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4화: 개미가 세력을 털 때
오전 9시 45분.
신도정밀의 호가창은 그야말로 지옥의 펄펄 끓는 용광로 같았다.
[현재가: 14,100원 (+13.7%)]
도윤이 13,300원에 전 재산을 밀어 넣은 지 불과 15분 만에 주가는 6% 이상 튀어 올라 있었다.
화면 우측 하단의 실시간 평가 손익창에는 벌써 플러스 4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반짝이고 있었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한 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이, 단 15분 만에 모니터 안에서 창조된 것이다.
하지만 도윤은 기뻐할 틈이 없었다.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상태창의 타이머가 붉은빛을 뿜으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력 투매 시작까지 남은 시간: 1시간 15분]
“슬슬 시작하는군.”
도윤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호가창 하단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매수 대기 물량이 박히기 시작했다.
13,800원에 10만 주, 13,700원에 15만 주.
일반적인 개미 투자자라면 이를 보고 ‘우와, 아래에 받쳐주는 물량이 저렇게 든든하니 절대 떨어질 리 없겠다!’라며 안심하고 추격 매수를 감행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세력이 개미들을 안심시키고 더 높은 가격에 사도록 유인하는 ‘허수 매수 잔량’이었다.
실제로 그 가격까지 주가가 내려오면 세력들은 빛의 속도로 주문을 취소하고 도망칠 것이 뻔했다.
오전 10시 15분.
주가는 드디어 15,000원 선을 돌파했다.
인터넷 주식 토론방은 이미 광란의 축제 분위기였다.
[초전도체는진짜다: 와 씨 ㅋㅋㅋ 한강 뷰 아파트 계약하러 간다 ㅋㅋㅋ 오늘 무조건 상한가 굳히기 들어감!]
[인생한방개미: 신도정밀 안 산 벼락거지 새끼들 없지? 이게 바로 K-바이오를 이을 K-초전도체다!]
[가즈아아아: 2만 원 갈 때까지 절대 안 판다. 꽉 잡아라!]
개미들의 광기 어린 매수세가 더해지자 주가는 15,300원, 15,500원까지 거침없이 치솟았다.
도윤의 평가 손익은 어느덧 플러스 1,000만 원을 넘어서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금액이었다. 조금만 더 들고 있으면 1,500만 원, 2,000만 원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강력한 탐욕이 도윤의 뇌를 지배하려 들었다.
‘조금만 더…… 상한가 찍는 거 보고 팔아도 되지 않을까?’
[시스템 알림: ‘뇌동매매의 달인’ 패시브가 탐욕의 틈을 타고 활성화되려 합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휴먼. 세력의 설계자 최 실장의 손가락은 당신보다 빠릅니다.]
뇌리 속을 때리는 상태창의 차가운 경고에 도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싶었다.
주식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때였다.
세력은 개미들의 그 아주 작은 탐욕의 빈틈을 파고들어 목덜미를 낚아챈다.
도윤은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45분.
투매 시작 예고 시간인 11시까지 불과 15분이 남았다.
현재 주가는 15,600원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상한가인 16,120원까지는 고작 몇 퍼센트 남지 않은 시점.
“지금이다.”
도윤은 마우스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주문 수량 4,960주 전량 선택.
구분: 시장가 매도.
“욕심 버린다. 지금 던진다!”
딸칵!
도윤이 매도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HTS가 요란한 체결 비프음을 뱉어냈다.
[신도정밀 4,960주 시장가 매도 전량 체결 완료. 평균 체결가 15,550원.]
[정산 금액: 77,128,000원]
[최종 실현 손익: +11,128,000원 (수익률 +16.8%)]
주식이 팔리자마자 도윤의 가슴에서 얹혀 있던 돌덩이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비록 최고점 상한가에서 팔지는 못했지만, 단 몇 시간 만에 1,100만 원이 넘는 순수익을 손에 쥐었다.
도윤이 매도 버튼을 누른 지 정확히 10분이 지난 오전 10시 55분.
신도정밀의 호가창이 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15,600원에 굳건히 버티고 있던 매수 물량들이 야금야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15,400원선으로 밀렸다.
개미들은 ‘이건 단순한 눌림목이다! 추매 기회다!’라며 신나서 물량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11시 정각.
퍼버벙!
도윤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호가창 우측 체결창에 5만 주, 10만 주짜리 거대한 파란색 매도 폭탄이 0.1초 간격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호가창 하단에 깔려 있던 수십만 주의 매수 잔량들이 마법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도정밀 현재가: 14,000원 (-10.2%)]
[신도정밀 현재가: 12,500원 (-19.8%)]
“와…… 미쳤다.”
도윤은 소름이 쫙 돋았다.
불과 1분 만에 주가가 20% 이상 폭락했다. 매수 잔량이 완전히 비어 버렸기 때문에,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어 주가는 그야말로 수직 낙하했다.
그리고 11시 3분. 신도정밀은 하한가로 고꾸라졌다.
[현재가: 10,950원 (하한가)]
주식 토론방은 순식간에 곡소리와 욕설로 도배되었다.
[인생망함: 야 이거 왜 이래??? 공시 뜬 거 있어??? 왜 갑자기 하한가야???]
[초전도개미: 아 씨발 내 전세금 5천만 원 15,500원에 다 들어갔는데 살려줘 제발 살려줘 ㅠㅠㅠㅠ]
[한강물따뜻하냐: 매도 주문 안 나감. 거래 정지냐 이거?]
개미들이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는 동안, 도윤은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대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만약 자신이 10분만 늦게 팔았더라면, 저기서 울부짖는 개미들 중 한 명이 바로 자신이 되었을 터였다.
그때, 여의도 빌딩 12층의 골드파트너스 작전 본부.
“최 실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모니터 앞에서 급박하게 자판을 두드리던 직원이 외쳤다.
“뭐가?”
시거를 입에 물고 여유롭게 미소 짓던 설계자 최 실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희가 11시에 물량을 던지기 바로 직전인 10시 48분부터 50분 사이에, 누군가 약 5,000주가량의 매물을 고점에서 완벽하게 던지고 나갔습니다. 시장가로 던져서 저희 자전거래 물량 일부가 체결되었습니다.”
“뭐라구? 어떤 놈이 눈치를 채고 던져?”
최 실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5,000주면 금액으로 약 7,700만 원. 작전 전체 규모에 비하면 푼돈이었지만, 세력이 올리는 타이밍의 가장 꼭대기에서 완벽하게 털고 나간 솜씨는 결코 우연이라 보기 어려웠다.
“내부 정보가 샜나? 정보 출처 확인해 봐!”
“예, 알겠습니다!”
작전 세력의 심장부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같은 시각, 사무실의 도윤의 눈앞에 찬란한 황금빛 효과음과 함께 상태창이 팝업되었다.
[돌발 퀘스트: ‘세력의 뒤통수를 갈겨라!’ 성공!]
[경험치 150 exp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Lv. 2 → Lv. 3]
[보유 자산: 77,128,000원]
[신규 스킬 획득: 세력 평단가 분석 레이더 (Lv. 1)]
[설명: 이제 종목을 분석할 때, 해당 종목을 주무르는 세력들의 평균 매입 단가와 예상 탈출 목표가를 시각적으로 훔쳐볼 수 있습니다.]
도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력들이 나를 잡으려 덫을 놓든 말든, 내 눈에는 그들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진정한 포식자가 누구인지, 주식 시장의 거물들은 아직 꿈에도 모를 터였다.
“자…… 다음엔 누굴 털어볼까?”
도윤의 검은 눈동자가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