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5화: 세력의 뒤꽁무니를 쫓는 개미
신도정밀의 하한가 사태 이후, 여의도 주식 시장은 한동안 초전도체 테마의 몰락으로 흉흉한 소문만이 무성했다.
하지만 도윤의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활기가 넘쳤다.
그의 통장에는 세금과 수수료를 제하고도 정확히 77,128,000원이라는, 일개 대기업 사원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금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돈이면 전세 자금 대출 일부를 상환할 수 있을까? 아니야, 지금은 시드를 굴려야 할 때다.’
도윤은 욕심을 억누르며 더 큰 미래를 그렸다.
상태창이 그에게 부여해 준 초능력은 단순히 위기를 피하는 것을 넘어, 이제 세력들의 머리 위에 올라탈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퇴근 후 원룸으로 돌아온 도윤은 맥주 한 캔을 따서 책상에 놓아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새로 얻은 스킬을 활성화했다.
‘세력 평단가 분석 레이더, 발동.’
시각장애인용 점자처럼 어지럽게 흩어지던 푸른 광선들이 이내 하나의 화면으로 정렬되며, 도윤의 시야에 가득 찼다.
수십 개의 코스닥 종목들이 빠르게 필터링되더니, 마침내 하나의 기업 정보가 우뚝 솟아올랐다.
[종목 분석 완료: 한길정밀 (KOSDAQ 036620)]
[현재가: 3,450원]
[시가총액: 450억 원]
[감지된 세력: 골드파트너스 (최 실장 팀)]
[세력 누적 매집량: 발행 주식 총수의 32%]
[세력 평균 매입 단가: 3,200원]
[세력 최종 목표가: 7,500원]
[세력의 계획 유출:
- 골드파트너스는 지난 3개월 동안 티 나지 않게 차명 계좌를 활용해 한길정밀의 주식을 매집해 왔음.
- 현재 매집 목표량의 80%를 채웠으나, 남은 20%를 마저 채우기 위해 조만간 고의적인 악재 뉴스를 퍼뜨려 주가를 3,000원 선까지 떨어뜨릴 계획임.
- 이른바 ‘개미 털기’ 작업으로, 공포에 질린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 물량을 받아먹어 평단가를 낮추고 매집을 끝내려는 의도임.
- 매집이 끝나는 2주 뒤, ‘사우디 스마트시티 건설용 정밀 부품 공급사 선정’ 호재 뉴스를 터뜨리며 상한가 랠리를 시작할 예정.]
도윤은 맥주를 들이켜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골드파트너스 최 실장…… 신도정밀에서 나한테 뒤통수 맞은 그 인간들이군.”
그들이 이번에는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길정밀은 하루 거래량이 몇만 주도 되지 않는 조용한 소외주였다.
이런 종목은 세력이 작정하고 거래량을 죽여놓으면 개인 투자자들은 지쳐서 스스로 손절하고 나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세력이 개미들을 털기 위해 주가를 3,000원 선까지 고의로 하락시킬 예정이라니.
일반적인 개미라면 주가가 떨어질 때 공포에 질려 팔아치우겠지만, 도윤에게는 이것이 기회였다.
[메인 퀘스트: 세력과의 동승 - 매집 편]
[퀘스트 내용:
골드파트너스가 고의로 조장하는 하락 공포 구간에서 도망치지 말고, 주가가 3,100원 이하로 떨어지는 지점에서 자금을 투입하십시오.
세력의 평균 단가인 3,200원보다 더 낮은 평균 단가를 완성해 그들의 배에 무임승차하십시오.]
[목표 달성 조건: 한길정밀 평균 매입 단가 3,150원 이하 완료]
[성공 보상:
- 경험치 200 exp
- 특별 기능: 레버리지 한도 우대 (주식 담보 대출 등 레버리지 활용 권한 잠금 해제)]
[실패 페널티: 세력의 작전 철회로 인한 장기 고사 및 거래 정지 리스크 노출]
“세력보다 싸게 산다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세력이 몇 달 동안 설계하고 조정한 평단가가 3,200원인데, 3,150원 이하로 산다면 출발선에서부터 세력보다 우위에 서는 셈이었다.
