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38화: 막다른 길에 몰린 하이에나
화요일 오전 8시 55분.
나노센스의 호가창은 어김없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장 시작도 하기 전인데 매수 대기 잔량에만 무려 1,200만 주가 넘는 주문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장에 돌아다니는 유동 주식 자체가 씨가 마른 상태에서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가 유통 물량의 대부분을 쥐고 있으니, 사려는 사람만 가득하고 팔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기현상이 연일 계속된 것이다.
[나노센스 예상 시초가: 7,090원 (+29.8% 연속 상한가)]
어제에 이어 2거래일 연속 점상한가 예고.
화면을 바라보는 그랜드 자산운용의 차형준 대표는 턱관절이 으스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 밑에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와 있었고, 셔츠 단추는 서너 개나 풀린 채 땀에 찌들어 있었다.
"방법이 없어…… 주식을 살 수가 없잖아! 사야 숏을 갚는데 팔겠다는 미친놈이 시장에 없다고!"
그랜드 자산운용의 나노센스 공매도 포지션 평가 손실액은 이틀 만에 무려 230억 원을 돌파했다. 증거금 비율은 이미 리스크 경고선을 뚫고 지하 암반수까지 도달했고, 싱가포르 노무라 증권 본사로부터 '오늘 오후 3시까지 추가 증거금 250억 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전 포지션 강제 청산(마진콜) 및 신용 거래 정지 조치에 들어간다'는 최후통첩이 날아와 있었다.
"대, 대표님!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 조영식 과장의 유착 혐의가 검찰 정식 기소로 이어지면서, 당장 우리 운용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될 예정이라는 정보가 돌고 있습니다. 지금 여의도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는 그랜드 자산운용이 이번 주로 끝장난다는 소문이 백퍼센트 기정사실로 굳어졌습니다!"
수석 트레이더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닥쳐! 시끄러워!"
차형준은 책상을 쾅 내려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던 그는 이내 잔혹하고 비열한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불법 공매도 원장이 검찰의 손에 들어간 이상, 자신은 구속 수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운용사 자금 중 아직 동결되지 않은 비자금과 회사 유동성 예치금을 몰래 해외로 빼돌린 뒤, 신분 세탁을 거쳐 도망치는 것.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해외 조세회피처인 케이맨 제도의 페이퍼 컴퍼니 계좌로 통하는 해외 송금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회사 비상 예치금 300억 원…… 이걸 일단 싱가포르 페이퍼 컴퍼니 계좌로 우회 송금한다. 그리고 마카오 현지 환치기 세력을 통해 비트코인으로 환전해 두면, 대한민국 검찰이라도 절대 추적할 수 없어. 차형준, 넌 살 수 있어. 감옥에 가더라도 이 돈만 지키면 나와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어……."
차형준이 광기 서린 미소를 지으며 승인 버튼에 커서를 올린 바로 그 순간.
동시간, 서초동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 의장실.
도윤의 눈앞에 노란색 비상 홀로그램 경보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경보! 그랜드 자산운용 대표 차형준이 회사 예치금 300억 원에 대한 무단 횡령 및 해외 유출 시도를 감지했습니다!]
- 타깃 송금처: 싱가포르 쉘 컴퍼니 'Golden-Shield Inc'
- 자금 세탁 경로: 마카오 불법 환치기 브로커 연계 가상자산 지갑
- 추천 행동: '그랜드 자산운용 실시간 자금 출처 역추적' 스킬을 발동하여 외환 거래 전산망에 실시간 록(Lock)을 걸고, 금융정보분석원(FIU)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에 송금 경로 및 횡령 증거를 긴급 전달하십시오.
"도망갈 구멍을 파고 계셨군."
도윤은 실소를 흘리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스킬 발동. 그랜드 자산운용 자금 출처 역추적 및 실시간 송금 록온."
파앗!
화면에 복잡한 외환 송금 루트가 붉은 레이저선처럼 나타나더니, 차형준이 송금 버튼을 누르는 찰나의 전산 처리를 낚아채어 강제로 정지시켰다. 동시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메인 통합 감시 서버에 차형준의 불법 외환 유출 의심 보고서가 정식 시스템 데이터로 강제 생성되어 실시간 경보로 번쩍였다.
[외환 전산망 정지 및 송금 동결 완료.]
[금융정보분석원(FIU) 즉각 경보 가동: 그랜드 자산운용 모든 원화 및 외화 계좌 출금 임시 동결 처리.]
"서 변호사님."
도윤이 내선 전화를 들어 서은우에게 명령했다.
