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창에 상태창이 떴다!

2화: 첫 번째 빨간 불
“한도윤 씨, 오늘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네? 어제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부서의 잔소리꾼 김 부장이 지나가며 툭 던졌다.
평소 같았으면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을 도윤이었지만, 지금 그의 귀에는 부장의 목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진짜다…… 진짜였어.’
신화바이오는 어제 하한가를 맞은 것에 이어, 오늘도 장이 열리자마자 갭하락으로 거래 정지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만약 어젯밤 상태창의 경고를 무시하고 주식을 들고 있었다면, 도윤은 오늘 아침에만 1,500만 원이 넘는 돈을 추가로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도윤의 예수금 계좌에는 시장가로 매도되어 정산된 3,980만 원이라는 묵직한 숫자가 찍혀 있었다.
손실은 뼈아프지만, 전멸은 면했다.
아니, 면한 수준이 아니라 이건 기회였다.
도윤은 주위를 힐끗 살폈다.
다들 자기 모니터를 보며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오전 10시.
도윤은 탕비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탕비실 구석에 서서 정수기 물을 한 컵 받아 마신 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어젯밤 그 화면을 떠올렸다.
‘나와라, 상태창.’
그러자 거짓말처럼 도윤의 눈앞이 미세하게 흐려지더니, 반투명한 푸른색 홀로그램 스크린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투자자: 한도윤 (Lv. 2)]
[보유 스킬: 주가 예측 레이더 (Lv. 1, 일일 제한 1/1)]
[상태창의 조언: 시드가 작을 때는 잡주가 최고입니다. 대형주는 무거워서 개미가 타도 안 움직입니다.]
“주가 예측 레이더…….”
도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레이더 작동!”
그가 속삭이자, 푸른색 상태창이 거칠게 깜빡이며 마치 레이더 주파수를 맞추듯 사방으로 빛을 뿜어냈다.
몇 초간의 로딩 끝에, 하나의 종목명이 붉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종목 추천 완료!]
[추천 종목: 대성엔지니어링 (KOSDAQ 045120)]
[현재가: 2,120원]
[예상 급등 시간: 금일 오후 1시 30분]
[정보 분석:
대성엔지니어링은 시가총액 300억 원 규모의 초소형 잡주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실적 부진으로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 처해 있으나, 실제로는 이들이 보유한 ‘초미세 해수 담수화 필터’ 특허 기술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산하 해수담수화 공사의 최종 기술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 사우디 측과의 150억 규모 공급 계약 체결 공시가 뜰 예정입니다. 시가총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로, 공시 즉시 상한가 직행이 확실시됩니다.]
[목표 매수가: 2,150원 이하]
[예상 수익률: +30% (상한가)]
“사우디 국부펀드…… 150억 계약? 대성엔지니어링이?”
도윤은 머리를 굴렸다.
대성엔지니어링은 주식 토론방에서도 ‘상장폐지 시즌의 단골 손님’, ‘작전 세력도 거르는 쓰레기 잡주’로 악명이 높은 종목이었다.
실제로 최근 3개년 적자가 누적되어 동전주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인 회사였다.
보통의 주식 투자자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똥주 중의 똥주.
하지만 상태창의 정보는 너무나도 구체적이었다. 사우디 국부펀드와 기술 계약이라니.
‘신화바이오 때를 생각하자. 상태창은 진짜였어. 상태창이 사라고 하면 사야 한다.’
도윤은 탕비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대성엔지니어링의 호가창을 조회했다.
역시나 거래량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호가창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에 걸린 물량이 고작 몇 백 주 수준이었다.
여기에 4,000만 원어치 주식을 한 번에 사려고 하면 시장가가 들썩일 판이었다.
도윤은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오전 10시 15분.
그는 분할 매수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500주, 1,000주씩 쪼개서 조심스럽게 매수 주문을 넣었다.
체결될 때마다 도윤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성엔지니어링 2,120원 1,500주 체결]
[대성엔지니어링 2,125원 2,000주 체결]
……
약 1시간에 걸친 분할 매수 끝에, 도윤은 대성엔지니어링 주식 18,600주를 평균 단가 2,130원에 전부 쓸어 담았다.