세력은 주가를 올리기 위해 돈을 써야 하지만, 도윤은 그냥 얹혀 가기만 하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무임승차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 한길정밀의 평화롭던 주식 게시판에 벼락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속보: 한길정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50억 규모의 제3자 배정 전환사채(CB) 발행 루머…… 시장 신뢰도 급락]
[단독: 한길정밀 최대주주, 지분 매각설 솔솔…… 경영권 분쟁 소용돌이 빠지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온갖 지라시와 악재성 뉴스가 인터넷 언론을 통해 일제히 쏟아졌다.
회사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해명 공시를 냈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개인 투자자들은 귀를 닫았다.
“경영권 분쟁에 전환사채 대량 발행이라니! 상폐 되는 거 아니야? 탈출해!”
“어쩐지 최근에 거래량도 없고 빌빌대더라니, 똥 밟았네!”
장 개시와 동시에 한길정밀의 주가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한길정밀 현재가: 3,310원 (-4.1%)]
[한길정밀 현재가: 3,200원 (-7.2%)]
[한길정밀 현재가: 3,080원 (-10.7%)]
세력의 평단가인 3,200원이 허무하게 무너지자,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주식창에 찍힌 매도 물량들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고, 주가는 3,000원 선을 위태롭게 위협했다.
사무실 모니터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도윤은 입가를 훔쳤다.
호가창 구석구석을 뜯어보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개인들의 물량을 아래에서 아주 은밀하게, 그리고 야금야금 받아먹는 거대한 매수 창구가 보였다.
세력들의 차명 계좌였다.
개미들이 던지는 피 같은 주식을 세력들이 입을 벌리고 꿀꺽꿀꺽 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슬슬 내 차례군.”
도윤은 스마트폰을 켰다.
주가는 현재 3,050원.
더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세력들이 매집을 끝내고 반등시키는 타이밍은 순식간이었다.
도윤은 3,050원부터 3,100원 사이에 촘촘하게 매수 주문을 깔아두기 시작했다.
[한길정밀 3,080원 5,000주 체결 완료]
[한길정밀 3,060원 7,000주 체결 완료]
[한길정밀 3,040원 10,000주 체결 완료]
……
쏟아지는 공포의 물량 속에서 도윤은 홀로 외로이, 하지만 아주 든든하게 주식을 모아 나갔다.
마침내 보유 자금 7,700만 원의 대부분이 한길정밀의 주식으로 치환되었다.
[보유 종목: 한길정밀]
[보유 수량: 25,200주]
[평균 단가: 3,055원]
[평가 손익: +0.8%]
세력의 평균 단가인 3,200원보다 무려 145원이나 낮은 가격에 매수를 완료했다.
엄청난 대성공이었다.
도윤이 매집을 완료하자마자, 눈앞에 파란색 상태창이 깜빡이며 승전고를 울렸다.
[퀘스트 조건 달성 완료!]
[평균 단가 3,055원은 골드파트너스의 단가(3,200원)보다 4.5% 저렴합니다.]
[‘세력과의 동승 - 매집 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경험치 200 exp를 획득하여 레벨이 상승합니다! Lv. 3 → Lv. 4]
[보상 지급 완료: 레버리지 한도 우대 (신용 및 대주거래 한도 300% 해제)]
[시스템 메시지: 세력의 등에 안착했습니다. 이제 세력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피땀 흘려 돈을 쓰는 것을 편안하게 감상하십시오.]
도윤은 짜릿한 승리감에 몸을 떨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인 투자자들은 지옥이라며 울부짖고 도망칠 때, 도윤은 세력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채 느긋하게 관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골드파트너스 최 실장이 주가를 7,500원까지 펌핑시키는 날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도윤은 차가워진 맥주 캔을 높이 들며 작게 미소 지었다.
“고맙다, 최 실장. 주가 올리느라 고생 좀 해줘.”
어두운 원룸 안에서 개미 한도윤의 은밀한 음모가 세력의 등에 업혀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