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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36화

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36화: 여의도의 무법자들

금요일 오후 6시,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 의장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초동 법조타운의 야경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넓은 사무실 안에 감도는 침묵은 한층 더 깊었다.
한도윤은 최고급 이탈리아제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로 허공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직 그의 망막에만 맺히는 시퍼런 홀로그램 창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떠 있었다.

[플레이어 한도윤 정보]

"글로벌 금융 기관 거래 내역 실시간 해킹 백업이라……."
도윤은 턱을 괸 채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미국의 거대 헤지펀드 레드드래곤을 완벽하게 파산시키고, 월가의 오만한 매니저 체이스 파커를 단숨에 사법 조사실로 직송해 버린 대가로 얻은 신규 스킬.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국내 사설 세력들의 메신저 단톡방이나 감청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홍콩, 싱가포르에 위치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내부 거래 장부를 실시간으로 백업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금융 시장의 신(神)이 내린 사기적인 치트키였다.

똑똑.
차분한 노크 소리와 함께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의 핵심 브레인이자 파트너 변호사인 서은우가 두꺼운 서류 봉투를 품에 안고 걸어 들어왔다.
"의장님, 태성그룹의 공중분해 및 자산 매각 수순은 서울남부지검과 금융감독원 공조 하에 아무런 차질 없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태성가의 남은 일가들은 상속세와 과징금 폭탄을 맞고 완전히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 변호사님. 그런데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으시네요?"
도윤이 가볍게 묻자, 서은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에서 문건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길게 늘어놓았다.

"태성이라는 큰 고래가 쓰러지자마자, 여의도의 하이에나들이 기다렸다는 듯 핏물을 맡고 몰려들고 있습니다. 월가 헤지펀드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 국내 토종 공매도 카르텔이 악질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공매도 카르텔?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놈들이 있단 말입니까?"
"예. 그 중심에 여의도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그랜드 자산운용'이 있습니다. 대표인 차형준은 과거 대형 증권사의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인데, 합법적인 투자를 가장하여 유망한 코스닥 중소기업들을 공매도로 무자비하게 짓밟아 부도로 몰아넣고 헐값에 삼키는 파렴치한 기법으로 자산을 불려온 인물입니다."
"차형준이라……."
도윤은 서은우가 건넨 그랜드 자산운용의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현재 그들의 타깃은 코스닥 상장사인 기술 벤처기업 '나노센스(NanoSense)'입니다. 나노센스는 차세대 반도체 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나노 입자 감지 센서의 독점 특허를 가진 초우량 기업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그랜드 자산운용이 악의적인 '기술 특허 침해 소송설'과 '임상 장비 치명적 결함설' 같은 찌라시를 조직적으로 유포했습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공매도 물량을 쏟아내며 주가를 고점 대비 3분의 1 토막으로 내려쳤습니다. 나노센스의 김민석 대표는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연구 개발비를 대고 있었는데,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월요일 아침 장 개시와 동시에 담보 부족으로 인한 강제 반대매매가 실행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주가를 강제로 떨어뜨려서 대주주의 담보 지분을 뺏어 먹으려는 수작이군요. 아주 고전적이고 더러운 수법이네."
도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노센스의 종목 코드를 스마트폰 주식 앱에 입력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있는 시퍼런 상태창이 갑자기 붉은빛으로 강렬하게 깜빡이며 경고를 보냈다.

[종목명: 나노센스 (098450)]
[현재 상태: 악질적 금융 카르텔에 의한 불법 무차입 공매도 노출 중]
[세력 현황: 그랜드 자산운용 (주도주체), 싱가포르 노무라 증권 프라임 브로커리지 창구 악용]
[배후 정보: 그랜드 자산운용 대표 차형준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조영식 과장에게 현금 5억 원과 강남 아파트 분양권을 공여. 무차입 공매도 이상 거래 적발 시스템의 모니터링 필터링을 실시간으로 무력화시키는 조건으로 유착 완료.]
[추천 행동: 현재 주가 4,200원은 기업의 청산 가치 대비 80% 이상 극단적으로 저평가된 상태입니다. 글로벌 해킹 백업 스킬을 가동하여 싱가포르 노무라 증권의 비밀 거래 내역을 확보한 뒤, 나노센스 주식을 대량 매집하여 숏 스퀴즈를 유도하십시오.]