"그랜드 자산운용의 모든 자산 동결 가처분 신청이 FIU와 검찰 공조로 지금 막 가동되었습니다. 이제 그랜드의 돈줄은 완전히 묶였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알겠습니다, 의장님. 그랜드 자산운용의 최대 출자자(LP)인 태한생명의 임준식 투자본부장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지금 그랜드가 터지게 생겨서 멘붕이 왔더군요.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10분 뒤, 안티그라비티 접견실.
국내 대형 보험사인 태한생명의 임준식 투자본부장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자리에 앉았다. 태한생명이 그랜드 자산운용에 출자한 금액만 무려 1,000억 원에 달했다. 그랜드가 불법 공매도로 영업정지를 당하고 마진콜로 파산한다면, 임 본부장은 수천억 대 손실을 낸 책임자로 법정에 서야 할 처지였다.
"한, 한 의장님…… 제발 저희 태한생명을 살려주십시오. 차형준 그 미친 자식이 불법 무차입 공매도에 손을 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대로 펀드가 파산하면 저희 출자금 1,000억 원은 공중분해됩니다. 회사 내부 감사팀이 이미 제 목줄을 겨누고 있습니다……."
임준식 본부장은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였다.
도윤은 차분하게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켠 뒤, 테이블 위에 계약서 한 부를 슬며시 밀어 넣었다.
"임 본부장님, 태한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랜드 자산운용 주식 영업권 대여 계약 및 GP(무한책임사원) 양도 합의서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랜드 자산운용의 대주주인 차형준의 지분과 경영권을 저희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가 단돈 '10원'에 인수하는 조건입니다."
"단돈 10원이요?!"
임 본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대신 저희 안티그라비티가 그랜드 자산운용을 신속하게 인수합병(M&A)하여 태한생명이 투자한 1,000억 원의 출자 자산을 '안티그라비티 그랜드 펀드'로 안전하게 이전 통합해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차형준이 저질러놓은 나노센스 공매도 빚은 저희가 그랜드 자산운용의 남은 우량 포트폴리오를 매각하고 안티그라비티의 자금력을 투입해 적법하게 상계 처리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태한생명은 손실률 '0%'로 원금을 보전하고 이번 사태를 조용히 묻을 수 있습니다."
임준식의 얼굴에 순식간에 희망의 빛이 서렸다.
"손실률 0% 원금 보전……! 하, 하지만 차형준이 지 경영권과 지분을 단돈 10원에 넘기겠다고 동의하겠습니까?"
"동의하고 말고 할 권한이 그 사람에겐 이제 없습니다."
도윤은 픽 웃으며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 검찰 수사관들이 그랜드 대표실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테니까요. 횡령 미수와 불법 주가조작 현행범으로 기소되는 와중에, LPs(출자자 연합)가 긴급 총회를 열어 GP 해임 및 지분 강제 매각 권한을 발동하면 끝입니다. 임 본부장님이 동의서에 서명만 하시면, 그랜드 자산운용은 오늘 부로 안티그라비티의 소유가 됩니다."
임준식 본부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랜드 자산운용이라는 여의도 거물이 안티그라비티 한도윤의 손바닥 안에서 장난감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만년필을 꺼내 들어 서명란에 획을 그었다.
사각, 사각.
"좋습니다! 태한생명 투자본부장 임준식의 이름으로, 그랜드 자산운용 GP 변경 합의서에 서명합니다. 부디 저희 자산을 지켜주십시오, 한 의장님."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도윤이 서명된 서류를 받으며 미소 짓는 그 순간, 그의 귀에 격렬하게 울려 퍼지는 시스템 축하 사운드가 의장실을 채웠다.
[띵동! '여의도 카르텔 격파' 퀘스트 2단계 완료!]
- 그랜드 자산운용 300억 원 해외 도피 전산망 차단 성공!
- 최대 출자자(LP) 동맹 확보 완료!
- 그랜드 자산운용 인수 권한 최종 획득!
- 경험치 1,500 exp를 획득하여 레벨이 폭발합니다! (Lv. 23 → Lv. 24)
- 신규 오픈 기능: 여의도 금융 자산 실시간 숏 커버링 최적화 주문 엔진 활성화
"레벨 24."
도윤은 만족스럽게 일어나 서은우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서 변호사님. 검찰과 금융위에 양도 합의서 제출하고, 그랜드 자산운용 본사에 안티그라비티 임시 실사단 파견하세요. 차형준 방 치우고 제 자리 하나 만들어두라고 하시고."
"예, 의장님. 즉시 집행하겠습니다."
이제 여의도에서 가장 거만하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던 사모펀드 그랜드 자산운용이, 단돈 10원짜리 껍데기가 되어 안티그라비티의 발아래 꿇어 엎드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