통장 잔고는 단돈 몇만 원을 제외하고 깨끗하게 비어 버렸다.
다시 한번 인생을 건 올인이었다. 만약 상태창의 정보가 틀려 사우디 공시가 뜨지 않는다면, 대성엔지니어링은 관리종목 지정 우려로 언제 상장폐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종목이었다.
“한도윤 씨, 점심 먹으러 안 가?”
동기인 준식이가 어깨를 툭 쳤다.
“어? 어, 가야지.”
도윤은 멍한 정신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으로 무얼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씹혔다.
오후 1시.
사무실로 복귀한 도윤은 5분마다 시계를 확인했다.
주식 호가창의 대성엔지니어링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주가는 오히려 2,110원으로 살짝 내려앉아 도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평가 손실 마이너스 1.2%.
금액으로는 몇십만 원 안 되는 손실이었지만, 도윤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제발…… 상태창 형님. 구라 친 거 아니죠? 사우디 형님들 계약서 사인 한 거 맞죠?’
1시 20분.
1시 25분.
1시 28분.
초침이 흘러갈 때마다 도윤의 피가 마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1시 30분이 되는 순간.
도윤이 새로고침을 누르기도 전에, 스마트폰의 HTS 앱에서 요란한 알림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성엔지니어링 (045120) VI 발동 (변동성 완화 장치)]
“어? 떴다!”
도윤은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정적을 깨고 대성엔지니어링의 호가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2,110원에 머물던 주가가 VI가 해제되자마자 2,300원으로 점프하더니, 매수 주문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속보: 대성엔지니어링, 사우디 국부펀드 PIF 산하 공사와 150억 규모 담수화 필터 공급 계약 체결]
포털 사이트 메인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렸다.
시가총액 300억짜리 회사에 150억 원짜리 계약은 그야말로 초대형 메가톤급 호재였다.
호가창에 걸려 있던 매도 물량은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해 버렸고, 매수 잔량에 100만 주, 200만 주가 쌓이기 시작했다.
주가는 순식간에 수직 상승했다.
[현재가: 2,500원 (+17.4%)]
[현재가: 2,650원 (+24.4%)]
[현재가: 2,765원 (+29.9% 상한가)]
오후 1시 36분.
대성엔지니어링은 거래 시작 단 6분 만에 상한가에 안착했다.
상한가 잔량에 쌓인 매수 대기 물량만 400만 주. 오늘 중으로는 절대 풀릴 일이 없는 완벽한 ‘따상’의 기세였다.
도윤의 계좌 평가 손익창이 찬란한 빨간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평가 손익: +11,811,000원 (+29.8%)]
단 몇 분 만에 대기업 대리급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이 벌렸다.
그것도 세금과 수수료를 떼고도 남는 순수익으로.
“흐읍……!”
도윤은 밀려오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김 부장의 눈치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붙였다.
“김 부장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 얼굴이 아주 흙빛이더만 얼른 갔다 와.”
도윤은 화장실로 맹렬하게 달려갔다.
가장 안쪽 칸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뒤, 도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상한가다! 상한가라고!”
벽을 치며 기쁨을 만끽하는 도윤의 눈앞에 다시 한번 상태창이 스르륵 나타났다.
[투자자 ‘한도윤’이 첫 상한가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경험치 50 exp를 획득합니다.]
[다음 레벨까지 남은 경험치: 40/100]
[스킬 정보: 상한가 잔량이 워낙 견고하여 내일 아침 점상한가(시작과 동시에 상한가)로 출발할 확률이 95%입니다. 내일 아침 장 개시 후 매도 타이밍을 노리십시오.]
도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태창을 우러러보았다.
이 상태창은 진짜 신이었다.
어쩌면 흙수저로 태어나 평생 월급쟁이 노예로 살다 갈 뻔한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유일한 구원의 밧줄일지도 몰랐다.
“그래, 가보자. 어디 끝까지 가보자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도윤의 얼굴에는 더 이상 어제의 찌질한 개미의 모습은 없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매서운 포식자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