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6화: 신용 대출의 단맛과 쓴맛
보통 주식 커뮤니티에서 개미들이 파멸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꼽으라면 단연코 '신용 대출'과 '미수 거래'였다.
자기 돈이 아닌 증권사의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레버리지 거래.
주가가 오르면 대박이지만,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해 버리는 '반대매매'를 당해 원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빚더미에 앉게 되는 무서운 제도였다.
“내가 미수나 신용을 쓰면 사람이 아니다. 손목을 자른다.”
도윤 역시 주식을 시작할 때 스스로 그렇게 맹세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의 푸른 메시지는 도윤의 오랜 신념을 무참히 흔들고 있었다.
[시스템 권장 행동: 신용 레버리지 극대화]
[한길정밀의 주가 반등까지 남은 시간: 48시간]
[추천 행동: 현재 보유한 한길정밀 주식을 담보로 1억 5천만 원 상당의 신용 매수 한도를 모두 사용하십시오. 세력의 매집이 끝나는 순간, 폭발적인 상승이 시작됩니다. 시드가 작을 때 레버리지를 쓰지 않으면 부자가 되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레버리지를 안 쓰면 부자가 되는 속도가 느리다라…….”
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현재 그의 예수금으로 매수한 한길정밀은 7,700만 원어치였다.
만약 주가가 목표가인 7,500원까지 가더라도 최종 수익은 약 1억 1천만 원 정도. 물론 대단한 금액이지만 강남에 아파트 한 칸은커녕 경기도 아파트 전세금도 안 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1억 5천만 원의 신용을 더 얹어서 총 2억 2천만 원어치를 매수한다면?
목표가 도달 시 수익금은 3억 원을 훌쩍 넘어가게 된다.
인생을 바꿀 기회였다.
더욱이 상태창은 세력의 시간표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세력이 주가를 올릴 것이 100% 확실하다면, 빌린 돈으로 이자를 내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래. 쫄면 뒤진다.”
도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HTS의 신용 거래 탭을 켰다.
레벨 4 달성 보상으로 증권사 시스템에 특혜가 걸렸는지, 도윤의 신용 매수 한도는 일반 개미들의 한도를 초과해 최대 300%까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도윤은 주저 없이 매수 버튼을 눌렀다.
[한길정밀 신용 매수 48,000주 체결 완료. 평균 체결가 3,110원.]
[총 포지션: 73,200주 (원금 7,700만 원 + 신용 1억 5,000만 원)]
[합산 평균 단가: 3,091원]
이제 도윤의 계좌는 한길정밀의 주가가 10원 움직일 때마다 수십만 원씩 평가 손익이 춤을 추는 초대형 레버리지 폭탄이 되었다.
세력보다 여전히 저렴한 평단가(3,091원 < 3,200원)였기에 이론상 안전했지만, 뇌 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드레날린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솟구쳤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목요일 오전 9시 50분.
여의도 골드파트너스 작전 본부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최 실장님, 한길정밀 매집률 98.7% 찍었습니다. 시장의 잔여 물량은 거의 다 회수했습니다.”
최 실장은 피우던 시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의 입가에 흉포한 미소가 걸렸다.
“좋아. 물량도 다 잠겼겠다, 흔들 개미들도 다 털어냈으니 이제 불꽃놀이 시작해야지. 쟁여둔 보도자료 배포해.”
“예, 알겠습니다!”
오전 10시 정각.
모든 포털 사이트의 경제 섹션에 일제히 엠바고가 풀린 대형 호재 기사가 최상단에 게재되었다.
[속보: 한길정밀, 사우디 스마트시티 ‘네옴’ 건설 프로젝트 독점 정밀 부품 공급사 최종 선정!]
[단독: 한길정밀, 향후 5년간 예상 누적 수주액만 800억 원…… 창사 이래 최대 실적 전망]
그동안 실적 부진과 경영권 루머로 개잡주 취급을 받으며 3,000원 선에서 빌빌대던 한길정밀이었다.