"하, 이것 봐라? 무차입 공매도에 금감원 뇌물 유착까지?"
도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주식 시장에서 주식을 실제로 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단 팔고 보는 '무차입 공매도'는 엄격한 불법이다. 하지만 여의도의 악질 세력들은 해외 금융사의 프라임 브로커리지(PBS) 창구를 이용해 '수기(手記)'로 대차 내역을 입력하는 법적 허점을 악용해 교묘히 빠져나가곤 했다. 게다가 이를 감독해야 할 금감원의 조사국 과장까지 한통속이었으니, 개미들이 아무리 불법 공매도를 단속하라고 울부짖어도 잡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 변호사님, 그랜드 자산운용의 차형준 대표는 지금 강남에서 샴페인이라도 터뜨리고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김민석 대표의 주식 400만 주가 반대매매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차형준은 그걸 헐값에 매수해 숏 포지션을 청산(숏 커버링)하고 남은 경영권까지 날로 먹을 생각입니다. 이번 작전으로 그랜드 자산운용이 챙길 순수익만 최소 8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좋아. 아주 훌륭한 사냥감이 제 발로 덫에 들어와 줬네요."
도윤은 자리에 일어나 방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새로 얻은 장난감 성능을 테스트해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무대는 없겠군요."

도윤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스킬 가동. 글로벌 금융 기관 거래 내역 실시간 해킹 백업. 타깃은 싱가포르 노무라 증권, 그랜드 자산운용의 PBS 마스터 계좌다.'

위이잉-!
도윤의 눈가에 파란색 빛무리가 돌더니, 이내 정교하게 분류된 디지털 거래 장부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며 쏟아져 내렸다.

[노무라 증권 싱가포르 지사 - 그랜드 자산운용(Grand-Gate) 마스터 계좌]

"완벽하네. 대차 계약조차 맺지 않고 유령 주식 620만 주를 만들어서 시장에 던졌어. 진짜 무법자들이 따로 없구먼."
도윤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비밀 거래 내역이 담긴 원장만 세상에 공개된다면 그랜드 자산운용은 면허 취소는 물론이고, 차형준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평생 교도소에서 썩어야 할 처지였다.


같은 시각, 여의도 전경련 회관 50층의 고급 일식당 VIP 룸.
그랜드 자산운용의 차형준 대표는 붉게 물든 참치 뱃살 한 점을 입에 넣으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의 조영식 과장이 고급 사케 잔을 들고 비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하! 조 과장님, 이번 나노센스 건은 정말 깔끔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김민석 대표의 담보 지분이 시장가로 터져 나올 텐데, 그때 우리가 홀랑 받아먹으면 끝입니다. 노무라 창구로 매도 폭탄 던질 때 금감원 모니터에 경고등 안 들어오게 조치해 주신 건 이상 없지요?"
"아이고, 차 대표님. 제가 누구입니까. 우리 부서 감시 시스템 필터링 조건에서 노무라 싱가포르 계좌의 거래량 임계값을 제가 직접 조작해 두었습니다. 아무리 던지셔도 시스템엔 '단순 차입 공매도 오류'로만 표시됩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다만, 국정감사 기간이니 주말 동안에는 추가로 찌라시 흘리는 건 자제해 주시죠."
"걱정 마십시오. 이미 시장은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 장 개시하자마자 100만 주만 더 아래로 던지면 개미들도 패닉 셀로 동참할 테니까요. 조 과장님 몫의 '선물'은 싱가포르 페이퍼 컴퍼니 계좌로 월요일 오후에 송금 완료될 겁니다."
"허허, 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대표님."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탐욕을 축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화 내용과 해외 비밀 계좌 거래 원장이 서초동의 한 청년의 손바닥 안에서 실시간으로 복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기쁨의 축배를 들었다.


