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23화: 적과의 동침
가온증권 본사 18층 의장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 안으로 들어선 골드파트너스의 설계자 최 실장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차를 마시는 도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온몸이 단단히 굳어버렸다.
“너…… 아니, 당신이?”
최 실장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잘게 떨렸다.
자신들을 신도정밀과 한길정밀에서 완벽하게 털어먹고 수십억을 갈취해 간 배후의 괴물이, 눈앞에 있는 이 새파랗게 젊은 가온증권의 의장 한도윤이었다는 사실을 직면하자 뇌의 회로가 일순간 멈춰버린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최 실장님. 주식 올리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제 방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도윤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최 실장은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를 억눌렀다. 지금 자신은 화를 낼 처지가 아니었다. 골드파트너스는 현재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한 의장님. 지난 일은 저희 골드파트너스의 완패였습니다.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여기에 찾아온 것은 사적인 복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의도의 판을 통째로 바꿀 초대형 ‘먹거리’가 있어서 협력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최 실장은 숨을 고르며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올려놓았다.
[작전 기획서: 대한국영가스 (KOSDAQ 015300) 민영화 M&A]
도윤은 기획서의 제목을 힐끗 보았다.
대한국영가스.
정부의 국영 에너지 기업 민영화 방침에 따라 조만간 시장에 매물로 나올 예정인 시가총액 4,000억 원 규모의 대형 가스 공급사였다.
“대한국영가스를 태성그룹의 3세인 태성민 부사장이 차명 계좌를 동원해 헐값에 강탈하려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저희 골드파트너스는 태성그룹에 고용되어 주가를 흔들고 개미들을 터는 설거지 역할을 맡았죠. 하지만 알고 보니 태성민 그 개자식이, 작전이 끝나면 주가조작 혐의를 전부 저희 골드파트너스에 덮어씌우고 토사구팽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최 실장의 눈에 독기가 바짝 올랐다.
“저희는 파산 위기입니다. 태성그룹의 뒤통수를 치고 그들의 자금을 통째로 털어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 힘만으로는 태성의 거대한 자금력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안티그라비티의 거대 현금 실탄과 가온증권의 제도권 창구가 필요합니다.”
도윤은 지긋이 눈을 감고 상태창의 해킹 레이더를 가동했다.
[타깃 정보 스캔: 최 실장 (골드파트너스 대표)]
[분석 결과: 최 실장의 폭로는 100% 사실임. 태성그룹 태성민 부사장은 이미 검찰 및 금융당국 로비를 마쳤으며, 작전 실패 시 골드파트너스를 꼬리 자르기용 제물로 삼기 위해 위조된 계약서와 허위 녹취록을 비밀 금고에 보관 중임.]
[메인 퀘스트: 거대 재벌을 사냥하라]
[퀘스트 내용:
태성그룹이 민영화 특별법 통과를 노리고 대한국영가스의 지분을 차명으로 매집하는 동안, 최 실장의 내부 정보와 계좌망을 역이용해 그들의 매집 물량을 가로채십시오.
가온증권의 자금력과 신용 공여 기능을 총동원해 태성그룹 몰래 대한국영가스 지분 40% 이상을 확보하여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고, 태성그룹의 자금을 몰살시키십시오.]
[성공 보상:
- 경험치 1,200 exp (레벨 업 가능)
- 대한국영가스 경영권 확보 (에너지 인프라 대기업 등극)
- 자산 평가액 1,500억 원 돌파]
[실패 페널티: 재벌 대기업의 소송 폭탄 및 안티그라비티 자산 몰수]
도윤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띠었다.
재벌 대기업의 뒤통수를 치고 수천억 대 공기업 민영화 판을 통째로 삼키는 퀘스트.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사냥꾼의 본능이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도윤은 비서실을 통해 서은우 변호사를 불렀다.
“서 변호사님, 어제 금융감독원 기밀 데이터베이스에서 해킹해 온 폴더 중 ‘태성그룹 비밀 금고’ 관련 서류 하나 출력해다 주십시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후, 서은우가 가져온 서류를 도윤은 최 실장의 앞에 툭 던졌다.
최 실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태성민 부사장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골드파트너스 배신용 위조 합의서와 비밀 녹취록 스크립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최 실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이, 이건…… 태성민 부사장 개인 컴퓨터 깊숙이 숨겨진 파일일 텐데, 의장님이 이걸 어떻게 쥐고 계십니까?!”
최 실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눈앞의 청년 한도윤은 단순한 주식 천재가 아니었다. 재벌 대기업의 비밀 금고 깊숙한 곳의 기밀까지 마음대로 훔쳐보는, 그야말로 신적 영역의 정보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최 실장님. 태성민이 당신의 목줄을 쥐고 흔들려던 무기입니다. 어떤가요? 저와 손을 잡고 태성민의 급소를 찌를 준비가 되셨습니까?”
도윤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최 실장은 털썩 주저앉으며 도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 서려 있던 마지막 자존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굴복만이 남았다.
“의장님……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골드파트너스의 모든 차명 계좌와 세력망을 안티그라비티의 발아래에 바치겠습니다. 제발 그 오만한 재벌 3세 놈을 지옥으로 보내주십시오.”
도윤은 차갑게 식은 찻잔을 들며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대한국영가스 사냥을 시작해 보죠.”
여의도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 한도윤과, 쫓겨난 세력 설계자 최 실장의 피로 맺어진 위험한 동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 태성그룹을 침몰시키기 위한 사상 최대 규모의 주식 전쟁의 서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