그 종목에 무려 ‘사우디 네옴시티 800억 수주’라는 초특급 울트라 호재가 터진 것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한길정밀 현재가: 3,200원 (+3.5%)]
[한길정밀 현재가: 3,450원 (+11.2%)]
[한길정밀 현재가: 3,700원 (+19.3%)]
호가창의 거래량 그래프가 에베레스트산처럼 수직으로 솟구쳤다.
그동안 한길정밀을 무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던 개미들과 여의도 데이트레이더들이 헐떡이며 매수 버튼을 눌러댔다.
엄청난 매수세가 유입되자 주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거침없이 상승했다.
도윤은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의 계좌 평가 손익은 1초 단위로 경이롭게 변하고 있었다.
[평가 손익: +12,400,000원 (+5.3%)]
[평가 손익: +25,800,000원 (+11.1%)]
[평가 손익: +44,200,000원 (+19.0%)]
“와…… 미쳤다. 진짜 미쳤다.”
도윤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이것이 바로 레버리지의 참맛이었다. 원금만 넣었을 때보다 무려 3배 빠른 속도로 수익이 복사되고 있었다.
주가가 20% 가까이 오르자 평가 수익은 어느덧 4,500만 원에 육박했다. 대기업 대리의 1년 연봉에 가까운 돈이 단 15분 만에 벌어진 것이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뇌가 도파민에 절여져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가가 상한가 관문인 4,000원 선을 코앞에 둔 시점.
갑자기 한길정밀의 상승세가 뚝 멈췄다.
[현재가: 3,980원 (+28.3%)]
그리고 매도 호가창에 정체불명의 대량 매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만 주, 2만 주 수준이 아니었다. 누군가 5만 주, 10만 주씩 뭉텅이로 주식을 위에서 내리찍으며 상한가 진입을 노골적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어? 왜 안 올라가지?”
도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세력의 최종 목표가는 7,500원인데, 겨우 첫 상한가 길목인 4,000원에서 막힌다고?
호가창의 붉은 물결이 순식간에 파란색 매도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주가는 3,980원에서 3,850원, 3,700원으로 빠르게 밀려 내려갔다.
수익금이 4,500만 원에서 순식간에 2,500만 원으로 깎여 나갔다.
도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이것이 레버리지의 쓴맛이었다. 오를 때 3배로 벌리지만, 내릴 때도 3배 속도로 수익이 증발했다.
눈앞에서 2,000만 원이 단 1분 만에 사라지는 광경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세력이 던지는 건가?”
도윤은 급하게 상태창을 켰다.
그의 불안을 진정시키듯, 상태창의 붉은 레이더가 한길정밀의 새로운 이상 징후를 격렬하게 분석해내고 있었다.
[돌발 상황 발생: 적대적 매도세 출현]
[분석 결과:
현재 물량을 던지는 주체는 작전 세력 ‘골드파트너스’가 아닙니다. 한길정밀의 2대 주주인 ‘한길장학회’가 보유 중인 지분 중 50만 주를 시장에 기습적으로 분할 매도(엑시트)하고 있습니다.
장학회 측은 세력의 작전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주가가 갑자기 급등하자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중입니다.]
[세력의 반응:
골드파트너스 최 실장 팀 역시 예상치 못한 2대 주주의 대량 매도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력은 주가를 방어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주가를 아래로 밀어서 장학회의 매도 단가를 낮추게 유도할지 격렬한 논쟁 중입니다.]
도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세력이 아무리 설계를 잘해놓아도, 주식 시장에는 항상 생각지 못한 돌발 변수가 존재한다.
비작전 세력인 2대 주주가 눈치 없이 고점에서 주식을 던져버리는 바람에 작전의 판이 꼬여버린 것이다.
“최 실장, 너라면 어떻게 할래?”
도윤은 주먹을 움켜쥐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이제 이 싸움의 방향은 세력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도윤은 그 결정을 가장 먼저 훔쳐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쥐고 있었다.
과연 도윤의 2억이 넘는 신용 포지션은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운명을 쥔 호가창의 초침이 가차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