월요일 오전 8시 45분.
대한민국 주식 시장 개장 15분 전.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 의장실로 출근한 도윤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가온증권의 VIP 전용 HTS 화면을 켰다. 옆에는 서은우 변호사가 태블릿 PC를 든 채 긴장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서 변호사님, 가온증권 트레이딩 데스크와 저희 안티그라비티 1호 펀드 자금 연동은 완료되었습니까?"
"예, 의장님. 즉시 가용할 수 있는 현금 예수금 1,500억 원이 가온증권 법인 계좌에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 주문을 넣을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차형준 대표가 월요일 첫 호가부터 주가를 밑으로 찍어 누르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구경해 보죠."

오전 8시 50분. 장 개시 동시호가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화면 창에는 그랜드 자산운용의 하수 증권사 창구를 통해 나노센스의 예상 시초가를 하한가 부근인 3,800원까지 끌어내리려는 대규모 매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려 150만 주에 달하는 무차입 공매도 호가였다.
나노센스의 호가창은 시퍼런 매도 잔량으로 뒤덮였고, 주식 토론방은 이미 상장폐지라도 당한 것처럼 개미들의 절규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의장님, 나노센스 김민석 대표의 담보 지분 반대매매 물량도 동시호가에 접수되었습니다. 수량은 400만 주, 단가는 하한가 기준입니다. 이대로 장이 열리면 주가는 순식간에 하한가로 직행하고 경영권은 상실됩니다."
서은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도윤은 오히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마우스를 쥐었다.
"차형준이 맛있게 먹으려고 세팅해 둔 밥상인데, 밥상을 통째로 엎어버려야 제맛이죠. 서 변호사님, 주문 넣습니다."

도윤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였다.
"안티그라비티 1호 펀드 이름으로 나노센스 주식 600만 주 지정가 매수 주문 넣으세요. 매수 단가는 현재 호가보다 높은 4,500원."
"예?! 600만 주요? 현재가 기준 250억 원이 넘는 거금입니다!"
"돈은 쓰라고 버는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이 돈, 나중에 차형준이 이자까지 쳐서 고스란히 뱉어내게 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오전 8시 58분.
주식 시장 개장 단 2분을 남겨두고, 나노센스의 호가창에 전례 없는 초대형 메가톤급 매수 주문이 들이닥쳤다.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600만 주라는 어마어마한 매수 벽이 하한가에 묶여 있던 400만 주의 반대매매 물량과 그랜드 자산운용의 공매도 매도 벽을 한입에 집어삼키며 위로 치솟아 올랐다.

[나노센스 동시호가 급변! 예상 시초가: 4,500원 (+7.1%)]

"뭐, 뭐야?!"
같은 시각, 그랜드 자산운용 트레이딩 룸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차형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수석 트레이더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대, 대표님! 동시호가 마감 직전에 600만 주의 시장가 매수 주문이 유입되었습니다! 반대매매 물량 400만 주와 저희가 깔아둔 공매도 물량이 전부 체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상 시초가가 플러스로 전환되었습니다!"
"어떤 미친놈이 반대매매 물량을 다 받아 간 거야?! 기관이야, 외인이야?!"
"창구는 가온증권입니다! 매수 주체는…… 사모펀드 안티그라비티 파트너스입니다!"
"안티그라비티?! 그 태성그룹을 날려버린 괴물 놈들이 왜 여기서 나와?!"

차형준의 손에 들려 있던 커피 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 시각, 한도윤의 귓가에는 경쾌하고 황홀한 시스템 알림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퀘스트: '여의도 카르텔 격파'가 공식적으로 개시되었습니다!]

도윤은 빈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의장실 유리창 너머 머나먼 여의도 빌딩 숲을 향해 손가락 총을 겨누었다.
"차형준 대표님. 월요일 아침부터 참 피곤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이제 지옥행 열차 출발합니다. 꽉 잡으세요."

대한민국 금융 역사상 가장 유쾌하고 잔혹한 여의도 청소 작전이, 드디어 그 화려한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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