력의 지갑을 털어 낸 개미 투자자 한도윤에게, 더 이상 패배자들의 비명 섞인 넋두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이미 다음 사냥감을 가리키는 푸른색 상태창의 빛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